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얼마 전 6월 임시 국회가 끝났습니다. 새누리당과 민주당이 '경제 민주화' 입법화를 전면에 내세웠기 때문에 국민들의 관심이 집중되었는데요. 성과에 대해서는 평가가 엇갈리고 있지요?
⇨ 정치권에서는 그나마 성과를 냈다는 평가를 하고 있지만, 시민단체들은 매우 실망스럽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습니다. 6월 국회에서 통과된 경제 민주화 관련 법안은 모두 4개였는데요. 이 중에서 일감 몰아주기 방지법(독점 규제 및 공정 거래에 관한 법률)은 정부안에 비해서도 크게 후퇴했고, 프랜차이즈법(가맹사업 거래의 공정화에 관한 법률)에는 이 법의 실효성을 보장하는 '징벌적 손해배상제'가 담기지 못했으며, 금산분리 강화법(금융지주회사법·은행법 개정안)은 MB 정부 때 완화된 산업자본의 은행 지분 보유 한도를 9%에서 다시 4%로 환원한 것이기 때문에 특별히 성과라 보기 어렵고, '부당 특약' 설정을 금지하는 내용의 '하도급법(하도급 거래 공정화에 관한 법률)'도 4월 국회에서 통과된 하도급법 개정안에 빠진 문구를 채워 넣는 정도의 성과에 그쳤다고 볼 수 있습니다.
2. 6월 국회의 경제 민주화 입법화 성과가 미흡하다 보니 많은 법안들이 9월 정기 국회로 넘겨졌지요?
⇨ 대기업의 신규 순환출자 금지, 금융·보험사 보유 주식의 의결권 제한 등 대기업 지배 구조와 관련된 민감한 법안들이 9월 국회로 넘겨졌습니다. 또 금융 회사에 대한 대주주 적격성 심사 강화 법안과 본사와 대리점 간 불공정 행태를 시정하는 소위 '남양유업법', 그리고 재벌 총수의 횡령 및 배임에 대한 형량 강화 법안 등도 9월 국회 과제로 넘겨졌습니다.
3. 먼저 '일감 몰아주기 방지법'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처음 정부와 의원들이 제출한 법안들에 비해서 어떤 부분이 후퇴했습니까?
⇨ 후퇴한 부분이 꽤 많습니다. 우선 총수 일가 지분이 30%를 넘으면 총수가 부당 내부 거래에 관여한 것으로 추정한다는 이른바 '30%룰'이나 정당성 입증 책임을 공정위가 아닌 기업이 지도록 하는 방안 등이 폐기됐습니다. 이 부분의 후퇴는 불가피한 측면이 있기는 했습니다. 조세 피난처 역외 탈세 부분에서도 입증 책임 전환을 입법화하지 못하는 나라에서, 일감 몰아주기 규제 부분에서 입증 책임 전환 입법화를 시도한 것은 다소 무리였다는 것이 저의 생각입니다. 또 30%룰에 대해서는 경제 민주화를 적극적으로 주장하는 법률가 출신 의원들 사이에서도 이견이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4. 일감 몰아주기 처벌 조항을 공정거래법 3장에 두느냐, 5장에 두느냐를 두고도 논란이 많았는데요, 이 부분도 후퇴했다고 하지요?
⇨ 일감 몰아주기 처벌 조항을 기존 공정거래법 5장(불공정 거래 행위)에 있던 것을 3장(기업의 경제력 집중)으로 바꾸기로 했던 당초 계획도 폐기했습니다. 시민단체들은 이 부분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했는데요. 그 이유는 처벌 조항이 5장에 들어갈 경우 처벌 요건으로 '경쟁 제한성 입증'이 요구되지만, 3장에 들어가면 경쟁 제한성 입증과 무관하게 처벌이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결국 여야 정당은 5장의 이름을 '불공정 거래 행위 및 특수 관계인에 대한 부당한 이익 제공 금지'로 바꾸는 절충 법안을 만들어 통과시켰는데요. 시민단체에서는 미봉책이라는 평가가 나오고 있습니다.
5. 일감 몰아주기 방지법 규제 대상도 법안 논의 과정에서 크게 줄어들었지요?
⇨ 처음 정부와 의원들이 제출한 법안은 '재벌들의 모든 계열사 간 거래'를 규제 대상으로 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총수 일가가 지분을 보유한 계열사와 거래하는 것'으로 축소되었고, 나중에는 '총수 일가가 일정 지분율 이상의 주식을 보유한 계열사와 거래하는 것'으로 또다시 축소됐습니다. 게다가 '일정 지분율'에 대한 규정도 대통령령에 별도로 위임했습니다. 법안은 국회를 통과했지만 실속이 없는 누더기 법이 만들어진 것입니다.
6. 입법화 과정에서 일감 몰아주기 규제의 적용을 받지 않는 '예외 조항'도 만들어졌다고 하는데요. 예외 조항이 커다란 구멍 역할을 한다면 이 법의 실효성은 더 떨어지겠지요?
⇨ 유감스럽게도 입법화 과정에서 만들어진 예외 조항이 정말 '커다란 구멍'입니다. 이번에 신설된 공정거래법 제23조2항을 보면 "기업의 효율성 증대, 보완성, 긴급성 등 거래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불가피한 경우"는 일감 몰아주기 규제 대상에서 제외한다고 되어 있습니다.
7. 기업의 효율성 증대를 달성하기 위해서 불가피한 경우는 일감 몰아주기 규제 대상에서 제외한다? 학생의 성적을 올리기 위해서 불가피한 경우는 뇌물이나 촌지 규제 대상에서 제외한다는 조항만큼이나 황당무계한 조항 아닙니까?
⇨ '악마는 각론에 숨어 있다'라는 말이 있는데요. 이 예외 조항이 바로 일감 몰아주기 방지법의 결정적인 악마 조항입니다. 물론 "기업의 효율성 증대, 보완성, 긴급성 등 거래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불가피한 경우"가 어떤 경우인지는 대통령령에 규정하기로 했는데요. 여야 의원들이 만들어 놓은 법률이 엉망인데 정부가 대통령령에 제대로 된 규정을 집어넣을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8. '남양유업법'과 관련해서는 새누리당과 민주당의 이견이 크다고 합니다. 양당은 이에 대해 어떤 주장을 하고 있습니까?
⇨ 민주당은 새로운 법안을 만들어 규제를 강화해야 한다는 입장이고, 새누리당은 공정거래법 개정을 통해 보완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입장입니다. '남양유업법'이 갑을관계법의 핵심임에도 불구하고 새누리당이 이에 소극적인 것은 매우 유감스러운 일입니다.
9. '남양유업법'이 지나치게 많은 규제를 담고 있어서 새누리당이 이에 소극적인 것 아닌가요?
⇨ 그렇지 않습니다. '남양유업법'은 말 그대로 '파렴치하고 몰염치한' 일부 악덕 기업의 횡포에 대해서만 규제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지난 5월 21일 민주당 이종걸 의원이 국회에 제출한 남양유업법('대리점 거래의 공정화에 관한 법률안')에 따르면 대리점 본사의 다음과 같은 행위들이 규제 대상이 됩니다. 첫째 대리점 사업자가 구입할 의사가 없는 상품을 구입하도록 강요하는 행위, 둘째 대리점 사업자에게 대리점 본사를 위해 금전, 물품 등 경제적 이익을 제공하도록 강요하는 행위, 셋째 제품에 하자가 있거나 유통기한이 지났음에도 부당하게 반품을 금지하는 행위, 넷째 대리점 사업자가 취급하는 상품 가격, 거래 상대방, 영업시간, 거래 지역을 부당하게 구속하거나 제한하는 행위, 다섯째 대리점 판매원에 대한 일방적인 해임 요구 등 모두 일부 악덕 기업에만 해당하는 것입니다.
10. 민주당 의원들이 제출한 남양유업법에 지나친 처벌 조항이 담겨 있는 것 아닌가요?
⇨ 그렇지 않습니다. 민주당 의원들이 제출한 남양유업법의 처벌 조항은 6월 국회 이전부터 시행되고 있는 프랜차이즈법(가맹사업 거래의 공정화에 관한 법률)의 처벌 조항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11. 지난 4월 국회를 통과한 '하도급법 개정안'에는 부당한 납품 단가 인하, 부당한 발주 취소, 부당한 반품 행위 등에 대해 최대 3배까지 징벌적 손해배상 책임을 지게 하는 내용이 들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국회를 통과한 프랜차이즈법에서는 징벌적 손해배상제가 빠졌습니다.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 입법적 공백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도급법은 원청업체의 횡포로부터 하도급 업체를 보호하기 위한 법이고, 프랜차이즈법은 가맹점 본사의 횡포로부터 가맹점 사업자를 보호하기 위한 법이며, 남양유업법은 대리점 본사의 횡포로부터 대리점 사업자를 보호하기 위한 법입니다. 그런데 가맹점과 대리점 사업자들이 본사의 횡포로 인해 받는 고통이 하도급 업체가 원청업체의 횡포로 인해 받는 고통이 비해 결코 적다고 볼 수 있습니다. 따라서 하도급법에 징벌적 손해배상제가 들어 있다면, 프랜차이즈법과 남양유업법에도 반드시 징벌적 손해배상제가 들어가야 하는 겁니다.
12. 징벌적 손해배상제가 왜 그렇게 중요한가요?
⇨ 우리가 손해배상을 해야 하는 경우에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실수로 상대방에게 손해를 입히는 경우이고, 다른 하나는 고의로 상대방에게 손해를 입히는 경우입니다. 이 중 전자의 경우에는 원칙적으로 손해액에 상응하는 정도의 배상을 하면 됩니다. 그러나 후자의 경우에는 손해배상과 더불어 형벌을 가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때 유럽의 대륙법계와 미국법계는 약간 다른 접근을 하고 있는데요. 전자는 손해배상과 형벌을 병과하는 것을 선호하고, 후자는 손해액의 몇 배를 배상하도록 하는 징벌적 손해배상제를 선호합니다. 즉 징벌적 손해배상제는 상대방이 피해를 볼 것을 뻔히 알면서도 상대방에게 피해를 주는 기업이나 개인에 대해 실제 손해액의 몇 배에 달하는 손해배상을 하도록 강제하는 제도입니다. 그동안 이 제도는 미국에서 많이 활용되어 왔고, 최근에는 중국이나 러시아 등에서도 적극 도입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미국처럼 대기업이 중소기업에 피해가 발생할 것을 뻔히 알면서도 공정거래법과 하도급법을 위반하여 중소기업에 손해를 끼친 경우, 징벌적 손해배상제를 적용해야 한다는 주장이 많았는데요. 지난 대선 때 여야 후보들이 경쟁적으로 이 제도 도입을 공약하기도 했습니다.
13. 끝으로 궁금한 것 하나 질문합니다. 현대글로비스의 경우 정의선 현대자동차 부회장 일가가 55.2%(7월 5일 기준)의 지분율을 가지고 있는데요. 지난해 이 회사 매출액은 11조7460억 원이었습니다. 정 부회장은 지난 10여 년간 고작 30억 원을 출자해서 대부분 일감 몰아주기의 도움으로 이렇게 회사를 키웠다고 하는데요. 현대글로비스와 같은 사례가 100건만 있어도 대한민국 중소 제조업은 전멸할 것이라는 주장도 있습니다. 이런 주장이 사실인가요?
⇨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 2011년 대기업 제조업체의 총산출액은 834조 원이었고, 한국은행에 따르면 그해 우리나라 제조업의 총산출액은 1776조 원이었습니다. 따라서 2011년 우리나라 중소 제조업체의 총산출액은 942조 원이라는 결론이 나옵니다. 상상하기도 끔찍한 일이지만, 재벌들의 일감 몰아주기가 무한정 허용되어 현대글로비스식 일감 몰아주기가 100여 건 발생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2011년 현대글로비스의 총매출액이 9조5460억 원이었기 때문에 이런 일이 100여 건 발생하면 중소 제조업체는 전멸할 수도 있습니다. 건강하고 역동적인 사회는 '사회적 (신분) 이동'이 활발한 사회인데, 일감 몰아주기가 기승을 부리게 되면 그 사회는 시궁창 물처럼 고약하게 썩게 됩니다.
14. 현대글로비스식 일감 몰아주기를 보면 1950년대 미국을 충격에 빠뜨린 C.W.밀즈의 책, <파워엘리트>가 떠오릅니다.
⇨ 1950년대까지 미국인들은 자국의 대중 민주주의에 대한 자긍심이 대단했습니다. 1950년대 미국의 제3세계 전략의 주요 기조가 미국식 민주주의의 수출일 정도였으니 말입니다. 그러나 1956년 C.W.밀즈가 <파워엘리트>라는 저서를 통해 미국의 '부와 권력'이 다양한 계층에 분산·공유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소수 기득권층에게 집중·세습되고 있다는 사실을 실증 자료를 통해 폭로함으로써 미국을 충격에 빠뜨렸습니다. 정치학자들은 정치 발전을 '부와 권력이 다양한 계층에 분산·공유되는 것'이라 정의하곤 했는데 미국은 이와는 거꾸로 가고 있었던 것입니다. 최근 우리나라도 실질적 민주주의라 할 수 있는 경제사회적 민주주의가 심각하게 퇴행하고 있는데요. 혹자는 최근의 '경제 민주화 입법화 운동'을 커다란 진전으로 평가하곤 하지만, 저는 커다란 진전으로 보기보다는 경제사회적 민주주의 퇴행을 막기 위한 아래로부터 몸부림을 정치권에서 일부 반영한 것이다, 이렇게 평가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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