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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중소 부품업체 사장님의 '마법 가루'는 바로…"

[승승장구 휴대전화의 이면 下] "대기업 성장의 비법은 하청"

인천 남동공단에 있는 (주)아모텍은 스마트폰 칩, 안테나, 자동차에 들어가는 DMB, 내비게이션 안테나를 생산하는 업체다. 삼성전자·LG전자·애플·HTC·모토로라 같은 대형 스마트폰사 등에 세라믹 칩을 납품하고 있다. 스마트폰과 태블릿 PC 시장 급성장에 힘입어 아모텍은 지난해 매출액(1800억 원)이 전년 대비 93.1% 증가했다.

빛이 있으면 어둠이 있는 법. 그 안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은 장시간 노동에 병들고 있었다. 아모텍 하청 업체에서 일하던 노동자 고 임승현(31) 씨가 지난 3월 23일 사망했다. 사안은 뇌출혈이었다.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다가 숨진 것으로 판명됐다. 근로복지공단은 임 씨를 산재로 인정했다.

문제는 고인 이외에도 고인과 비슷한 사유로 숨지거나 뇌 질환으로 쓰러진 노동자가 2명이나 더 있었다는 점이다. '인천 지역 노동자 권리 찾기 사업단' 발표로는 임 씨가 숨지기 전인 지난 1월, 생산직 노동자(50) 한 명이 뇌경색으로 쓰러져 투병 중이다. 연구개발부서에서 일하던 관리직 노동자 권태영(35) 씨는 과로사로 숨졌다. 회사가 승승장구하는 동안 노동자는 병들고 있었던 셈이다.

주목할 점은 이 문제가 아모텍에만 국한된 게 아니라는 점이다. 휴대전화 업계 전반에 만연해 있다는 게 중론이다. 세계시장 1위의 점유율을 차지하는 한국의 어두운 면이다. <프레시안>은 2회에 걸쳐 아모텍의 노동 환경과 휴대전화 업계의 노동 현실을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편집자


(☞ 관련 기사 바로가기 : [승승장구 휴대전화의 이면 上 하늘 같다는 관리직 과장은 왜 '과로사'했나?)

시급 '4000원 인생' 취재를 위해 부품 공장에 취업한 어떤 기자는 오전 근무 내내 단 한 가지 소원을 빌었다고 했다.

"단전돼라. 단전돼라. 신이시여 단전되게 하옵소서."

신은 그의 기도를 들어주지 않았다. 퇴근 1시간을 남기고, 공장의 또 다른 신이라는 반장이 말씀하셨다.

"잔업 9시."

오전 9시부터 일을 했으니, 12시간 근무였다. 녹초가 되었을 그는 집에 가는 길 무슨 소원을 빌었을까. 내일 당장 시급이 오를 일도 작업 환경이 바뀔 리도 없으니, 그가 빌어야 할 소원은 여전히 '단전'일 것이다. 창의성 없게. 하나를 더 추가한다면, 잔업이 없기를 정도가 아니었을까. 역시나 창의성 없게.

그리고 현실성도 없다. 잔업을 결정짓는 물량은 부품업체가 단독으로 정하는 것이 아니다. 대기업 하청의 하청인 부품업체들이다. 원청의 주문에 따라 물량이 좌지우지된다. 31살의 남자를 과로로 죽게 한(그는 12시간 맞교대 근무에 6개월 동안 단 하루를 쉬었다) 전자부품 회사 (주)아모텍의 생산량을 결정짓는 것은 이 회사로부터 부품을 납품받는 삼성, 폭스콘, 애플 등 대기업이다.

알다시피 휴대전화는 잘 팔린다. 컴퓨터도 잘 팔린다. 반도체는 세계 1등이라며 들떠있다. 전자산업은 한국에 있어 가장 큰 수출산업이다. 부가가치만 80조가 넘는다. 삼성전자의 10조 이익은 이미 몇 해 전 이야기이고, 삼성과 함께 전자산업의 양대 산맥인 LG 또한 세계 100대 기업에 올라 있다.

전자산업 전반에서 이들 기업의 힘은 크다. 전자산업 생산의 85% 이상이 두 기업의 계열사와 하청에서 만들어진다. 몇몇 중소기업을 제외하고는, 산업 전체가 삼성전자와 LG전자의 하청업체로 이뤄져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기업은 승승장구하고, 하청업체가 밀집한 공단의 불도 꺼질 줄 모른다. 이런 자랑스러운 산업 발전 뒤로, 부품업체 노동자들은 "물량이 몰릴 때는 밤 9시 퇴근도 감사한 일"이라 여긴다. "새벽 2~3시에 끝나는 일도 빈번"하다. "전날 아침에 들어와 24시간 꼬박 일하는 철야"도 뛴다. "그래도 철야가 차라리 낫다. 철야라도 해야지 다음날 오후 1시쯤에 출근할 수 있지. 어설프게 새벽에 퇴근하면 다음날 8시 반에 어김없이 출근"이다.

신제품이 출현하거나 수출이 늘어 물량이 급증할 때는 이리 몇 달을 일해야 한다.

"그렇게 보름쯤 뛰면 애들이 라인에 뻗어 있어요."

한국인으로 자부심 없게끔. 국가 경쟁력이 높아지고 있는 지금, 약한 소리를 한다.

며칠 밤샘으로 하혈이 흐르고 자리에서 일어나면 머리가 핑 돌고 입안은 헐어 2000~3000원짜리 공장 밥은 넘어가지도 않고 쉬는 시간 10분 동안 언제 다시 돌지 모르는 라인에 엎드려 쪽잠을 자는, 그런 노동자들이 옷핀에 찔려가며 각성제 먹어가며 기계를 돌린 40년 전 수출역군 여공들과 뭐 그리 다를까 하는 의문은 접어두고, 좀 더 생산적인 고민을 할 때이다.

ⓒ인천지역 노동자 권리 찾기 사업단

대기업 성장 비법은 하청

신제품이 마구 출시된다. 메모리 집적도가 1년에 2배씩 증가한다는 황의 법칙도 이미 옛말일 정도로 기술은 빠르게 발전하고, 1년에도 몇 번씩 유행이 바뀔 정도로 제품 수명은 짧다.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내놓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가 없다. 더 빠르게 개발하고 더 빠르게 출시해야 한다. 삼성전자 임원이 말하듯 성공의 비결은 '속도 경영'이다.

그런데 매번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일은 꽤 비용이 든다. 새 제품을 만들기 위해서는 그 안에 들어가는 부품 하나하나의 크기와 기능을 새로이 해야 하고, 그 부품들을 만드는 공정 또한 변형시켜야 한다. 감내할 위험도 크다. 기껏 만든 제품이 팔리지 않는다면? 새로 만든 공정을 놀려야 한다. 기계 노는 꼴을 못 보아 주·야간 교대근무를 포기 못하는 기업이 새 공정을 놀게 한다니. 손이 바들 떨릴 일이다.

하지만 모든 요리에는 마법의 가루(일명 라면 수프)가 있듯이, 글로벌 대기업이 그런 비법 하나 가지고 있지 않을 리 없다. 기업은 수많은 하청업체를 거느리고 있다. 댕강댕강 잘라 외주를 준다. 단순부품 조립에서 때로는 핵심부품 생산까지 일을 넘긴다. 외주화의 장점은 '맡긴다'는 것이다. 제품 생산과 함께 위험과 비용도 맡긴다. 제품이 안 팔릴 경우, 대기업은 재고만 처리하면 된다. 그동안 들인 연구비를 아까워하면 된다. 설비 비용은 그 설비를 가진 하청업체의 몫이다. 팔리지 않는 부품은 그 부품을 생산한 업체가 떠맡는다.

하청이란 불경기는 물론 호황에도 좋은 비법이다. 급작스러운 생산량 증가에도 대처가 빨라진다. 하청업체를 '쪼이면' 된다. 어서 납품하라 쪼은다. 수주를 주는 원청 기업은 두어 개뿐이지만, 일을 따내기 원하는 하청 업체는 많다. 1%의 대기업과 99%의 중소 영세사업체라는 우려는 싫증이 나기까지 하다.

규모로 보아도 수로 보아도 평등할 리가 없다. '갑/을'은 명확하고 '을'끼리 경쟁은 치열하다. '진짜 사나이'를 보게 되는 거다. 군대 계급처럼, 원청이 '까라면 까는' 거다. 원청은 1차 하청에, 1차 하청은 2차 하청에 줄줄이 복종이다. 그렇게 내려가다 보면, 6~7차 하청까지 볼 수 있다.

이런 원청과 하청의 관계는, 전자산업의 경쟁력인 '속도'를 담보해준다. 삼성경제연구소가 밝힌 삼성반도체 일등 비결은 '신제품 개발이 경쟁업체보다 늦었더라도 상용제품은 먼저 내놓을 수 있는' 속도감이었다. 이것이 가능한 이유를 뛰어난 대량생산체제 구축 능력이라 밝혔는데 실제 사용이 가능한 공정 구축은 '까라면 까는' 하청업체의 몫일 가능성이 크다. 빠르게 구축해라, 원청의 명이 떨어진다. 공장이 24시간이건 48시간이건 돈다. 속도전에 강할 수밖에 없다.

아모텍의 한 직원은 말했다.

"삼성 쪽에서 제일 많이 요청하는 게, 소형화, 저가 생산, 그리고 대응 빨라야 하는 거. 이 세 가지 다 맞추려면. 사람이 종일 쫓아다녀도 힘들죠."

이 요구에 맞추려 발을 동동 구르며 쫓아다니다가, 35살의 엔지니어 과장이 올해 3월 과로사했다. 그의 업무는 개발된 기술을 상용화할 수 있게 공정을 구축하고 불량률을 낮추는 일이었다. 늘 마음 졸였고, 늘 긴급회의였다. '설사 기술 개발이 다른 곳에서 먼저 되더라도, 시장에 내놓는 것은 우리가 먼저다'는 마음으로 원청은 '빠른 대응'을 외쳤고, 돈 계산하느라 바쁘신 하청업체 회장님은 자사 직원의 안위에는 관심이 없었다. 그 결과 한 업체에서 관리직 엔지니어와 생산직 노동자가 나란히 과로로 사망하는 일이 발생했다.

부품업체 회장님이 우아한 까닭

그럼에도 아모텍 회사가 있는 인천 남동공단을 걷다 보면 불쑥 걱정이 치솟는다. 업체들이 자그마하다. 휘황찬란한 건물 하나 없다. 네모 반듯한 작은 건물 두어 개가 끝인 공장들이다. 우리 산업의 근간이 되는 중소업체라 배우지 않았던가.

대기업들은 '저가 생산'을 요구하며 납품 단가를 낮춘다. 더 값싸고 더 빠르게 그러면서 질도 좋게 만들라는 요구를, 낯도 안 뜨거운지 잘도 한다. 대기업의 단가 후려치기에, 이 자그마한 중소업체들이 망하면 어쩌나 덜컥 겁이 난다.

이런 걱정은 나만 하는 것이 아닌지, 2명이 죽든 3명이 쓰러지든 회사 망할까 봐 업체 직원들은 쉬쉬한다. 주 6일 12시간 팽팽 도는 공장이 일요일에도 기계를 돌리지 않으면 망할까 걱정이 되어 일을 나간다.

그러나 중소 부품업체를 만만히 보면 안 된다. 그리 쉽게 망하지 않는다. 공단 바닥에 잔뼈가 굵은 업체들이다. 이들도 라면 수프, 아니 마법의 가루 하나쯤은 가지고 있다.

오전 8시가 되면 하얀 십자가가 솟은 건물(아모텍 회사 건물이다)로 들어가는 피로한 사람들의 얼굴을 볼 수 있다. 9시가 되어가자, 사람들이 뛴다. 등교 시간이 지나면 매몰차게 교문을 닫아버리는 학생주임이라도 본 얼굴들이다. 8시 59분에 출근 카드를 찍은 직원들이 낮게 환호한다. 무슨 일인지 몰라도 참 기뻐 보인다.

나중에 들으니, 8시 30분에서 단 1분이라도 넘으면, 30분의 시급이 지각비로 깎인단다. 시급이 깎이지 않아 노동자는 환호한다. 한 시간에 신입이 4860원을 받으니, 30분 시급은 2430원이다. 이 돈을 사라지지 않았다. 그런데 이들 중 많은 수는 자기 월급의 10%가 넘는 금액을 매달 파견업체에 떼이고 있다. 그건 눈에 보이는 돈이 아니니, 저리 환호하거나 슬퍼하지 않나 보다. 그나저나 한 시간 일한 돈이 참 적다. 휴대전화 만드는 일만 5년 넘게 했다는 어떤 노동자는 "우리 한 시간 일하는 게 밥 한 끼 값 되는 것이 소원"이라고 했다. 저리 소박하다. 2500원 돈을 아꼈다고 환호를 지르고, 손가락이 빠지도록 휴대전화 케이스를 끼워 넣으면서도 바라는 건 밥 한 끼 값의 시급일 뿐이다.

저들이 바로, 하청업체들의 마법의 수프다. 저들이 가진 소박함이.

주 50~60시간 일하고 한 달에 150만 원 전후를 가져간다. 1년을 일해도, 5년을 일해도 시급이 같다. 4860원에서 크게 늘지를 않는다. 있으나 마나 한 근속수당, 기업이 천억 단위의 매출을 올려도 노동자에게는 몇십만 원 떨어지는 성과급들은 논외로 두자. 노동자들이 믿을 것은 야간 노동이고 주말 특근이다. 야간 수당, 잔업 수당이라도 붙어야 돈이 된다. 몸을 혹사해야 돈이 된다.

그나마 수당이라는 것도, 1, 2차 하청업체에서 일하는 '특권층' 노동자들에게나 해당하는 것이다. 5, 6차 하청까지 내려오는 업체 직원들은 일명 '물량 떼기'로 월급을 가져간다. 만든 만큼 돈을 가져간다. 수량이 곧 돈이다. 위에서부터 야금야금 납품단가를 떼인 하청업체는 마찬가지로 '적당한' 단가를 노동자들에게 내놓지 않는다. 그래도 인형 눈알 붙이는 것보다는 많이 준다. 그러니 직원들 손은 쉬지 않는다. "정신을 차리면 어느새 내 몸이 라인을 따라 180도 허리가 휘어" 있다. 흘러가는 라인밖에 보지 못하고 일한다. 어디 감히 정해진 쉬는 시간을 바랄까. "화장실이나 후딱 뛰어갔다가 올 수 있어도 감사"한 일이다.

돈을 조금 주니, 더 많은 일을 한다. 그리하여 대기업이 좋아하는 '저가 생산'이 가능해진다. 중소업체 사장님의 숨통도 트인다. 그러니까 공단의 값싼 노동력은 아모텍 회장님이 대기업에 그렇게 뜯기고도 교회를 세우고 싶다며 '우아'를 떨 수 있으셨던 이유이다.

ⓒ인천지역 노동자 권리 찾기 사업단

아웃소싱이라는 신의 비법

여기에 아웃소싱이라는 비법까지 더하면, 천군만마를 얻는다. 물량이 줄어도 비용 문제를 걱정할 필요가 없다. 대기업이 하청에 책임을 전가하듯, 하청업체도 경기변동의 책임을 노동자에게 전가한다.

제조업에 들어오는 파견업체 직원들은 3개월짜리이다. 파견노동의 무분별한 확산을 막는다며, 법은 제조업체가 파견직을 쓰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다만 '일시적이고 간헐적인 인력 수요'에 의한 단기 파견직은 허용하고 있다. 급박하게 일손이 필요한 상황에서는 단기적으로 파견노동자 사용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이들은 단기 파견직으로 전자부품 공장으로 들어간다. 4860원을 받고 일한다. 3개월 지나면 정규직 시켜준다는 소리도 듣는다. 그러니 잔업을 빠질 수 없다. 잘 보여야 한다. 그런데 3개월이 지나면, 또다시 파견 연장이 이루어진다. 법은 노동자의 동의를 얻으면 3개월까지 연장 근무를 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더 일한다. 일한 지 6개월이 되는 계약 마지막 날, 아웃소싱 업체에서 찾아온다. 사직서를 쓴다. 다른 아웃소싱 업체가 온다. 새 계약서를 쓴다. 앉은 자리에서 업체만 바뀐다.

다시 3개월짜리 파견직으로 새 출발이다. 근 1년을 이런 식으로 일한다. 정직원 옆에서 같은 일을 1년 넘게 해도, 여전히 '단기' 파견직이다. 회사는 1년 내내 '넘치는 수요'에 의해 파견직을 쓰고 있다. 이상하다 못해 수상하다.

처음의 정규직 약속은 어디 갔더라? 약속을 지키기 위해 아모텍은 단계별 진급(?)을 마련해 놓았다. 첫 3개월은 파견직이다, 그다음 3개월은 계약직 수습이다. 그다음 3개월은 계약직이다. 그다음 3개월은 정규직 수습이다. 그러고 나서야 비로소 정규직 자리에 오를 수 있다. 1년이 넘는 과정을 버텨내야, 파견직보다 시급을 150원 정도 더 받는 그 대단한 정규직이 될 수 있다. 물론 1년을 버텨내는 사람도 별로 없다.

12시간 맞교대는 몇 개월 만에 몸을 망가트린다. 휴일에도 툭하면 불려 나와 잔업을 뛰는 생활은 오래 할 만한 것이 못 된다. 전자산업의 평균 근속연수가 3년이 되지 않는다. 이직률이 높다.

"진짜 정신없을 때는 일하다가 옆을 보면 어제랑 다른 사람이야. 그러면 아, 그렇구나 하고 마는 거죠."

물량이 줄면, 업체는 파견업체 직원부터 자른다. 해고절차는 간단하다. 아웃소싱 업체에 누구누구와 계약을 해지하겠다고 통보한다. 잔업까지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에서 파견 노동자는 아웃소싱 업체가 보낸 문자를 보게 된다.

"내일부터 **업체에 출근하지 마세요."

당일 해고에 문자 통보, 사람 참 초라하겠지만, 그것도 잠시, 12시간 근무로 멍한 머리를 버스 유리창에 부딪히며 존다. 내일 다시 아웃소싱 업체에 가서 새 일을 찾아야 한다. 또다시 어떤 업체로 가게 될지 모르니, '갑' 란은 비워둔 계약서를 쓰고.

"내 옆에 사람이 하루 만에 사라지는 거예요. 처음에는 놀랐죠. 그런데 이게 일상이 되니까. 휴대전화라는 게 팔리는 주기가 빠르니까, 언제 물량이 넘칠지도 빠질지도 몰라요. 물량이 넘치면 얼굴 모르는 사람이 옆에서 일하고 있는 거고, 물량 빠지면 어느새 사람들이 하루에 열 몇 명 씩 사라지는 거고."

전자산업은 경기변동이 심하다. 일이 일정치 않다. 일이 없을 때 파견직이야 문자통보를 하면 그만인데, 정직원들은 어쩌나. 뜻밖에 해결은 간단하다. 잔업을 시키지 않으면, 밤에 공장을 돌리지 않으면 사람들이 알아서 나간다. 5000원도 안 되는 시급으로 주 5일, 8시간 근무를 해봤자 월 100만 원도 되지 않는다. 아르바이트도 아니고, 가정이 있는 사람들은 생활이 되지 않는다. 알아서 하나 둘 나간다.

그래도 안 나간다 싶으면, 휴업한다. 판매 부진, 생산량 감축 등 사용자의 귀책으로 휴업을 하는 경우에 평균임금의 70%를 노동자에게 지급해야 하는 법이 있지만, 그걸 지킬 리 없다. 돈 아끼려고 하는 휴업이다. 노동자들에게 휴가를 쓰라 한다. 그동안 못 쓴 연차휴가를 사용하라 한다. 열흘 넘게 노동자들은 원치도 않는 휴가를 선물 받는다. 할 일도 없고, 그렇다고 다른 일을 구하기에는 애매한 시간을 휴가랍시고 머리에 이고, 노동자는 고민한다. 그만두어야 하나. 아니면 경기가 살아나길 기다려야 하나.

어떤 결정을 하듯, 노동자들만 꽤 억울하다. 하청업체는 대기업이 바라는 '저가 비용'에 '빠른 대응'을 가져다 바치면 몇 억짜리 납품이라도 받아오지. 노동자는 업체가 원할 때는 몸이 부서져라 일하고 원치 않은 휴가까지 보내고 와도, 다시 손에 쥘 수 있는 것은 소박한 시급에 졸음 참아가며 하는 맞교대 근무뿐이다.

세계로 뻗어나가는 한국의 전자산업, 하지만…

공단에 깔린 값싼 노동력은 세계로 뻗어 나가는 한국의 전자산업의 바탕을 이룬다. 그런데 대기업도 중소기업도 모두가 좋아하는 값싼 사람에게 단 하나의 단점이 있다. 그것은 사람인지라, 혹사하면 죽는다는 것이다.

올해 3월, 아모텍에서 일어난 2건의 과로사는 아모텍만의 재수 없는 일이 아니다. '12시간 근무=기본'이라 글귀를 작업 노트에 쓴 채 사내 기숙사에서 뛰어내린 삼성맨(故 김주현)도, 위암에 걸리고도 야근을 했다는 대기업 전자회사 부장님(故 박홍길)도, 12시간 기계만 만지다 죽은 서른의 인생(故 임승현)도, 고작 하루 휴일에 아이 얼굴을 보는 게 낙이었던 엔지니어 관리자(故 권태영)도, 모두 가혹하게 일하다 죽는 것이, 휴대전화 잘 만들고 반도체 잘 팔리는 전자산업 강국의 모습이다.

그나마 기쁜 소식은, 두 명의 사망자를 낸 아모텍을 대상으로 고용노동부가 수시 근로감독에 들어갔다는 것이다.

"회사 가는 게 즐거웠으면 좋겠어요. 돈 때문에만 가는 게 아니라, 내 일을 하면서 좀 즐거웠으면 좋겠어요."

이 말을 한 노동자는 최저임금 받는 처지를 슬퍼하면서도, 일 잘한다고 관리자가 따로 불러올려 준 시급 100원 인상에 자부심을 느꼈다. 그들은 '숙련됨', '기술이 있음', '요령을 앎'에 자부심을 느꼈다. 기계처럼 일하는 와중에 그들을 기계로 만들지 않는 것은 이런 종류의 자부심이었다.

그들의 노동은 무의미하지 않다. 이들의 노동을 무의미하게 만드는 조건이 있을 뿐이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이들의 노동을 무의미하게 만드는 전자산업 노동의 실태가 밝혀지기를 빌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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