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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암사에서 송광사로...굴목이재 걷는다"

[알림] 8월의 두발로학교, <나를 비우는 고갯길> 참가 안내

전남 순천시, 조계산(曹溪山, 884m)은 송광사(松光寺)와 선암사(仙巖寺)란 두 명찰(名刹)을 품고 있어 그 풍광이 더욱 눈부십니다. 동쪽엔 '태고총림' 선암사가, 서쪽엔 '승보사찰' 송광사가 천년고찰로 자리잡고 있습니다. 조계산 중턱으로 난, 선암사와 송광사를 잇는 아름다운 고갯길이 <굴목이재>입니다.

두발로학교(교장 전형일, 전 언론인)는 8월 25일(토) 제18강으로, 싱그러운 여름 기운으로 가득한 굴목이재를 걷습니다. 청정하고 고졸한 사찰로 이름난 선암사를 둘러보고 시원한 계곡과 울창한 숲을 자랑하는 굴목이재로 들어섭니다. 땀이 흐를 때쯤 되면 선암굴목이재(큰굴목이재)에 이르고 곧 유명한 숲속의 보리밥집 <조계산보리밥집>에 닿습니다. 여기서 시원한 막걸리를 곁들여 산채보리밥으로 점심식사를 한 후, 송광굴목이재를 지나 화려한 숲과 계곡을 따라 하산길에 접어들면 이어 송광사에 이릅니다. 약 6.5km의 길을 점심시간과 휴식시간, 사찰관람시간 포함해 약 5시간 30분 걸립니다.
▲ 선암사...승선교에서 바라본 강선루 ⓒ순천시

[조계산] 전남 순천시 송광면·승주읍·주암면에 걸쳐 있다. 높이 884m. 송광산(松廣山)이라고도 한다. 소백산맥의 말단부에 위치하고 있으며, 광주의 무등산(無等山), 영암의 월출산(月出山)과 삼각형을 이룬다. 산 전체가 활엽수림으로 울창하고 수종이 다양하여 전라남도 채종림(採種林)으로 지정되기도 하였다.


동쪽 사면으로 흐르는 계류들은 순천을 경유하여 남해로 흘러 들어가는 이사천(伊沙川)과 합류되고, 서쪽 사면으로 흐르는 계류들은 송광천(松光川)으로 흐른다. 고온다습한 해양성기후의 영향으로 예로부터 소강남(小江南)이라는 애칭이 있는 명산. 동쪽 사면에 선암사(仙巖寺), 서쪽 사면에 송광사(松廣寺)가 있으며, 수려한 자연경관과 함께 1979년 12월 도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계곡은 울창한 수림으로 덮여 있을 뿐만 아니라 비룡폭포(飛龍瀑布) 같은 이름난 폭포도 있다.


▲ 깊고 시원한 선암사 계곡 ⓒ선암사

[선암사] 전남 순천시 승주읍 조계산 동쪽 기슭에 있다. 사적 제507호로, 신라시대에 창건되었다. <선암사사적기(仙巖寺寺蹟記)>에 따르면 542년(진흥왕3) 아도(阿道)가 비로암(毘盧庵)으로 창건하였다고도 하고, 875년(헌강왕5) 도선국사(道詵國師)가 창건하고 신선이 내린 바위라 하여 선암사라고도 한다. 고려 선종 때 대각국사 의천(義天)이 중건하였는데, 임진왜란 이후 거의 폐사로 방치된 것을 1660년(현종1)에 중창하였고, 영조(英祖) 때 화재로 폐사된 것을 1824년(순조24) 해붕(海鵬)이 다시 중창하였다.


6·25전쟁으로 소실되어 지금은 20여 동의 당우(堂宇)만이 남아 있지만 그전에는 불각(佛閣) 9동, 요(寮) 25동, 누문(樓門) 31동으로 도합 65동의 대가람이었다. 특히 이 절은 선종(禪宗)·교종(敎宗) 양파의 대표적 가람으로 조계산을 사이에 두고 송광사(松廣寺)와 쌍벽을 이루었던 수련도량(修鍊道場)으로 유명하다. 경내에는 보물 제395호 선암사 삼층석탑과 보물 제1311호 순천 선암사 대웅전 등 다수의 중요문화재가 있다.


현재 태고종 유일의 총림인 태고총림(太古叢林)으로서 종합수도도량 역할을 이어가고 있다.
선암사 경내에 이르는 길의 조계산 계류에 놓인 승선교(昇仙橋)는 하나의 아취로 이루어진 석교로 보물 제400호로 지정되었으며, 강선루(降仙樓)와 어울린 그림 같은 모습은 선암사의 상징이다. 그밖에 300년 된 산철쭉과 영산홍·고목동백·왕벚꽃·목련·부용·구봉화·화염물상봉 등의 아름다운 화원, 가을의 단풍과 겨울의 설화도 일품이다.


▲ 송광사 가는 길 ⓒ송광사

[송광사] 전남 순천시 송광면 조계산 서쪽에 있다. 사적 제506호. 국내에서 규모가 가장 큰 절로서, 불보사찰(佛寶寺刹) 통도사(通度寺), 법보사찰(法寶寺刹) 해인사(海印寺) 등과 함께 '삼보사찰'에 해당하는 승보사찰(僧寶寺刹)로 16국사(國師)를 배출한 유서 깊은 절이다.


<송광사지(松廣寺誌)>에 따르면 신라 말기에 혜린(慧璘)이 마땅한 절을 찾던 중, 이곳에 이르러 산 이름을 송광이라 하고 절 이름을 길상(吉祥)이라 하였는데, 사찰의 규모는 불과 100여 칸에 지나지 않았고 승려의 수효도 겨우 30∼40명을 넘지 못하였다.


그후 고려 인종(仁宗) 3년(1125)에 석조(釋照)가 대찰을 세울 뜻을 품은 채 세상을 뜨자, 1197년(명종 27) 승려 수우(守愚)가 사우(寺宇) 건설을 시작하였다. 3년이 지난 뒤 보조국사(普照國師) 지눌(知訥)이 정혜사(定慧社)를 이곳으로 옮겨와 수선사(修禪社)라 칭하고, 도(道)와 선(禪)을 닦기 시작하면서, 대찰로 중건하였다.


이 사찰을 안고 있는 조계산은 이때까지 송광산이라 불렸는데, 보조국사 이후 조계종의 중흥도량(中興道場)이 되면서부터 조계산이라고 고쳐 불렸다. 이후 보조국사의 법맥을 진각국사(眞覺國師)가 이어받아 중창한 때부터 조선 초기에 이르기까지, 약 180년 동안 16명의 국사를 배출하면서 승보사찰의 지위를 굳혔다.


경내에는 이들 16국사의 진영(眞影)을 봉안한 국사전(國師殿)이 따로 있다. 수선사를 언제 송광사로 개칭하였는지는 알 수 없다. 임진왜란 때 일부가 소실된 뒤 한동안 폐사 상태였는데, 뒤에 응선(應禪)을 비롯한 승려들이 복원하고 부휴(浮休)를 모셔 다시 가람의 면모를 갖추었다. 그러나 1842년(헌종8) 큰 화재가 일어나 모든 건물이 불타 없어진 후 1922년부터 1928년까지 설월(雪月)·율암(栗庵)이 퇴락한 건물들을 중수하고, 1943∼56년에 승려와 신도의 노력으로 차례로 복원하여 옛 모습을 되찾았다. 1948년의 여수·순천사건과 6·25전쟁으로 사찰의 중심부가 불탔는데, 그 후 승려 취봉(翠峰)·금당(錦堂)의 노력으로 대웅전을 비롯한 건물들을 복구하였다.


6·25전쟁 전에는 80여 동의 건물이 있었다고 하나 지금은 60여 동이 있다. 큰 가람답게 목조삼존불감(국보42)·고려고종제서(高麗高宗制書, 국보43)·송광사국사전(국보56) 등 3점의 국보, 송광사경패(松廣寺經牌, 보물175)·송광사하사당(보물263)·송광사약사전(보물302)·송광사영산전(보물303) 등 12점의 보물, 8점의 지방문화재 등 많은 문화재를 지니고 있다.
또한, 천연기념물 제88호인 곱향나무 쌍향수가 천자암 뒤쪽에 있다. 송광사 일대는 연산봉을 비롯하여 여러 봉우리가 병풍처럼 둘러서 절경을 이루고 있어 송광사 내팔경(內八景)과 외팔경이 정해져 있을 정도이다.


조계종의 발상지로서 현재는 선수행(禪修行)의 도량이며, 조계총림(曹溪叢林)이 있는 곳이다.


경내로 들어가려면 일주문을 지나 왼쪽에 위치한 능허교(凌虛橋)라는 무지개다리 위에 놓인 우화각(羽化閣)을 지나 계곡을 건너야 한다. 계류와 능허교, 우화각이 삼박자를 이루는 풍경은 송광사에서도 손꼽히는 풍광으로 유명하다.

(자료 출처 : 선암사, 송광사, 순천시,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려수도와 제주도, 네이버대백과 등)

이날 일정은 다음과 같습니다.

8월 25일(토) 자세한 일정은 다음과 같습니다.

06:10 서울 출발(6시까지 서울 강남 압구정동 현대백화점 옆 공영주차장에서

<두발로학교> 버스에 탑승바랍니다. 아침 김밥도시락과 식수가 준비돼 있습니다.

답사 일정은 현지 사정에 따라 일부 조정될 수 있습니다.)
10:00 선암사 주차장 도착, 선암사 관람
10:50 선암사 출발
12:10 선암굴목이재 도착
12:30-13:10 <조계산보리밥집>에서 점심식사
14:00 송광굴목이재 도착
15:00 송광사 도착, 관람
16:00 서울 향발


▲ 굴목이재 걷는 길 ⓒ두발로학교

[준비물]

걷기 편한 차림(등산복/배낭/등산화/긴팔 긴 바지), 스틱, 무릎보호대, 식수, 윈드재킷, 우의, 따뜻한 여벌옷, 간식, 과일, 자외선 차단제, 헤드랜턴, 필기도구 등(기본상비약은 준비됨)

두발로학교 제18강 참가비는 10만원입니다(왕복 교통비, 2회 식사, 입장료, 여행보험료, 운영비 등 포함). 버스 좌석은 참가 접수순으로 지정해 드립니다. 참가신청과 문의는 사이트 www.huschool.com 전화 050-5609-5609 이메일 master@huschool.com 으로 해주십시오.

☞참가신청 바로가기
▲ 여름 송광사 ⓒ송광사

전형일 교장선생님은 언론인 출신으로 오랜 동안 일간지 기자 생활을 했습니다. 현재 외국기업체에 재직 중이며, 원광대학교 동양철학박사 과정 중입니다. 그는 틈틈이 여기저기 <걷기의 즐거움>에 몰입하며 <걷기의 철학>에도 빠집니다.
▲ 안행 ⓒ송광사

교장선생님은 <두발로학교를 열며>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걷기>의 시대가 오고 있습니다. 여기저기 걷기 코스의 명소들이 생겨나고 <걷기 동호회>도 부쩍 늘어나고 있습니다. 각 지자체들이 고유의 <길>을 경쟁적으로 만들고 있습니다.

인간이 한동안 잊었던 <걷기의 가치>를 되살리고 걷기를 통해 몸과 마음의 즐거움과 건강을 찾으려 하고 있습니다.

인간이 직립보행(直立步行) 이후 걷기를 멈춘 적은 없습니다. 최소한 집안이나 사무실에서도 걸었을 테니까요. 그럼에도 걷기가 새삼스럽게 각광을 받는 이유가 뭘까요.

성경 <요한복음>에서 예수는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라고 말했습니다. 노자는 <도덕경>에서 "사람은 땅을 본받고 땅은 하늘을 본받고 하늘은 길을 본받는데, 길은 스스로 그러함(자연)을 본받는다"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길>에서 이처럼 종교적 진리나 철학적 깨달음 같은 거창하지는 않지만, 길을 걸으면서 내면의 기쁨을 느끼기 때문입니다.

루소는 <고백록>에서 "나는 걸을 때만 명상에 잠길 수 있다. 걸음을 멈추면 생각도 멈춘다. 나의 마음은 언제나 나의 다리와 함께 작동한다"고 말했습니다. 걷기의 리듬은 사유의 리듬을 낳는다고 합니다. 경치를 구경하며 생각할 수 있고, 미지(未知)의 것을 기지(旣知)의 것으로 소화할 수 있다는 것이지요.


레베카 솔닛의 저서 <걷기의 역사>에 이런 글이 있습니다.

"나에게는 의사가 둘 있다. 왼쪽 다리와 오른쪽 다리 말이다. 몸과 마음이 고장날 때 나는 이 의사들을 찾아가기만 하면 되고, 그러면 다시 건강해지리라는 것을 알고 있다."

건강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가장 경제적이고 신체에 부담이 적은 운동을 택한 것이 <걷기>라고 볼 수 있습니다. 또는 속도와 능률이 지배하는 세상에, 목적에 대한 부담을 덜고 걷기를 통해 느림의 미학으로서 세상을 보고 싶은 것은 아닐까요.

사람마다 걷기를 통해 찾고자 하는 의미와 기쁨은 다를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모두 함께 찾으려는 것은 <몸과 마음의 건강> <새로운 경관> <자연을 즐기는 좋은 사람들과의 만남>의 세 가지가 아닐까요.

<두발로학교>는 <아름다운 길 걷기> 전문학교입니다. <두발로학교>에서 세 마리 '토끼몰이'를 해보지 않으시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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