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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춘추와 고구려의 토끼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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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춘추와 고구려의 토끼전

[김유경의 '문화산책'] 토끼의 인삼 약방아찧기, 호랑이, 그리고 김춘추

토끼가 고대 이래 지금까지 관통하는 상징은 영리함이다. 그의 명민함은 봄이 되면 자기 굴까지 가장 안전하고 빠른 길을 수학적으로 감지해 확보해놓고 새 풀이 날 때까지 일년동안 그 길로만 다닌다는 생태에서도 나타난다.

수천년 전 옛날부터 동양인들은 그런 토끼에게 역할을 주고 글과 그림으로 나타냈다. 인도 불교에서부터 토끼는 달에 연관됐다. 중국 한나라 때 와서는 달나라 계수나무 아래서 두꺼비와 함께 서왕모의 불로장생약을 절구에 찧고 있는 존재로 부각됐다.

▲ 성덕태자를 위한 천수국만다라수장의 일부 달에서 방아찧는 토끼. 고구려 백제인들이 설계, 수놓아 제작한 극락세계 풍경인데 토끼 옆에 있는 식물은 계수나무가 아니라 인삼같아 보인다. 일본 나라 중궁사 소장.

▲조선시대 민화 달나라 계수나무 아래서 방아찧는 토끼. 민속박물관소장.

우리나라 고구려사람 가세일(加世溢)이 설계하고 고구려· 백제인이 수를 놓아 제작한 「천수국 만다라수장(繡幛)」(622년 왜의 성덕태자 사망후 그의 비가 태자의 극락왕생을 빌어 제작한 극락세계(天壽國) 풍경. 일본 나라 中宮寺에 남은 조각 유품이 전한다)은 성덕태자가 극락세계에 태어나길 기원해 그곳의 여러 풍경을 묘사했는데 한 부분에 달에서 약 만드는 토끼도 수놓였다.

그 당시 일본에서는 불교를 받아들이긴 했지만 아직 불교사상에 대한 깊은 체계화는 안 되어있어 성덕태자가 태어나기를 바라는 극락세계에 대한 수장을 설계하는 데는 한국인에게 의뢰할 수밖에 없었다.

토끼가 찧고 있는 것은 전설과 노래 속에서처럼 모든 사람이 먹고 싶어하는 떡방아이기도 하고 불로장생 약방아이기도 하다. 약을 조제하는 임무를 맡은 토끼는 그만큼 머리가 좋아서 거기 등장하게 됐을까?

그런데 천수국만다라수장의 방아찧는 토끼 옆에 보이는 식물은 계수나무가 아니라 온전한 한 뿌리의 인삼처럼 보인다. 뿌리가 노출돼 인삼같은 긴 덩어리로 그려졌고 긴 줄기 끝에 매달린 3장의 긴 타원형 잎은 인삼잎 같다. 토끼는 절구공이를 쥐고 있는 것이 아니라 팔을 뻗어 앞에 있는 인삼을 가져다 넣는 암시를 한다. 계수나무의 둥치나 잎과는 분명히 다르다. 조선시대 민화의 방아찧는 토끼 뒤 계수나무와 확연히 비교된다.

식물학자 최병철박사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계수나무는 분명히 아니다. 뿌리에서 연결되는 줄기형태는 인삼 그대로이고 잎의 형태도 인삼 잎이라 여겨진다. 토끼 앞에 놓인 기물은 절구가 아니라 약재를 끓이는 그릇이다. 이 유물을 한국인이 제작했으니 신비의 명약으로 알려진 한국 인삼을 그렸다고 봐도 무리는 아니다.

하지만 뿌리가 더 길고 갈라지면서 잔뿌리가 표현됐다거나 잎도 3장만이 아닌 5장까지 표현되고 붉은 열매가 붙어있으면 완벽한 인삼이라 할텐데 아쉽다.

달리 보려면 불로초라는 것이 있으나 그것은 형태가 분명치 않은 추상적 식물이다. 어짜피 달나라에서 찧는 상상의 약이니 불로초로서 인삼을 비슷하게 그렸다고 볼 수 있다. 조선시대 민화로 소개된 사진의 토끼 뒤에 있는 나무는 목본 계수나무가 분명하다."

토끼는 인삼을 달이는 중인가? 실제로 한국계 혈통의 성덕태자만이 아니라 왜와 일본왕실 사람들도 건강을 위해 한국에서 나는 신약 인삼을 생전에 자주 들었을 것 같다. 만다라수장을 만든 사람들이 고구려· 백제인이라는 사실이 상기된다.

자수장 무형문화재 한상수씨는 1990년대에 성덕태자의 만다라수장에서 둥근달 속 토끼의 장면만을 별도로 수를 놓아 보여주었다. 녹청색 둥근 테두리속 토끼는 의사처럼 심각하게 약을 조제하는 표정이다.

고대로부터 전해지는 토우, 벼루에 새겨진 토끼, 십이지신상의 토끼 등 유물이 꽤 있지만 일본에 있는 천수국만다라 수장에까지 한국의 토끼미술품이 그것도 인삼과 함께 남아있다는 사실도 기쁘다. 그런가하면 십이지신상중 하나인 토끼는 천지 중에 한 방향을 맡아 갑옷차림에 칼이나 방패같은 무기를 들고 중요한 이의 유택을 방어한다. 경주의 여러 왕릉에 둘러져있는 호석들이 대표적이다.


▲ 서울 화계사 명부전 벽에 그려진 담배먹는 호랑이와 토끼. 아래위 시설물에 가려져 잘 보이지 않지만 그래도 드물게 이런 민화를 간직하고 있다ⓒ이순희

민화에서는 담배 먹는 호랑이한테 담뱃불 붙여주는 토끼 두마리 그림이 그의 영리함을 나타내는 대표작이다. 토끼는 잘난체 하는 호랑이한테 긴 담뱃대를 불붙여주면서 살아남는다. 겁에 질렸으면서도 긴장감을 놓지 않고 권력자 호랑이 앞에서 정신차리고 살아남는 자의 면모가 민중의 그림으로 나타난 것이다.

1980년대 초 수원 용주사에 이 그림이 있었다. 한국인에겐 두말할 것 없고, 이 그림을 절의 벽화로 처음 접한 외국인들도 사뭇 즐거워하면서 소감을 신나게 피력했다.

그런데 얼마후 전국의 절들이 '비 불교적인 것, 민화나 무속적인 그림은 모두 지워 새로운 절의 사풍을 세워나간다'는 '불교정화' 정책을 정하고 호랑이와 토끼 같은 벽화를 모두 없애는 캠페인이 있었다.

'절이 기복신앙이나 하는 데가 아니다.'고 한 야무진 스님이 말했다. 절이 민화예술의 창작자이자 보존자를 겸하고 대중과 친근한 관계를 유지하는 기능을 지녀온게 '저속'하다는 생각이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유교 · 불교 · 도교 · 민간의 무속 등이 한데 어울린 한국적 풍류가 한국의 전통철학이라는 법철학자의 강력한 논지가 있고 절은 그런 지식의 창고였던 전통을 지녀왔다. 태고종 스님들의 붉은 색 가사에는 지금도 해와 달을 상징하는 달나라 방아찧는 토끼와 해 속에 들어있는 삼족오가 수 놓인다.

산신각도 없이 불국사 극락전에 간신히 붙어있는 두개의 산신도 그림 앞에 꽤 여러장의 복전용 지폐가 놓여있기도 한다. '아이들이 끌고 다니는 자동차가 아무 탈 없도록 자죽자죽 보살펴 줍소사.' 비는 것부터 모든 일을 산신에 의탁하는 시민이 있었다. 산신이 한국사에서 얼마나 중요한 존재인지를 말하는 주장은 얼마든지 있다. 절은 산신으로 위장된 한국고대사의 인물을 보호해주는 역할을 한 것 아니었을까.

그러면서도 요즘 절들은 막상 민화벽화를 비워버린 건물 벽의 대부분을 '순수불교'적인 뭘로도 채우지 못한 채 절 건물 안팎을 수많은 빈칸으로 남겨놓고 있다. 아무 근거도 느낌도 없는 단순한 산수화같은 그림을 이곳 저곳 채워넣기도 한다.

한 불교학자는 '그것도 스님의 불교적 각성에 의한 것이고 신앙대상이다.'는 것이지만 평범한 눈에는 '불교철학적'으로 복구하지 못해 텅텅 빈 절 벽면의 네모 칸들이야말로 한국 불교의 빈구석으로 느껴질 뿐이다.

그즈음 미술사학자 존 코벨이 이를 두고 담배먹는 호랑이와 토끼그림이 얼마나 독창적인 발상이며 사랑스러운가, 한국민화를 보관하는 절의 중요성 등을 언급한 글을 썼는데 얼마후 용주사에 호랑이 담배먹는 그림이 다시 그려지고 이에 환호하는 외국인의 반응이 소개됐다. 그후 용주사에 이 그림이 계속 있으려니 생각해왔지만 20년 넘는 동안 어떻게 변했는지는 몰랐다.

토끼가 호랑이 담뱃불 붙여주는 그림은 2010년에서 호랑이해에서 2011년 토끼해로 이어지는 상황과 자연스럽게 맞았다. 년초 용주사로 호랑이 담배먹는 그림을 보러갔다. 미리 알아보니 '산신각에 있다.'고 했는데, 막상 가보니 산신도의 호랑이일 뿐 담배먹는 벽화는 오래전에 다시 지워버렸다고 했다. 여기서는 '용주사에 산신각은 있어도 대궐 사찰이라서 이름을 시방칠등각(十方七燈閣)이라고 부른다.'고 했다. 그래도 1980년대에 호랑이 벽화를 그렸던 사람은 경주출신 김용주씨라는 정보는 얻어낼 수 있었다.

현존하는 절의 벽화를 기를 쓰고 찾아보니 서울 화계사 명부전 벽에 호랑이 담배먹는 그림이 있었다. 가보니 여러 시설물이 벽화를 가리고 있어 잘 보이지 않았지만 절의 한 부분으로 자리잡은 것만으로도 낯설지 않았다. 과거의 절들은 어느 모로 민화갤러리 같고 푸근했다.

▲ '아버지'가 그린 서울 용산구 보광동 한 주택 안담의 담배먹는 호랑이와 토끼. '이런 그림이 있는 우리집이 따뜻하게 보인다.' 고 딸은 말했다ⓒ이유리

기쁨은 뜻밖의 장소에서 찾았다. 서울 보광동 붉은 벽돌담의 주택에서 담배먹는 호랑이와 토끼 벽화를 발견했다. '문을 열고 들어오면 먼저 호랑이 담배피는 그림이 보입니다.' 라고 소개한 그 집 따님 이유리씨는 "아부지가 조선민화를 따라서 그리신 그림. 이 호랑이가 우리 집을 지켜준다고 늘 생각 합니다. 자세히 보면 의외로 호랑이는 착하게 생겼음. 어느날 밤 기운이 하나도 없이 집에 돌아왔는데, 호랑이 그림에서 빛이 나는 듯한 기분이 들어 호랑이를 만지고 나니, 갑자기 기운이 생겼다는 나만의 일화가 있어요. 담뱃대를 붙잡고 뛰노는 토끼들 서있는게 꼭 사람같아요." 라고 기록했다. 2009년도의 일이다.

절에서도 포기한 민화의 전통을 서울시내 핵심 주택가에서 본 것이었다. 허전한듯 보이는 담벽 공간에 흰 칠을 하고 한국전통문양 책에 나온 그림을 본따 검은 색 에나멜 도료로 그렸다. 나무에 앉은 까치그림도 있는데 '아버지는 그림과 사진 목공예 같은걸 좋아하신다. 이틀정도 걸렸다.'고 한 기업체의 중견직장인으로 일하는 유리씨는 말했다.

'호랑이는 여전히 담배먹는 중이고 토끼도 여전히 담뱃불 붙이는 중임'을 확인했다. 그것도 생기발랄한 젊은이의 21세기 미디어 블로그를 통해서.

▲ 용왕의 아들 중 하나, 거북모양의 용 등에 타고 아름다운 풍경속 용궁으로 구경가는 토끼. 보름달이 크게 떠있고 암석과 꽃이 어울린 서정적 바다풍경인데 토끼는 약간 긴장한 듯 보인다. 고구려때도 있었던 토끼전의 문학과 그림은 근대에까지 이어졌다. 국립민속박물관 소장.

영리한 토끼의 전형적인 모습은 오래된 문학에도 나와 있다. 대표적인 것이 토끼가 거북 등에 타고 용궁에 갔다가 간을 빼먹힐 위험에 처하자 기지로 탈출하는 이야기이다. 이 설화를 막연히 조선시대 판소리 『수궁가』가 그 근원인 줄 알다가 이번에 『삼국사기』에서 아마도 가장 오래된 토끼전이라 할 것을 찾아 읽었다.

놀랍게도 그 토끼전은 고구려의 관리가 신라사절 김춘추에게 비밀리에 알려준 정보이기도 했다. 삼국사기 열전1에, 김춘추가 왕이 되기 전 고구려에 백제를 칠 구원병을 얻으러 갔을 때 이야기가 나온다. 보장왕이 되레 '신라에 귀속된 고구려 본래의 땅을 돌려보내라.' 는 요구를 하니 김춘추가 자기 맘대로 답을 못해 옥에 갇히게 되었다.

이때 김춘추가 미리 뇌물을 주고 사귄 고구려인 선도해가 '토끼가 용왕한테 뭍에 돌아가 간을 가져오겠다고 속여 무사히 돌아간 이야기'를 들려주며 어떻게 행동해얄지를 암시했다.

김춘추가 그 비유를 깨달았다. 그는 곧 보장왕에게 "신이 귀국하면 우리 신라 임금에게 청하여 고구려 땅을 돌려보내도록 하겠다." 고 둘러댔다. 이에 보장왕이 (토끼가 뭍에 돌아가 자기의 간을 갖다 줄거라고 기대한 바보용왕처럼)기뻐하며 그를 놓아보내 김춘추는 무사히 신라로 돌아오고 이후 삼국통일의 길을 닦았다.

민속박물관 토끼전시회에 거북모양 용의 아들 등에 올라 용궁으로 떠나는 토끼그림이 있었다. 통도사 명부전 안벽에도 토끼와 거북이 넓은 바다를 헤쳐가며 용궁으로 가는 서사적 벽화가 있다.

단순한 민담정도로 알았던 그 이야기가 643년 이미 고구려에 보편적 이야기로 퍼져있었다는 것, 토끼의 지혜가 김춘추를 살려 한국사를 근본부터 뒤흔든 계기가 되었다는 사실에서 힘이나 권력보다 지혜가 운명을 바꾸는 인간사회의 드라마를 본다.

▲ 이흥덕의 호마도. 깊은 산속 절벽위에서 수도하는 달마같은 호랑이가 토끼를 앉혀놓고 돌아보는 평화. ⓒ이흥덕

2011년초 몇 개의 토끼그림이 전시회에 나와 현대 예술가들이 다루는 토끼를 볼 수 있었다. 여기서도 토끼는 인간처럼 생각이 깊은 면모를 보이는 게 특이하다.
▲ 현대화가 김영미 '인문학을 건지다' 그림의 토끼. 인문학의 앞날을 걱정하는 토끼로 비정됐다. ⓒ김영미

롯데화랑 전시회에서 김영미의 토끼는 모던 아트 책을 읽기도 하고, 바다에 흩어진 인문학의 종이책들을 배를 저어가며 주워 올리려 한다. 이건우의 조각은 눈물이 글썽한 얼굴로 아무도 없는 다락같은데 혼자 올라가 있는 토끼같은 아이다.

화가 이흥덕의 유화 '호마도'는 호랑이해 전시회때 본 것이다. 수도승 달마의 모습을 한, 작가의 사고에서 우러난 정신적 호랑이를 보여준다. 호랑이 손안에 있어도 천연덕스럽고 편안한 토끼는 수도로 얻어진 정신적 평화를 말해주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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