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장미는 지지 않았다. 로자 룩셈부르크
얼마 전, 메릴 스트립이 주연한 영화 '철의 여인'이 그녀의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수상과 함께 세간의 주목을 받았다. 이 영화로 인해 마거릿 대처가 다시 조명을 받고 있는데 대처 이전에 그녀와는 전혀 다른 또 다른 '철의 여인'이 있었다. 150cm 정도의 작은 키에 소아마비 후유증으로 다리를 저는 작은 여인, 그러나 독일공산당의 전신인 스파르타쿠스단을 조직하고 집권당인 사회민주당과의 타협을 거부한 채 혁명을 준비해갔던 로자 룩셈부르크가 바로 그녀다. 신자유주의를 열어젖힌 '철의 여인'에 비해 인간해방과 혁명의 기수로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는 그녀는 대처에 앞서 이미 '철의 여인'으로 불렸다.
인간의 자유와 해방을 꿈꾸던 로자 룩셈부르크. 독일 우파세력은 그녀의 강철같은 의지를 결코 꺾을 수 없었다. 그녀를 죽음에 이르게 하고 나서야 겨우 멈추게 할 수 있었다. 꽃으로 비유하자면 성공한 레닌이 활짝 핀 대지의 해바라기와 같다면, 로자는 다 피지 못하고 져 버린 장미라고나 할까. 다 보여주지 못한 그녀의 꽃망울은 어떤 모습일까? 잔혹하게 살해된 그녀와 그녀의 꿈을 연민으로 남기기에는 그녀의 꽃잎이 너무 붉다. <마르크스주의사상사>에서는 3번째 강연으로 김성민 한국철학사상연구회회장(건국대 철학과 교수)과 함께 로자 룩셈부르크의 꿈에 대해 이야기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그녀가 잔혹하게 죽은 지 백년이 다돼가지만 아직 그녀에 대한 이야기가 너무나 생생하게 다가오는 것은 그 꿈만은 아직 지지 않았기 때문일까? 그러고 보니 한해살이풀 해바라기와 달리 장미는 나무에서 자란다.
자본주의적 현대인과 로자 룩셈부르크
김 교수는 그의 강연에 오늘의 주인공인 로자를 등장시키기에 앞서 무대를 먼저 마련했다. 그 무대는 현대자본주의의 특징과 마르크스주의의 주요 쟁점을 설명하는 것이었다. 오늘날의 자본주의의 특징과 마르크스주의의 주요 쟁점에 대한 이해가 바탕이 되어야 비로소 로자에 대한 올바른 이해와 비판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삼성 갤럭시S2의 알람벨소리에 기상하고 CJ의 햇반과 김으로 아침을 먹고, 롯데 캔 커피를 마시며, 현대로템에서 운영하는 지하철 9호선을 타고 출근해 삼전전자 컴퓨터에 앉아 하루일과를 시작하는 현대인의 삶을 예로 들며 김 교수는 현대자본주의의 독점과 양극화에 대해 설명하는 것으로 이날의 강연을 시작했다. 그의 설명대로 현대는 30대 재벌의 연매출이 국내총생산의 96.7%에 달하고, 세계 상위 20%가 점유하는 소득이 전체의 84.7%를 차지하며 하위 20%가 차지하는 비율이 겨우 1%에 그치는 기이한 시대다. 마치 기네스북의 기록을 보는 기분이 들 정도로 가히 경이롭다할 만한 수치다. 이는 신자유주의가 세계화되면서 더욱 가속화되는 현상인데 김 교수는 신자유주의의 이데올로기로 금융화, 자본자유화, 노동의 유연성 강화, 개방화, 탈규제화를 꼽았다.
그리고 이어 신자유주의는 바이러스나 신념의 문제가 아니라 힘의 관계이며 사회적 관계의 표현이자 대중들을 특정한 방향으로 행위 또는 사고하게 만드는 '구조적인 힘'과 같은 것이라 설명했다. 즉 신자유주의는 자본의 자유로운 활동을 가능하게 하는 메커니즘이라는 것이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특히 분단체제 안에서 강한 자기검열이 사회 전체를 휘감고 있는 한국 상황은 이러한 신자유주의가 아무런 통제장치 없이 더욱 그 위력을 발휘하기에 너무나 좋은 토양을 가지고 있다. 한국사회에서 반공주의와 관련하여 보수주의는 극우반공주의로, 자유주의세력은 어용화, 진보세력은 비합법화로 접어들었다. 따라서 한국사회에서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과 고민은 금기시되어 사회변혁에 대한 대중들의 자발성이 제한되어 있다고 김 교수는 오늘날을 분석했다. 한반도의 특수적인 구조적 조건, 세계체제적인 거시적 조건, 한국사회 내부의 계급적 조건이 동시에 존재하는 것으로 현대의 위기의 다층성을 봐야하고 그러한 시각의 연장선으로 21세기 한국에서 마르크스에 대한 새로운 고민이 도출되어야 한다는 그의 문제의식은 많은 것을 던져주었다.
김 교수는 이러한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마르크스를 봐야 하고 로자를 만나야 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어 그는 로자에 대한 이해를 위해 역사적 유물론과 생산력-생산관계에 관한 마르크스주의에서의 쟁점을 제시했다. 인간소외와 역사에 대한 합목적성 그리고 역사과정에 대한 합법칙성간의 논쟁이 역사적 유물론의 주요 쟁점인데 김 교수는 이 관점에 따라 역사 변혁의 주체가 설정되고 변혁의 전술이 달라지기 때문에 중요한 쟁점으로 지적했고 실제로 마르크스주의 내의 역사적 유물론에 대한 해석의 차이에서 역사 주체에 대한 레닌과 베른슈타인 그리고 로자의 가장 큰 차이가 발생했다.
그리고 역사발전의 추동력을 생산력의 발전으로 보는 생산력주의, 국가 및 이데올로기적 상부구조의 역할을 강조하는 생산관계 우위론, 생산력-생산관계의 기능적 의존관계 등으로 설명하는데 이 역시 역사적 유물론의 쟁점들과 마찬가지로 마르크스주의의 주요 쟁점으로 자본주의의 변혁을 위한 전술선택의 시발점이다. 이러한 쟁점들 속에서 로자의 문제의식은 어디에 위치해 있을까?
수정주의와의 투쟁 그리고 총체성의 철학
제2인터내셔널 이후 마르크스주의에서의 제기된 주요한 문제는 주관주의와 객관주의의 대립이었다. 김 교수는 주관주의적으로 역사를 파악한 베른슈타인이 자본주의의 문제를 인간의 의지, 도덕의 문제로 해석하여 수정주의가 된 반면, 로자는 객관주의인 카우츠키와 달리 둘이 상호 의존성을 가진 것으로 보았다고 설명했다. 로자는 베른슈타인이 마르크스주의를 결정론으로 몰지만 정작 본인은 철저한 경험주의로 전락했다고 비판한다. 로자는 베른슈타인이 사회의 여러 과정들을 서로의 연관 속에서 고찰하지 않고 '생명 없는 기계의 흩어진 부품'으로 본다고 비판하며 역사들 상호간의 운동관계, 즉 변증법적으로 보는 '총체성'의 관점에서 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 교수는 바로 이 점이 로자에게 주목해야할 점이며 로자에 대한 이해의 핵심이라 지적했다. 베른슈타인은 물론 레닌과의 분명한 차이점으로서 로자만의 대중이론, 혁명이론이 바로 이 점에서 시작되기 때문이다. 로자가 주장하는 개혁에 대한 혁명의 정당성, 자발성과 조직의 문제는 역사에 대한 로자의 총체성이라는 개념정의에서 출발한다.
김 교수는 로자의 저작 전체를 관통하고 있는 개혁주의와의 대결에 주목하며 이에 가장 중요한 상대인 베른슈타인에 대한 설명을 이어갔다. 베른슈타인의 수정주의는 변증법을 부정하기 때문에 공황으로 인한 자본주의의 붕괴 가능성을 부정하며 프롤레타리아혁명이 아닌 점진적 개혁을 주장한다. 그는 자본주의의 모순이 더 심화되는 것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약화되고 있으며 자본주의는 점차 "길들여지고 있다"고 보았다. 예컨대 카르텔과 트러스트 그리고 신용제도가 자본의 무정부적 성격을 조정하며, 주식회사를 통해 민주적 배분과 중간 계급의 생존이 확보되며, 노동조합과 협동조합의 결과 노동자 계급의 정치경제적 조건이 향상됨에 따라 체제에 대한 '적응성'이 생겨난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로자는 "카르텔이 소비자와 생산자 간의 투쟁을 첨예하게 만든다는 점을 들고 또 자본과 노동의 적대관계를 심화시킨다고 보았다. 그리고 개별 자본주의 국가들 사이에 극단적인 적대감을 불러일으켜 자본주의 세계 경제의 국제적 성격과 자본주의 국가의 민족적 성격 사이의 모순을 증가시킨다고" 반박한다. 이어 신용제도는 생산과 소유를 분리함으로써 생산력을 소수의 손 안에 밀어 넣고, 노동조합의 운동은 본질적으로 근로조건과 임금 개선과 같은 경제투쟁에 한정된다고 말한다. 때문에 노동 입법 등을 통한 사회 조정은 임금 수준에 어느 정도 영향을 주지만 그것 자체로 임금체제를 전복할 수 없다고 말한다. 뿐만 아니라 베른슈타인이 지적한 중소기업의 지속적인 생존은 기업의 집중화를 극복하기 힘들다. 베른슈타인에게 의회는 초계급적 제도였지만 로자는 현재 자본주의국가에서 의회는 계급적이며 부르주아 계급 국가의 특수한 형태의 하나로 의회를 바라봐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김 교수는 로자가 모든 개혁을 부정한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즉 로자는 개혁의 역할을 인정하지만 그것이 가지는 한계를 분명히 해한다고 말한 것이라 김 교수는 설명한다. 김 교수의 이러한 설명은 앞서 말한 총체성과 연관 있어 보이는데 수정주의는 자본주의와 역사를 개별적 인간관계로 봐라봄으로써 사회를 구조로서 그리고 전체로서 바라보지 못하기 때문에 이러한 결론에 도달하는 것이다. 김 교수는 로자의 『사회 개혁인가 혁명인가』을 인용해 "수정주의의 정치적 견해는 자본주의 자체의 폐지 대신에 자본주의의 폐해의 제거로 나아간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로자의 주장대로라면 자본주의의 폐해의 제거 역시 쉽지 않아 보인다.
혁명의 진정한 힘, 자발성
로자가 보기에 대중 파업이란 계획에 따라서 인위적으로 수행되는 것이 아니라 '자생적'으로 터지는 것이다. 김 교수는 '혁명은 교육될 수 없다'라는 로자의 말을 인용하면서 '자발성'을 혁명의 가장 결정적인 역할로 본 로자의 '자발성과 조직'에 관한 입장을 설명했다. 로자는 혁명이 객관적인 상황의 성숙과 당의 변증법적인 관계, 즉 '자발적'으로 그리고 '적시'에 터지지만 그렇지 않을 때는 당이 아무리 대중 파업을 호소해도 대중을 호응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로자는 대중파업을 오랫동안 지속된 계급투쟁의 전체기간의 축척으로서 총체성 개념으로 본다.
이러한 로자의 입장은 계급투쟁에서 의식적이고 조직된 행동, 그리고 당의 지도적 역할을 부정 내지 과소평가하고, 비인격적이고 객관적인 요소, 역사의 필연성과 숙명성을 과대평가했다는 비판을 받는다. 그러나 김 교수는 이러한 비판은 적절하지 못하다고 하는데 로자는 대중파업을 이전의 투쟁이 쌓인 것이지 그저 가만히 있은 결과로서 숙명론이 아니며 가장 계몽된 전위로서 사태의 발전을 항상 앞지르고 그것을 가속화시키는 것으로 당의 역할을 강조한다고 한다. 또 그녀는 항상 가변적인 존재로서 대중성에 대한 비판 역시 진행했다. 로자가 말하는 자발성은 투쟁의 과정 속에서 축척된 혁명의 힘이며 이는 당에 의해 가속화는 되지만 교육되거나 기획되는 것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로자의 '자발성'에 숙명론적 비판을 가져오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김 교수는 설명하며 로자의 그것에 다시금 주목한다. 그러나 김 교수는 섣불리 로자의 이론으로 레닌을 비판하는 것 역시 경계해야 한다고 말한다. 로자의 상황은 관료적 중앙집권제가 혁명적 사회주의를 망치는 상황이었고, 레닌은 러시아 노동운동의 무정형성과 싸워야만 했던 상황이다. 그렇기 때문에 김 교수는 로자와 레닌에 대한 이해는 그들의 구체적, 역사적 조건 속에서 이루어져야하며 한 가지 잣대로 두 가지 상황에 대는 것은 위험하다고 말하며 레닌과 로자를 분리한다.
21세기에 붙이는 로자의 편지
로자는 자신을 객관주의로 몰아붙이는 것에 대해 "인간이 그들의 역사를 마음대로 만드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들은 역사를 스스로 만들어 나간다. 프롤레타리아는 그 행동이 사회 발전의 성숙 정도에 따라 제한되어 있다. 그러나 사회 발전은 프롤레타리아와 무관하게 진행되지 않으며 프롤레타리아는 사회 발전의 원동력이며 원인임과 동시에 사회발전의 산물이다."라고 반박한다. 즉 역사와 인간의 상호작용을 설명한다.
김 교수는 이러한 유물 변증법이 로자의 사상을 관통한다고 말한다. 베른슈타인은 자본주의의 문제를 '인간'의 문제로 치부하면서 개인의 도덕, 의지, 성품의 변화와 그로 인한 변혁을 꿈꾸지만 로자가 보기에 이는 인간과 사회를 총체가 아닌 파편으로 보는 것으로 현실적이 아니라 추상적일 수밖에 없다. 이러한 시각은 '당과 대중' 그리고 '정치와 경제'를 보는 관점에서도 이어지는데 로자는 이를 변증법적으로 보지 않고 어느 한쪽으로만 환원하는 데에서 마르크스주의의 위기가 생긴다고 보았다. 김 교수는 이점은 오늘날의 마르크스주의의 위기와도 무관하지 않다고 말하는데 이는 상부구조와 토대 간에 무수한 상호작용을 무시한 채 도식화된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로자의 경고로 느껴졌다.
그녀는 '무오류의 권위'로부터 생기는 '자동인형'으로서 대중을 가장 경계했다. 그녀는 마르크스의 이상은 바로 개인의 완연한 자유라는 것을 믿었다. 따라서 개인을 압도하는 당이 아니라 개인의 문제의식을 정확히 짚어주고 준비하는 매개로서 당의 역할을 말한다. 그녀의 변증법이 말하는 '총체성'과 '자발성'은 인간의 혁명과 인간이 그것의 완전한 주인이 되는 것을 바라는 그녀의 혁명의 가장 큰 무기가 아닐까 한다. 인간에 대한 믿음을 관념적 휴머니즘이 아닌 인간의 역사 속으로 가져 들어와 인간적 혁명에 대한 가능성을 제시한 로자는 여전히 혁명의 꽃으로 영원히 지지 않을 것이다.
김 교수의 이날 강연은 탈냉전, 탈권위시대에 요청되는 새로운 방식의 운동에 대한 고민을 던져주었다. 강연 후 질의응답에서 청중들은 베른슈타인의 문제의식에도 못 미치는 현실의 한국정치를 개탄하는가 하면 로자적 관점에서 오늘날에 우리가 할 수 있는 역할에 대해 질의하는 등 적극적 대쉬를 하는 참석자도 있었다. 열띤 토론 속에 이번 강연 역시 이날 밤을 가득 채우고 나서야 마칠 수 있었다. 밤이 깊은 만큼 별이 밝은 밤이었다.
* 3월 29일 저녁에는 '마르크스주의 사상사 4강' 이철승 성신여대 외래교수의 '마오쩌둥' 편이 이어집니다. 많은 참여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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