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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원 아이들의 아주 특별한 외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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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원 아이들의 아주 특별한 외박

안양소년원생 10명 제주도 사진 출사 동행기

소년원 아이들이 제주도로 특별한 여행을 떠났다.

10명의 안양소년원생들은 11일부터 13일까지 사진가들과 함께 제주도 사진 촬영을 마치고 돌아왔다. 2박 3일의 단체 외박은 매우 이례적인 일. 4년째 아이들에게 사진을 가르치고 있는 고현주 사진가의 노력이 없었다면 쉽지 않은 일이었다. 여행에는 서애리, 임안나 사진가와 보호 교사 6명이 동행했다.

▲제주시 애월읍의 한 바닷가. 아이들은 소리를 지르며 물속으로 뛰어들었다. 바다는 마치 아이들을 기다린 듯 텅 비어있었다. 잊고 싶은 기억을 모두 던져 버려도 될 만큼 빈 바다는 거대했다. 그 순간만큼은 아아들의 가슴은 뻥 뚫려 있었다.. ⓒ프레시안(최형락)

첫 일정은 제주돌문화공원. 100만평의 부지에 제주의 민속과 식생을 복원해 놓은 이곳은 답답한 공간을 벗어나 자연 속에 들어와 있음을 실감하게 하는 곳으로 아이들로부터 인기가 많았다. 소년원 안에서만 카메라를 들던 아이들이 거대한 자연 속에서 찍을 수 있는 것들은 무공무진했다. 숲, 돌, 바다, 꽃 등 자연은 아이들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드넓은 목초지와 시간을 거슬러 간 듯한 옛 마을의 풍광 속에서 아이들이 느끼는 자유는 낯설지만 설레고 달콤했다.

여행 내내 아이들의 눈은 낯선 것들에 대한 호기심과 흥분으로 가득 차 있었다. 둘째 날 오전에는 제주 조랑말을 구경했다. 점심에는 말로만 듣던 흑돼지 고기를 먹었다. 제주도가 고향인 김민석 전 의원이 여행기간 아이들에게 식사를 제공했다. 오후에는 제주 토박이 사진가 서재철 선생의 '자연사랑사진갤러리'를 방문해 제주도만의 비경을 보았다. 성산 일출봉에서는 노래를 부르고 물질을 하는 해녀를 만나기도 했다.

▲ 제주 돌문화공원의 억새밭을 걷는 서애리 사진가(가운데)와 아이들. ⓒ프레시안(최형락)
▲ 돌문화공원의 드넓은 초원에서 사진을 찍는 아이들. ⓒ프레시안(최형락)
▲ 성산 해안가. ⓒ프레시안(최형락)
▲ 성산 일출봉에서 단체사진을 찍는 일행. ⓒ프레시안(최형락)

그 가운데 주어진 미션은 하나. '자연과 하나된 나'를 주제로 포토에세이를 만드는 것이다. 10명의 어린 사진작가들은 저마다의 감수성으로 이틀에 걸쳐 담은 제주의 사진에 글을 붙이기 시작했다. 저마다 솔직하고 톡톡 튀는 시선들이 담겼다. 한 아이는 온갖 역경을 헤쳐가며 신비의 나라 제주를 여행하는 환타지 소설을 쓰기도 했다. 그 중에서 스스로 말하기 어려운 내용을 끌어내며 솔직한 얘기를 풀어낸 한 아이의 글은 단연 눈에 띄었다.

"이쪽 아물겠다 싶으면 저쪽에서 쿵! 저쪽 아물겠다 싶으면 이쪽에서 쿵쿵쿵! 내 주위 사람들 나 싫어하는 거 아냐? 내가 무슨 두더지 게임기도 아니고... 언젠간 아름답게 살 수 있겠지. 아 배고파."

민들레(가명)의 사진일기는 솔직했다. 군데 군데 구멍 난 바위를 찍어 스스로의 모습에 비춰 표현한 것이었다. 아이는 "너무 많은 상처를 받다보니 구멍사이에 수많은 구멍이 생겨버렸다"며, "이 상처를 낸 주인공이 아빠라서 너무 힘들고 짜증난다"고 쓰기도 했다. 보는 이들은 조용했고 여기저기서 훌쩍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민들레의 사진일기. ⓒ프레시안(최형락)

사물의 표면에서 자신의 모습을 찾아내는 방법은 사진을 배우면서 터득한 것이었다. 아이들이 세상과 소통의 방법을 터득하는 과정을 지켜보는 것은 가르치는 사진가에겐 보람있고 감격스런 일이다. 발표 때마다 아이들은 솔직했고 선생님들은 감동했다. 어떤 아이는 사진작가가 되고 싶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날 밤, 세 사진가는 아이들 모두에게 편지를 썼다.

여행을 하면서 아이들은 많이 밝아진 모습이었다. 처음엔 쭈뼛거리던 아이들도 나중엔 활달하게 지냈다. 아이들은 이런 여행이 자주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아이들의 천진난만하게 밝은 표정 뒤의 현실은 마냥 밝지만은 않았다. 보호 시설을 벗어나더라도 바뀌지 않은 환경에서 다시 생활해야 하는 아이들이 다시 소년원으로 돌아올 가능성은 크다고 한다. 사회의 따가운 시선이 다시 일탈로 이끌 가능성 역시 마찬가지다.

이번 여행을 기획한 고현주 사진가가 걱정하는 것도 바로 이 부분이다. <프레시안>에 '고현주의 꿈꾸는 카메라'를 연재하는 그는 이 연재를 통해 아이들이 스스로의 상처를 치유하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는데, 그는 더 나아가 아이들이 세상과 소통을 할 수 있도록 실질적으로 돕는 'SEESAW'라는 단체를 구체화하고 있다. 사회와 아이들의 심리적 거리를 좁히고 편견을 줄이는 것이 그가 활동하는 목적이다.

그동안 아이들의 사진은 여러 차례 발표됐다. 국회에서 전시를 갖기도 했고, '세상을 향한 아름다운 소통'이라는 제목의 책으로 출간되기도 했다. 이번 제주도 사진도 전시회를 열어 발표할 예정이다.

ⓒ프레시안(최형락)
▲ 흔히 볼 수 없는 말은 마냥 신기하기만 하다. ⓒ프레시안(최형락)
▲ 멀리 성산 일출봉이 보인다. ⓒ프레시안(최형락)
▲ 부모와 사회로부터 제대로 보호받지 못해 일탈에 노출된 아이들이 뒤늦게 국가의 보호를 받는 곳이 소년원이다. 사회 제도가 조금 더 제대로 갖춰져 있었다면 이곳에 들어오지 않았을 아이들이 더 많았을지도 모른다. ⓒ프레시안(최형락)
▲ 넓은 초원에 누워 있는 이 아이는 다음 달 소년원을 나간다. ⓒ프레시안(최형락)
▲ 2박 3일은 일행 모두에게 특별한 시간이었다. 아이들은 오랜만의 자유를 느꼈고, 선생님들은 아이들 가슴 속의 솔직한 얘기를 들을 수 있었다. 사진가들은 사진이 공감과 소통, 치유의 방법이 될 수 있음을 확인했다. . ⓒ프레시안(최형락)
▲ 소년원은 교정기관이 아니라 보호기관이다. 강력범죄를 저지른 청소년이 수감되는 소년교도소와 다르다. 그래서 관리도 교정직 공무원이 아닌 보호직 공무원이 맡는다. 소년원을 나온 아이들은 어떤 기록도 남기지 않고 학교로 돌아간다. ⓒ프레시안(최형락)
▲ 소년원 선생님을 물에 빠뜨리려는 아이들. 둘의 특수한 관계를 생각하면 놀라울만큼 아이들은 선생님들과 친밀감을 갖고 있었다. ⓒ프레시안(최형락)
ⓒ프레시안(최형락)
▲ 여행 중 아이들에게 왜 여기에 들어왔는지 밖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묻지 않았다. "바람에 흩어버릴수만 있다면 악당같은 기억들을 흘릴거야"라던 민들레의 일기처럼 다 잊어도 좋은 시간이었다. ⓒ프레시안(최형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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