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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경제가 완연한 회복세? 국내 언론, 헛짚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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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경제가 완연한 회복세? 국내 언론, 헛짚었다

[정책쟁점 일문일답] 미국 경제의 예정된 추락이 전하는 교훈

1. 전 세계 금융시장이 크게 출렁이고 있습니다. 미국의 양적 완화 축소 시기를 놓고 시장의 전망이 엇갈리기 때문인데요.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이하 연준) 인사들 사이의 의견 차이도 시장의 불확실성을 키우고 있지요?
⇨ 연준은 지난 18일(현지 시각)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정례 회의에서 매월 850억 달러(약 92조 원)의 자산을 매입하는 양적 완화를 지속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이것은 시장의 예상을 벗어난 것이었는데요. 당초 시장에서는 연준이 이번에 양적 완화 규모를 100억~150억 달러가량 줄이며 출구 전략을 모색할 것이라 예상했었습니다. 어쨌든 연준이 시장의 예상을 뒤엎고 양적 완화 축소 시기를 연기하자 글로벌 금융시장은 환영 일색이었는데요.

그러나 이들에게는 매우 유감스럽게도 즐거운 시간은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연준 인사 중 한 사람인 제임스 블러드 세인트루이스 연방은행 총재가 시장에 찬물을 끼얹었기 때문인데요. 블러드 총재는 20일 언론 인터뷰에서 "경제 지표 변화에 따라 연준이 10월에는 양적 완화 축소에 나설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블러드 총재가 그동안 양적 완화 축소에 신중한 태도를 취한 인물이기 때문에 시장은 그의 발언에 매우 민감한 반응을 보였는데요. 연준 인사들 가운데 양적 완화 축소를 주장하는 사람이 늘어날수록 금융시장에는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기 때문입니다.

2. 그러나 지난 18일 벤 버냉키 연준 의장은 블러드 총재와는 다른 취지의 말을 했습니다. 지금 미국의 경제 지표들이 양적 완화 규모를 축소해도 될 만큼 호전되지 않았다는 것인데요. 주로 어떤 지표들이 연준의 발목을 잡고 있나요?
⇨ 고용 지표가 양적 완화 규모를 축소하려는 연준의 발목을 잡고 있습니다. 미국의 실업률은 2007년에 4.6%(연평균) 수준이었는데요. 글로벌 금융위기를 겪으며 한때 10%(2009년 10월)까지 치솟았다가 조금씩 개선되어 지난달에는 7.3%를 기록했습니다. 그러나 고용률(15세 이상 인구 중에서 취업자가 차지하는 비율)은 여전히 회복될 조짐을 보이지 않고 있는데요. 미국의 고용률은 2008년 62%(8월 기준, 이하 동일)를 기록한 이후 글로벌 금융 위기로 크게 낮아져 2010년에는 58.5%로 3.5%포인트나 떨어졌습니다. 그런데 그 이후 이 지표가 회복될 조짐을 전혀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지난달 미국의 고용률은 58.6%로 금융 위기 수준에 그대로 머물러 있습니다.

▲ (주) 매년 8월 기준 (자료) 미국 노동통계국. ⓒ홍헌호

3. 미국의 실업률은 상당히 많이 개선되었는데 고용률은 개선될 조짐을 보이고 있지 않다? 왜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 겁니까?
⇨ 우리나라에서도 이와 비슷한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데요. 실업률과 고용률 사이에 이와 같은 괴리가 크게 나타나는 것은 구직 포기자가 많이 늘고 있기 때문입니다. 국제노동기구(ILO)에 따르면 실업률은 취업자와 1주일 이상 구직 활동을 한 사람들 중에서 일자리를 구하지 못한 사람(실업자)의 비율을 지표로 나타낸 것입니다. 따라서 어떤 국가의 구직 포기자가 많아지면 실업률 산출 과정에서 구직 포기자가 제외되기 때문에 실업률이 개선되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고용률은 구직 포기자를 포함한 15세 이상 인구 중에서 취업자 비율이 어느 정도인지를 나타내는 지표이기 때문에 실질적인 취업 상태와 실업 상태를 비교적 정확하게 반영해 줍니다.

4. 통계상으로 구직 포기자가 많아진다는 것은 어떻게 확인할 수 있나요?
⇨ 미국 노동통계국의 자료를 보면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 노동시장 참가율이 급락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노동시장 참가율이라는 것은 15세 이상 인구 중에서 취업자와 1주일 이상 구직 활동을 한 사람들의 비율을 말하는데요. 이 지표는 2008년 66.1%(8월 기준, 이하 동일)였으나,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 지속적으로 떨어져 2010년에는 64.7%를 기록했고 지난달에는 63.2%를 기록했습니다.

▲ (주) 매년 8월 기준 (자료) 미국 노동통계국. ⓒ홍헌호

노동시장 참가율이 떨어지는 것은 두 가지 원인 때문인데요. 하나는 15세 이상 인구 중에서 취업자가 차지하는 비율(=고용률)이 떨어지는 경우고, 다른 하나는 15세 이상 인구 중에서 1주일 이상 구직 활동을 한 사람의 비율이 떨어지는 경우인데요. 노동시장 참가율의 하락 속도가 고용률의 하락 속도보다도 크다는 것은 1주일 이상 구직 활동을 한 사람의 비율이 크게 줄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고, 이것을 다른 말로 표현하면 구직 포기자가 크게 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5. 실업률과 고용률 중 실질적인 고용 상황을 상대적으로 잘 반영하는 것은 고용률인데요.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미국의 고용률 지표가 회복될 조짐을 보이고 있지 않다면 연준의 고민이 깊겠습니다.
⇨ 미국은 지금도 양적 완화 정책에 따라 매달 850억 달러의 돈 풀기를 계속 하고 있는데요. 이 정책을 장기간 지속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는 연준이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습니다. 따라서 조만간 양적 완화 규모를 줄이고 또 가능하면 빠른 시기에 양적 완화 조치를 종료해야 하는데요. 미국 고용률 지표가 회복될 조짐을 보이지 않고 있고, 또 신흥 개도국들이 양적 완화 축소설에 심하게 출렁이고 있어 연준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습니다.

6. 최근 국내의 일부 언론들은 미국의 부동산 시장이 폭락하고 그 과정에서 가계 부채가 조정되면서 경기가 회복세로 돌아섰다는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이런 주장, 어떻게 보아야 합니까?
⇨ 그 사람들은 지금의 표면적인 미국 시장 회복을 대세 전환기의 시발점으로 해석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저는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지금의 미국 시장 회복은 대세 전환기의 시발점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습니다. 단순히 글로벌 금융 위기 직후 기술적 반등을 한 것에 불과합니다. 국내 일부 언론사들의 주장처럼 미국의 부동산 시장이 폭락하고 가계 부채가 조정되어 대세 전환기의 시발점에 섰다면 고용률이 왜 저 모양이겠습니까? 미국 경제는 앞으로도 근본적인 처방 없이는 쉽게 대세 전환기의 시발점에 들어서기 어려울 겁니다.

7. 미국 경제가 의미 있는 회생을 하지 못하고 장기간 허우적거리는 원인이 무엇입니까?
⇨ 미국 경제의 안정적인 성장을 해치는 가장 큰 주범은 '제조업의 추락'입니다. 미국의 역사를 보면 1970년대와 1980년대 제조업 일자리는 각각 1810만 개, 1780만 개였고, 1990년대에는 1720만 개였습니다. 그러나 2000년 이후 그중 1/3이 사라졌습니다. 지난달 미국 제조업 일자리는 1193만 개에 불과했습니다. 전체 일자리에서 제조업 일자리가 차지하는 비중도 1970년 22.2%에서 지난달 8.3%로 1/3 토막이 났습니다.

▲ (주) 매년 8월 기준 (자료) 미국 노동통계국. ⓒ홍헌호

8. 그 결과 미국의 서비스업 비중이 높아진 것인데요. 우리나라 일부 학자들은 오히려 미국의 서비스업 비중이 높은 것이 부럽다고 하는데요. 이런 주장, 어떻게 보아야 합니까?
⇨ 우리 경제가 숱하게 많은 고질병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나마 버티고 있는 것은 제조업 비중이 높기 때문입니다. OECD에 따르면 우리나라 제조업 비중은 28.1%(2009년, 부가가치 비중)로 OECD 중위값 15.8%의 두 배에 육박합니다. 반면 같은 해 미국의 제조업 비중은 12.3%로 31개국 중에서 4번째로 제조업 비중이 낮았습니다. 따라서 제조업 비중이 높은 우리나라가 제조업 비중이 낮은 미국을 부러워한다면 그것은 보약을 먹는 사람이 독약을 먹는 사람을 부러워하는 꼴입니다.

9. 일부 학자들이 부러워하는 것은 미국의 서비스 수지 흑자 아닐까요?
⇨ 미국의 서비스 수지 흑자도 부러워할 필요가 전혀 없습니다. 2000년 이후 지난 12년간 미국의 상품 수지 적자는 7조6670억 달러에 달했습니다. 반면 서비스 수지 흑자는 1조1165억 달러에 불과했습니다. 양자의 격차는 무려 7배에 달했는데요. 이런 미국 경제를 결코 좋은 경제라 볼 수 없습니다.

10. 미국은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상품 수지 적자를 줄이고, 서비스 수지 흑자를 늘리기 위해 각국과 FTA를 추진하고 있는데요. 이것이 큰 성과를 거둘 수 있을까요?
⇨ 약간의 도움은 되겠지만 큰 도움이 되지는 못할 겁니다. 지난 4년간 미국 상품 수지 적자의 43%는 대중국 무역에서 발생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미국과 중국 사이가 매우 좋지 못하기 때문에 양국이 FTA를 맺기는 어려울 겁니다. 또 같은 기간 적자의 14%는 캐나다와 멕시코라는 인근 국가들과 한 무역에서 발생했는데요. 이들 국가들과는 이미 NAFTA가 체결된 상태라 추가 FTA로 적자를 줄일 수는 없습니다. 또 같은 기간 적자의 16%는 일본과 독일이라는 제조업 강국과 한 무역에서 발생했는데요. 이 또한 제조업 경쟁력 차이로 발생한 것이므로 FTA로 적자를 줄일 수는 없습니다. 결국 위에서 언급한 세 가지를 합치면 미국 무역 적자의 73%는 FTA로 해결할 수 없는 것들입니다. 미국이 각국과 FTA를 통해 무역 적자를 크게 줄일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11. 미국 경제가 대전환을 이루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 첫째는 정책적으로 제조업을 육성해야 할 겁니다. 둘째, 무분별한 FTA는 자제해야 할 겁니다. 미국의 제조업이 지금처럼 붕괴한 것은 그들 스스로 적극 추진한 '자유무역주의'가 가장 큰 주범이었습니다. 20세기 후반에는 일본과 한국, 대만 등이 그들의 제조업을 강타했고, 21세기에 들어서서는 중국이 그들의 제조업을 강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이들 국가들이 미국의 제조업을 강타할 수 있었던 것은 미국이 오매불망 신봉하는 자유무역주의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셋째는 경제 수준에 부합하는 수준으로 조세부담률을 높여야 할 겁니다. 지금까지 미국은 수입품에 대한 관세를 낮게 설정하여 국민들에게 저가의 수입품을 안겨 주면서 심각한 빈부격차로 발생하는 문제들을 은폐해 왔습니다. 즉 저가 수입품 공세를 통해 국민들의 생활비를 낮춤으로써 심각한 빈부격차 문제를 은폐해 온 겁니다. 그러나 이와 같은 꼼수는 앞으로 통하지 않을 겁니다. 미국 경제가 천문학적인 무역 적자를 지속적으로 감당할 만큼 튼튼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12. 미국 경제 추락으로부터 우리는 어떤 교훈을 얻어야 합니까?
⇨ 2000년대 중반 국내 일부 학자들은 '제조업 시대는 갔고 이제는 금융업 시대'라는 황당한 주장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앞으로는 그런 어이없는 주장을 해서도 안 되고, 또 그런 주장을 믿어서도 안 됩니다. 제조업의 토대가 빈약한 상태에서 어떤 금융업도 제대로 성장할 수 없습니다. 1980년대 이후 금융자본의 꼬임에 속아 제조업을 소홀히 한 국가치고 금융 위기를 겪지 않은 나라가 없습니다. 지금부터라도 중소제조업 성장을 도와줄 제대로 된 국가 정책을 펴야 합니다. 그런데 지금 정치권을 보면 중소기업 정책에 대한 별다른 문제의식도 없고 대안도 없습니다. 경제 민주화와 복지 정책이 중요하다는 이유로 중소제조업 정책을 소홀히 하면 우리나라도 미국과 같은 추락의 길을 걷게 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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