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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야구 끊임없는 오심 논란, 핵심은 '신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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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야구 끊임없는 오심 논란, 핵심은 '신뢰'

[배지헌의 그린라이트] MLB 오심 해법 들여다보니

오심이 어딜 가나 문제이긴 문제인 모양이다. 얼마 전 미국의 스포츠 매체 ESPN 제이슨 스탁은 '심판 판정을 향상시킬 8가지 방법(Eight ways to improve umpiring)'이란 칼럼을 통해 메이저리그의 거듭되는 오심 논란에 다각도의 해법을 제시했다. 스탁의 칼럼은 게재되자마자 페이스북에서 500회 이상 '좋아요'를 받는 등 큰 반향을 일으켰고, 국내 야구팬들 사이에서도 적지 않게 회자됐다.

스탁이 제시한 8가지 해결책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①비디오 판독을 늘리고 ②선수 출신을 채용하고 ③능력이 떨어지면 자르거나 마이너로 내려 보내며 ④필요하면 징계도 내리되 ⑤잘하는 심판에겐 상을 주고 ⑥심판들이 보다 편안하게 이동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 주자. ⑦판정에 대한 문제제기에는 답변할 의무를 갖도록 하고 ⑧무엇보다 오심을 했을 때는 실수를 인정하고 사과하라. (http://espn.go.com/mlb/story/_/id/9278742/eight-ways-improve-umpiring-mlb)

ⓒ연합뉴스

그런데 스탁의 칼럼을 읽다 보면 흥미로운 점을 발견하게 된다. 스탁이 심판 문제를 해결할 '획기적인' 아이디어처럼 소개하고 있는 제안 중 상당수가 실은 이미 한국 프로야구에서 시행하고 있거나, 오히려 국내에서 더욱 가혹하게 적용되고 있는 내용이기 때문이다.

가령 3번과 4번, 해고와 징계 문제가 그렇다. 스탁은 칼럼에서 심판도 제대로 못하면 선수처럼 잘리거나 마이너로 내려가야 한다고, 그걸 모두가 알 수 있게 공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또 심판에 대한 징계도 공개적으로 발표될 필요가 있다고 쓰고 있다.

사실 한국 프로야구에서는 시행한지 꽤 오래된 일이다. 프로야구 심판들은 문제가 생기면 2군으로 강등되거나 장기간의 출장 정지 징계를 받는다. 매 경기마다 판정 정확성을 갖고 평가를 매겨 시즌 뒤에는 고과에도 반영한다. 점수가 심각하게 낮을 경우에는 계약 해지 철퇴를 맞을 수도 있다. 2007년 심판들이 집단으로 경기를 보이콧하는 등 강력한 반발을 뚫고 어렵게 도입한 제도다. 반면 메이저리그 심판들은 잘리거나 마이너로 가거나 징계를 받는 일 자체가 극히 드물다. 특히 오심 문제로 마이너로 내려가는 경우는 거의 생기지 않는다. 심판노조가 워낙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기 때문이다.

5번의 인센티브 제안도 마찬가지. 제이슨 스탁은 잘하는 심판에게는 연봉 인상과 시상을 통해 훌륭한 판정을 장려할 것을 권한다. 이 역시 프로야구에서는 이미 하고 있는 일이다. 프로야구는 2009년부터 3단계 심판 등급에 따라 연봉 인상폭이 결정되고 있다. 고과가 좋으면 연봉도 많이 오르고, 고과가 나쁘면 연봉에 손해를 보는 시스템이다. 우수 심판은 연말 시상식에서 상도 받는다. 연차에 따라 연봉이 올라가는 미국 심판들보다는 더욱 잘해야 할 이유가 충분하다.

6번 항목의 이동거리와 일정 문제도 프로야구에선 해당사항이 없다. 스탁의 글에서는 심판들의 힘겨운 이동 스케쥴이 판정에 악영향을 주지 않도록 하자고 권유하고 있다. 미국 심판들은 4인 1조로 비행기를 타고 미국 전역을 이동한다. 장거리 비행을 하다 보면 컨디션은 엉망진창이 되고, 자연히 판정의 정확성에 영향을 미친다. 경기 중에 심판 하나가 지각하거나 부상을 당하면 세 명이서 경기를 진행해야 한다. 그에 비해 한국 심판은 5인 1조로 움직이며, 가장 먼 이동거리래야 4시간 안팎에 불과하다. 경기 시간에 지각하거나 컨디션을 망칠 일은 별로 없다. 심판 하나가 다치면 대기심이 대신하면 그만이다. 미국보다 훨씬 좋은 몸과 마음으로 경기에 임할 수 있는 시스템이다.

판정에 대해 문제제기가 나올 때 해명하라는 7번의 지적도 비슷하다. 프로야구에선 조종규 심판위원장이 필요할 때마다 언론을 상대로 적극적으로 심판부의 입장을 설명하고 있다. 때에 따라서는 심판원 본인이 기자들에게 설명하기도 한다. 가령 얼마 전 '야구교실' 논란이 일었던 최규순 심판위원의 경우, 다음날 경기 전 취재진을 만나 당시 상황에 대해 상세하게 설명하고 의혹을 해소한 바 있다. 스탁의 글에 등장하는 메이저리그 심판 앙헬 에르난데스는 비디오 판독에서 어이없는 오심을 해놓고도 기자의 질문에 답변을 거부했다. 명백히 한국 심판들이 낫다.

심지어 스탁의 제안 중에는 프로야구에서는 너무나 당연하게 여겨지는 내용도 있다. 2번의 '선수 출신들을 채용하라'는 제안이 그렇다. 일반인 출신으로 심판학교를 거쳐 심판이 된 이들이 대부분인 메이저리그와 달리, 한국 프로야구는 심판원의 절대 다수가 프로야구 선수 출신이다. 야구계에서는 이른바 '엘리트' 출신들이다.

뭐가 다를까? 한 전직 심판원은 "야구 경기를 읽는 눈과 순간적인 판단력, 신체적인 능력에서 일반인 출신과는 차이가 크다"고 했다. "비선수 출신이 선수 출신의 경기 흐름을 읽는 능력을 따라잡으려면 4~5년은 걸린다"는 설명이다. 기본적인 자질이 우수한 심판들이 대부분이라 그런지, 미국과 일본에 비해 판정의 정확성도 높은 편이다. 실제 메이저리그 경기를 보면 경기당 2~3차례는 기본으로 나오는 오심이, 프로야구에서는 많아야 한 두 차례에 불과하다. 스트라이크/볼도 비교적 일관된 판정을 내린다. 적어도 류현진 경기에서처럼 한가운데 들어간 공이 볼 판정을 받는 사태는 나오지 않는다.

재미있는 건, 한국야구에선 미국과 반대로 '일반 출신 심판을 늘려야 한다'는 주장이 심심찮게 나온다는 점이다. 엘리트 심판들이 신뢰를 받지 못하고 있어서 나오는 얘기다. 야구팬들은 학연과 지연, 선후배 관계로 엮인 심판들이 과연 공정한 판정을 하고 있는지 의심한다. 후배 감독이나 선수들을 향해 보여주는 권위적이고 고압적인 태도도 문제가 된다. HDTV와 초고속카메라의 등장으로 과거보다 심판의 실수가 자주 눈에 띄면서, '차라리 일반인 심판이 낫겠다'는 말이 나오는 빌미를 주고 있다.

최근 한국야구가 심판 문제로 엄청나게 시끄러웠다. 넥센-LG 경기에서 나온 2루심의 치명적인 실수로 넥센과 그 팬들은 큰 상처를 받았고, 가뜩이나 취약한 심판부의 권위도 땅으로 떨어졌다. 더 큰 문제는, 사람들이 그 오심을 가리켜 '일부러 특정 팀을 골탕 먹이려고 했다' '심판 권위에 도전한데 대한 보복'이라고 굳게 믿는다는 –믿고 싶어 한다는- 점이다. 심판의 자질이나 능력이 아니라, 심판의 신뢰와 공정성이 의심받는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뿌리 깊은 심판 불신이 어느 정도인지 확인한 이상, 오심 논란은 앞으로도 언제 어떤 계기로 다시 폭발할지 모르는 시한폭탄이나 마찬가지다. 이미 팬들에게 국내 심판들은 레너드 코페트가 [야구란 무엇인가]에서 말한 대로 '악당'으로 취급되고 있는 실정이다. 계속해서 이런 일이 반복되면, 나중에는 아예 야구 경기의 정상적인 진행이 불가능하게 될지도 모른다. 심판이 있어야 야구 경기도 성립하기 때문이다.

해결책은 없을까. 물론 오심을 줄이려는 심판들의 노력도 중요하다. 심판진 재교육을 시행하고 자질 없는 심판은 2군 심판으로 대체하는 것도 방법이다. 일각에서 하는 주장처럼 비디오 판독의 확대도 불필요한 마찰을 줄이는 데 어느 정도는 도움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모든 해법도, 결국 심판들이 잃어버린 신뢰를 되찾지 못하면 아무 소용이 없다. 앞서 살펴본 대로 한국야구는 미국야구에서는 아직 시행하지 않는 다양한 방식으로 심판을 관리하고 감시하고 있다. 심판들의 기본적인 자질도 우수하다. 그럼에도 프로야구는 단 하루도 오심 논란이 끊이지 않고, 한번 논란이 불붙으면 온 야구계가 발칵 뒤집히는 난리가 난다. 로봇이 아닌 인간이 심판을 보는 이상, 과학기술의 활용이나 심판에 대한 압박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얘기다.

어쩌면 서두에 언급한 제이슨 스탁의 8번째 제안이 도움이 될지 모르겠다. 스탁은 심판들에게 '사과해도 된다'고 제안한다. 판정이 잘못됐을 때 이를 시인하고 사과하라. 심판도 틀릴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라는 게 스탁이 주장하는 요지다. 그가 제안한 8가지 해결책 중에 한국 심판들이 가장 취약했던 부분이기도 하다. 야구팬들은 카메라상으로 100% 오심을 저지른 심판이 되레 큰 소리를 치고, 항의하는 외국인 선수를 조롱하는 모습을 보며 분개했다. 엘리트 심판 특유의 자부심과 확신이 실수를 인정하기 어렵게 만든 것도 있다. 오심인지 아닌지를 제대로 확인할 수 있는 방법도 없었다.

하지만 이제 초고속카메라가 야구공의 실밥이 미세하게 떨리는 모습까지도 포착하는 시대가 됐다. 아무리 두 눈을 부릅뜨고 최선을 다해 판정해도 카메라의 느린 화면을 인간이 따라잡는 건 역부족이다. 600만 달러의 사나이를 데려다 심판을 보게 해도 오심은 시청자들 눈에 드러날 수밖에 없다. 선수들도 알고, 야구팬도 알고, 심판들 스스로도 다 아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오히려 실수를 했을 때 솔직하게 인정하고 사과하는 편이 낫지 않을까? 권위를 내세우며 우기거나 '오심도 경기의 일부'라고 회피하는 대신, 실수했다고, 심판도 틀릴 수 있다고, 앞으로는 더 신경 써서 판정하겠다고 하는 게 어떨까.

제이슨 스탁은 심판의 사과가 '문제를 크게 개선할 수 있는' 방법이자 '심판의 신뢰를 해치기보다는 오히려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제안한다. 또한 앞의 7가지 제안 중 어느 것도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고 시행하는데 제약이 있지만, 8번째로 제안한 태도(attitude)는 언제든 바꿀 수 있는 부분이라고 이야기한다.

스탁의 말이 옳다. 비디오 판독 도입도, 징계도 심판의 눈을 초고속카메라와 대등한 수준으로 끌어올릴 수는 없다. 그게 인간의 한계다. 하지만 심판이 정말로 공정하게 판정하려고 애쓰고 있다고, 항상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어떤 유혹이나 압력에도 굴하지 않고 소신 있게 판정하고 있다는 '믿음'을 심어준다면. 그들이 때때로 실수를 하더라도 사람들은 훨씬 너그럽게 이해하고 넘어갈 수 있을 것이다. 우리 모두가 직장과 일상생활에서 크고 작은 실수를 하며 살아가기 때문이다.

2년 전 메이저리그에서 '퍼펙트 오심'을 저지른 짐 조이스 심판은 눈물을 흘리며 자신의 실수를 자책했고, 피해를 본 투수에게 진심으로 사과를 건넸다. 역사적인 오심에도 불구하고 심판으로서 조이스의 권위는 실추되지 않았다. 오히려 이전보다 더 큰 존경을 받았다. 그해 ESPN에서 선수들이 뽑은 최고의 심판 1위는 바로 조이스의 차지였다. 최근 프로야구에서 오심 논란이 벌어진 뒤, 다음날 조종규 심판위원장은 넥센 덕아웃을 찾아가 정중하게 사과했다. 박근영 심판 역시 염경엽 감독에게 울면서 사과한 것으로 알려졌다. 과거의 프로야구 심판들에게서는 찾아볼 수 없던 모습이다. 문제의 진정한 해결을 위한 첫 걸음으로는 나쁘지 않은 출발이다. 이번 파문이 심판들이 잃어버린 신뢰와 권위를 되찾는 계기가 될 수 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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