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누리당과 정부, 국가정보원이 '서해 북방한계선(NLL) 포기' 논란과 관련해 전면전을 벌이는 형국이다. 박근혜 대통령만 논란에서 한 발짝 물러섰을 뿐, 사실상 당·정·청의 집단적 도발이다.
'NLL 파동'의 주역이었던 새누리당 정문헌 의원은 11일 국가정보원이 공개한 남북정상회담 대화록의 해설서를 펴냈다. 대화록엔 노무현 전 대통령이 김정일 국방위원장에게 '등거리·등면적 원칙'을 직접 제안한 내용이 없고, 따라서 노 전 대통령이 NLL을 포기했다는 것이 골자다. 전날 국정원의 주장과 똑같은 논리 구조로, 여야가 'NLL 공방'을 수습 국면으로 끌어가려는 와중에 국정원과 새누리당이 다시 한 번 '2차 도발'을 감행한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정문헌 "盧, 영토 주권 포기 확인돼…북한 유리한 이적 행위"
지난해 국정감사 과정에서 노 전 대통령의 'NLL 포기' 주장을 최초로 제기했던 정 의원은 이미 대선 전 국정원으로부터 남북정상회담 대화록을 불법적으로 입수해 열람했다는 의혹을 받아왔다.
정 의원은 '2007년 남북정상회담 회의록으로 본 북방한계선'이란 제목의 18쪽 분량의 해설서에서 "노 전 대통령이 NLL과 북한이 주장한 (NLL 남쪽의) 해상경계선 사이의 수역에서 군대를 철수하는데 동의함으로써 NLL 이남 해역의 영토 주권을 포기한 사실이 확인됐다"며 "대통령의 영토 보전 책무를 규정한 대한민국 헌법을 위반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이는 북한이 주장하는 해상경계선을 하나의 경계 기준이자 협상 기준으로 인정·수용한 것으로 사실상 국민의 동의 없이 영토를 내어주는 배임 행위"라며 "우리 군대만 북한이 주장하는 해상경계선 이남으로 철수하는 것은 대한민국 안보에 심각한 위해를 주고 북한을 유리하게 만드는 중대한 이적 행위"라고 했다.
아울러 정 의원은 노 전 대통령과 참여정부가 'NLL을 손대지 않는다는 전제 하에 NLL을 기준으로 남북이 등거리 또는 등면적의 수역을 공동어로구역으로 설정하자고 제안했다'는 야권의 주장을 반박했다.
그는 "적어도 'NLL을 지켰다'는 주장을 하기 위해서는 'NLL을 기준으로 평화수역을 설정'하는 내용의 언급이 있어야 하지만, 회담록에 'NLL 중심의 등면적'에 관한 내용이나 언급은 전혀 없다"고 주장했다.
이는 전날 국정원이 "회의록 내용 어디에도 일부의 주장과 같은 'NLL을 기준으로 한 등거리·등면적에 해당하는 구역을 공동어로구역으로 한다'는 언급은 전혀 없었다"고 주장하며 이는 곧 'NLL 포기'라는 식의 궤변을 늘어놓은 것과 정확하게 일치한다.
당시 국정원은 "육지에서 현재의 휴전선에 배치된 우리 군대를 수원-양양선 이남으로 철수시키고, 휴전선과 수원-양양선 사이를 '남북공동관리지역'으로 만든다면 '휴전선 포기'가 분명한 것과 같다"며 노 전 대통령의 서해 평화협력지대 구상을 '휴전선 포기'에까지 비유하기도 했다.
실제 국정원이 공개한 대화록 사본엔 '등거리·등면적'과 관련한 직접적 언급이 나오지 않지만, 참여정부 당시 대통령 비서실장을 지낸 문재인 의원과 회담 실무진들은 정상회담을 전후한 준비회의와 남북 국방장관회담 및 장성급회담 등 후속회담에서 '등거리·등면적' 관련 원칙이 분명히 제시됐다며 관련 자료 일체의 공개를 주장한 바 있다.
아울러 정 의원은 해설서에 김정일 위원장이 언급한 NLL과 북측 주장 해상경계선 사이의 공동어로구역 등을 표시한 지도 5장도 첨부했으며, 향후 새누리당 의원들에게도 해당 해설서를 배포할 예정이다.
'NLL 포기' 주장, 국방부까지 가세…盧 정부 합참의장 지낸 김관진은 '침묵'
국방부도 이날 "NLL 밑으로 우리가 관할하는 수역에 공동어로구역을 설정하는 것은 NLL을 포기하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국방부 김민석 대변인은 "NLL과 북한이 일방적으로 선포한 해상분계선 사이가 중립수역화 되고 그곳에서 해군력을 빼면 수중에서 활동하는 북한 잠수함을 감시할 수 없다"며 이 같이 주장했다.
김 대변인은 "북한의 주장대로 그곳에서 해군력을 빼고 경찰력만으로 경비를 서게 된다면 결국 북한 해군만 우리 수역에서 활동하게 되는 것"이라며 "그 결과는 북한 해군력이 덕적도 앞바다와 인천 앞바다까지 들어오게 되는 위험한 결과를 초래한다"고 덧붙였다.
김관진 현 국방장관은 2007년 남북정상회담 당시 군 서열 1위인 합동참모의장을 지냈으며, 당시 남북정상회담에도 부분적으로 관여했다. 당시 회담에 참여했던 백종천 전 청와대 외교안보실장은 지난 1일 "남북정상회담 사전회의에 김장수 당시 국방장관은 눈병이 나 불참했고, 김관진 합참의장이 참석해 '공동어로구역은 NLL 중심으로 한다'고 말했다"고 증언한 바 있다. 백 전 실장의 주장대로라면 공동어로구역 구상이 NLL 포기가 아니라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김관진 장관이 스스로의 과거 발언을 부정한 셈이 된다.
정작 참여정부 당시 회담에 참여했던 김장수 청와대 국가안보실장과 김관진 장관은 '침묵'으로 일관하는 가운데, 군심(軍心)을 대변하는 정부 부처까지 NLL 논란에 공격적으로 가세함으로써 새누리당과 정부, 국정원 사이에 모종의 '전략적 공감대'가 있는 게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된다.
이와 관련해 청와대와 정부, 새누리당 핵심 인사들이 지난 9일 NLL 정국 등과 관련한 심야 당·정·청 회의를 연 것으로 알려졌다. 'NLL 논란 수습 국면'에서 나온 국정원과 새누리당의 이런 '도발'이 범여권 차원에서 논의된 것이 아니냐는 추측이 가능한 대목이다. 박근혜 대통령 역시 사퇴 요구가 거센 남재준 국정원장에게 이른바 '셀프(self) 개혁'을 지시하며 국정원에 힘을 실어준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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