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실과는 무관한 주장입니다. 이 신문은 지난 6월 국회 예산정책처가 내놓은 '전력 가격 체계의 문제점과 개선 방안'이라는 보고서를 근거로 그런 주장을 했는데요. 보고서에 담긴 통계들을 해석해 보면 이 신문 주장이 오해의 산물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국회 예산정책처는 보고서에서 통계청 가계동향조사 원자료를 토대로 1642만 가구를 모집단으로 조사를 했는데요. 이 보고서에 따르면 1642만 가구 중 98.5%인 1618만 가구에서 저소득층의 전기 요금이 고소득층보다 더 적었습니다. 반면 1.5%인 24만 가구에서 저소득층의 전기 요금이 고소득층보다 더 많았습니다. 그런데 <한국경제신문>이 이 통계들을 잘못 해석해서 현행 누진제 때문에 오히려 저소득층의 부담이 더 컸다는 보도를 한 겁니다.
2. 지난 21일 새누리당이 내놓은 개편안은 현행 6단계인 주택용 누진제를 3단계로 줄인다는 것인데요. 누진제 구간 축소의 필요성이 있다고 봅니까?
⇨ 누진제 단계를 줄이면 줄일수록 '부자 감세, 서민 증세'와 유사한 효과가 나타납니다. 따라서 현 시점에서 새누리당이 '부자 감세, 서민 증세'를 추진할 의사가 없다면 누진제 단계를 줄일 필요는 전혀 없습니다. 전체 가구 중 98.5%에서 저소득층의 전기 요금이 고소득층보다 더 적었는데, '부자 감세, 서민 증세'를 추진할 의사가 없다면 무슨 이유로 구간을 축소합니까?
3. 예외적으로 24만 가구에서 나타난 역전 현상은 어떻게 해소해야 합니까?
⇨ 24만 가구에는 두 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하나는 이들 대다수가 기초수급자들이란 것이고, 다른 하나는 이들이 4인 이상 가족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4인 기초수급자 가족이 한 달에 받는 생계급여와 주거급여는 모두 합쳐 151만 원이고, 5인 가족은 179만 원, 6인 가족은 207만 원, 7인 가족은 235만 원입니다. 따라서 정부는 이들이 전기 난방을 할 경우 일정한 페널티를 주어서 다른 난방을 유도할 필요가 있습니다. 국회 예산정책처에 따르면 이들 중 4인 가구의 월평균 전기 요금은 4만7413원이었고, 5인 이상 가구는 6만1025원이었습니다.
4. 기초수급자인 이들의 전기 난방을 다른 난방으로 유도할 경우, 지나치게 가혹하다는 사람들이 있지 않을까요?
⇨ 누진세 완화론을 펴는 사람들도 이들의 전기 난방을 다른 난방으로 유도할 목적을 가지고 있습니다. 차이가 있다면 저의 대안은 24만 명에 대해서만 유도책을 쓰자는 것이고, 누진세 완화론자들은 저소득층 전체의 전기 요금을 올려서 동일한 목적을 달성하자는 것입니다. 어느 쪽이 더 합리적입니까?
5. 그러나 여전히 6단계 11.7배율제로 되어 있는 현 누진제를 약간이라도 완화해야 한다는 주장은 있지 않나요?
⇨ 누진제를 소폭 완화하는 것에는 동의합니다. 그러나 누진제를 약간 완화하더라도 일차적으로 완화해야 하는 것은 배율이지 단계가 아닙니다. 여기에서 단계란 누진 단계를 말하고, 배율이란 최저 구간과 최고 구간 사이의 단위당 요금 배율을 말합니다. 현행 제도는 1단계 100kwh 이하에 대해서는 단위당 59.1원을, 6단계 500kwh 초과분에 대해서는 단위당 690.8원을 부과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정부가 누진제를 약간 완화하려면 일차적으로 이 배율을 약간 낮추면 됩니다. 예컨대 최저 구간 요금 59.1원을 70원으로 올리고, 최고 구간 요금 690.8원을 600원으로 낮추면 배율은 11.7배에서 8.6배로 줄어들게 됩니다. 이런 식으로 점진적으로 서민 부담을 최소화하면서 전기 요금제를 개편해야 합니다. 지금의 새누리당처럼 갑자기 6단계를 3단계로 줄이면 서민들 부담이 크게 늘어납니다.
6. 새누리당 주장처럼 갑자기 6단계를 3단계로 줄이면 전기를 아껴 써왔던 중산층과 서민층이 전기료를 더 내게 되고, 펑펑 써온 가구만 이익을 볼 수 있다는 지적이 있습니다. 요율 조정에 더 세밀한 검토가 필요한 것 아닌가요?
⇨ 지난해에 한국전력이 현행 제도를 3단계 3배율제로 바꾸자는 주장을 한 바 있는데요. 한국전력의 3단계 3배율제를 시행하게 되면 전기를 아껴 써왔던 중산층과 서민층이 전기료를 더 내게 되고 전기를 많이 써온 부유층이 많은 이익을 보게 됩니다. 몇 가지 가정을 전제로 추계해 보면 현행 제도를 3단계 3배율제로 바꿀 경우 한 달에 200kwh 이하를 쓰는 가구의 전기료는 평균적으로 6000원 이상 오르고, 200~400kwh를 쓰는 가구의 전기료는 1만3000원 이상 오릅니다. 반면 한 달에 400~500kwh를 쓰는 가구의 전기료는 9600원 정도 내려가고, 한 달에 500kwh 이상을 쓰는 가구의 전기료는 7만4000원 정도 내려가게 됩니다.
▲ 새누리당이 내놓은 전기 요금 개편안이 논란이다. 사진은 새누리당 최경환 원내대표. ⓒ연합뉴스 |
7. 이번 요금 체계 개편에서 값싼 산업용 전기는 손을 대지 않아 논란이 일고 있지요?
⇨ 지난 수십 년간 정부는 제조업체들을 도와주기 위해 기업에 값싼 전기를 공급했습니다. 산업계가 이렇게 지원받은 돈이 2001년 이후에만 14조 원이 넘습니다. 그 결과 2005년 이후 지난 7년간 총발전량이 36% 증가할 때 산업용 전기 소비는 48%나 증가했습니다. 산업용 전기 소비 급증이 전력 대란의 가장 큰 원인이라는 이야기입니다. 그런데도 정부와 여당은 여전히 산업용 전기 요금 인상에 소극적인데요. 국민들이 화를 낼 만합니다. (관련 기사 : 대기업 전기 요금 7000억 깎아주면서…서민은 더 내?)
8. 새누리당은 전기 요금제를 개편해서 서민 저소득층을 배려하겠다고 합니다. 새누리당 개편안으로 서민 저소득층을 배려할 수 있나요?
⇨ 누진제를 완화해서 서민 저소득층을 배려하겠다? 그것은 '네모난 동그라미'를 그리겠다는 말만큼이나 어이없는 것입니다. 정부와 여당이 누진제를 완화하고 싶으면 서민 저소득층들에게 솔직하게 이야기하고 점진적인 완화를 추진하는 게 좋습니다. 그렇지 않고 '누진제를 완화해서 서민 저소득층을 배려하겠다'는 식의 궤변을 늘어놓으면 오히려 불신감만 커지게 됩니다. (관련 기사 : 새누리당 전기 요금 개편안, 서민들에게 '폭탄' 안기나)
9. 지금 새누리당에서 흘러나오고 있는 개편안이 현실성이 있나요?
⇨ 현실성이 전혀 없습니다. 새누리당은 200kwh 이하 구간의 부담은 현행 수준을 유지하겠다고 합니다. 그런데 200kwh 구간의 부담을 현행 수준으로 유지하려면 100kwh 이하 구간 요율, 100~200kwh 구간 요율이 동시에 존재해야 합니다. 3단계 누진제 목표가 이때부터 틀어지는 겁니다. 또 새누리당은 200~600kwh 구간에서 소비자 요금을 현행 수준보다 높이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하려면 200~600kwh 구간 요율을 현행 200~300kwh 구간 요율로 통일해야 합니다. 이로 인한 한전의 수입 부족분은 어떻게 채울까? 새누리당 개편안에는 이에 대한 아무런 대안이 없습니다. 또 새누리당은 600kwh 초과 구간 위에 900kwh 초과 구간을 또 두겠다고 합니다. 결과적으로 새누리당이 공언한 3단계 누진제는 실제로는 5단계 누진제입니다. 100kwh 이하 구간, 100~200kwh 구간은 현행 유지가 불가피하고, 200~600kwh 구간을 만들더라도 900kwh 초과 구간을 만들려면 600~900kwh 구간을 또 만들어야 합니다.
10. 새누리당 개편안을 보면 200kwh 이하 구간 부담은 현행 유지, 600~900kwh 구간 부담도 현행 유지, 200~600kwh 구간 부담 대폭 축소, 한전의 수입 감소는 900kwh 초과 구간 요금 폭탄으로 해결, 이렇게 정리할 수 있는데요. 900kwh 초과 구간 요금 폭탄으로 200~600kwh 구간 부담 대폭 축소로 인한 한전의 수입 감소를 다 보전할 수 있을까요?
⇨ 전혀 불가능한 시나리오입니다. 한국전력에 따르면 지난해 주택용 전기 판매 대상은 모두 2155만 가구였고, 이 중에서 200~500kwh(월평균)를 소비한 가구는 모두 1303만 가구였으며, 500kwh 이상을 소비한 가구는 46만 가구였습니다. 그럼 600kwh 이상을 소비한 가구는 어느 정도 될까요? 20만 가구에 못 미칩니다. 또 900kwh 이상을 소비한 가구는 어느 정도 될까요? 3만 가구를 넘기 어렵습니다.
11. 새누리당 개편안에 따르면 200~500kwh(월평균)를 소비한 1303만 가구의 부담을 줄여주고, 900kwh 이상을 소비한 3만 가구에 그로 인한 한전의 수입 결손을 막으라는 것인데, 전혀 현실성이 없는 시나리오군요?
⇨ 황당한 것은 새누리당이 이에 대한 시뮬레이션을 전혀 해보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최근 새누리당의 모 의원은 모 방송사와 한 인터뷰에서 이제부터 시뮬레이션을 해 보면 된다고 말했습니다. 그 쉬운 일을 아직도 하지 않고 주먹구구식 대책을 내놓은 다음에 이제부터 하면 된다니 정말 어이가 없습니다.
12. 22일 <중앙일보>가 흥미로운 보도를 했습니다. "정치 논리에 왜곡됐던 전기료, 40년 만에 교정"이란 제목의 기사에서 이 신문은 우리나라 국민 1인당 산업용 전기 소비량이 OECD 평균의 두 배이고, 주택용 전기 소비량은 OECD 평균의 절반이라는 통계 자료를 소개했는데요. 어떻게 보았습니까?
⇨ 이 신문에 따르면 우리나라에는 오래전부터 요금이 너무 싼 산업용 전기가 있었고, 강력한 누진제를 가진 주택용 전기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 가정용 소비는 위축됐고, 국내 산업은 전력 다소비 구조로 고착됐습니다. 2011년 기준으로 산업용 전력 소비량은 국민 1인당 4617㎾h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2445㎾h)의 두 배에 가까웠습니다. 반면 주택용 전력 소비량은 1240㎾h로 평균(2448㎾h)의 절반 수준에 그쳤습니다. <중앙일보>가 자신들의 의도와 무관하게 '전기 절약을 외치며 동시에 누진세 완화를 외치는' 사람들의 치명적인 약점을 정확하게 찌른 겁니다.
13. <중앙일보>가 소개한 통계 자료에 따르면 전기 절약이 중요한 과제로 떠오른 우리나라에서 강력한 누진제는 충신 중의 충신이군요. 반면 저렴한 산업용 전기 요금은 역적 중의 역적이고요. 그런데 <중앙일보>는 기사 말미에 이상한 결론을 냈다고요?
⇨ <중앙일보>는 기사 말미에 모 씨의 말을 인용, "누진제 완화가 왜곡됐던 전기 요금 구조를 교정한다"는 엉뚱한 결론을 냈습니다. 정말 아쉽습니다. 그 좋은 통계 자료를 소개하고 나서 그런 어이없는 결론을 내다니. 결국 <중앙일보>의 소망은 주택용 전기 소비가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것이었다는 말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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