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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 가을...바람도 쉬어 넘는 바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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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깊은 가을...바람도 쉬어 넘는 바람재"

[알림] <백두대간12걸작선> 3기를 시작합니다

백두대간학교(교장 최창남)가 11월, <백두대간12걸작선> 3기를 시작합니다. 백두대간학교는 지난 2년 동안 24회에 걸쳐 <백두대간12걸작선> 1기, 2기를 진행했습니다.

최창남 교장선생님은 백두대간 전문가이며 작가, 작곡가이기도 합니다. 2008년 백두대간을 종주하며 인문학적 산행기를 <프레시안>에 연재했습니다. <백두대간 하늘길에 서다> 등 다수의 책을 출간하였으며 <노동의 새벽> <저 놀부 두 손에 떡 들고> 등 민중가요들을 작곡하였습니다.

최창남 교장선생님은 3기를 시작하며 이렇게 말합니다.

때로 많은 사람들이 묻습니다.
"왜 백두대간을 걸어야 하나요?"

백두대간이 아니더라도 산은 지천이고 발 닿는 곳마다 길인데 굳이 힘들게 백두대간을 걸을 필요가 있느냐고 묻습니다. 산길을 걷는다는 것은 본래 산길 따라 걷는 것이 아니라 마음길 따라 걷는 것이니 굳이 백두대간이어야 할 필요는 없다고 대답합니다. 백두대간이 한반도를 하나로 잇는 큰 산줄기이기 때문에 굳이 걸어야 하는 것은 아니고 또 그럴 필요도 없다고 말합니다.

백두대간을 걷는 사람들, 걸을 수 있는 사람들은 그 길 따라 걷기를 마음으로 간절히 원하는 사람들입니다. 백두대간이 부르고 들어올 수 있도록 허락한 사람들입니다. 그들만이 백두대간 1,625km, 남한 구간 684km의 깊은 산길로 들어설 수 있는 것입니다.

백두대간은 이 땅의 모든 생명을 품어 키운 생명의 땅입니다. 생명을 품어 키운 자비심과 지혜가 깃든 땅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땅에 있지만 하늘에 속한 신성하고 거룩한 땅이었던 것입니다. 그것이 백두대간의 머리가 되는 산의 이름이 백두산이어야만 하고, 남쪽 끝인 동시에 또 다른 시작인 산의 이름은 지리산이어야만 했던 이유입니다. 백두산(白頭山)은 '지혜의 머리가 되는 산'이라는 의미이고, 지리산(智異山)은 '머물면 사람 사는 세속과는 다른 종류의 지혜를 얻게 되는 산'이라는 의미입니다.

그러므로 백두대간은 발로 걷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걷는 길입니다. 프랑스에서 스페인까지 이어진 신심과 평화의 길 '산티아고'를 걷는 것처럼 제각기 마음에 담긴 신심으로 걷는 하늘길이다. 평화를 얻고 누리고 지키는 생명길입니다. 그러니 어찌 아무나 들어올 수 있겠습니까. 그런 마음을 품고 걷는 자만이 백두대간과 하나 되는 기쁨을 누리고 지혜를 얻게 될 것입니다. 백두대간의 속살을 보며 사랑을 나눌 수 있게 될 것입니다.

<백두대간12걸작선> 3기를 시작합니다.

<백두대간12걸작선>이라는 이름으로 도반들과 함께 산길 걸어 온지 벌써 2년이 지났습니다. 백두대간 남한구간 약 684km 중 국립공원관리공단에서 비법정탐방로로 지정하고 있는 79.9km를 제외하면 걸을 수 있는 구간은 약 604km 정도입니다. 지난 2년 동안 제법 많이 걸었습니다. 새롭게 시작하는 3기를 마치면, 비법정탐방로와 험난하고 힘든 코스 등을 제외하면 대부분 걷게 되는 것입니다. 걷지 못한 다른 구간들을 걷고 싶으신 분들은 대간 종주를 꿈꾸시기 바랍니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백두대간12걸작선> 3기는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라 할 수 있습니다.

<백두대간12걸작선> 3기의 산행 코스를 정하는 과정에서 몇 가지 원칙을 세웠습니다.

첫째, 초보자 코스와 중상급자 코스를 철저히 분리하였습니다.
둘째, 초보자들을 위한 산행을 늘렸습니다. 산행거리도 이전보다 짧게 조정하였고 상대적으로 쉬운 코스를 선택하였습니다. 트레킹 여행의 의미를 담아 겨울의 끝인 2월에는 초급자들을 위한 1박2일 산행도 계획하였습니다.
셋째, 중상급자들을 위해 1박2일 산행을 3회로 늘렸습니다. 평소에 혼자서는 산행하기 쉽 지 않은 종주 산행을 포함했습니다.(설악산, 덕유산, 지리산 종주 등)
넷째, 산행 구간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구간별 난이도 표시를 하였습니다.

▲ 가을의 전령 구절초 ⓒ백두대간학교

<백두대간12걸작선 3기의 첫 번째, 11월 산행(제25강)은 바람도 쉬어 넘는 표지석이 앙증맞은 <바람재 구간>입니다. 산행은 소의 형상을 한 표지석이 있는 우두령(질매재)에서 시작합니다. 경북 김천시와 충북 영동군을 잇는 고개입니다. 산행 난이도는 중중(★★)입니다.

잡목이 우거진 길을 지나 삼성산을 오르고 임도를 지나다 보면 바람재에 도착합니다. 바람에 날리는 모양 새겨져 있는 표지석이 웃음을 저절로 머금게 합니다. 가슴 시원해지는 바람을 맞으며 형제봉을 지나 황악산에 오릅니다. 천년고찰 직지사를 품고 있는 황악산을 지나 여우의 전설이 전해오는 여시골산을 지나 괘방령으로 내려옵니다. 괘방령에서 산행을 마감합니다. 산행일은 11월 24일 토요일(당일)입니다.

[교장선생님의 산행지 설명]

백두대간은 약 1,680km나 되는 길고 긴 산길입니다. 남쪽 구간만 해도 약 684km입니다. 도상거리만 그러하니 실제로 걷는 거리는 남한만 약 1,000km에 달합니다. 그 길고도 긴 산길에 산도 많습니다. 설악산, 오대산, 태백산, 소백산, 속리산, 덕유산, 지리산처럼 장엄하고 화려한 아름다움 품어 눈길을 사로잡는 산들이 있는가 하면 청옥산, 두타산, 석병산, 자병산, 희양산, 대미산, 백운산, 금산, 영취산들처럼 겹겹이 사연을 품어 마음 적시게 하는 산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백두대간12걸작선> 3기의 첫 산행인 바람재 구간의 산들처럼 장엄하거나 화려하지도 않고 겹겹이 쌓이고 쌓인 사연들도 없는 산들도 있습니다. 이런 산길은 찾는 이들이 적습니다. 백두대간을 걷는 이들만 바람 지나간 길을 따라 걸을 뿐입니다. 때로 백두대간을 걷는 이들조차 이런 구간을 밋밋하다 해서 마땅치 않아 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저는 이런 구간이야 말로 백두대간의 정수를 만날 수 있는 곳입니다. 왜냐하면 화려함에 눈을 빼앗기지 않고 겹겹이 쌓인 사연에 마음 적시지 않고 나 자신을 느끼며 걸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 산길에는 오로지 백두대간과 나만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흐르는 강물처럼 때로 격렬하게 때로 고요하게 굽이쳐 흐르는 백두대간은 바람재 구간에서 숨을 고릅니다. 지친 몸을 잠시 내려놓습니다. 부는 바람에 땀을 식힙니다. 머무는 바람과 담소도 나눕니다. 온 세상을 다니며 듣고 보고 온 바람이 가슴에 담아 온 이야기가 얼마나 많겠습니까. 바람재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바람이 많은 곳입니다. 바람이 많을 때는 사람이 날아갈 정도로 세차게 불어온다고 합니다. 물론 바람이 없을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바람이 없는 것이 아니라 바람이 머물러 있는 때입니다. 바람이 머물러 쉬고 있는 때입니다.

백두대간도, 바람도 머물러 쉬고 있는 곳이 바로 바람재이고 11월의 산행지입니다. 산길은 아늑하고 호젓합니다. 바람재로 내려서고 들어서는 길 또한 아늑하고 때로는 아련하기까지 합니다. 바람재는 다른 산길에서는 쉽게 만나기 어려운 그런 아름다움을 품고 있는 곳입니다. 세찬 바람이 모질지만 않다면 하늘 베개 삼아 바람재 풀밭에 누워 맑은 눈으로 우리가 살다 온 모진 세상을 다시 바라볼 수도 있겠습니다. 그나마 잊고 망중한을 즐길 수 있다면 더욱 좋겠지요.

산행은 경북 김천시와 충북 영동군을 연결하는 분수령인 우두령(720m)에서 첫 걸음을 뗍니다. 901번 지방도로가 지나는 우두령은 낙동강과 금강수계의 발원지이기도 합니다. 산으로 들어서는 길을 찾지 못할 염려는 없습니다. 이 길을 지난 이들이 저마다 "이 곳을 지나갔노라"고 리본을 메달아 놓았기 때문입니다. 보기는 아름답지 않지만 때로 길잡이 역할도 하고 있는, 앞서간 사람들의 흔적입니다. 국립공원관리공단이든 산림청이든 하루속히 백두대간의 관리가 일원화되어 하나의 이정표, 하나의 리본으로 통일되기 바라는 마음 간절합니다.

조금씩 오르막으로 이어지는 산길을 따라 걷노라면 삼성산(986m)이고 여정봉(1,030m)입니다. 여정봉 지나 아늑한 산길 따라 내려가면 고향에 온 듯 편안함을 느끼게 되는 바람재(810m)입니다. 몸 쉬고 마음 나누게 되는 안온한 땅 바람재입니다. 숨 가쁘게 달려온 백두대간조차 무거워진 몸을 내려놓고 쉬는 곳입니다. 그 바람재에서 형제봉(1,020m)으로 올랐다가 11월 산행의 최고봉인 황악산(1,111m)을 지나면 운수봉(680m)이고 여시골산(620m)입니다. 때로 오르막 가파르고 때로 내리막 가파르지만 길은 부드럽고 안온합니다. 그렇게 안온한 길을 따라 걷다 보면 백두대간이 사람들 곁으로 내려온 중화지구의 초입인 괘방령입니다. <마음 길 따라 호젓하게 걷기>가 이번 11월 산행의 주제입니다. 바람 길 따라 걷는 이 산행에 함께 하시기 바랍니다.

▲ 바람재 가는 길 ⓒ백두대간학교

▶구간소개

- 산행코스 : 우두령-삼성산-여정봉-바람재-형제봉-황악산-운수봉-여시골산-괘방령
- 산행거리 : 약 12.4km(도상거리)
- 소요시간 : 약 7시간
- 난 이 도 : 중중(★★)

[산행계획]

여유 있는 산행을 위해 일찍 출발합니다. 모든 산행은 전문산악가이드 두 분이 '안전제일'로 진행합니다. 산악가이드 이철승 선생님은 백두대간 종주 등 산행경력 30년의 공인 등산안내인이고, 엄재용 선생님은 백두대간을 3회 종주한 공인 등산안내인입니다.

<버스운행>

출발 10분전에 도착하여 버스에 탑승하세요. 버스 앞에 <백두대간학교> 표지가 붙어 있습니다. 김종선 기사님 전화번호는 010-4152-1055번입니다.

01:00 덕수궁 대한문 앞 출발(지하철 1,2호선 시청 2번 출구)
01:30 사당역 출발(지하철 2,4호선 1번 출구)
01:40 양재역 출발(지하철 3호선 12번 출구)
02:00 경부고속도로(하행) 죽전 버스승차장

<산행일정>


11월 24일 (토요일)


05:00 시골식당(충북 영동군 상촌면 임산리 326-7/043-745-2121) 도착
아침식사 및 도시락 싸기
06:00 산행 안내 및 등반 교육
07:00 우두령 도착. 스트레칭 후 산행 시작
08:20 삼성산
09:00 여정봉
09:30 바람재에서 휴식
10:30 형제봉
11:00 황악산. 정상 부근 헬기장에서 점심식사
12:30 운수암 사거리 안부
13:20 여시골산
14:00 괘방령. 산행 마감
14:30 고향식당(충북 영동군 상촌면 임산리 345-1/043-743-5149)으로 이동
자연산 버섯찌개와 막걸리로 뒤풀이 겸 식사
16:00 서울로 출발
19:00 서울 도착 예정

*상기 일정은 상황에 따라 변경될 수 있습니다.

▲ 바람재 산행로 ⓒ백두대간학교

[산행준비물]

등산복, 장갑, 등산모, 방풍의, 우의, 스틱, 물통, 여벌옷, 간식, 자외선차단제, 헤드랜턴, 그리고 반드시 빈 도시락과 수저 세트를 가져오세요.

<백두대간12걸작선(傑作選)3>① <바람재 구간> 참가비는 10만원입니다(왕복 교통비, 3회 식사와 뒤풀이, 강의비, 여행보험료, 운영비 등 포함). 버스 좌석은 참가 접수순으로 지정해드립니다. 참가신청과 문의는 백두대간학교 홈피 www.huschool.com 전화 050-5609-5609 이메일 master@huschool.com을 이용해주십시오(산행에 관한 문의는 이철승 선생님에게 해주세요. 010-8727-0202). 아울러 백두대간학교 카페에도 많이 놀러오시고 회원 가입도 해주세요 (http://cafe.naver.com/baekdudaeganschool)^^.

☞참가신청 바로가기

▲ 바람재 표지석 ⓒ백두대간학교

[산행자료]

[우두령(질매재)] 720m. 충북 영동과 경북 김천을 이어주는 고갯마루다. '질매'라는 이름은 이 고개의 생김새가 마치 소 등에 짐을 싣거나 수레를 끌 때 안장처럼 얹는 '길마' 같다고 해서 붙여진 것이다. 질매는 길마의 이 고장 사투리다. 이 말이 한자화하여 우두령(牛頭嶺)이라고도 불리는 것인데, 국토지리정보원의 지도에는 두 이름이 별개인 양 둘 다 표기돼 있다.
[삼성산] 985m. 동으로 진밭산, 동구지산, 덕대산 등이 조망되며, 서쪽으로 흥덕리의 깊은 계곡이 펼쳐져 있다. 충청북도 영동군 쪽으로 경희대연습림 조림지가 있다.
[여정봉] 1,034m. 숲으로 인하여 조망이 없다.
[바람재] 810m. 바람이 불 때면 사람이 날아갈듯 많이 분다 해서 바람재. 바람재는 아마추어 무선사들이 새로운 무전기의 교신 거리와 성능을 실험하기 위해 종종 찾는 곳이다. 50W 정도의 출력을 내는 무전기로도 일본과 교신이 될 만큼 전파가 잘 터지는 곳인 바람재는 과거 주한미군이 주둔하기도 했다. 자동차 2∼3대가 겨우 올라 설 수 있는 꼭대기까지 길을 낸 것도 그들이었다. 발을 들여놓기 곤란할 만큼 망가진 데다 쓰레기투성이가 된 콘크리트 방카를 유산으로 남겨놓기까지 했다. 그들은 지금도 한 달에 한두 번 산을 올라와 몇 시간씩 머물고 돌아간다고 한다. 특히 미군이 개입하는 국제전쟁이 치러질 때면 봉우리에는 어김없이 미군들의 모습이 보인다고 했다. 유고 내전이 한창이던 때에는 아예 며칠씩 상주하기도 했다. 그들의 성능 좋은 무전기로 유럽까지 교신이 가능하다는 소문이 돌게 된 것도 그 때문이었다.
바람재는 아마추어 무선사들만이 아니라 백두대간을 종주해 본 산꾼들에게도 유명한 곳이다. 남으로 우두령에서 북으로 괘방령까지 긴 산길에서 유일하게 물을 얻을 수 있는 곳인 데다 목장까지 있어 산꾼들에게는 좋은 쉼터가 돼 온 탓이다. 해발 870m의 21만여 평의 목장은 1994년에 모습을 갖추었다. 겉으로 낭만적으로 보이기까지 하지만 목장에서 한국 축산업의 현주소를 찾아내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목장에는 한 마리의 소도 없다. 마지막 14마리의 소까지 팔아치우면서, 이제 목장의 주인은 소가 아니라 흑염소다. 표지석의 바람재는 바람에 흐느적거리고 있다.
[형제봉] 1,020m. 정상에 표지석도 없고 쉴만한 공간도 없는 능선길에 불과하다. 조망도 트이지 않고 다만 황악산 비로봉만 올려다 보인다. 잠시 내려섰다 올라서면 바로 황악산 정상이다. 두 개의 봉우리가 사이좋게 나란히 있어 형제봉이라 불리는 듯하다.

▲ 황악산 가는 길 ⓒ백두대간학교

[황악산] 1,111m. 형제봉에서부터 황악산까지는 제법 가파른 오르막이다. 하지만 부드럽다. 비록 '악(岳)' 자가 붙었긴 했지만 산세는 지극히 순한 육산이다. 그래서인지 국토지리정보원의 1:50,000 지도에는 황학산(黃鶴山)으로 표기돼 있다. 예로부터 학이 많이 찾아와 황학산(黃鶴山)으로 불렀다고 하며 지도상에도 흔히 그렇게 표기되어 있으나, <신증동국여지승람>이나 <대동여지도> <택리지> 같은 문헌 및 직지사의 현판에 '황악산'으로 적혀 있는 걸 보면 황학산은 분명 오기인 듯하다.
굳이 '岳'에 대한 의미 부여를 하자면, 북에서부터 내려오는 대간의 줄기가 속리산에서부터 이렇다 할 산을 솟구치지 못하던 차에(속리산에서 황악산 사이에 1,000m가 넘는 산은 하나도 없다) 1,111m나 되는 산을 만나고 보니 당연히 그런 이름을 붙이지 않았을까. 또한 이 산 이름의 첫 글자인 황(黃)은 오방색(五方色) 중 가운데를 나타내는 색인데, 옛 사람들도 분명한 의식을 가지고 명명했을 것 같다. 실제로 황악산은 삼면 바다를 기준으로 봤을 때 한가운데에 있다.
[직지사] 황악산(黃岳山)의 황자는 청(靑), 황(黃), 적(赤), 백(白), 흑(黑)의 5색(色) 중에서도 중앙색을 상징하는 글자이다. 따라서 황악산에 자리 잡은 직지사는 예로부터 해동(海東)의 중심부에 자리 잡고 있는 으뜸가는 가람이라는 뜻에서 동국제일가람(東國第一伽藍)이라는 말이 전해지고 있다. 김천까지는 12km이고, 다시 김천에서 서울까지는 230km, 부산까지는 218km로서 남한의 중앙지대에 위치하고 있다.
신라 눌지왕 2년(418) 아도 화상에 의하여 도리사(桃李寺)와 함께 개창(開創)되었다. 직지(直指)라 함은 직지인심 견성성불(直指人心 見性成佛)이라는 선종의 가르침에서 유래되었다 하며, 또 일설에는 아도 화상이 일선군 냉산(冷山)에 도리사를 건립하고 멀리 김천의 황악산을 가리키면서 저 산 아래도 절을 지을 길상지지(吉祥之地)가 있다고 하여 직지사라 이름 했다는 전설도 있다. 또는 고려의 능여화상이 직지사를 중창할 때 자를 사용하지 않고 직접 자기 손으로 측지(測地)하였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란 설도 있다.
[백운봉] 황악산의 동봉(東峰)이자 직지사 백련암의 배후에 자리한다. 황악산의 일봉이지 독립 봉우리는 아니다. 경승지인 능여계곡이 가장 잘 관찰되는 위치에 있다. 이곳에서의 '백운'은 일반명사에 가까운 고유명사다. 특별한 의미를 부여한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운수봉(雲水峰)] 680m. 직지사의 부속 암자인 운수암의 북쪽 봉우리다. 직지사가 있는 능여계곡의 행정구역이 대항면 운수리이므로 마을 이름과 관련되어 있다. 황악산 자락에 딸려 있는 조그만 봉우리인데 각종 이름에 차용된 것이 의아스럽다. 산 이름에 '물 수(水)'자를 쓰는 특이한 곳이다. 정상은 암장이다. 운수봉(雲水峰)은 언제나 구름이 머물고 골짜기에 물이 흐르는 곳이라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도 한다.
[여시골산] 620m. 현재 대간꾼들 사이에 여시골산(620m)이라 불리는 산은 운수봉과 괘방령 사이의 대간 상에 있다. 그런데 국토지리정보원의 지도에는 오른쪽 가지줄기의 385.4m를 여시골산이라 표기하고 있다. 현지 조사를 통해 진위가 가려져야 할 것으로 보인다. 참고로 여시골산이라는 이름은 '여우'의 경상도 사투리에서 비롯된 듯한데, 과거 이 산에 여우가 많이 살았는지는 알 길이 없으나, 대간 등마루 위 오름길의 시작 부분에 여우굴 같은 동굴이 있다.
[괘방령] 357m. 충북 영동군 매곡면과 경북 김천시 대항면을 잇는 977번 지방도로 위에 있는 고갯길. 이곳은 충북과 경북의 경계지역으로 조선시대부터 괘방령이라 불리고 있다. 괘방령이라는 지명은 조선시대 때 이 고개를 넘어 과거를 보러 가면 급제를 알리는 방에 붙는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인근의 추풍령이 국가업무 수행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던 관로(官路)였다면 괘방령은 과거시험 보러 다니던 선비들이 즐겨 넘던 과거길이며 한성과 호서에서 영남을 왕래하는 장사꾼들이 관원들의 간섭을 피해 다니던 상로(商路)로서 추풍령 못지않은 큰 길이었다. 특히 과거를 보러 가는 사람들은 '추풍낙엽(秋風落葉)'을 연상시키는 추풍령보다는 급제자들의 이름을 거는 '괘방(掛榜)'이라는 이름 때문에 이 고개를 지나 다녔다고 한다. 인근 고을에 부임하던 관리들까지도 한사코 이 고개를 넘어 다녔다고 하는데...
그러나 이런 추측도 후대의 의미 부여이기가 쉽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괘방(卦方)'으로 적혀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기서 국토지리정보원 지도의 지명 표기를 문제 삼지 않을 수 없다. 掛榜이든 卦方이든 한글 표기는 '괘방'이어야 하는데 '궤방'으로 적혀 있기 때문이다. 분명한 오기로 보인다.
또한 이곳은 임진왜란 때 박이룡 장군이 왜군을 상대로 격렬한 전투를 벌여 승전을 거둔 격전지로서 북쪽으로 1km 떨어진 도로변에는 장군의 공을 기리기 위해 지은 황의사라는 사당이 있다. 비록 이곳이 해발 300m의 낮은 고개이지만 민족정기의 상징인 백두대간의 정기가 잠시 숨을 고르다 황학산으로 다시 힘차게 뻗어 오르는 곳이며 금강과 낙동강의 분수령이기도 하여 북쪽으로 흐르면 금강, 남쪽으로 흐르면 낙동강으로 흘러가는 지리적으로 매우 중요한 곳이다.
[괘방령산장] 전원생활을 그리워하던 산장 부부가 가정집으로 지으려다가 산꾼들의 성화에 못 이겨 산장 아닌 산장이 되었다 한다. 부부가 손수 3년여 공사 끝에 2007년 11월에 완공. 아직 대간길에서 많이 알려지지 않아 산꾼들의 발걸음은 적은 편이지만 한번 다녀간 사람은 산장 부부의 넉넉한 인심에 시간을 내어 다시 찾아오는 사람도 있다 한다. 대간 상에 많은 산장이 있지만 대간길에서 많이 벗어나 있어 이용하기가 힘든데 괘방령산장은 대간길과 접하고 있어 이용하기 편리하다. 아들 백두산이와, 젊은 시절 언더그라운드 기타리스트였던 괘방령 산장 주인과 부인이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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