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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 믿고 장외로 나온 민주, 돌파구 찾을까?

"속수무책 끌려다닌 민주, 박근혜 같은 독기 있나"

다시 국회 밖 싸움이다. 민주당이 31일 국가정보원 대선 개입 사건과 관련, 전격적인 장외 투쟁을 선언했다. 새누리당의 도 넘은 '국정조사 무력화' 시도에 "인내할 만큼 인내해 왔고, 참을 만큼 참았지만 더는 참을 수 없게 됐다"는 이유다.

민주당 김한길 대표는 국정조사 증인 채택 논의가 결렬된 31일, 긴급 기자회견을 열어 "이 시간부로 민주당은 비상체제에 돌입한다"며 "민주주의 회복과 국정원 개혁을 위한 국민운동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수천, 수만의 진실의 촛불이 우리와 함께 할 것이라는 믿음이 있다"며 시민들의 참여를 동참하기도 했다.

민주당 장외투쟁, 왜?

민주당이 전면적인 장외 투쟁에 나선 것은 19대 국회 들어 처음이자, 2011년 한나라당(현 새누리당)의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동의안 강행 처리에 반발해 거리로 나선 지 약 1년8개월 만이다.

그러나 우려의 목소리도 적지 않다. 김 대표는 "원내외 투쟁과 협상을 동시에 하겠다"며 장외 투쟁이 곧 '원내 포기'는 아니라고 설명했지만, 검찰의 국정원 대선 개입 수사 발표 이후 2달여간 번번이 새누리당에 끌려다닌 민주당이 궁여지책으로 장외 투쟁을 선언한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다. 기세등등하게 거리로 나섰지만, 그 '동력'이 얼마나 유지될 수 있을지에 대한 당 안팎의 우려도 있다.

ⓒ연합뉴스

민주당의 이번 결정은 원세훈 전 국정원장과 김용판 전 서울지방경찰청장의 국정조사 '불출석'이 불보듯 뻔한 상황에서, 사실상 파행으로 몰린 국정조사로 더 이상 얻을 것이 없다는 판단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사실상 '벼랑 끝 전술'인 셈이다.

김한길 대표의 지적대로, 새누리당은 "국정조사 기간 45일 중 30일을 파행시켰"고, 때문에 야당이 "더 이상 국정조사에 기대하기 어려운 지경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당내 강경파와 지지자들의 들끓는 여론도 상당히 의식한 것으로 보인다. 서해 북방한계선(NLL) 국면과 국정조사 국면 모두에서 민주당의 대여 협상이 '양보 일변도'로 흐르는 것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높았고, 당내 일각에선 "지도부가 비노(비노무현·非盧)라서 국정원과 NLL 사안에 소극적인 것 아니냐"는 불만까지 터져나왔다. 새누리당이 이날 "민주당의 장외 투쟁은 '계파 위로용'"이라고 꼬집은 것은 이를 겨냥한 '적진 분열 전략'이다.

속수무책 끌려다닌 민주…'장외투쟁' 돌파구 될까

그러나 지난 2달 내내 반복되어온 민주당의 '전략 부재'가 장외 투쟁이란 카드 하나로 수세 국면에 몰린 당의 돌파구가 될 수 있을지는 의문이 남는다.

지난달 검찰의 국정원 사건 수사 발표 후 민주당은 새누리당과의 정국 주도권 다툼에서 번번이 패배했다. 당 자체의 전략 부재, 이른바 '영(令)'이 서지 않는 지도부의 리더십, 친노 진영의 강경론이 만들어낸 결과였다. 이 국면마다 새누리당은 치밀한 '역공'으로 실리를 챙겼다.

가장 큰 '패착'은 국정원의 남북정상회담 대화록 무단 공개 이후 섣부른 '원본 공개' 주장으로 민주당이 스스로 'NLL의 덫'으로 빠져들었다는 점이다. 문재인 의원을 필두로 한 친노세력의 주장에 '선(先) 국정조사, 후(後) 대화록 공개'를 주장했던 김한길 대표는 무기력하게 끌려갔고, 결과는 '대화록 실종'이라는 돌발 상황이었다.

그 와중에 이슈화에 주력했어야 할 국정원 대선 개입 사건과 대화록 사전 유출 사건은 여론의 관심에서 잊혀졌다. 뒤늦게 'NLL 논란 종식'을 선언했지만, 이마저도 새누리당의 발빠른 '선(先) 제안'으로 빛을 잃었다.

'국지전'에서도 번번이 패했다. 민주당은 새누리당의 김현·진선미 의원 국정조사특별위원 제척 요구에 '읍참마속'까지 단행하며 당내 반발을 샀다. 거꾸로 민주당이 제척을 요구했던 새누리당 정문헌·이철우 의원은 선제적인 자진 사퇴로 오히려 국정조사 파행의 책임론을 민주당에게 덮어씌웠다.

가까스로 지난 28일 국정조사 정상화에 합의했지만, 국정원 '비공개' 기관 보고라는 새누리당의 무리한 요구까지 들어줬다. 이런 '양보' 국면마다 민주당은 "국정조사라는 옥동자를 지키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었다"고 해명했지만, '악마의 합의'라는 당내 반발까지 잠재우진 못했다.

김한길 대표의 리더십도 도마 위에 오른다. 지난 24일 김 대표는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NLL을 둘러싼 '정쟁 종식'을 제안했지만, 바로 다음날 새누리당은 대화록 실종 사건을 단독으로 검찰에 고발, 속수무책 '뒷통수'를 맞아야 했다.

정치권의 시야가 'NLL 포기 논란'으로 쏠린 사이, 새누리당은 엄청난 실익을 챙겼다. 일단 여론의 관심에서 사안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국정원 대선 개입과 박근혜 후보 캠프까지 연루된 '대화록 불법 유출' 사건 등이 멀어졌다. 뒤늦게 민주당 지도부가 국정조사에 뛰어들긴 했지만, 이미 45일간의 국정조사 기간 중 절반 이상을 속수무책 날려버린 상태였다. 코너에 몰린 지도부의 최종 선택은 결국 '장외 투쟁'이었다.

장외투쟁 '동력'도 문제…'박근혜 式 장외투쟁' 할 수 있을까

장외 투쟁의 효용성에도 의문이 남는다. 일단 동력이 없다. 민주당은 오늘 '비상 의원총회'까지 여는 등 '비상 체제'로의 전환을 선언했지만, 이날 열린 의원총회에 참석한 의원은 127명 중 81명에 불과했다. 휴가철을 고려한다면 비교적 높은 참석률이지만, "국정조사는 팽개치고 새누리당 당 대표, 원내대표 모두 휴가를 떠났다"는 민주당의 새누리당 비판이 무색해지는 대목이다.

야당의 장외 투쟁이 성공한 전례가 별로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민주당은 이명박 정부 시절 정부의 쇠고기 협상 타결, 한나라당의 한미 FTA 비준동의안 날치기 처리, 미디어법 날치기 등 국면국면마다 장외 투쟁에 나섰으나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한 채 국회에 복귀해야 했다. 기세등등하게 거리로 나서긴 쉽지만, 오히려 복귀가 더 어렵다는 것이 정치권의 정설이다. 당내 강경파와 지지자들을 만족시킬 만한 카드를 얻어내지 못하는 한 복귀의 명분이 떨어지는데다, 지도부의 리더십만 타격을 입을 수 있기 때문이다.

장외 투쟁은 수세에 몰린 야당이 최후에 사용하는 '고전적인' 전술이지만, 1987년 6월 항쟁 이후 '성공한' 장외 투쟁은 2005년 박근혜 당시 한나라당 대표의 이른바 '4대 악법 저지' 장외 투쟁 밖에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민주당의 한 관계자는 "당시 박근혜 대표는 석 달 넘게 집요하게 장외 투쟁을 벌인 결과 여당이 추진했던 국가보안법 개정과 사학법을 모두 누더기로 만들어 버렸는데, 민주당에 그런 집요함과 독기가 현재 있느냐"고 한탄했다.

'국조 파행 책임론' 떠넘기는 새누리, 민주당 돌파 방법은?

여기에 새누리당은 국정조사 파행의 책임을 민주당에 떠넘기는 분위기다. 국면국면마다 반복되어온 새누리당의 '역제안'이 이번에도 되풀이된 셈이다.

새누리당은 이날 민주당의 장외 투쟁 선언 직후 "내일(1일) 낮 12시까지 우리가 제안한 협상 내용을 민주당이 수용하지 않는다면 앞으로 더 이상의 협상은 없다"며 사실상 '최후통첩'을 보냈다. "협상 결렬은 민주당이 장외 투쟁으로 나아가기 위한 명분 쌓기이자 예고된 수순"이라며 파행의 책임을 민주당에 돌린 것이다.

민주당이 이번엔 새누리당의 '몽니'와 '책임 전가'에 휘말리지 않을 수 있을지, 김한길 대표가 언급한 "수천, 수만의 진실의 촛불이 함께할 것이란 믿음"은 원내에서의 '1차전'에서 좌우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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