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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한국 민주주의는 사망 직전에 있다

[민교협의 정치시평] 민주주의 유린, '역사의 반복'인가

지금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는 총체적인 위기의 상황이다. 4월 혁명, 광주민주화운동, 6월 항쟁으로 면면이 이어져 오며 이 땅의 민중들이 피를 흘려 쟁취한 민주주의는 껍데기만 남은 채 권력자와 국가기관에 의해 철저히 유린당하고 있다. 이 땅의 민주주의는 6월 항쟁 이전의 군사 독재정권 시대로 퇴행했다. 이제 다시 타는 목마름으로 민주주의를 절규하고 거리에 나서서 이를 쟁취해야 하는 역사가 반복될 듯하다.

무엇보다도 대의 민주주의가 무너졌다. 인구, 지역 등의 문제로 국민을 대표하는 자를 뽑아 그가 국민의 의사를 대변하는 대의 민주제는 선출과정과 대변과정 모두 민주적이고 합리적이어야 함을 전제한다. 때문에 이것이 올바로 작동하려면 절차의 민주주의와 참여 민주주의가 보장되어야 한다. 지금 여론이 들끓고 있는 것처럼, 국정원은 막대한 조직력과 정보력을 이용하여 지난 대선에 개입해 여론을 조작했다. 우리가 돈을 주고 표를 사서 당선된 국회의원의 당선을 무효 처리하는 것에서 보듯, 절차의 민주주의를 부정하고 치러진 선거라면, 선출된 대표는 정당성을 갖지 못한다. 그러기에 국정원의 선거 개입과 여론 조작을 비판하는 것은 진영의 논리가 아니다. 보수층을 포함하여 20세기 모든 인류가 동의한 제도가 민주주의다. 보수의 프레임으로 보더라도, 그 절차에서부터 민주적 선출 과정을 왜곡하고 조작한 것은 엄연히 반민주적 폭거다.


우리의 선거 체제는 그 자체로 '구조적 불의'의 시스템이다. 국민 가운데 보수: 중도: 진보의 비율이 대략 4:3:3의 비율인데, 실제 정당 지지율과 국회의원 가운데 진보정당이 차지하는 비율은 1%에서 10% 사이를 오르락내리락한다. 현실과 정치적 재현(political representation) 사이에 심한 괴리가 존재한다. 노동자와 서민의 의사는 정치로 수렴되지 않는다. 이에 거리에서 외쳐보지만, 철저한 노동배제 속에 그들만의 절규로 끝나고 만다. 그들을 대표하는 정당이 없거나 제 구실을 못하기 때문이다. 그들의 정당한 주장은 자본, 정권, 보수언론, 대형교회, 관변학자, 지방 토호로 이루어진 기득권의 카르텔이 만든 "좌경, 빨갱이, 종북, 과격"의 프레임에 걸려 매도당한 채 소멸되거나 한 줌도 안 되는 이들의 의견으로 무시당한다.

선거 국면으로 가더라도, 노동자와 서민이 경제 논리와 안보 이데올로기에 휘둘리고 안정 심리, 애국 논리에 떠밀려 며칠 전까지도 부패와 부조리의 온상으로 비판하던 여당을 지지한다. 기득권 카르텔의 다양한 선전 선동에서 용케 살아남아 진보 정당의 지지자로 남더라도 그 중 상당수가 사표를 방지하기 위해 민주당 후보에게 투표한다. 그러니, 평상시는 물론, 기득권층이 진보 계층이나 노동자 계급을 가장 배려하는 선거 국면에서도 진보적 의사나 노동자의 요구는 왜곡된다.

기득권의 카르텔은 공고한데 이들을 견제할 시민사회의 권력은 너무도 미미하여 인민 주권을 바탕으로 한 참여민주주의 또한 거의 작동하지 않는다. 선출된 국회의원은 그들을 뽑아준 주민이 아니라 기득권 카르텔을 대변하고 그들의 이익을 위하여 봉사한다. 여야를 가리지 않고 대다수 국회의원들은 재벌과 권력층, 중산층을 위한 입법과 예산 반영에 충실하다. 야당이 서민의 표를 의식하여 이에 반대하면, 여당은 날치기까지 하여 기득권층의 이익을 확보한다. 이에 시민단체가 나서서 서명운동을 하고 기자회견을 하고, 집회를 하지만, 권력은 무시해버리고 만다. 4대강 사업은 국민의 70%가 반대하고 수많은 시민단체가 연대하여 저항하였지만, 집권자의 아집과 독단, 그에 충성하는 권력과 이해관계를 같이 하는 토건 카르텔의 힘을 넘어서지 못하였다.

언론의 자유 또한 철저히 봉쇄당하고 있다. 한국 언론은 구조적으로 비대칭의 모순을 내포하고 있다. 공중파가 어용 방송으로 전락한 상황에서 종편이 극우 편향이나 허위 조작 보도를 하고 있고, 대중들은 이에 비하여 영향력이 아주 미약한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나 팟캐스트 방송에서나 진리를 접하고 있다. 신문은 조중동이 재력, 정보력, 독자 수, 영향력에서 압도한 채 <경향신문>과 <한겨레신문>, 그리고 몇몇 인터넷 신문이 겨우 균형을 잡고 공론을 형성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지만 중과부적이다. 언론 자유가 무한히 주어진다 해도 이런 구조적 비대칭 속에서는 공론이 정당하게 형성되기 어려운데, 언론의 통제 또한 권위주의 시대를 방불케 한다. 정권과 자본은 유무형의 압력을 행사하여 언론을 통제하고 있다. 지난 정권에서 해직된 기자들은 아직 거리를 떠돌고 있다. 정부나 재벌에 비판적인 기자들 가운데 상당수가 파면되거나 한직으로 밀려났다. 남은 기자들이 비판적인 보도를 하려고 하면 내부검열 시스템이 작동되며, 용케 이것을 통과하여 보도가 되면, 다양한 유형의 압력이 행해진다. 기자는 물론이고 시민조차 국정원을 비롯한 권력의 사찰과 징계를 두려워하여 자기 검열을 한다. 이렇듯 허가제(licensing), 검열제(censorship), 언론 통제(controlling) 등 중세의 권위주의 시대에 언론을 탄압하던 사악한 제도들이 모두 좀비처럼 되살아나 힘을 발휘하고 있다.

대의 민주제와 언론의 자유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면 시민사회가 할 수 있는 최후의 선택은 집회와 시위다. 20세기 인류사회는 이를 민주주의를 유지할 수 있는 최소한의 자유로 공인하여 헌법으로 이를 보장한다. 대한민국 헌법 또한 제21조 1항에서 "모든 국민은 언론·출판의 자유와 집회·결사의 자유를 가진다"라며 집회와 시위의 자유를 보장하고 있으며, 2항에서 "언론·출판에 대한 허가나 검열과 집회·결사에 대한 허가는 인정되지 아니한다"라 규정해 집회 와 시위가 허가제가 아니라 신고제임을 명확히 하고 있다. 하지만, 지금 경찰은 쌍용자동차, 현대자동차, 재능교육의 집회를 계속 불허하고 있다. 대한문 앞에서는 앉아 있는 것조차 불법 집회라며 용인하지 않거나 연행하고 있으며, 앉아 있는 사람들의 깔개나 방석까지 빼앗고 있다. 헌정이 유린되는 상황이 계속되고 있는 데도 이에 대한 비판과 견제는 지극히 미미하다.

존 밀턴이 "사상의 공개시장(the open market place of ideas)" 개념을 천명한 <아레오파기티카(Areopagitica)>를 펴낸 해가 1644년이다. 존 스튜어트 밀은 1859년에 "전 인류 가운데 한 사람을 제외한 모든 사람이 동일한 의견을 갖고 있고 한 사람만이 그에 반대되는 의견을 갖고 있을 경우, 인류에겐 그 한 사람을 침묵시킬 권리가 없다. 한 사람이 인류 전체를 침묵시킬 수 있는 힘을 갖고 있다 하더라도 그가 인류를 침묵시킬 권리가 없는 것과 같다."라고 말하며 <자유론>을 펴냈다. 이후 시민의 항쟁을 거쳐 '사상과 표현의 자유'는 거의 전 세계의 헌법에 명시된 인류의 보편적인 원칙이 되었다. 중세의 권위주의 언론이 종언을 고하고 허가제, 검열제, 언론 통제가 없이 언론의 자유를 풍미하는 자유주의 언론시대가 활짝 열렸으며, 더 나아가 사회적 책임과 윤리를 강조하는 사회적 책임이론 시대로 이행하였다.

이와 같은 지구촌의 역사와 6월 항쟁을 기억하고 있는 우리가 중세 및 군사 독재 정권 시대로 퇴행을 용인한다면 민주 사회의 시민이 아닐 것이다. 이제 분연히 일어나 이 야만과 퇴행에 항거하자. 언론의 자유, 대의민주제, 집회와 시위의 자유를 되찾는 투쟁에 모든 시민사회가 연대하자. 정치적 민주주의를 지켜냄은 물론, 경제적 민주화마저 달성하도록 정권과 자본에 저항하자.

우선 해직 언론인은 당장 복직시키고, 언론의 독립성과 자율성을 철저히 보장할 수 있도록 법률 및 제도 개혁을 단행해야 한다. 개악된 신문법을 개정하고, 자본은 물론, 내부의 권력층의 압력과 통제, 간섭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도록 각 언론사에 수평적인 거버넌스(governance) 시스템을 확립하여야 한다. 별도의 추천위원회에서 공영방송의 이사와 사장을 선임하며, 추천위원은 시민사회단체, 학계, 언론계, 법조계, 문화예술계 등 다양한 시민 사회의 구성원이 참여하여 구성한다. 근본적으로 검찰 개혁이 선행되어야 하지만, 대통령, 청와대와 국정원이 언론에 간섭할 경우 이에 대한 법적 제재를 강화한다.

정치적 민주화 또한 확고히 하자. 이번 정권에서는 민주당과 진보 정당, 시민사회가 연대하여 여당을 압박하여 독일식 비례대표제와 결선투표제를 반드시 쟁취해내야 한다. 더 나아가 상하원제로 바꾸어 상원은 이전처럼 지역 대표로 선출하고, 하원은 직능 대표제로 구성하자. 예를 들어, 노동자가 전체 인구의 60%라면 하원 의원 1000명 가운데 600명을 노동자 의원으로 선출하는 것이다. 그러지 않는 한, 대의민주제에서 '구조적 불의'는 계속될 수밖에 없다.

진보 진영 또한 종파와 이해관계를 떠나 연대하자. 근본적으로 국가와 시민 사회 사이에 공공영역(Öffentilichkeit)을 확대하고 의사소통적 이성을 갖춘 공중(public)들이 국가와 자본과 권력을 삼분(三分)할 수 있을 만큼 권력을 형성해야 한다. 우선 내 안의 신자유주의적 탐욕을 제거하고, 자본주의와 신자유주의 체제가 만든 극단의 사익 추구 시스템에 맞서서 공론을 형성하고, 다양한 분야에서 공공성을 확보하는 운동을 생활세계부터, 내가 사는 지역에서부터 실천해 나가자.

민주화를 위한 전국교수협의회(민교협)에서 기획한 '민교협의 정치시평'이 매주 <프레시안>에 연재됩니다. 민교협은 1000여 명의 교수 회원들로 구성된 교수단체로, 칼럼은 매주 민교협 회원들이 돌아가며 연재합니다. 이 칼럼은 민교협 홈페이지에도 동시에 게재됩니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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