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립 경위는 이렇다. 이승만기념사업회가 1997년 국회에 초대 국회 의장이던 이 전 대통령의 동상 건립 추천서를 제출했다. 1999년 '의회 지도자상 건립안'이 국회를 통과했고, 2000년 5월 15일 제막식이 열렸다.
그런데 이 명문 내용이 기묘하다. 동상의 주인공을 좋게 그리는 것이 명문의 기본 속성임을 감안하더라도, 이 명문은 너무 나갔다. 무엇보다 역사적 사실에 어긋나는 내용이 담겼다는 점에서다. 다음은 명문 전문이다.
우남 이승만 박사
우남 이승만 박사(1875-1965)는 황해도 평산에서 태어나 청년 시절부터 조국의 근대화와 반식민지 투쟁에 투신하셨다. 이후 미국에 건너가 항일 독립운동을 주도하였으며, 3.1운동이 난 그해 12월 상해에서 대한민국 임시정부 대통령에 선임되셨다.
1948년 제헌국회의 초대 의장이 되어 대한민국의 기초가 된 헌법을 제정, 공포하시고 이 헌법에 따라 국회에서 초대 대통령으로 선출되어 1948년 7월 24일 취임하였으며, 6.25 한국전쟁 당시 "국회의원들을 우선적으로 피신시켜야 한다"라고 국방장관에게 지시할 만큼 진정한 의회주의자셨다.
이에 우리들은 건국의 기초를 닦고 탁월한 외교로 국권을 수호, 신장하고 의회 정치 발전에 초석을 놓으신 우남 이승만 박사의 뜻을 기리고, 의회 민주주의를 발전시켜 나가는 데 귀감이 되도록 하기 위하여 동상을 국회에 건립한다.
'나 홀로 피난' 이승만이 국회의원들을 피신시켰다?
▲ 국회 본회의장 입구에 있는 이승만 동상. ⓒ프레시안(선명수) |
한국전쟁이 발발한 그날부터 이 전 대통령은 피신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당시 주한 미국 대사가 이 전 대통령을 만류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럼에도 1950년 6월 27일 새벽 이 전 대통령은 열차로 서울을 떠났다. 명문에 적힌 것처럼 국회의원부터 피신시키라고 했을까? 그렇지 않다. 국회의원들도, 장관들도 대통령의 '나 홀로 피난'을 전혀 모르는 상태였다. 그 시기 국회의원들은 신성모 국방부 장관으로부터 "조금도 염려할 것 없다"는 거짓 보고를 듣고, 수도 사수를 결의했다.
이 전 대통령은 그렇게 은밀히, 홀로 서울을 떠나 대구까지 내려갔다. 북한군이 서울을 점령하기도 전에 혼자 너무 남쪽으로 내려가서였을까. 이 전 대통령은 대전으로 올라왔다. 그리고 27일 밤 그곳에서 악명 높은 '거짓말 방송'을 내보낸다. 국군이 이기고 있으니 안심하고 있으라는 내용이었다. 몇 시간 후인 28일 새벽, 윗선의 지시로 한강 다리가 폭파됐다. 대통령의 거짓말에 속아 서울에 그대로 있던 수많은 시민들과 국회의원들은 발이 묶였다. 신익희 국회 의장과 조봉암 국회 부의장도 마지막 순간에야 겨우 몸을 피할 수 있었다. 김규식, 안재홍, 조소앙처럼 이승만으로선 껄끄러웠던 저명인사들은 납북됐다.
이게 끝이 아니다. 그해 9월 28일 서울을 되찾은 후 이승만 정부는 피난을 못 간 이들을 대상으로 '빨갱이 사냥'을 했다. 한강을 건너 몸을 피한 '도강파'가 서울을 떠나지 못한 '잔류파'를 거칠게 심사했다. 대통령의 거짓말 방송과 한강 다리 폭파 때문에 제때 떠나지 못한 시민 수만 명을, 적에게 협력한 이른바 부역자로 몰아갔다. 피난을 못 간 국회의원들의 부역 여부를 조사하기 위한 특별위원회가 구성될 정도였으니, 부역자로 몰린 평범한 시민들의 고초는 더 말해 무엇 하겠는가. 거짓말 방송과 '나 홀로 피난'에 대해 국민에게 사과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으나, 이 전 대통령은 자신이 잘못한 게 뭐가 있느냐며 일축했다. (관련 기사 : "공산군 물리친 이승만의 공? 잘한 게 없다")
"진정한 의회주의자" 이승만? 국회, 제정신인가
이처럼, '국회의원부터 피신시키라고 지시했다'는 명문의 내용은 거짓이다. 그럼 이 문구 하나만 조정하면 명문과 동상은 아무 문제가 없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 명문에 담긴 역사적 평가 자체가 지극히 편향돼 있다는 점에서다. 예컨대 이승만이 임정 대통령이었던 것만 적었을 뿐, 자신의 잘못 때문에 1925년 탄핵된 사실은 쏙 빼놓는 식이다. 이승만 집권기에 학살된 수많은 민간인들의 피눈물도 외면하고 있다.
"진정한 의회주의자"라는 것 역시 듣기 민망한 소리다. 이 전 대통령의 삶과 치세는 의회주의와 거리가 멀어도 한참 멀다. 전장에서 병사들이 피 흘리던 1952년 국회를 겁박해 헌법을 고치고 재집권한 이승만이다(부산 정치 파동). 이 과정에서 국회의원 47명이 헌병대로 연행되고, 이름도 요상한 '땃벌떼'를 비롯한 정치 깡패들이 이승만에게 비판적인 국회의원들을 위협했다. 1954년에는 또다시 권력을 잡고자 사사오입 개헌이라는 기상천외한 방법을 동원했다.
이승만 집권기, 이런 일들은 비일비재했다. 그 절정이 1960년 3.15 부정 선거였다. 그러다 4월혁명으로 이승만이 쫓겨나고, 시민들이 그 동상을 끌어내린 것 아닌가. 국회는 그런 인물을 '의회 지도자'로 떠받들며 동상을 세우고 거짓말까지 담긴 명문을 새겨 넣었다. "의회 민주주의를 발전시켜 나가는 데 귀감이 되도록 하기 위하여"라는 어처구니없는 이유를 대면서. 한마디로 국회가 역사에 대한 반역에 앞장선 꼴이다. 초대 국회 의장이었기에 의회 지도자로 기린다고 한다면, '한국적 민주주의'를 내세우며 유신 체제를 만든 박정희 전 대통령도 '한국적 민주주의 창시자'로 기릴 건가?
이승만 '거짓말 동상'은 그렇게 14년째 국회 심장부에 터줏대감처럼 자리하고 있다. 사실 기자가 이 문제에 관한 글을 처음 쓰는 건 아니다. 2005년 1월, 이에 관한 기사를 쓴 적이 있다. 그로부터 8년하고도 8개월이 지났다. 그 사이에 상황은 더 나빠졌다.
제도권 교육 바깥에서 변죽을 울리던 뉴라이트는 '이승만 살리기, 박정희 띄우기' 교과서를 들고 10대를 만날 채비를 하고 있다(관련 기사 : 뉴라이트 '괴담 교과서', 방사능만큼 위험하다). 이승만 찬양에 앞장섰다는 비판을 받는 인물이 새 국사편찬위원장으로 내정됐다. 또한 박근혜 대통령은 '제대로 된 역사 교육'을 강조하며 대대적인 '역사 공세'를 예고하고 있다.
역사에 대한 반역이 거듭되지는 않을지 걱정스럽다. 막아야 한다. '이승만 거짓말 동상' 철거는 그 시작점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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