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라에게는 두 가지 목표가 있다. 첫째, 남편 지나(가명)를 해방시켜주는 것. 지나는 같은 회사에 다니는 숙련공인데 그 회사를 떠나고 싶어 한다. 하지만 남편을 해방시켜주려면 (얼마 안 있으면 퇴직금을 탈 수 있는) 자신이 퇴직금을 포기하고 같이 떠나야 할 것 같은데 퇴직금도 아깝다. 따라서 떠나긴 떠나되 어떻게든 퇴직금도 받아내는 것. 이것이 두 번째 목표다.
미라가 꾀를 냈다. 사장님에게 신혼여행 간다고 한 달 휴가를 달라고 한 것이다. (둘은 동거 중이지만, 정식으로 결혼한 부부가 아니다) 사장님은 펄쩍 뛰었다. "일손이 모자라 죽겠는데 안 돼. 보름만 갔다 와." 미라는 기다렸다는 듯이 사장님의 말을 걸고 넘어졌다. "겨우 보름요? 그럴 바에는 차라리 그만두게 해주세요." "누구 마음대로 그만둬?" 사장님은 거절했다. 하지만 미라가 퇴직금을 안 받아도 좋다는 뉘앙스를 강하게 풍기자 마음이 흔들렸다. "저 퇴직금 생각 없어요. 열흘만 있으면 타지만요." 사장님은 생각해 보았다. 퇴직금도 퇴직금이지만, 얘들 마음 이미 회사를 떠났는데, 마음 떠난 애들 붙잡아야 뭘 하나? 사장님은 결정했다. 그래, 보내자. 사장님은 두 사람이 자진 퇴사한다고 고용지원센터에 신고했다. 덕분에 남편이 해방되었다. 미라의 첫 번째 목표가 이루어진 것이다.
문제는 그 후에 불거졌다. 미라가 나를 찾아와 자신의 퇴직금을 받아달라고 한 것이다. 내가 회사에 전화를 걸자 사장님은 기막혀 했다. "여자애가 퇴직금 포기한다고 해서 보내줬더니 딴 소리 하네요. 차라리 둘 다 다시 돌아오라고 해주세요. 일손이 부족해 죽을 지경이거든요."
내가 미라에게 물었다. "퇴직금 타려면 돌아가야 하는데, 돌아갈래요?" "예, 돌아가죠. 하지만 남편은 아니고 저만요." 좀 얄밉다. 하지만 직장 이동을 원천적으로 막는 *현행법의 테두리 안에서 법을 최대로 이용하는 미라를 욕할 수만도 없다.
내가 사장님에게 물었다. "미라 혼자 돌아간다는데 괜찮으세요?" 사장님은 펄쩍 뛰었다. "둘 다 와야지요! 그래야 원상회복되는 거 아닌가요?" 나는 사장님의 억울한 심정을 이해하지만, 법에 따라 냉정하게 처리할 수밖에 없었다. "미라 열흘 더 쓰고 퇴직금 주세요."
사장님은 화가 나서 미라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미라는 매일 나를 찾아왔다. 퇴직금은 물 건너갔으니 이제 대신 해고수당을 받게 해달라고. 사장님도 불안해졌다. 미라가 발안센터에 드나든다는 것은 법에 호소한다는 이야기이고, 법에 호소하면 *질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결국 사장님이 미라에게 연락했다. "발안센터에 가지 말고 가만히 있어." "가만히 있으면요?" "퇴직금 반이라도 줄 테니까."
미라가 마지막으로 발안센터를 찾아온 것은 이른 아침이었다. 내가 출근하기도 전에 그녀는 이미 다녀가는 중이었다. 현관을 빠져나온 그녀는 가볍게 목례를 하고 내 옆을 스쳐 지나갔다.
사무실로 올라가는 즉시 물었다. "미라 왜 왔어?" 직원이 대답했다. "할 말이 있어서 왔대요." "무슨 할 말?" 직원은 씁쓸하게 웃었다. "이제 더 이상 자기 일에 관여하지 말라네요. 퇴직금 반이라도 타게."
그 후 미라를 본 적이 없다.
*현행법의 테두리 안에서 법을 최대로 이용 : <외국인의 고용 등에 관한 법률>에 의하면 외국인 노동자는 고용주의 허락 없이는 직장 이동을 할 수 없다. 따라서 미라는 고용주의 허락을 받기 위하여 퇴직금을 안 받을 수 있다는 미끼를 사용한 것이고, 일단 직장 이동에 성공하자 태도를 돌변하여 퇴직금을 다시 받겠다고 한 것이다. 이 사건은 굉장히 복잡해서 초기에는 나도 사건의 성격을 정확히 이해하지 못했었다. 사건의 성격을 몰랐기에 미라의 변화무쌍한 행동을 보고 "얄밉다!"는 섣부른 평가가 나온 것이다.
*질 가능성이 크다 : ·만기 열흘 전에 노동자를 내보냈다면, 퇴직금을 주지 않으려고 만기 전에 일부러 내보냈다고 볼 수밖에 없다. 따라서 이런 경우 문제를 제기하면 사장님은 해고수당을 지급해야지 별 도리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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