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캄보디아에서 보편주의 사회보장의 가치를 확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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캄보디아에서 보편주의 사회보장의 가치를 확인하다

[복지국가SOCIETY] 사회보장 개선을 위한 NGO 워크숍

"양 위원님! 캄보디아 프놈펜에 다녀오실 수 있는지요." 4월 이상구 복지국가소사이어티 공동대표 겸 운영위원장으로부터 제의를 받았다. 독일 에버트(Friedrich Ebert Stiftung: FES) 재단과 독일 국제노동기구(International Labour Organization: ILO)가 후원하는 3박 4일 일정의 워크숍으로, 주제는 '사회보장체계 개선을 위한 NGOs의 역할'이라고 했다.

제안을 받고 나는 "우리 복지국가소사이어티와 복지국가국민운동에는 탁월한 능력을 소유한 위원들이 많은데 왜 하필이면 나를 추천하였느냐?"고 물었다. 필자가 포항지역에서 '성인 발달 장애인을 위한 평생교육원 설립 조례안'을 제정한 경험이 있으니, 이번 캄보디아 워크숍의 취지에도 잘 맞고, 더불어 한국에서 이루어진 지역사회의 사회보장 운동 경험을 국제적으로 소개할 수 있을 것이므로 참석 기준에도 충분히 부합한다는 것이었다.

첫째 날 : 캄보디아의 아픈 역사와 프놈펜 시내 풍경

도착 첫날에는 공식 일정이 없었다. 하루 동안 자유 관광을 하라는 통보를 받았다. 비행기에서 만난 다른 한국대표인 참여연대 복지노동팀 소속 변호사는 다음날의 발표 준비로 함께 관광하기가 어렵다고 했다. 그래서 나는 호텔에서 무료하게 시간을 보내는 것 대신에 시내 투어를 하기로 결심했다.

토요타 자동차를 운전하는 영어가 능숙한 기사를 만났다. 나는 빈민들이 사는 지역으로 가 달라고 요구했다. 그는 수상 관저에서 20분 거리에 있는 낡은 아파트로 나를 안내하였다. 100여 가구가 사는 것으로 보이는 아파트 한 동만 덩그러니 서 있었는데, 아파트 주변 지역은 낡은 건물들을 철거하고 상가지역으로 변신하는 중이었다. 우리나라의 경험으로 미루어 볼 때, 재개발이 한창 진행 중이니 한때 사회주의를 추구했던 캄보디아에서도 곧 빈부격차가 심화되겠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여느 동남아시아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스쿠터와 자전거가 난무하고, 행인과 택시가 어지럽게 섞여서 거대한 물결을 이루고 있었다. 여성 의류를 생산하는 지역과 전통시장도 둘러보았다. 단순노동자의 하루 일당이 2$이고, 교통경찰 월급은 50$ 정도라 했다. 수도권 중심지 역에서 20분 떨어진 외곽지역에는 대형아파트와 빌딩들이 건립되고 있었다. 캄보디아도 서서히 일어나고 있었고, 우리의 경험과 마찬가지로 물질적 풍요와 맞바꾸어 자본주의가 주는 새로운 고통도 경험하게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 프놈펜의 빈민 아파트(왼쪽)와 개발된 상가(오른쪽). ⓒ양만재

둘째 날 : 사회보장과 NGO의 역할에 대한 국제적 모색

아침 9시, 한국대표 두 사람을 포함한 총 15명의 참석자들이 호텔 내 워크숍 장소에 모였다. 서로 명함을 주고받고 간단한 인사를 건넸다. 싱가포르에서 온 FES Ms Julia Mueller 소장과 ILO 베를린 사무소의 Ms Sabine Baun 국장이 환영 인사를 했다. Sabine 국장은 2009년 경제위기 이후 국제노동기구가 발전도상국의 사회보장제도 개선 활동을 지원하고 있다고 밝히고, 워크숍을 통해서 참석자들의 귀중한 경험을 공유하는 기회를 가질 것을 당부했다.

Julia 소장은 지역, 국가, 세계화 수준에서 사회보장/안전체제를 평가하고 개선하는 통합적인 활동이 필요한데, NGO들이 공동으로 '도전과 아이디어'들을 서로 소통하자고 제안했다. 두 사람 모두 독일인이지만 영어로 연설을 했는데, 자유스럽게 영어를 구사하는 것이 자국어나 다름없이 자연스럽다는 인상을 받았다.

연설이 끝나자, 첫 번째 과제로 각자 자국의 경험 사례, 도전, 장벽을 카드에 기록하며 액션러닝(action learning)을 시작했다. 참여연대는 진주의료원 사례를, 나는 성인 중증장애인 교육원 설립 조례안 제정 경험을 소개했다. 이어서 한국과 태국의 사회보장체계를 소개하는 시간도 가졌다. 한국은 기초생활보장제도와 4대 사회보험, NGOs 활동의 한계를 소개했다.

여기서 나는 종북 좌파라는 남북 분단으로 인한 낙인(red scare) 문화라는 한국적 특수성과 그로 인한 사회복지 확대 운동의 어려움에 대한 설명을 덧붙였다. 태국의 참석자도 사회보장체제를 소개하면서 체제 개선을 위해서 역량 증대(Building Capacity) 개념을 사용했는데, 시민참여와 인식증대를 강조했다. 나라는 다르지만, 추구하는 바는 참 비슷하구나 하는 생각을 하면서 익숙한 언어를 만나 반가웠다.

점심을 먹고 사회보장체제의 원칙을 두고 토론하는 시간을 가졌다. 진행자가 6가지의 원칙을 제시했다. 그는 보편성, 다양성, 진보성, 공정성, 지속가능성, 국가의 책임성을 제안하고, 참여자들이 선호하는 3가지 원칙을 표시하라고 요구했다. 대체적으로 보편성, 국가의 책임성, 그리고 공정성 순으로 선택했다. 복지가 보편성을 지향해야 한다는 것은 한국의 복지국가 운동만이 지향하는 가치가 아님을 여기서도 확인할 수 있었다.

더 나아가 참석자들은 그 원칙을 실현하기 위해 자신의 현장에서 어떤 실천을 해야 하는지를 팀별로 정리하고 발표하는 열정을 보였다. 국가의 책임성 분야에서 다수의 참여자들은 NGOs의 Watch dog 역할과 시민의식 개선 활동을 중시했다. 그리고 인도 출신 대표는 불평등하게 대우 받은 여성의 가치를 사회보장체제의 개선 차원에서 고려해야 한다고 강하게 주장했다. 자원이 부족한 나라에서 여성을 우선하자는 주장에 정책 당국자들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상상하는 기회도 가졌다.

이날 저녁에는 프놈펜 독일문화원에서 FES와 ILO가 공동으로 제작한 캄보디아 의류산업의 변천과정에 관한 다큐 영화를 시청하였다. 이 자리에는 우리뿐만 아니라 100여 명의 외국인과 현지인들이 참석했다. 캄보디아는 저임금을 바탕으로 한 의류산업의 발달로 여성 일자리가 늘어나 소득창출을 이뤄냈다. 최근 노동환경의 개선, 인건비 상승, 국제시장의 불황에 따른 수출 주문량 감소로 위기를 맞고 있는데, 이에 대한 캄보디아 정부의 대처방안 모색 과정을 다룬 다큐였다.

▲ 왼쪽이 Julia 소장, 오른쪽이 Sabine 국장. ⓒ양만재

셋째 날 : 복지국가 운동이 나아갈 길

마지막 날에는 아침 9시부터 모여 캄보디아에서 활동하는 ILO 소속인 프랑스 출신 활동가로부터 사회보장체제를 평가하고 개선하는 원칙과 기술에 관한 강의를 들었다. 내가 학생들에게 강의하고 있는 사회복지 실천의 틀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계획수립-사정-실행-평가-반성의 틀에 의거하여 두 번에 걸쳐 설명하였다. 오후에는 인도네시아 출신 활동가로부터 국가에서 제시한 사회보장체제와 노동조합에서 제안한 사회보장체제를 대비시키면서 협상 안을 마련하고 대화에 임했던 사례를 소개받았다.

워크숍 마무리는 각 조별 참여자들이 사회보장체계의 개선에서 해야 할 활동의 로드맵을 작성하는 과제 발표였다. '개선 활동에서 NGO의 역할은 무엇인가? 활동의 방해물은 무엇인가? 이 방해물에 대처할 방안은 무엇인가? 장애물을 극복하고 함께 연대할 파트너는 누구인가?' 등을 주제로 3개 조로 나뉘어 마지막 결실을 맺기 위해 참여자들이 아이디어를 제안했다. 한국의 참여연대 대표, SFS 소장 Julia, 태국 대표, 인도 대표, ILO의 프랑스 출신 활동가, 나이 든 인도 대표가 로드맵에 필요한 안을 제안했고, 내가 기록을 맡았다.

나는 캄보디아 행 비행기에 오르기 전부터 NGO의 역할을 머릿속에 그려 두었는데, 현지에서 다시 한 번 정리를 했다. 나는 NGO가 사회보장체제의 현장에 근거하여 문제에 대한 조사자, 보장체제의 개혁에 대한 이슈 제기자, 활동을 위한 주민 조직자, 활동 참여자를 지원하는 촉진자, 다른 단체와 연대하는 네트워크의 주창자, 그리고 동시에 사람들을 동원하고 교육하는 참여 촉진자와 교육자 등의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Julia가 이러한 나의 제안을 듣고, 이를 로드맵 모델로 제시하였다.

나는 NGO의 역할 제안 이전에 "활동의 원칙과 가치에 연관되지 않는 역할은 NGO의 차별성을 확보할 수 없다"라는 점을 특히 강조하면서 제안들을 설명했다. 이렇게 해서, 로드맵 제안 발표를 끝으로 워크숍의 공식 일정이 모두 끝났다. 비행기 탑승을 앞두고, 이번 워크숍의 의미와 함께 반성할 부분을 되새겨 보았다.

첫째, NGO의 역할 이론에 비추어볼 때, 사회보장과 사회안전망에 대한 나의 지식이 부족함을 인식했다. 현안에 관한 깊이 있는 지식이 부족한 상태에서 NGO의 활동 방향을 제시한다는 것은 현실성 없는 추상적인 원칙 제안에 그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둘째, 사회보장에 관한 문제의식과 해법을 찾는 데 있어서 지역과 국가 수준에서 머물고 만족할 게 아니라, 이를 글로벌 수준으로 확장해야 한다는 과제를 인식하게 되었다. 우물 안의 개구리가 되지 않도록 내부 파트너의 확보가 중요한 것 이상으로 국제적인 파트너와 관계를 잘 맺고 신뢰를 구축할 필요가 있다는 점을 더 잘 인식하게 되었다.

셋째, 국제행사의 참석자 모두 사회보장의 원칙으로 보편성과 국가의 책임성을 중시했다는 점을 깊이 새겨 봐야 한다. 우리가 현재 대한민국에서 정력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일, 즉 '역동적 복지국가' 운동이 추구하는 '보편주의' 원칙은 국제적으로도 매우 가치 있는 것임을 확신할 수 있었다.

넷째, 독일 사람들의 치밀함과 성실성을 배울 수 있었다. 한국에서 워크숍을 주관하는 대표라면 처음의 환영 인사에만 얼굴을 내밀고 나중에는 대충하기 일쑤이다. 그런데 이번에 만난 두 대표는 워크숍의 전 과정을 참석자들과 함께 하면서 지식과 정보를 공유하는 적극적인 태도를 보였다. 우리가 많이 배워야 할 덕목과 자세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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