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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이적행위'는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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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진짜 '이적행위'는 무엇인가?

[민교협의 정치시평] 부끄러움을 모르는 나라

국가 최고 정보기관인 국정원이 대통령 선거에 개입했다는 강한 의혹을 받고, 비록 전모가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일부나마 그 실체가 드러나고 있다. 유신 시절, 5공 시절에야 무고한 사람을 잡아 들여 고문하던 조직이니 으레 그러려니 했을지 몰라도 민주화를 경험한 21세기 대한민국에서 상상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국가 정보기관이 국내 정치에 개입하고 선거에 개입한다는 것은 독재 시기에나 가능한 국민의 신성한 주권행위를 짓밟는 짓이다. 가히 국기문란 사건이라 할 만하다.

그런데 공정한 수사를 독려해야 할 서울지방경찰청장은 외려 수사를 방해하고, 은폐·축소 발표를 통해 선거에 개입했다. 야당의 요구와 촛불의 압박에 밀려 열린 국정조사는 새누리당의 훼방으로 별 소득 없이 공전하고 말았다. 진실을 추구해야 할 주류 언론들은 새누리당의 주장에 조응하여 국기문란 사건을 물타기 하는 정치적 행위를 하고 있다. 어느 하나 제대로 돌아가는 것이 없다. 어찌 이런 일이!

국기문란 사건을 일으키고 진실이 알려지지 않도록 은폐·축소하는 장본인들에게 근본적인 책임을 물어야 할 일이지만 정말 이들만의 책임일까? 국정원, 경찰, 국회, 언론 등등 이 사건 발생부터 해결에 이르기까지 관련된 기관들이 제 역할을 못한다면, 그에 속한 구성원들도 자신이 직접 관련되지는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책임을 면할 수 없다. 국가 질서를 유지해야 할 조직들의 구성원은 자신이 속한 조직이 국기문란 사건에 직간접적으로 연루되었음에 부끄럼을 느껴야 마땅하다. 그런데 정말 그럴까?

국정원은 소위 '원장님 말씀'에 따라 대북 심리전을 명분으로 국내 다양한 의견 세력들의 정부 비판을 종북으로 몰아세우는 국내 정치 개입, 선거 개입을 해왔다. 소위 '종북놀이'를 한 것이다. 비판을 불순으로 몰아세우는 것은 민주주의의 본질을 파괴하는 것이다. 민주주의는 다양성과 이견의 합의 과정에 기반하고 있다. 이견을 억압하는 것은 독재지 민주주의가 아님은 자명하다. 따라서 건강한 민주주의 체제의 근간을 흔드는 종북놀이는 반체제 행위고 이적 행위다.

그렇다면 국가안보를 위해 비록 '음지에서 일해야만 하는' 국정원 직원이지만, 이제 이런 특수 상황에서는 양지를 향해 진실을 밝혀 국정원의 제자리 찾기에 동참해야만 한다. 국정원 직원은 국가를 위해서가 아니라 특정 권력을 위해 일하는 것을 진정 부끄러워해야 한다. 국정원 직원들이 진정 국가를 위하고, 조직을 위한다면 국정원의 선거 개입 증거들을 양심선언을 통해 밝히거나 결정적인 정보를 제보해야 마땅하다. 지금까지 나타났다는 소식은 못 들었다.

국기문란의 선거개입도 문제지만 이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 흩트리기 위해 국정원장이 NLL(서해 북방한계선) 관련 정상회담록을 공개하고 말았다. 비밀을 생명처럼 여기는 국정원의 수장이 공개라는 정치적 술수를 부려 국가 외교의 신뢰성을 수렁에 빠뜨렸다. 정상회담록을 국정원이 보관한 공공기록물이라고 규정하는 후안무치한 행위를 접하면서 국정원 직원들은 떳떳이 국정원 직원이라고 자신을 밝힐 수 있을까. 아니 음지에서 일하는 특성상 국정원 직원이라고 밝힐 일이 없을 테니 상관이 없을까?

국정조사에서 보인 새누리당 특위 위원들의 행태 역시 부끄럽기 짝이 없다. 국정조사라는 국회의 권능 행사를 스스로 갉아 먹고 있다. 국정원 선거 개입 사건을 민주당의 매관매직, 국정원 여직원의 인권 사건이라고 매도하고 국정조사를 선전의 장으로 악용하는 행위는 그들만의 '고도한' 정치 행위라고 이해해 주자. 그래도 김용판, 원세훈의 증인 선서 거부권 행사를 두둔하는 장면에서는 국회의원의 존재 이유를 의심케 했다. 여당 특위 위원들이야 자기 '소명'이라고 생각한다 치자. 새누리당에는 특위 위원들의 자기 권능 파괴 행태를 부끄러워하는 의원이 존재하지 않는가.

워낙 정치적 왜곡을 신문의 경향성이라는 고귀한 가치로 포장하고 있는 주류 보수 언론과 이를 실천하는 간부들에게서야 이제 기대할 것도 없지만, 그래도 일반 회사가 아니라 소위 언론고시를 뚫고 '언론사'에 취업했다고 자랑스러워 했을 일선 기자들은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의문이다. 자신이 속한 신문의 보도가 진실이라고 믿고 있을까, 아니면 '목구멍이 포도청'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을까?

정부에 장악됐다는 평가를 받고 있지만 공영방송이라면 최소한 사실 전달이라도 충실히 해야 하지 않을까? 비록 방송사 노조들이 일정한 목소리를 내고 있지만 호수에 바늘 가라앉는 격이니 노조 집행부가 아니라 일선 기자와 PD들의 파열음 내기가 필요하지 않을까? KBS '시청자 데스크'라는 옴부즈맨 프로그램의 클로즈 업 코너에서 국정원 관련 KBS의 보도를 다룬 것은 그래서 의미가 있다. 그런데 KBS는 이런 정당한 비판을 걸러내지 못했다는 이유로 담당 부장과 국장을 보직 해제시켰다. 그리고 KBS 구성원들이 부끄럽게도 아무 내부 개혁도 없이 끝나고 말았다.

아니 끝나지 않았다. 수용자의 권익을 위해 방송통신 심의 사명을 맡고 있는 방송통신위원회는 민원을 받아 이 프로그램을 심의했다. 1차 자문을 맡은 보도교양방송특별위원회는 '문제없음' 5인과 '문제 있음' 3인으로 대다수가 문제없다고 판단했으나, 이를 건네받은 방송 소위위원들은 여야 추천 위원들 사이의 팽팽한 대립 끝에 이 사안을 방송통신심의위 전체 회의로 넘겼다. 여당 추천 위원은 국정원 여직원 댓글이 국정원이 여당 후보에게 유리하도록 '조직적으로 개입한' 사실이 아니라는 이유로 법정 제재를 해야 한다는 주장을 펼쳤다. 그렇다면 개인 자격으로 불순한 선거개입을 한 여직원은 파면 조치 당했어야 마땅하지 않을까? 공영방송의 뉴스만이 아니라 방송통신심의위원들도 진실에 눈을 감는 현실이 됐다. 수용자의 권익이 아니라 집권세력의 이익을 대변하겠다는 것인지. 어쩌면 공영방송이 자사 프로그램을 향상시키기 위해 운용하는 옴부즈맨 프로그램이 심의 대상이 되는 것부터가 희극적인 상황이고 이런 결과는 예비 된 것일지 모른다.

더 부끄럽고 기가 찰 일은 자신이 관여됐던 안 됐던 지난 대선 시기 국정원의 선거 개입 논란으로 사회가 혼란스런 시점에, 대통령이 청와대를 쇄신하겠다면서 '원조' 선거 개입의 장본인 김기춘 씨를 청와대 비서실장에 앉혔다는 사실이다. 백번 양보해도 이 조치는 대통령이 선거개입의 심각성을 모르거나 무시한다는 의미 이외로 해석할 수가 없다.

민주주의를 지켜야 할 모든 조직이 비정상이지만 그 구성원들 대다수 역시도 부끄러워하고 반성하는 기색이 보이지 않는다. 그럼 이들만 그럴까? 헌법이 보장하는 주권의 주체인 국민들 역시 분노하지 않는 이상, 그리고 분노를 실천으로 연결시키지 않는 이상 부끄러워해야 한다. 자신의 의사를 표출할 수 있는 다양한 수단이 있음에도 침묵하고 있다면, 또 왜곡하는 언론의 문제점을 알면서도 그 언론을 소비하고 있다면 역으로 진실을 전달하는 언론을 알면서도 외면하고 있다면 우리 역시 부끄러운 존재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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