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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미술사의 한 정점, 호랑이예술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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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미술사의 한 정점, 호랑이예술 (하)

[김유경의 '문화산책']<8> 경인년 호랑이해를 보내며

호랑이 포수-용감하고 무서울 것 없던 남성들

동물의 왕국 프로그램은 사자 같은 것도 많이 다루지만, 연해주 시베리아 지방에 조금 남아 산속에 사는 호랑이는 혼자 다니며 여간해 눈에 띄지 않기 때문에 '방송국에 등장' 하기 어려운 존재이고 따라서 생태연구도 타 동물에 비해 더딘 편이라고 호랑이 다큐멘타리의 러시아 동물학자가 말했다.

1900년 전후해 조선을 여행한 많은 외국인들이 호랑이에 대한 당대의 기록을 남겼다. 그중 런던 <팔말 가젯트> 기자였던 앵거스 해밀턴이 1904년 '코리아'란 책에 쓴 조선의 호랑이 포수에 대한 글은 대단히 사실적이다.

▲ 한국의 옛사진에서 본 포수들- 호랑이 포수들인지는 모르겠으나 옷차림에는 호주머니가 많이 있고 모두 총과 담뱃대를 들었다. 다부진 체격에 차분하고 날렵해 보이는 남성들이다

"흰코끼리가 태국을 상징하고 이집트는 낙타, 미국은 들소가 그 나라를 대표하듯 한국을 말해주는 동물은 단연코 호랑이이다. 열대 밀림에 사는 벵갈 인도호랑이와는 달리 조선 호랑이는 눈덮인 북쪽의 산속, 위도 50선까지 올라가는 추운 지역에 산다.

한국인의 마음 속에 호랑이는 용맹 그 자체로서 더할 수 없는 최고의 위상과 투지의 표상으로 자리한다. 그런데 조선의 호랑이포수들은 이 고귀한 짐승도 겁없이 맞상대하여 공격한다. 사냥개 몇 마리에 창검만으로 대적하는 것이다. 때로는 함정을 파놓고 그 위에 흙과 풀, 미끼용 고기덩이를 채워놓고 호랑이가 지나가다 빠지기를 기다려 잡기도 한다. 이 경우엔 호랑이를 사살하기가 좀더 용이하다. 포수들은 호랑이 고기는 먹고 가죽과 뼈는 팔았다.

조선의 호랑이포수들은 실로 용감하기 짝이 없는 사람들이다. 조선정부는 그래서 때로 국토방위에 이들의 손을 빌리기도 했다. 구식 총에 창검만으로 무장했을 뿐인 포수들이건만 이들은 1866년 병인양요때 프랑스 해군의 로즈제독이 이끄는 프랑스군 함대의 조선상륙 시도를 격퇴했다. 1871년 신미양요때는 미국군함에 장렬하게 항거하여 그들의 진입을 막았다. 1901년에는 조선북쪽 국경을 자주 침범하는 만주의 마적떼들을 물리치는 데 이들이 동원되었다."


이런 호랑이 포수들 사진은 '100년전 한국' 사진첩에 아주 가끔 나온다. 모두들 눈매가 매섭고 몸가짐이 날렵해 뵈는 남성들인데 어딘가에 구속된 느낌이 없어 보인다. 대표적인 한국의 남성상 중 하나로 봐도 될 것 같다.

일제강점기, 황해도 장련의 개화인사 장의택은 총을 멘 포수 차림을 하고 조선사람 스스로 시작한 신교육 학교를 찾아와 학생들 앞에서 '산 넘어오는 큰사자 러시아와 바다 건너오는 표독한 호랑이 일본을 총을 들고 막아야 한다.'는 애국연설을 했다고 최태영 선생은 회고록에서 말했다.

그때 '포수 차림이 어떠한 옷차림을 말합니까.' 여쭈어 봤는데, '바지 저고리에 머리엔 수건을 쓰고 등에 진 망태에 총을 넣고 학생들 앞에 나오셨다.'고 했다.

일본의 한 여기자와 국내 여기자 사이에 1990년대초 호랑이를 사이에 둔 말씨름이 있었다. 그녀가 폐허로 남은 경복궁 터를 '만족한 듯' 보더니 말을 하는데 속이 꼬인 사람의 본색이 드러났다.

"한국엔 호랑이가 있다죠. 그것말예요, 산고양이를 보고 괜히 한국사람들이 호랑이라 그러는 것 아녜요?"

호랑이와 한국인에 대한 모욕을 상쇄할 정확한 역사를 말해주어야 했다.

"산고양이 아니냐구요? 그렇게밖에 물어 볼 수 없을 테니 참 안됐네요. 호랑이는 섬나라 일본엔 있어본 적이 없으니까 당신이 호랑이를 상상한다는게 불가능하죠. 고작 산고양이 정도나 알겠지요."

그녀에게서 더 이상 호랑이 얘기는 안 나왔다.

▲ 전 심사정의 호랑이. 서울국립중앙박물관소장. 코벨은 맹수로서 호랑이를 그린 가장 사실적 걸작품으로, 눈에 나타난 야수성과 자연스런 포즈 등은 실제로 호랑이를 본 화가의 솜씨라고 해설했다.

존 코벨이 말하는 한국 호랑이그림

예술사 측면에서는 미국 태생의 동양미술사학자로, 한국미술 전반에 대해 많은 글을 남긴 존 코벨 박사(1910-1996)가 호랑이에 대해 누구보다 깊은 고찰을 했다.

"한국인과 호랑이 사이에는 특별한 관계가 있어 보인다. 평범한 동물을 넘어선 어떤 역할자로 여겨지면서 한국호랑이들은 매력적 존재가 됐다. 호랑이가 갖는 주술적 힘에 대한 신뢰가 있어, 모든 산신도에는 호랑이를 동반한 산신이 그려진다.

현대의 한국인들은 호랑이한테 별 특별한 느낌이 없어 보이지만, 과거 전통사회에서는 호랑이의 존재감이 보다 강했다. 과거 한국인들이 호랑이를 대하는 정서는 수 백 편에 이르는 호랑이 이야기와 그림에 잘 나타난다.

두 가지의 복합적 가치가 여기 깃들어있다. 동물 중 왕이라 할, 사람도 잡아먹는 맹수인 호랑이를 두려워하고 증오하면서도 한편으론 특별한 애정을 담아 높은 수준의 유머가 깃든 그림과 이야기를 만들어 냈다. 동화 '팥죽할멈과 호랑이' 같은 뛰어난 문학작품이 그렇고 민화 호랑이가 있다. 88 서울올림픽때 마스코트로 선택된 것도 귀여운 호돌이였다.

한국민화는 어떻게 호랑이같은 야수에게 정 반대의 가치를 부여해 그토록 쾌활하게, 심지어 그토록 '멍청하게' 만들어놓을 수 있는 것일까? 어떻게 해서 그를 산신같은 초월적 존재의 동반자로 그려낼 수 있었단 말인가? 실제로 이들 민화와 문학은 호랑이가 가축이나 사람도 해치고 잡아가는 그런 두려움 속, 실제상황의 시대에 창작된 것이다. 무시무시한 맹수에 대한 존경심을 뒤집어 우스운 호랑이로 표현한 능력이야말로 한국미술사의 한 정점을 이루는 것이다.

고고학적으로도 무속의 세계에서 만들어진 최고의 예술 신라 금관 등에 달려있는 곡옥은 태아의 모습이 아니라 강력한 힘을 갖는 호랑의 발톱으로 보는게 더 타당하다. 산에 자리잡고 있는, 한국인들이 숭배하는 산신과 늘 함께하는 호랑이를 생각해 봐도 그게 더 자연스럽다.

이처럼 뛰어난 호랑이 관련 유산을 둔 한국, 수많은 외국인들도 즐거워하는 한국 호랑이의 존재를 과시할 호랑이 미술관 하나 있다면 좋겠다. 1980년 전후 미국에서 개최한 한국미술 5천년전과 같은 기간에 별도로 조자용 소장의 그림을 모아 개인의 힘으로 순회전시한 한국민화전이 한국미술의 진수를 미국인들에게 알리는데 얼마나 큰 역할을 했는지 한국인들은 모르는 것 같다."

코벨은 가장 사실적이고 고전적 범주의 호랑이 그림으로는 심사정 작으로 전해지는 조선시대 그림을 꼽았다. "이 그림은 화가가 호랑이를 직접 본 사람이었음을 알게 한다. 얼굴, 특히 눈에 나타난 야수적인 표정, 자연스런 자세 등이 눈에 들어온다. 호랑이 가죽만 보고 그린 그림과는 다르다."고 했다. 그림에 찍힌 낙관은 심사정이지만 년대는 그의 사후 5년의 명기여서 심사정 그림인지는 확실치 않다는데 그래도 '심사정 호랑이그림'으로 불러본다.

코벨은 또 산신도에 나오는 호랑이중 가장 뛰어난 작품으로 김천 직지사 소장 산신도의 호랑이를, 민화로서 유머 가득한 호랑이는 용주사 벽화에 그려진 토끼가 불붙여주는 담배먹는 호랑이를 여러번 언급했다. 호랑이 가족 민화에서 보는 유머 하나는 호랑이 일가를 다 모아 그린 것이다. 엄마 호랑이 아빠호랑이 옆에 있는 아기 호랑이는 부모를 닮지 않은 점박이무늬 호랑이다. 코벨왈 '엄마가 어느 날 하룻밤 외출했다!' 고.

▲경인년 카드에서 본 호랑이- 캐주얼하지만 무서운 호랑이가 분명한데 왜 웃음이 나오는 것일까.

코벨박사는 한중일의 호랑이 그림이 어떻게 다른가도 비교해 썼다.

"임진왜란때 조선에 온 일인들은 처음으로 호랑이를 보았다. 이때 호랑이 가죽을 많이 일본으로 가지고 돌아갔는데, 호랑이를 한번도 본 일이 없는 일본 화가들은 그 가죽만 보고 상상의 호랑이를 그릴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심사정 그림의 호랑이에서와 같은 사실주의적 회화는 나올 수가 없었다."

조선에서 보고 온 호랑이 그림은 당대 일본 상류층 사이에 최신 실내장식이 되었다.

"일본화가들은 흔히 대나무 숲에 반쯤 가려지고 금빛 구름등이 더해진 배경의 호랑이를 그렸다. 그러나 호랑이는 생태적으로 대숲이 있는 습지에선 살지 않는다."

그런데 역설적으로 오늘날의 한국에서 그려지는 호랑이가 대나무밭을 배경으로 한 것도 자주 보인다. 한 눈에 일본 그림을 베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조선시대 사대부 양반들이 즐겨 중국회화의 기법을 차용해 그리던 그림과는 달리, 한국민화에 보이는 덩치 큰 호랑이를 놀리는 까치나 호랑이 담뱃불 붙이는 토끼같은 민화 등은 전혀 중국식 화풍에 구애되지 않았다. 이는 독자적인 한국 회화전통이다."

산신도의 호랑이- 직지사와 화계사

지난 한 해 200여장이 넘는 코벨박사의 호랑이 글을 다시 꺼내 보면서 그가 언급한 호랑이 그림들만이라도 원본을 확인해 보고 싶었다. 그래서 김천 직지사로 산신도의 호랑이를 보러갔더니 이미 원본은 치워지고 그 자리에는 조그만 사진 패널 한 개가 달랑 대웅전 구석에 걸려 있었다.

'소중한 거라 다른 데다 잘 갈무리 해놓았나 보다.' 했는데 직지사 박물관에서도 이 그림은 못 보았다. 그림속 호랑이는 황갈색 투명한 빛을 머금은 눈이 인상적이었다.

"그 눈빛은 어두운 데서도 무엇이든 다 볼 수 있으리라는 호랑이의 능력을 말해주는 것이다." 고 코벨은 분석했다. 자기의 힘과 분별력에 대한 호랑이의 깊은 자신감은 과장된 표정을 지어 무섭게 보이려는 시도를 떠나 굉장히 조용하면서도 깊이 있어 보이는 얼굴로 나타난 듯 하다. 이마엔 임금왕(王) 자(字)와 동격으로 보이는 둥근 원무늬가 석줄 나있었다.

▲ 직지사 산신도의 호랑이. 투명한 맹수의 눈을 하고 있으면서도 깊이가 있어보이는 호랑이. 코벨은 산신도 호랑이중 최고걸작이라고 평했다. ⓒ직지사 사진

그런데 도록에서 보는 몇 장의 직지사 소장 그림의 호랑이들은 눈이 다 비슷해 보였다. 어쩌면 직지사와 관련된 특별한 호랑이 얘기가 있을지 모르겠다는 느낌이 들어 높은 스님들께 물었지만 30년 이상을 이 절에서 수도한 스님도 다른 누구도 '직지사에 관련된 호랑이 얘기는 아무것도 아는 것도 들은 것도 없다.'고 했다. 그림은 박물관 수장고에 잘 있겠지만, 언제 실물그림을 볼수 있을지는 아무 기약도 없었다.

그림을 그린 화승에 대한 이야기도 없어 이젠 전통 깊은 절에서 마저도 호랑이 정서는 사라지나 보다 하는 느낌이었는데, 그 불안감은 불국사에 갔을 때 더 심해졌다. 2010년 불국사에서 산신각은 어디 있나 물었더니 전각을 지키던 '보살님'은 '우리 불국사는 다른 절이랑 달라서 산신각 같은 거 없어요.' 했다. '산신도도 없냐.' 했더니 극락전 뒤쪽 컴컴한 자리에 산신도가 과연 있었다. 산신도가 원래부터 이곳에 걸려 있었을까. 그 구석에서 호랑이 있는 산신도를 한번 보고 나오는데 마루바닥의 가시가 발에 박혀 고생했다.

서울이든 지방이든 요즘의 어떤 절들은 일본식 소원성취 종이접기를 매단 벽면을 만들어 놓질 않나 마당에 자갈을 까는 등 이상하게 변질돼 간다. 그래도 어느 구석 순수한 한국적 풍류의 미술품들이 남아있으면 옛날에 찾아가던 절의 풍취를 어느 정도는 느끼게 한다.
서울의 오래된 절 화계사에서는 참으로 정다운 산신과 호랑이를 조그만 소상조각으로 봤다. 박물관에 들어가지 않고 어느 전각의 실물장식품으로 볼 수 있어 절다워 보이고 산신과 호랑이의 전통을 그대로 느끼게 했다.

▲ 화계사에서 본 소상으로 된 산신과 호랑이. 한 전각 안에 이 소상은 유리상자에 담겨 있다. 절에 가면 아직도 이런 오래된 전통과 예술에 깃든 한국인의 심성을 볼 수 있어 좋다. ⓒ이순희

▲ 통도사 벽화에서 보는 호랑이와 까치. ⓒ이순희

호랑이와 까치 주제의 벽화는 통도사에서 걸작을 보았다. 서쪽에 있는 건물에 그려져 있고 맞은편 동쪽 건물에는 동향을 상징하는 용그림이 있다. 통도사는 가장 오래된 정원 연못을 포함해(근년에 이 귀중한 7세기 유물에 난간을 덧붙이는 이해 못할 변형이 있었다) 훌륭한 전통유물을 고스란히 소장한 곳이다.

지난해 본 가장 불쌍한 호랑이는 어떤 기관에서 '새해 이벤트' 삼아 다 비치는 아크릴 좁은 우리 안에 넣어 건물 로비에 전시한 호랑이새끼였다. '구경온 아이들이 자극하면 호랑이는 물어뜯을 듯 반응해 인기를 누리고 있다.' 는 것이었다. 여론이 악화되자 호랑이새끼들은 철수되었다. 동물원의 역할을 잘 알면서도, 좁은 우리에 갇혀있는 호랑이를 보면 '무슨 팔자로 저 호랑이는 산중 아닌 우리 속에 갇혀 살게 됐을까.' 하는 생각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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