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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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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장

[한윤수의 '오랑캐꽃']<242>

내가 빚을 져봐서 안다.
빚진 사람은 무조건 피한다.
사람도 피하고, 전화도 피하고.
사태는 점점 악화된다.

자동차 부품 회사가 있다.
금융위기 후 진짜 위기가 찾아왔다.
만든 제품이 안 팔리고 돈줄이 막힌 것.
채권자들의 독촉이 심해지자 사장님은 피했다.
사람도 피하고, 전화도 피하고.

그 회사를 퇴직한 사람 중에 무지하게 얼굴이 긴 태국인이 있었다.
이름이 솜퐁이다.
솜퐁은 작년 3월에 찾아와서 졸랐다.
"월급도 못 받고 퇴직금도 못 받았어요."
"전부 얼마나 되는데?"
"3백 조금 넘어요."
하지만 그 회사는 최저임금보다도 적게 주고 있어서 과거 누락분까지 다 따져보니 솜퐁이 받을 돈은 무려 9백이 넘어갔다.
하지만 나는 그 사실을 솜퐁에게 알리지 않았다. 다 망해가는 회사 3백만 받아도 다행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받지도 못할 돈, 9백이니 얼마니 해서 잔뜩 기대만 높여줄 필요 없지!
만일 이때 사장님이 3백 아니라 2백이라도 주었으면 나는 사건을 조기에 종결시켰을 것이다. 그러나 돈을 주기는커녕 연락조차 되지 않아서 사태가 걷잡을 수 없이 악화되었다.

사장님하고 통화가 안 되어서 나는 매번 경리직원하고만 통화했다. 그러나 미루기만 할 뿐 돈 나올 가망이 없었다.
반년이 헛되이 흘러갔다.
어느덧 시월이 되고 출국일이 다가오자 솜퐁도 그렇고 나도 마음이 급해졌다. 그러나 당최 통화가 되어야지.
결국 솜퐁은 한 푼도 못 받고 태국으로 떠났다.
▲ ⓒ한윤수

솜퐁이 떠난 후 나는 민사소송을 진행시켰고 공장 건물과 부지를 가압류했다.

희망이 보였다.
금년 들어 자동차 경기가 살아나면서 주문이 늘어났으니까.
돈이 약간씩 돌기 시작했다.
사장님은 그제서야 정신이 들어 공장으로 복귀했다.

공장은 어느 정도 살아났다.
하지만 상공에는 먹구름이 끼어 있었다.
원자재도 구하고, 직원들 인건비도 주고 최소한의 운전자금이 필요한데 돈을 도무지 빌릴 수가 없는 것.
그도 그럴 것이, 공장 건물과 부지가 가압류되어 있으니 담보로 쓸 물건이 없지 않은가!

가압류를 푸는 게 최대의 화두가 되었다.
사장님이 태국에 전화를 걸었다.
"솜퐁 미안해. 돈이 없어. 165만원 밖에. 그거라도 받고 고소 취하해줄래?"
솜퐁이 누군가?
태국인 아닌가!
솜퐁은 무조건 대답했다.
"예!"

사장님은 다시 나에게 전화를 걸었다.
"솜퐁이 165만원 받고 소 취하하기로 했는데요."
실소가 나오는 걸 꾹 참고,
"그래요? 지금 재판중이고 총 금액이 9백이라는 것까지 설명했나요?"
"아뇨. 그런 설명까진 안했습니다."
"사장님은 설명 안 해도 되죠. 하지만 나는 솜퐁에게 위임받은 당사자니까 현재 상황을 정확히 설명해줘야 합니다. 제가 사실대로 설명하고 난 연후에 확답을 들어보죠."

나는 솜퐁에게 전화를 걸었다.
"놀라지 마. 사실은 말이지, 두 달 안에 판사가 9백 주라고 할 거야."
"예? 9백이나요?"
솜퐁은 놀랐다.
내가 물었다.
"지금 165 받을래? 아니면 두 달 후에 9백 받을래?"
"두 달 후에 9백요."
"알았어."

몸이 단 사장님 부부가 나를 찾아왔다.
"목사님, 봐주세요. 이틀 안에 가압류 안 풀면 저 부도 납니다."
사실인 것 같다.
나도 빚을 져봐서 안다.
사장님이 다시 말했다.
"부탁합니다. 태국에 5백 부치겠습니다."
나는 부부를 찬찬히 보다가 말했다.
"그래요? 솜퐁하고 한 번 더 통화해보고 연락드리죠."

다음 날 나는 사장님에게 말했다.
"솜퐁하고 통화도 했고, 우리 직원들하고도 회의를 했습니다. 이렇게 하죠."
"어떻게요?"
"5백은 너무 했고, 한 장 더 쓰세요."
"알겠습니다."

솜퐁이 6백을 받은 직후,
가압류가 풀렸다.

솜퐁은 만족하고
공장도 잘 돌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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