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도 안 됩니다. 저는 월급 200만 원 찍어본 적도 거의 없는데!"
"그런데 회사의 악의적 보도자료를 그냥 베껴 쓰는 언론이 대부분이네. 이걸 제대로 비판하려면 증거자료를 들이미는 게 제일 확실한데…. 혹시 조합원들 임금 명세표를 공개할 수는 없을까?"
"할 수 있을 거예요. 제가 한번 알아볼게요."
다시는 나눌 수 없는 대화
5월 중순이었다. 양재동 노숙 농성장과 공장을 오가며 불법 파견 투쟁을 조직하고 있던 그와 이런 얘기를 나눴던 게…. 그러고 하루쯤이나 지났을까? 5월 16일, 그에게서 카카오톡 메시지가 왔다. 약속대로 임금 명세표를 스마트폰으로 찍어 보낸 것이다. "작년 것 몇 개 보냅니다."
ⓒ오민규 |
며칠 뒤인 5월 20일, <프레시안>에 기고했던 "그들이 현대차 정규직 입사원서를 거부하는 이유"라는 글은 이런 과정을 거쳐 탄생되었다. 그의 이름 세 글자가 선명하게 찍힌 임금 명세표에 따르면 작년 8월에는 상여금을 합쳐 186만 원을 받았고, 9월에는 임금 인상분까지 더해졌는데도 150만 원을 받았다.
근속 4.2년차 사내 하청의 평균 연봉이 5400만 원이라는 현대차의 새빨간 거짓말이 폭로되는 순간이었다. 며칠 전(8월 25일)이 바로 그가 현대차 아산공장에 발을 들인 지 꼭 9년째 되는 날이었으니 말이다. (관련 기사 : "그들이 현대차 정규직 입사원서를 거부하는 이유")
참을 수 없었던 현대차의 실상
한 달이나 지났을까. 6월 11일, 다시 그에게서 사진 파일 하나가 스마트폰으로 전송되었다. 아마도 아산 시내 어딘가를 지나다가 눈에 띄어 찍은 것으로 보이는데, 현대자동차 생산 라인에 금·토·일 아르바이트를 모집한다는 길거리 현수막이었다.
때는 주간 연속 2교대 시행 후 휴일 특근을 놓고 현대차 정규직 노사 간 대립이 이어지다가 최종 합의가 이뤄진 직후였다. 아니, 그런데 이게 무슨 현수막일까? 주말 휴일 동안 현대차 생산 라인에서 아르바이트를 모집한다니?
ⓒ박정식 |
그렇다. 현대차는 기존 휴일 특근 시 장시간 노동의 고통을 해소하기 위해 평일보다 노동 강도를 낮춰서 운영해왔다. 시간당 생산량을 줄이거나 혹은 평일보다 많은 인원을 투입하는 방식으로. 그런데 최종 합의에 따르면 앞으로 휴일 특근 시에도 평일과 동일한 생산량을 유지하도록 한 것이다.
이렇게 되면 휴일 특근에 나오지 않는 조합원들이 많아질 경우 감당할 수 없는 노동 강도가 부과된다. 평일에도 엄청난 노동 강도에 시달리는데 휴일에 더 강화된다면 아무리 돈이 된다 한들 현장 노동자들의 불만이 높아질 수밖에 없다. 휴일 특근은 말 그대로 "자유의사"에 따른 것이기에, 노동자들이 이를 거부한다고 해도 현대차가 강제로 시행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아마도 현대차가 이 문제 때문에 고안해낸 작품이 '휴일 특근용 아르바이트'인 것으로 보인다. 환장할 노릇이다. 이거야말로 정규직 '땜빵'용 '불법 파견'이 분명한데! 그는 단순히 사진만 찍어서 보내준 것이 아니었다. 현수막에 적힌 전화번호로 직접 전화를 걸어 확인했다.
"전화했더니 24시간 편의점이더라고요. '알바'생이 전화를 받기에 거기서 현대차 특근 '알바' 모집하는 거 맞냐고 물었죠. 그랬더니 맞다는 거예요. 참나. 현대차 생산 라인에서 일할 사람을 편의점에서 모집한다니! 더 구체적인 걸 물었더니 사장님이 하는 일이라 자기는 모른다고 하더군요. '알바'생에게 피해를 줄 순 없어서 저도 그냥 끊었어요. 안전을 생명으로 여기는 자동차 생산을 이 따위로 해도 되는 건가요?"
자동차의 심장을 만들던 노동자의 심장이 멎다
그로부터 다시 한 달 뒤인 7월 15일, 그는 다시 돌아오지 못할 길을 떠났다. 9년 가까이 그가 만들어온 소나타와 그랜저에 탑재되는 자동차의 심장(엔진)들은 이제 더 이상 그의 손을 거치지 못하리라. 안전을 생명으로 여기는 자동차 생산을 이 따위로 해선 안 된다는 분노의 음성도 더는 들을 수 없다.
비정규직 노조의 간부들 대부분이 그러하듯 그 역시 "누가 나에게 이 길을 가라 하지 않았"지만 어느새 최전선에, 현대차 아산사내하청지회의 선전부장을 거쳐 사무장으로, 지도부의 일원으로 서게 되었다. 그를 알고 지내기 시작한 것이 바로 그때쯤이었다.
뜨거웠던 지난해 여름, 현대차만이 아니라 저 멀리 배스킨라빈스 공장에서도 하청 노동자들이 정규직화 투쟁을 벌이고 있다는 소식을 전해준 적이 있었다. "아, 배스킨라빈스! 저희 시골집 근처에 공장이 있지요. 여름휴가 때지지 방문이라도 가봐야겠네요."
시골집(충북 음성)에서 아들의 자결이라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접하고 장례식장에 달려온 어머님은, 벌써 45일째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아들의 영정을 마주하고 있다. 노동조합, 비정규직, 열사 투쟁… 이런 단어조차 생소했을 어머님이, 이제 다시는 말할 수 없는 아들을 대신해 정몽구 회장에게 준엄한 책임을 묻고 있다.
34년 남짓한 짧은 생을 스스로 마감하겠다고 결심하기까지 그가 얼마나 고통스러웠을지, 나는 가늠할 수조차 없다. 8년 전인 2005년 9월 4일 세상을 떠났던 울산공장의 류기혁 열사 때처럼, 나는 가까이에 있는 이들의 고통에 참으로 무심했구나! 열사가 짧은 유서에 몇 번이나 반복해서 적은 "미안합니다", "죄송합니다"라는 말, 사실은 내가 그에게 몇 번이고 반복해서 했어야 할 말이다.
3500명 신규 채용을 하면 조합원 대부분이 정규직으로 전환될 테니 이걸로 끝내자는 현대차 자본에게 "나 혼자 정규직 되려고 시작한 싸움 아니다!"라며 모든 사내 하청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라고 당당하게 외치던 열사의 외침을 잊을 수 없다. 정몽구 회장, 당신이 9년 동안 부려먹은 노동자, 자동차의 심장을 9년 동안 만들어온 노동자의 심장이 멎었다! 당신의 불법을 고발하며 모든 사내 하청의 염원을 가슴에 품었던 노동자의 심장이! 이렇게 피눈물을 흘리게 만들고도 자본의 심장이 멀쩡할 성싶은가!
(죄인의 심정인지라 열사의 이름 석 자를 감히 적지 못했다. 열사의 외침이 메아리와 북소리 되어 퍼지고, 비로소 열사를 떠나보낼 수 있는 날 그 이름 석 자를 적고 술 한 잔 올리겠노라는 다짐과 함께.)
사랑하는 모든 이에게
무엇을 위해 무엇을 얻고자 이렇게 달려왔는지 모르겠습니다.
비겁한 세상에 저 또한 비겁자로서 이렇게 먼저 세상을 떠나려 합니다.
저를 아끼고 사랑해준 모든 이에게 죄송합니다.
또한 저를 위해 피해를 입은 분들께 미안합니다.
같은 꿈과 희망을 쫒았던 분들에게 전 그 꿈과 희망마저 버리고 비겁한 겁쟁이로 불려도 좋습니다.
하지만 저로 인해 그 꿈과 희망을 찾는 끈을 놓지 마시고 꼭 이루시길…
미안합니다. 죄송합니다.
어머님께
어머님 못난 아들이 이렇게 먼저 떠납니다.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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