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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18세를 위한 철학캠프를 다녀와서

2013년 3기 철학캠프 학생후기(조현민, 정순혁, 소현섭, 이창현)

프레시안과 한국철학사상연구회 그리고 상상마당이 주최한 '18세를 위한 철학캠프'의 1박 2일의 캠프가 1월 26일에서 27일 까지 논산의 상상마당에서 진행 되었습니다. 캠프를 다녀와 소감을 적어 보내준 세 학생의 후기를 소개합니다. <편집자>

조현민

처음에는 신문광고에서 봤었다. 신문 1/4쯤 크기정도로 <18세를 위한 철학캠프에 초대합니다>라고 적혀진 문구였다. 철학과를 희망하고 철학이라는 학문에 관심 있는 나로서는 '혹'했다. 게다가 그리스 로마신화와 관련해서 철학을 풀어낸다니. 소녀감성을 지닌 나는 두근두근 거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날 엄마를 충동질했다. "엄마, 나 이거 해보고 싶어." 18살, 예비 고3에게 홍대의 문은 그때 열렸다. 너무 충동적으로. 그 뒤로 홍대 가는데 걸리는 시간과 내가 고3이라는 압박과 길치라는 사실과 개학 전날이 캠프가 끝나는 날이라는 것을 알았을 때, 나는 방바닥을 허우적거려야했다.

우선, 버스는 나를 떠났다. 신청했기에 울며 겨자 먹기로 첫날 강의를 들으러 갔다. 경기도 광주 촌에서 홍대까지는 3시간이 걸렸고 상상마당 코앞에서 40분을 헤맸고(…만세 내 길치 정신!) 첫날 화려하게 지각했다. 그런데 생각보다 재밌고 흥미로웠다. 어렵게 철학자 이름을 꺼내면서 '이 사람은 어떤 철학자고 어떤 연구를 했다'의 나열식 교육이 아니라, 그때그때 필요한 철학가와 그의 연구가 등장하는 수준이고 주로 신화의 관점에서 이루어졌다. 그렇다고 또 철학이 아닌 것도 아니다. 확실히 철학적이다. 운명에 대한 생각, 사랑에 대한 관점, 자아를 찾는 여행, 진정한 모험에 대한 고찰, 신화와 철학의 관계, 그리고 영화에 응용되는 철학까지. 스스로 생각하게 하고 자신만의 철학을 만들게 도와준다. 철학이 얼마나 다양한 모습을 지니고 있는지, 얼마나 우리 일상에 친근감 있는 학문인지 깨달은 것 같아서 확신이 생겼다. 난 철학을 하고 싶다. 이미 일상에 깊숙이 침투한 그것을, 의미를 찾는 그것을, 행동을 되새김질할 수 있게 도와주고, 상상력과 생각을 풍부하게 하는 그것을 공부하고 싶다.

캠프는 더 재밌었다. 낯을 조금 가리는 나는 캠프가 매우 많이 걱정되었는데, 괜한 걱정이었던 것 같다. 처음 보는 애들과도 친해지고 조를 이루고 새벽까지 자지 않고 과제를 해결하는 과정이 너무 신이 났다. 비록 상은 받지 못했지만 잠을 안자도 지치지 않고 공부하면서도 이렇게 신날 수 있구나, 하는 것을 깨달았다. 철학을 자신들만의 생각으로 재구성한 다른 조의 발표가 너무 좋아서 인정하게 되었다. 등수를 매기고 한 줄로 세우는 학교 교육과 다르게 보상받지 않아도 즐거운 공부다. 선생님들과도 미래에 대한 이야기, 진로, 진학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면서 많은 것을 배운 것 같다. 하지만 선생님들보다 나는 캠프에 참가한 아이들에게서 많은 것을 배웠다. 다양한 지역, 다양한 학교, 다양한 생각을 가진 아이들이 좁은 촌인 광주에서 나고 자란 내게 세계를 넓혀주었다. 19살이 된 나는 동생들이 더 많았는데, 내가 부끄러울 정도로 멋있었다. 확실히 하고 싶은 것이 있고, 공부하기 위해 이런 캠프에 참가하고 꿈을 꾸는 동생들이 멋있었다.

19살, 대한민국에서 가장 많은 기대와 염려와 응원을 등에 업는 수험생이 되는 해 겨울. 내 세상은 더 넓어졌고 생각은 깊어지고 다른 세계에 사는 사람들의 다양성을 보았다. 1박2일 캠프가 끝나고 집에 가는 길에 나는 새로운 의욕이 생겼다. 언젠가 다른 곳에서 캠프에서 만난 아이들과 선생님들을 다시 마주하고 싶다. 나도 멋지게 꿈을 꾸는 사람이 되어서. 철학뿐만 아니라, 아주 많이 큰 '무엇'을 배우고 간다. 선생님들, 수능 끝나고 20살에 다시 와도 돼요?

정순혁

이번 철학 캠프는 솔직히 많은 기대를 하고 갔다. 나는 진로도 철학과 쪽으로 잡았고, 요즘 철학책을 읽으며 공부도 하고 있던 시기라 이 철학캠프가 나에게 많은 도움을 줄 것이라고 생각을 하고 참여하였다. 역시 캠프는 나를 실망시키지 않았다. 처음 강의부터 매우 흥미로웠고, 특히 두 번째 강의는 내가 관심 있어 하는 비물질적인 것(감정)에 대한 강의를 하였기 때문에 더 좋았다. 처음에 이 철학캠프 일정지를 보았을 때는 조금 걱정이 되기도 했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신화와는 거리가 멀었던 아이라 지식도 많지 않았고 좋아하지도 않았던 터라 매일 졸면서 돈 낭비라도 할까봐 근심이 이만 저만이 아니었다. 그런데 의외로 신화는 재미있었고 스펙타클했다. 그리고 이 캠프에서 가장 흥미로웠고 재미있었던 것은 다름 아닌 논술이었다. 나는 외고에 다니는지라 우리 학교에서는 글을 매우 못쓰는 편에 속한다. 그러나 이 캠프에서는 나의 글에 대해 칭찬을 많이 받았다. 초등학교 때 백일장에서 조차 상 한번 못타봤던 나에게는 신세계와 다름없었다. 그런데 어쩌면 철학이라는 분야가 내가 좋아하고 배경지식도 많은 터라 학교나 백일장에서 썼을 때보다 더 잘썼던 것인지도 모른다. 아마 그럴 확률이 높다. 여하튼 이 논술과 비평 프로그램은 매우 괜찮았던 것 같다. 내가 지금까지 생각해왔던 논의를 펼칠 수 있는 장이었으며, 문제점 또한 찾을 수 있는 매우 뜻 깊은 활동이었다.

일박이일 캠프에 대해 말한다면 소수로 짜여진 조별활동과 조별 기숙 생활이 좋았던 것 같다. 나는 처음 보는 사람들과 말을 트거나 생활하는 데 많은 어려움을 느낀다. 그러나 조별로 다니고 생활하면서 조별멤버들과 빨리 친해질 수 있었고, 짧은 시간 동안 깊은 우정을 쌓을 수 있었던 것 같다. 만약 번잡하게 여러 사람과 면대하고 활동하는 프로그램이 진행되었다면 분명 가벼운 인연에서 끝났을 것이다. 또 만족스러웠던 것은 캠프 진행자 최원혁 지도자 분이 정말 재미있었다. 힙합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랩퍼인 최원혁 선생님에게 더 호감이 갔고, 진행도 매우 훌륭히 해주셔서 즐거운 캠프가 되었던 것 같다.

만약에 18세를 위한 철학캠프 4기가 개설된다면 꼭 다시 참여하고 싶고 5기까지도 참여하고 싶다. 정말 알차게 잘 짜여진 교육 강의 겸 캠프였던 것 같다.

소현섭

나를 비롯한 열여덟 살의 청춘들에게는 저마다 별처럼 빛나는 꿈이 있다. 그 꿈을 향한 도전이 값지면 값질수록 많은 시행착오가 따르기 마련이다. 예상치 못한 난관에 부딪힐 수도 있지만 그럴 때 일수록 어려움을 이겨내는 용기와 힘이 필요하다. 운명이 부여한 시련의 상황에서도 꺾이지 않는 지혜와 의지를 보여준 그리스 신화 속 인물들이 있었다. 이들은 운명의 필연적 법칙에 굴복하기보다는 자유로운 인간의 삶을 선택한 대가로 고통을 받고 있는 이들이었다. 이들의 대응을 고찰해 봄으로써 우리 청소년들은 고난에 굴하지 않는 자유의 정신이 무엇인지에 대해 '한국철학사상연구회'에서 나온 교수님들과 함께 소통해보는 시간을 가졌다.

저의 후기는 조금 남다를 수 있습니다. 철학 강의에 대해 대부분의 청강자 분들은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주변 환경에 대한 예를 들며 최대한 철학적으로 후기를 써내려가곤 합니다. 하지만 어떤 강의에 대한 흐름보다는 저만의 색다른 깨달음으로 승화시켜서 후기를 쓰는 것은 본래의 제 스타일이므로 이해해주시길 바랍니다. 온라인 신문사인 프레시안에 게재된 (함께 들었던) 몇몇 학생들의 후기를 보니 다들 생각이 깊고 훌륭한 작문능력을 구사한다는 것에 놀랐습니다. 칠칠맞게 저만의 기록물도 잊어버렸고 벌써 2주가 되어가는 시점이어서 그들보다 더 길고 생생하게 쓰기는 힘들 수 있습니다. 하지만 짧고 굵게나마 당시를 회상하며 깨달았던 점 혹은 그 강의들로부터 제가 얻을 수 있었던 점들에 대해 소개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첫째 날(2013.1.2)의 제목은 '보다 자유롭게 꿈꾸기 위해(오이디푸스왕: 운명의시련)'이었습니다. 자신의 비극적 운명을 알고도 그로부터 도피하지 않고 그에 맞서 그것을 훤히 밝혀 드러내는 오이디푸스의 실존과 자유정신에 대해서 살펴봤습니다. 처음에는 '실존과 자유정신'이라는 가장 핵심적이었던 강의 속 주제에 대해 '뭐 별거 있을까. 내가 아는 거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 같은데'와 같은 식으로 단순히 생각했지만 계속 강의를 듣다보니 점차 그 생각이 바뀌어 갔습니다. 당시 느꼈던 주제의 핵심은 '긍정적 사고의 중요성'이었습니다. 고통과 난관에도 불구하고 삶을 긍정하는 영웅적인 자세를 갖고 살아가야겠다는 다짐도 할 수 있었습니다. 특히 자신의 제대로 된 이룸을 위해서라면 죽음마져도 (최후의 순간까지)두려워하지 않았던 오이디푸스의 자신감을 보고 저 자신에 대해 한 번 되돌아보며 더 자신 있게 살아야 겠다는 다짐도 할 수 있었습니다.

둘째 날(2013.1.9)의 주제는 '우리가 사랑에 눈뜰 때(에로스와 프시케: 사랑의시련)'이었습니다. 사랑의 신 에로스와 인간 프시케의 사랑 이야기는 아직까지도 많은 사람들에게 영원한 사랑의 신화로 읽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사랑이 성급한 열정과 단순한 욕망에 머무르지 않고 영원한 사랑으로 성숙하기 위해서는 어떠한 대가와 준비가 필요한지 알 수 있었습니다. 또 연인들의 완전한 합일은 그저 결혼을 통한 가정의 수립이라는 관점에서만 해석되어야 할 필요가 없다는 것도 깨달았습니다. 에로스와 프시케의 이야기를 통해 성숙한 사랑, 진정한 합일의 의미를 생각해봤습니다. 지금까지는 '사랑'이라 하면 단순히 '남녀가 애정행위를 하는 것'(?) 정도로만 알고 있었지만 강의를 들은 뒤에는 처음의 그 생각이 정말 단순했다는 것을 깨달았고 좀 더 폭넓은 관점으로 '사랑'을 바라보는 법을 익힐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 날 이후로 180도 달라진 사랑에 대한 저의 생각을 발견하고 있습니다.

셋째 날(2013.1.16)의 주제는 '나의 존재감 드러내기(테세우스: 자기 증명의 시련)'이었습니다. 개인적으로 네 번의 강의 중 가장 적극적으로 (수업이 아닌)소통해주셨던 강의로 기억에 남습니다. 플루타르크 영웅전의 첫 장을 장식하는 테세우스는 그리스 건국의 시조입니다. 그러나 그의 출발은 미천하기 그지없었습니다. 그는 먼 친척이자 자신의 우상인 헤라클레스를 본받아 모험의 길을 나섭니다. 그의 이야기 속에는 공동체 속에 편입되기를 갈망하는 외부자의 강박과 아버지의 사회에서 인정받으려는 아들의 초조함이 담겨져 있었습니다. 업적을 통한 자기 증명과 그것의 '말로'에 대해 성찰해봤습니다. 새롭게 알게 된 것은 신들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들의 이야기, 좀 더 구체적으로 저의 이야기를 찾을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신화는 일종의 '나를 찾기 위한 스토리텔링의 동반자 내지 교훈자'라는 것도 알 수 있었습니다. 특히 이 18세를 위한 철학캠프[강의]가 왜 신화를 바탕으로 진행되는 것인지도 (이 강의를 통해 제대로)알 수 있었습니다. 그건 바로 '(신화의)정의'에서 도출된 것 이었다는 것입니다. 신화는 '세계와 사물에 대한 궁금증을 초자연적인 존재나 신들을 통해 풀어낸 이야기'로서, '논리적이기 보다는 감성적이며 피부에 와 닿는 이야기'입니다. 특히 신화의 중요한 네 가지 원리인 '반복', '확대'. '재생산', '유명'은 철학과 유사한 관련이 있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고 언젠가 다시 철학을 공부할 때에도 신화와 함께 해봐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넷째 날(2013.1.23)의 주제는 '모험 속에서 나를 찾다(오디세이아: 모험의 시련)'이었습니다. 주제처럼 '모험의 의미'가 강조된 강의였습니다. 물론 모험의 의미는 한 사람이 간단히 정의내릴 수 없는 문제이지만 저만의 생각도 해보게 되었습니다. 바로 (개인적인 생각으로)'모험'이라는 것은 자기 자신을 더 강화시키기 위해 신화 속 인물들이 썼던 방법이라는 것입니다. 그게 공통된 핵심이었던 것 같습니다. 항상 모험을 떠난 뒤에는 '변화'가 생기는 것이 너무 신기했습니다. 저도 모험의 경험이 있어 쉽게 공감이 가긴 했지만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모험을 통해 '변화'를 경험한다는 것은 무척이나 놀라웠습니다. 저도 앞으로 모험의 기회가 생기면 당황하지 않고 침착하게 이 모험에서 깨달아갈 점을 생각하며 그 모험을 즐길 생각입니다.

매주 한 번씩 도합 네 번의 강의를 들으면서 지금의[청춘의] 시기가 대학이라는 하나의 목적만 가지고 살아가도록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확실히 느낄 수 있었습니다. (매번 강사님들께서 자신이 원하는 일, 가슴 뛰는 일을 하기위해서는 당장 앞에 보이는 대학만을 보지 말고 꿈을 찾으라는 식으로 강조하셔서 그렇게 느꼈는지는 모르겠지만)저 자신의 가슴 속에 품었던 혹은 품고 있는 꿈을 향해 더 높이, 더 멀리 날아오를 자세를 취하면서 하루하루 꿈을 잊지 말고 살아가야겠다는 생각을 철학적으로 해볼 수 있었던 좋은 계기가 된 것 같습니다.

매주 한 번씩 신화 속 철학이야기를 들은 뒤인 1월 26일(토요일)과 1월 27일(금요일)에는 짧게나마 교육효과를 더 확실시하기 위해서였는지 논산 KT&G상상마당으로 1박2일간의 캠프를 떠났습니다. 처음엔 캠프를 이루고 있는 주요 내용이 '철학'인지라 약간 막막했었지만 막상 캠프에 가보니 철학이라는 학문이 나와 관련이 많은 학문이라는 것을 각인 받았을 정도로 흥미롭게 진행되었습니다. 특히 캠프일정 중 있었던 골든벨 대회에서 저희 팀이 1등을 했었다는 것은 다시 생각해도 기쁩니다. 조원 모두가 최선을 다했던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캠프에서는 등수보다도 캠프참가자 모두가 열심히 참여했느냐가 훨씬 중요하지만 그 동안 배웠던 내용을 기대 이상으로 많이 맞추었다는 것에서 스스로 자신감을 얻을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머지않은 훗날, 고대사 속 우리나라의 위상을 통해 (외교, 교육적으로)한국의 위상을 높이는 것이 가장 이루고 싶은 꿈인 저에게 있어 이번 캠프는 정말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이번 기회에 알아온 역사와 철학과의 긴밀성이 그 때 제가 [훗날 전 세계를 대상으로 할 한국사 알림이로 활동하게 될 때]역사 뿐만 아니라 철학을 접목시킬 수 있도록 만들어 줄 또 한 번의 연결고리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캠프운영을 위해 도움을 주셨던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이창현

엄마가 18세의 철학캠프를 추천해 주었을 땐 어렸을 때 읽어본 그리스 신화를 주제로 하고 18세 학생들을 위한 수업이고 또 결정적으로 캠프를 간다는 말에 신나게 신청했다.

사실 처음에는 어렵고 딱딱한 철학을 어릴 적 한번쯤은 읽어본 그리스신화를 통해 이야기한다고 18살 학생들이 과연 이해할 수 있을지 의문도 들었다. 첫날 강의를 들으러 갔을 때 내가 처음에 의문점을 가졌던, "학생들이 과연 이해할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을 단박에 깨 버렸다. 강의의 수준이 생각보다 너무 높았고 학생들의 질문하는 수준이라던가, 자신의 주장을 말할 때 나는 속으로 '내가 오기엔 수준이 너무 높구나.' 싶었다. 내가 철학에 관심이 있고 재미있다고 생각한 것 자체가 창피할 정도였다. 사실 첫 강의가 끝나고 여기를 계속 와야 하나, 그냥 다니지 말까 싶었는데 집에서 곰곰이 생각해보니 다음 강의내용을 공부하고 가면 내 주장을 펼칠 만큼은 아니더라도 최소한 강의를 이해할 수는 있겠다 싶은 마음에 책을 찾아서 읽어보고 과연 뭐가 핵심일까 생각해봤다. 지금 후기를 쓰면서 느낀 거지만 매 강의마다 내주는 과제물의 완성도에 대한 경쟁심이 있었던 것 같다. 난 원래 적극적으로 책을 찾아서 예습을 해가고 공부를 해본 적이 없는데 오기가 생겼던 것 같다. 그래서인지 논술문도 잘 쓰려고 노력해봤고 선생님의 칭찬도 받고 싶었고, 나름 칭찬도 받았다.

강의가 끝나고 캠프만을 남겨두었을 때. 무척 기대했다. 거기서의 강의내용은 어떨지, '나는 철학자다.' 는 어떻게 진행될지, 거기서 친구들과 잘 지낼 수 있을지. 걱정 반 기대 반으로 버스에 올라탔다. 논산 상상마당에 도착하자마자 "역시 상상마당" 이라는 생각이 들게 해준 이쁜 건물들은 아직도 눈에 아른거린다. 강당에서 방 배정을 받았을 때 방애들끼리 어색할 거 같아서 내가 먼저 장난을 걸면서 조금씩 친해졌다. 두 개의 강의를 더 듣고 여러 가지 재미있는 레크리에이션을 마치고 내가 기대하던 '나는 철학자다' 시간이 왔다.

나는 철학자다의 주제는 지금까지 들었던 강의내용들을 가지고 형식에 상관없이 주제를 뽑아내어 발표를 하는 것이였다. 우리 조는 캠프에서 들은 강의중 하나인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을 주제로 뮤지컬을 만들었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을 어느 정도 공부하고 온지라 시작은 매우 순조로웠다. 하지만 가면 갈수록 시나리오가 주제에 맞지 않아서 밤을 세운 끝에 완성을 했다. 그리고 발표일 당일. 다른 조들의 작품성을 보고 우승은 못할 거 같아 우리가 준비한 것 만 보여주자고 생각하며 무대 위로 올라갔다. 물론 우승은 다른 팀이 가져갔지만 우리 조는 만족하며 잘 끝냈다. 모든 일정이 끝나고 버스에 타기 직전에 눈이 많이 내렸는데 정말로 장관 이였다. 모두 사진을 찍고 이리저리 놀다가 집으로 출발했다.

사실 철학이라는 장르는 오래되어 딱딱해진 쑥떡 같은 맛이다. 철학책들이 단어도 어렵고 풀어서 나온 책이 많이 없다보니 읽기가 힘든 반면 소설책, 문학책들은 달콤한 케이크 같은 맛이다. 요즘에야 많이 단어들을 풀어서 쓴 철학책들이 많지만 아직까지도 어렵다는 편견이 많다. 그런데 꼭 오래되어 딱딱해진 쑥떡이 맛이 없기만 할까? 쑥떡도 쑥떡 나름의 맛이 잇기 마련이다. 이번 철학캠프는 '철학' 이라는 딱딱한 쑥떡을 '신화'라는 주제로 데우기도 하고 꿀에 바르기도 해서 좀더 맛있게 먹게 해준 것 같다. 많은 인연들을 만나게 해주고 매주 기대되는 방학을 만들어준 상상마당과 한국 철학사상연구회, 프레시안. 그리고 2조 친구들에게 고맙단 말을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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