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필 모두가 진보정치의 위기를 말하는 시기다. 통합진보당 이석기 의원이 연루된 이른바 '내란음모 의혹'으로, 가뜩이나 부진했던 진보정당은 이제 '위기'를 넘어 사실상 재기불능의 사태로 접어들었다는 자조가 내부에서도 흘러나온다.
이런 상황에서 진보정치의 상징과도 같은 권영길(72) 전 민주노동당 대표가 10일 무상교육·무상의료 시민운동을 벌이는 사단법인을 발족시켰다. 과거 자신의 대선 슬로건이었던 '살림살이 좀 나아지셨습니까?'를 연상케 하는 '권영길과 나아지는 살림살이(나살림)'가 법인 이름이다.
진보정치 원로에게 이석기 사태를 묻고 싶었다. 그러나 권 이사장은 말을 아꼈다. 자신이 평생을 헌신한 진보정당의 성과가 다시 한 번 완전히 주저앉는 모습을 보면서 상당히 힘들어 했다는 측근들의 말을 전해들을 터였다. 그만큼 이번 사건으로 입은 상심이 그에겐 커 보였다.
진단은 분명했다. 진보정당의 '위기'가 아니라, 사실상 '사망선고'라고 했다. 그렇지만 호사가들이 특정 운동권 계파의 뿌리부터 시작해 '그들은 누구인가' 류의 분석을 내놓고, 다른 한편에선 진보의 명예로운 이름을 누더기로 만든 데 대한 원망의 눈길을 보내는 것과 달리, 그는 이제 '진보정당이 무엇인지'부터 진지하게 다시 고민하자고 했다. 그리고 "정당정치를 마감했다"는 그 스스로 "가장 비생산적이고 가장 비효율적"이라 칭한 방식으로 다시 '허허벌판'에서 시작하겠다고 했다.
민주노동당 얘기를 많이 했다. '나살림' 출범에 맞춘 인터뷰였지만, 그는 자꾸 민주노동당 얘기를 꺼냈다. 1년 전 <프레시안>과의 인터뷰에서, 통합진보당 소속 의원이면서도 기자에게 '민주노동당 권영길' 명함을 건넸던 그다. 그의 마지막 당적은 통합진보당이었지만, 지난해 분당 사태 이후 탈당한 뒤 경남도지사 보궐선거에서도 민주노동당의 상징인 주황색으로 선거를 치렀던 그다.
애착도 많지만, 그만큼 한(恨)도 많은 듯 했다. 현재 직면한 진보정치 몰락의 뿌리가 민주노동당 분당 사태에 있다고 했다. 진보정치의 분기점마다 그가 있었고, 그 책임을 자신도 피할 수 없기에 마음은 더욱 무거운 것 같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권 이사장은 여전히 '통합된 진보정당'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진보정치의 몰락이 표면화되기도 전에, 눈치 빠른 이들은 '중도의 옷을 입은 진보'를 강조하며 민주당 내 진보블록을 주장하기도 하고, 또 신흥 야권세력인 안철수 의원과 손을 잡자는 얘기도 나오지만, 이 모두를 완강히 거부했다. 오히려 민주당과 안 의원을 향해선 "중도를 택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충고했다. 그게 진보정당과 건강하게 경쟁하고 연대하는, "한국정치 발전을 위한 길"이라고 했다. 정당정치와 결별했다지만, 그는 여전히 영락없는 '진보정당론자'였다.
인터뷰는 나살림 출범식이 열린 10일 오전 서울 광화문의 한 사무실에서 진행했다. 다음은 권 이사장과의 일문일답이다.
▲ 권영길 사단법인 '권영길과 나아지는 살림살이' 이사장. ⓒ프레시안(최형락) |
"칠순 넘겨 다시 거리로…정당정치와는 결별"
프레시안 : 41년생이다. 요즘 세상에 칠순을 노인이라고 하긴 멋쩍지만, 다시 거리로 나서기엔 나름의 결심이 필요했을 것 같다. '나살림'을 꾸린 동기는 무엇이었나.
권영길 : 국회에 있을 때는 나이 얘기를 잘 안 했다. 정당정치를 하는 사람에게는 나이가 중요한 게 아니다. 나이를 물으면 답하지 말라는 권유도 있었다. (웃음) 그런데 이제 말하려 한다. 칠순을 넘긴 나이에 다시 거리에서 운동한다는 것은 이제 정당정치 운동을 정리하고 그 길을 다시 걷지 않겠다는 의지다. 노동 중심의 단일화 된 새로운 진보정당이 결성된다면 평당원으로 가입할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당직을 맡거나 눈에 보이는 직책은 맡지 않을 것이다.
대신 새로운 활동을 하려 한다. 이제 '칠십 평생'이라고 해도 괜찮을 나이, 오래 살았다고 해도 될 나이 아닌가. 그런데도 잊히지 않는 기억이 있다. 초등학교 때 머리가 뛰어나 공부는 잘하지만, 돈이 없어 배움을 포기한 친구가 있었다. 가난 때문에 배움을 포기하고 험난한 길을 걷게 된 친구다. 그건 70세가 넘어서까지 지울 수 없는 상처다.
거기서부터 답이 시작됐다. 어떻게 보면 내 필생의 화두는 '기회의 균등'이었다. 가난해서, 돈이 없어서 배우지 못하는 것에 대한 문제의식이다. 그 다음엔 '국가란 무엇인가'란 질문이 나오게 됐다. 그 질문을 던지면서, 나이 칠십이 넘어서 활동을 시작한 것은 돈이 없어 배우지 못하고, 치료를 받지 못해 죽는 사회가 돼서는 안 된다는 생각 때문이다. 그래서 교육비, 병원비 걱정 없는 나라를 만들어 보자. 그것을 위한 국민운동을 하자. 그런 결심이 사단법인 '권영길과 나아지는 살림살이'의 출발점이 됐다.
프레시안 : 우리 사회의 문제가 기회의 불균형에서 출발한다는 인식엔 누구나 공감할 것 같지만, 돈이 없어 교육을 못받는 세상은 지난 것 같다.
권영길 : 핵심은 1997년부터 외쳤던 무상교육 개념의 실현에 있다. 지금 우리 사회의 가장 큰 문제는 무엇보다 사회 양극화다. 사회 양극화는 곧 비정규직 문제고, 비정규직 문제를 풀기 위해선 동일노동·동일임금이 실현돼야 한다. 동일노동·동일임금 사회가 되려면 학벌없는 사회가 먼저 이뤄져야 한다. 그게 이뤄지려면 대학 서열화도 폐지돼야 한다. 국가 재정으로 고등교육, 즉 대학교육을 책임지는 것이다. 이게 유럽에선 이미 실현되고 있다. 그걸 우리는 '무상교육'이나 '교육비 걱정 없는 사회'라고 표현한다. 원점에서 출발할 때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선 비정규직 문제 해결은 구호로만 끝날 것이다. 단계적으로 풀어가는 출발이라고 본다.
"무상교육, 무상의료 실현이 제1 과제"
프레시안 : '나살림'의 활동의 방점을 보편적 복지, 평화 통일에 뒀다. 이런 의제들을 가지고 비슷한 취지의 활동을 하는 단체도 상당히 많다. 별도의 사단법인을 설립한 다른 이유가 있나?
권영길 : 전문가 집단 등 많은 단체가 있다. 전문가들의 영역은 존중되어야 한다. 나는 거리에서 국민들을 만나면서 이끌어 내는 국민운동을 펴겠다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활동의 방식이 좀 다르다고 볼 수 있다. 내 표현대로라면 나는 가장 원시적이고, 가장 비생산적고, 가장 비효율적인 방법을 택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구체적으로, 거리에 나서서 마이크 잡고 국민들을 설득하고, 아파트단지 같은 곳에 가서 주부들과 간담회를 통해 얘기하려고 한다. 요즘 SNS 시대, 스마트폰 시대라고 하는데, 그런 과정을 통해 조금 씩 조금 씩 전파가 되지 않겠나. 또 아직은 권영길이 나와 이런 활동을 한다고 한다면, 한 사람 한 사람 함께하는 활동가들이 나오지 않겠나.
프레시안 : 현장에서 복지나 교육 담론을 대중들과 소통하고 설득하는 작업이 되는 건가?
권영길 : 우선 설득하고 이해시키는데 주안점을 둘 생각이다. 사실 보편적 복지는 이제는 누구도 거부하지 않는 의제지만 보편적 복지가 실제 실현이 되려면 향후 10년은 필요하다고 본다. 일단 국민 생각이 여기에 동화가 되어야 한다. 보편적 복지가 말은 좋은데, 과연 가능하겠느냐, 특히 진보정당이 할 수 있겠느냐. 이런 회의적인 시각이 아직 많다. 아직은 경제성장이 더 되어야 한다고, 우리가 아직 보편적 복지를 할 수 없는 나라라고 여기는 시각도 많다. 이런 관점을 바꾸는 것은 정당이나 국회의원 한 명의 활동으로 되지 않는다. 오래 걸리더라도 그렇지 않다는 것을 이해시키고 설득시키는 사람이 있고, 그런 활동을 하는 단체가 자연스럽게 형성돼야 한다고 본다. 그런 노력을 하자는 것이 바로 나살림이고 10년 정도의 장기적 과제로 내다보고 있다.
프레시안 : 평화와 통일도 주요 과제로 내걸었다. 보편적 복지나 통일이나 모두 필요한 의제지만, 너무 광범위하다보니 집중되지 않는 듯한 느낌도 있다.
권영길 : 이제까지 내가 쭉 걸어왔던 게 민주노동당(이 지향했던) '평등, 평화, 통일'의 길이고, 그를 위해 30여 년의 길을 걸어 왔다. 또 보편적 복지의 경우 지금도 우리의 경제력으로 충분히 실현할 수 있고, 또 실천해야 한다. 그런데 지속 가능하기 위해선 새로운 성장 동력이 필요하다. 그게 우리나라에선 한반도 평화라는 것이다. 평화가 답이다. 평화와 통일은 구분할 수 없고, 평화가 곧 통일이자 통일이 곧 평화다.
사실상 통일은 곧 한반도 평화 체제 구축이고, 한반도 평화 체제가 구축돼야 남북 경제 공동체가 제대로 굴러갈 수 있다. 그게 곧 통일로 가는 길이다. 즉 남북 경제 공동체 건설과 활성화가 남북 간 지속가능한 성장 요인이라는 것이다. 그게 있어야 향후 보편적 복지도 지속할 수 있고, 더 나아가 삶의 질 역시 개선할 수 있다고 본다.
프레시안 : 상당히 장기적인 과제가 될 것 같다. 단기적 계획도 분명 있을 텐데, 구체적으로 어떤 성과를 내고 싶나?
권영길 : 일차적으로 보편적 복지 중에서도 교육과 의료의 문제에 집중하려고 한다. 사실 교육비 같은 경우는 걱정을 덜 기본적인 토대가 이미 마련돼 있다. 여기서 '기본적 토대'란 곧 법을 얘기하는 것이다. 8년간 국회의원 생활을 하면서 4년을 교육과학기술위원회에 있었는데, 그 때 국회에서 싸워서 만들어낸 법이 우리가 처음엔 '무상교육법'이라고 부르던, 고등교육법 11조9항이다.
내용이 정부가 고등교육 재정 운영 10개년 계획을 세워 매 2년마다 국회에 보고해야 하는 것인데, 당초 합의할 때는 (국가재정 중 고등교육 지원 비율을) OECD 평균 수준으로 하자는 내용이 들어가 있지만 한나라당의 반대로 무산됐다. (고등교육법 11조 9항 : 정부는 전체 국가재정 중 고등교육 지원 비율 확대를 위한 10개년 기본계획을 수립하고, 이를 반영하여 2년마다 고등교육 지원계획을 국회에 보고하여야 한다. 개정 2011.9.15-편집자)
이 법을 토대로 움직이려고 한다. 일단 박근혜 정부가 약속했던 고등학교 무상교육과 대학 반값 등록금을 2014~2015년 안에 완결지어야 한다. 박근혜 정부는 임기 내에 하겠다고 했지만, 임기 내는 안 된다. 법적으로도 2년마다 지원 계획을 국회 보고하라고 했으니, 2년 안에 공약을 이행하면 (10개년 기본계획 중) 8년이 남는다. 이 8년 동안 남아있는 반값 등록금까지 (무상교육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본다. 이건 허황된 게 아니다. 고등교육법에 규정된 국회의 의무 사항이다.
지금부터 향후 2년 동안은 고등학교 무상교육과 반값 등록금을 실시할 수 있도록 국회에 압력을 가하고, 국민에게 알리려고 한다. 한 마디로 '고등교육법 11조 실천하라'는 것이다. 국민들의 힘을 모은다면 1단계는 나아갈 수 있다. 내년부터 이를 위한 서명 운동에 돌입할 예정이다.
"서구 '복지국가 건설'의 주역은 누구인가…노동계, 실사구시적 사고해야"
프레시안 : '나살림'에 노동 의제가 빠진 게 의외다. 권 이사장 입장에선 필생의 숙제이자 지론 아니었나.
권영길 :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에 대한 호소이고 경고다. 오늘날에 있어 보편적 복지는 사실 진보와 보수를 구분하는 기준이 아니다. 그런데 '보편적 복지는 진보의 영역이고, 반대하거나 소극적인 것은 보수'라는 식으로 자꾸 구분을 하려고 한다. 틀렸다. 보편적 복지는 국가의 기본 틀이어야 한다. 서두에 '국가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을 던졌다고 했는데, 국가는 애 키우고, 공부 시키고, 병들었을 때 치료하고, 노후를 보장하는 게 국가의 기본적인 역할이다. 이게 바로 보편적 복지다. 달리 얘기하면 이걸 '요람에서 무덤까지'라고 표현하는 것이다. 오늘날 유럽에서는 다 이뤄져 있다. 유럽에서 우파가 집권하면 복지를 안 하나? 그렇지 않다. 이미 오래 전에 진보와 보수를 막론하고 국가의 기본 토대가 됐다. 과격하게 말하자면 이게 없는 것은 국가가 아닌 셈이다.
여기서 질문을 던지자면, 유럽에선 보편적 복지를 누가 이끌어 냈나? 노동자들이 이끌었다. 노동자들이 직접적으로 정당을 만든 경우도 있고, 진보정당의 중심축에 노동자들이 있었던 경우도 있다. 이 모든 것을 통 틀어 100여 년에 걸친 투쟁을 통해 보편적 복지를 만든 것이다. 우리나라 노동자들도 이제 그렇게 해야 한다. 그런데 안 하고 있다. 민주노총은 처음 건설 당시 사회적 개혁 의제로 보편적 복지를 내걸었지만, 지금 민주노총은 이를 추진할 여력이 없다고 한다. 생각도 하지 않고 있다. 노동자가 중심이 돼 보편적 복지를 외치고, 진보정당이 이 요구를 받아 정책과 법을 만들고, 집권당에게 이를 실현하도록 압박할 수 있어야 하는데 이 모든 것이 안 되고 있다. 조직된 노동자들, 한국노총과 민주노총을 막론하고 현실적으로 힘이 없어져 버린 것이다. 그래서 사실은 그들에게 호소하고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무엇을 하고 있는가? 이게 바로 비정규직 문제 해결의 출발이다. 노동자가 생산의 주체고 역사 발전의 주체라고 하는데, 이제는 실사구시적인 생각과 실사구시적인 투쟁을 해야 하지 않겠나.
프레시안 : 민주노총 위원장 출신인 권 이사장의 '경고'라는 말씀이 무겁게 전달될 것이라고 본다. 노동운동, 진보정당 운동을 해온 지 상당이 오래됐고, 큰 자산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당이나 단체의 외피를 두르지 않고 홀로 나선 이유는 무엇인가?
권영길 : 사실 이 생각은 18대 국회의원 임기를 1년 정도 남겨두고서부터 생각했던 것이다. 민주노동당이 분당이 됐고, 결과적으로 진보정당 전체가 지리멸렬해졌다. 새로운 노동 중심의 진보정당이 필요하다. 그래서 진보 통합을 위해서라면 내가 조금이나마 역할을 해야겠다. 이것이 당시 나의 생각이었다. 새로운 진보정당이 결성된다면, 통합이 이뤄진다면 내가 어떤 당직이나 공직도 맡지 않고 백의종군할 것을 결심했고, 그런 모습을 보여주는 사람이 한 사람 정도는 있어야 할 것 같아 18대를 끝으로 더 이상 의원직에 있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그렇다면 나는 무엇을 할 것인가? 당의 테두리 안에서보다는, 당의 테두리를 벗어난 사회 활동으로 전체적인 토대 구축에 보탬이 되려고 한다. 그것이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국민운동 방식으로 국민들을 이해시키는 활동을 해보자고 판단했다.
"진보정치 위기? 위기가 아니라 다 무너졌다"
프레시안 : 현실의 진보정당 운동은 아직까지 제 방향을 못 찾았다는 뜻으로 들린다.
권영길 : 물론 되돌아보고 후회만 할 필요는 없지만, 반성적인 측면에서 국민들에 대한 사죄의 뜻으로 지난날을 돌아본다면, 민주노동당 분당은 역사적인 죄를 지은 것이다. 과오를 넘어, 역사적 죄를 지었다. 민주노동당이 분당되지 않았다면 사단법인 만들어서 이렇게 활동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그 말은 곧 민주노동당은 보편적 복지를 충분히 실현할 수 있는 힘을, 역량을 가지고 있었고, 분당이 되지 않았다면 국회 내에서 그걸 실천할 정당이 될 수 있다는 확신을 갖고 있었다. 더 나아가면 언젠가는 복지국가와 한반도 평화 체제를 확립하는 당이 됐을 것이다. 그런데 분당이 되어 버렸다. 민주노동당의 브랜드 같았던 무상의료 무상교육, 부유세가 완전히 실종돼 버렸다. 지금 그것을 진보정당이 다시 들고 나온다고 해서 국민들이 쳐다보기라도 하겠나. 지금 진보정당에 국민들이 확신과 믿음을 갖겠나. 진보정당을 해야 하지만, 국민들 가슴에 와 닿지 않는 것이다. 국민들 가슴을 열게 하지 못하는 것이다.
프레시안 : 최근 벌어진 이석기 의원 사태로 마음이 무겁다는 전언을 들었다. 진보정치의 위기라는 말도 요즘 부쩍 많이 나오는데, 어떻게 보나.
ⓒ프레시안(최형락) |
그렇다면, 진보정당을 이제 포기해야 하나? 지금이야말로 위기에 대한 원인도 따져보고 현상도 분석해야 겠지만, 한편으론 그것조차 건방진 일이다. 저는 향후 10년은 필요하다고 본다. 어떤 이들은 '5년 내에 과연 진보정당이 재기할 수 있겠느냐'고 하는데, 저는 5년은커녕 10년 이내에도 쉽게 되겠느냐고 본다. 이제 다른 길은 없다. 다시 처음부터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야 한다. 그걸 국민들에게 호소할 필요도 없다. 그렇게 걸어가는 모습을 보고 국민들이 판단할 것이다. 저 정당도, 저 사람도, 다시 시작할 수 있겠구나, 라고.
프레시안 : 민주노동당 분당 사태를 진보정치의 위기의 시발점으로 바라보고 있는 것 같다. 일각에선 민주노동당 분당 등 일련의 흐름이 2007년 대선 후보로 권영길 후보가 선택되면서 시작됐다는 주장도 한다.
권영길 : 그런 얘기를 많이 들었지만, 딱히 그에 대한 말을 하지 않아왔다. 얘기하는 게 구차하고, 또 대선 패배에 대한 변명같이 들릴 수도 있어서…. 어쨌든 당시의 대선 패배가 집행부 총사퇴 및 비상대책위원회 체제로 전환되는 핵심적인 요소였기 때문이다. 여기서 내가 무슨 말을 하는 것은 대선 패배에 대한 반성의 태도가 아니라고 생각해서 쭉 여기에 대한 얘기를 해오지는 않았다.
그러나 나 나름대로 정리한 것을 말씀드리자면, 객관적 사실과는 다른 얘기다. 두 가지 면에서 그렇다. 정파적 선거였다는 말이 많았고, 그게 구체적으로 나타났던 부분이 '코리아연방공화국' 슬로건이었는데, 그 문제는 이미 당내 경선 과정에서 정리가 됐던 부분이었다. 권영길 선대본부에서 가장 먼저 나온 것은 '새로운 공화국'이었고, 그 다음에 나온 슬로건이 '제7공화국'이었다. 다른 데서 이미 사용한 문제도 있고 해서 결국 둘 다 안 되고, 토론 끝에 나온 것이 '코리아연방공화국'이었다. 사실 '코리아연방공화국'을 내걸 때도 내부에서 자칫 잘못하면 정파적으로 해석될 수 있겠다는 우려는 나왔다.
그런데 아니라고 판단했다. (모든 정파의 주장을) 다 수렴할 수 있다고 봤다. 결국 경선을 거쳐 당의 후보가 됐고, 선대본의 공식적인 논의 없이 벽보가 나가는 일이 있었다. (권영길 당시 예비 후보가 당내 경선에서 대선 후보로 선출된 뒤, 권 후보를 지원한 당내 자주파가 제시했던 '코리아연방공화국'이 핵심 공약으로 적절치 않다는 의견이 제시돼 삭제가 결정됐다. 그러나 그 문구가 그대로 들어간 선거 벽보 5만 부가 인쇄되는 일이 벌어졌고, 당시 선대위는 부랴부랴 이를 전량 회수하고 벽보를 다시 제작했다.-편집자) 결국 전국적으로 나가는 선거 벽보를 전량 폐기 처분했다. 있을 수 없는 일이었기에 폐기 처분했다. '코리아연방공화국'은 어느 한 쪽 노선의 것이 아니고, 이미 정리된 얘기였지만 오해 받을 수 있었기 때문에 완전히 폐기한 것이다. 당시 민주노동당 입장에선 재정적으로 엄청난 손해였다.
정파적인 선거는 아니었다. 다만 문제는, 당시 선거를 정파적 선거로 해석하고 규정한 것이 더 큰 문제였다고 본다. 후보 개인의 문제에 있어서도 당시 여론조사에서 저는 진보진영 쪽의 압도적 지지를 받았다. 물론 선거 패배는 후보가 책임져야 하는 것이지만, 그게 분당의 주 요인으로 작용했다고 규정하는 것은 그야말로 정파적이다.
프레시안 : 평소 제대로 된 진보통합을 강조해왔는데, 지금은 더 심한 분열 상태다. 이 분열이 어쩌면 재구성을 위한 시작이 될 수도 있지만, 현재 분위기론 그 역시 어려워 보인다.
권영길 : 정당을 다시 조직하고 구성하는 사람의 문제가 있을 것이고, 또 내용의 문제가 있을 것이다. 왜 민주노동당이 분당이 됐나. 정파 패권주의 때문이다. 정파는 근원적으로 나쁜 것은 아니다. 존중돼야 하고, 정파가 내거는 노선을 갖고 토론해야 한다. 문제는 정파의 이익을 위해 당을 오히려 활용하고, 당이 껍질이 되어선 안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민주노동당은 정파의 싸움터가 됐었다. 창당 당시로 거슬러 올라가면, 나는 민주노동당이 창당된 이후에 물과 기름 같았던 두 노선이 하나가 됐다는 것에 가장 보람을 느꼈다. 누구도 불가능하다고 했었지만, 하나가 돼서 민주노동당이 창당됐다. 그래서 나는 민주노동당이 정파 패권주의를 없애는 하나의 용광로라고 얘기했었다. 다 녹이고 새로운 쇳물이 나오는 모습, 화학적 결합이 이뤄지는 모습을 보게 될 것이라고 믿었다. 2008년 분당만 넘어섰다면, 그 화학적 결합이 이뤄지고 용광로에서 새로운 쇳물이 나왔을 텐데, 그 점이 가장 안타깝다. 지금도 다시 (분열 상황으로) 돌아갔다. 오히려 더 첨예하게 되어 버렸다. 그럼 분열 이전, (민주노동당의) 창당 초기로 돌아가는 것은 정말 불가능한 일인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노동의 가치, 평등, 자주, 평화, 생태, 여성…. 이 모두가 민주노동당의 창당 정신이었다. 이게 이뤄져야 희망이 있다고 보기 때문에, 그래서 끊임없이 진보 통합을 호소했던 것이다.
"민주당 내 진보 블록? 우리의 길은 달라야 한다"
프레시안 : 진보정치의 독자적 역할보다는 민주당 안에서 진보 블록을 형성하거나 안철수 의원과의 연대를 모색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점차 진보진영 내에서 확산되고 있다. 어떻게 보나?
권영길 : 동의하지 않는다. 최장집 교수가 오래 전부터 노동의 가치가 없는 진보정당은 진보정당이 아니라고 해왔다. 전적으로 동의하는 얘기다.
물론 새로운 진보정당이라면 '우리는 노동자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정당이다', 이것 하나만 가지고선 안 된다고 본다. 진보정당이 노동자들만의 정당이라고 얘기해선 안 된다고 보지만, 분명히 노동의 가치가 존중돼야 하고 동시에 그 안에 노동자들이 가장 큰 중심 기둥으로 서야 한다. 그런 면에서 볼 때 민주당이나 안철수 신당이 이를 수용할 수 있겠나. 이미 수용 불가하다는 입장을 공식적이진 않지만 조금 씩 표명하고 있는 것 아닌가. 그렇다면 정치 발전을 위해서라도, 그들은 그들의 길을 가야 한다.
내가 민주당과 안철수 신당에 요구하는 것은 중도정당이 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라는 것이다. 안철수 의원에게도 신당이 중도 노선을 걷는 것을 주저하지 말라고 하고 싶다. 그리고, 진짜 본질의 문제에서 진보정당은 다시 하나로 수렴되어야 한다. 하나가 되지 못한다면 강력한 힘을 갖는 진보정당이라도 필요하다. 그래서 민주당이나 안철수 신당과 노선과 노선, 정책과 정책으로 경쟁하고 연대해야 앞으로 박근혜 정권 이후 정권 교체가 가능하지 않겠나.
프레시안 : 정치는 정말 그만둘 생각인가?
권영길 : 새로운 단일 진보정당이 탄생한다면 평당원으로 들어갈 수는 있다. 그러나 설사 평당원이 된다 하더라도, 무슨 자리를 맡지는 않을 것이고 그럴 수도 없다.
프레시안 : 지방선거 재도전 계획도 없나?
권영길 : 지난 번 경남도지사 보궐선거 역시 권영길 개인에겐 상처였다. 이미 그 때 나는 정당정치 운동을 마감한다고 선언했고, 진보 통합을 위해 백의종군하겠다고 했었는데 출마를 하면 '정치 재개'란 얘기가 나올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걸 알면서도 출마한 것은 정권 교체를 위해 복무해야 한다는 요구를 받았고, 또 스스로도 그런 얘기를 해왔기 때문이다. 박근혜 정부가 탄생하면 가장 어려운 국면에 처할 이들이 노동자들이고, 조직체로 보더라도 민주노총이다. 노동자들이 어려워지면 진보정당의 재구성 움직임에도 심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무엇보다 그 시점, 2012년 대선 정국에서 정권 교체를 위해 노동자들도 복무해야 한다고 나 스스로 외쳐왔고, 그렇게 외친 권영길이 무엇을 하느냐는 얘기를 들었다. 정권 교체의 승부처가 바로 경남이고, 지지율을 37%까지 끌어올려야 정권교체가 가능하다고 하는데, 여론조사도 꽤 높게 나왔다. 두 달간 고민 끝에 출마를 결심했다. 이제는 아니다.
프레시안 : '나살림' 출범이 알려지면서 일부 언론에선 '권영길의 복귀 무대'라는 식의 기사가 많이 나왔다. 말씀을 들어보니 복귀는 '정치무대'가 아니라 '거리'가 된 것 같다.
권영길 : 민주노동당을 건설할 때 황야를 헤치면서 하겠다고 했다. 창당 이후 선거 즈음 경북 어느 지역에 서너 명의 당원 동지들이 눈 덮인 산길 고개를 넘으며 나눈 대화 얘기를 들었다. 눈 덮인 길을 미끄러지고 또 미끄러지다가, 한 사람이 "역사는 우리가 눈길을 헤쳐가며 가는 길을 알아줄까요?"라고 물었다고 했더라. 그 얘기를 듣고 가슴이 미어졌다. 아직 잊지 못하고 있다. 그렇게 만든 정당이다. 찬 서리 맞으면서, 눈 덮인 산야를 헤치면서 만들었던 정당이다. 이제 다시 그런 상황으로 돌아갔다. 권영길은 이제, 다시 허허벌판 광야로 돌아간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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