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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의 '공공성', 국가주의 냄새가 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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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박근혜의 '공공성', 국가주의 냄새가 짙다"

[인터뷰] 윤여준 전 장관, 박근혜 정부 100일 돌아보니…

소위 '진영 논리'가 욕먹는 이유는 주관적인 확신에 의거해 보고 싶은대로 세상을 보기 때문이다. 박근혜 정부 출범 100일을 맞아 내놓은 여야의 평가에 접점이 없는 까닭이다.

윤여준 전 환경부장관을 찾았다. '합리와 균형'을 강조하는 그의 시각은 늘 '공방전 정치'와 거리를 둔다. 청와대와 행정부, 국회의원을 두루 경험했고 보수와 진보를 문턱 없이 넘나드는 그의 식견에 대한 신뢰도 작용했다.

박근혜 대통령의 리더십을 물었더니 "대통령의 공적 가치에서 국가주의적 냄새가 난다"고 했다. 이를 "국가주의적 공공성"이라고 했다. 그 누구보다 공적 의식이 투철한 박 대통령이지만 "민주주의 원리와 가치가 내면화되어 있지 않다"는 게 심각한 결점이라는 것이다. 민주주의에 대한 이해를 결여한 지도자의 강한 공적 의식은 되레 위험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경고다.

'윤창중 사태'는 그 단면이다. 윤 전 장관은 이 사태를 보며 "이 정도로 대한민국이라는 다원화된 사회, 제법 덩치가 큰 나라를 어떻게 운영하겠느냐는 의문이 들었다"고 했다.

한반도 관리 능력에 있어서도 박 대통령에 대한 평가는 후하지 않았다. 윤 전 장관은 "이명박 정부보다는 더 균형잡혀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최근 한미정상회담을 보면서 실망을 많이 했다"고 했다. "자기 구상을 미국에 가져가 진지한 대화를 거쳐 의미있는 결과를 만들어 냈어야"하는데 "기대 이하였다"고 했다. 북한과의 대화 의지 역시 "대화 하려고 애썼다는 기록만 남겼을 뿐"이라고 혹평했다.

다만 윤 전 장관은 박 대통령의 경제민주화 의지에 대해선 '유보적 신뢰'를 보였다. 그는 "대통령의 경제민주화 의지가 선거 때보다 많이 후퇴했다고 하지만 여전히 재벌기업의 부조리한 것은 바로잡겠다는 의지가 보인다"며 "그것은 우리가 신뢰해 줘야 한다"고 당부했다.

야권 재편의 핵으로 떠오른 안철수 의원에 대해선 "작년보다 현실감각이 더 생긴 것 같다"고 평했다.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의 합류에 대해서도 "양당 구조는 바뀌어야 한다. 나도 최 교수와 같은 생각"이라고 적극적인 호응을 보냈다.

다음은 윤여준 전 장관과의 인터뷰 전문. <편집자>

▲ 윤여준 전 장관. ⓒ프레시안(최형락)

"윤창중 사태, 누가 이 정부에 책임감을 기대하겠나"

프레시안 : 박근혜 대통령이 취임 100일을 맞았다. 국정 전반에 대한 평가는 이르지만, 평가할 수 있는 분명한 재료가 있는 분야가 있다. 첫째는 인사문제가 아닐까 싶다.

윤여준 : 박 대통령의 인사 스타일은 짐작하건대 '맹목적 충성'인 듯싶다. 벌거벗은 충성이라고 해야 할까. 자신 앞에서 벌거벗은 충성을 보이는 사람을 신뢰한다. 윤창중 전 대변인의 경우, 그를 반대하는 게 사회 공론 수준이었다. 그럼에도 이를 무릎 쓰고 인사를 단행했다. 그렇게 한 것에는 충분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나는 그 이유를 윤창중의 박근혜에 대한 '개인적 충성심'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어떻게 충성했는지는 알 길은 없다. 과거 자신의 아버지가 겪었던 불행을 박 대통령은 보지 않았나. 가장 친한 친구이자 부하에게 배신당했다. 그런 것 때문에 그런지는 모르겠으나, 개인의 충성심을 가장 중요한 기준으로 봤기에 인사가 그렇게 된 게 아닌가 생각한다.

인사를 두고 말이 많은 것은 정부인사는 공직이기 때문이다. 공직은 국가권력을 행사하는 자리다. 그렇기에 인사는 철저히 공적 기준으로 해야 한다. 그러나 중요한 인사가 이뤄지는 과정이 다 베일에 가려 있다. 어떤 의사결정구조로 진행되는지, 인사 결정에 어떤 사람이 참여하는지도 모른다. 이것은 공적 시스템을 무시하는 태도다. 위험하다. 빨리 고쳐야 한다. 게다가 인사에서 이런 참혹한 결과까지 나오지 않았나.

프레시안 : 윤창중 사건은 각인효과가 클 것 같다. 되짚어 봐야 할 건 윤창중 개인의 부적절한 처신은 물론이고 청와대 참모진의 대응, 박 대통령의 사과까지 실망스럽지 않은 게 없었다. 청와대 참모 경험이 있는 윤 장관께선 이번 사건 처리 과정에서 가장 큰 문제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윤여준 : 나는 두 가지라고 생각한다. 하나는 효율성 문제다. 사건이 터진 뒤 청와대에서 이 사건을 처리하는 모습은 위기관리라는 말조차 하기 민망한 수준이었다. 기본적인 것을 무시하는 수준이었다. 청와대 근무를 9년간 해본 내가 볼 때, 기본적인 수준이 안돼 있다. 어처구니없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저 정도로 대한민국이라는 다원화된 사회, 제법 덩치가 큰 나라를 어떻게 운영하겠느냐는 의문이 들었다.

둘째로 책임성의 문제다. 누구도 책임을 안 진다. 엄청난 일이 벌어져서 국민과 국가의 명예에 먹칠을 했다. 이게 홍보수석만 책임져야 하는 일인가. 홍보수석은 부서장으로서 책임을 지는 것이 당연하다. 그러나 홍보수석은 소속부서의 장이지 대통령 비서실을 대표하는 자리가 아니다. 그 기관의 장이 당연히 사과하고 책임져야 했다. 그런데 청와대는 홍보수석을 시켜서 대국민사과를 했다. 홍보수석은 국민에게 사과를 할 직책이 아니다. 국민이라는 존재는 아무 공직자나 나서서 사과한다고 해서 받아주는 존재가 아니기 때문이다.

육군사관학교에서 성폭행 사건이 발생하니 교장이 바로 그만뒀다. 최소한 그 정도 책임의식도 없었다. 대통령을 보좌하는 기관의 장이 그 정도 책임이 없으면 어떻게 그 정부에 책임감을 바랄 수 있겠나. 대통령도 그렇다. 사과를 어떻게 그렇게 하는가. 물론 사안에 따라서는 그렇게 할 수도 있다. 가벼운 사안은 청와대 내부 수석회의에서 사과를 하긴 한다. 처음은 아니다. 하지만 이번 사안은 그런 사안이 아니다. 이것도 미국의 수사를 지켜봐야 하는가.

프레시안 : 또 한 가지 평가를 해볼만한 분야는 대북 정책이다. 박 대통령 취임 전부터 한반도 상황이 불안정했다. 6월 미·중 정상회담, 한·중 정상회담을 지켜봐야 윤곽이 조금 더 드러나겠지만 지금까지 보여준 박근혜 대통령의 대북정책으로 평가해보자면 어떤가. 윤 장관께선 <대통령의 자격>이라는 책에서 우리나라 대통령이 꼭 가져야 할 덕목으로 북한관리 능력을 꼽았는데.

윤여준 : 대통령 선거운동 과정에서부터 인수과정까지 보면 이명박 정부보다는 더 균형 잡혀 있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최근 한미정상회담을 보면서 실망을 많이 했다. 정상회담 직전은 6·25 이후에 가장 군사적 긴장이 있었던 시기 아닌가. 일촉즉발이라고 할 만큼 긴장감이 고조됐다. 서울 주재 외국인들이 고국으로 돌아가는 일까지 벌어졌다. 그렇기에 나는 이런 상황을 바꾸는 전기를 마련하는 회담 결과가 나오기를 기대했다. 그러나 발표 나온 것을 보니 기존의 '압박과 대화' 입장만 반복했다. 달라진 게 없었다. 대화를 한다? 과거에도 대화의 문은 닫지 않았다. 말만 그렇게 할 게 아니라 북한이 대화에 나오도록 조치를 해야 했다. 하지만 그런 게 없었다.

오바마 대통령과 박근혜 대통령은 한반도를 바라보는 인식이 같을 수 없다. 오바마는 세계를 상대로 정치를 하니 한반도 문제는 전체 중 일부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한반도 문제가 최우선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자기 구상을 미국에 가져가 진지한 대화를 거쳐 의미있는 결과를 만들어 냈어야 했다. 물론, 취임 후 정부 인선에만 두 달 걸렸다. 방미 일정 중에는 감기약을 먹으며 주요 일정을 소화했다는 이야기도 들어서 안쓰럽기는 했다. 나도 대통령을 옆에서 모셔봤으니 미국 순방이 힘든 거 안다. 하지만 그래도 아쉬운 것은 아쉬운 거다.

더구나 이해하기 어려운 것은 한반도 신뢰프로세스를 이야기하면서 북한과 대화 없이 어떻게 이것을 하겠다는 것인지에 대한 이야기가 없었다는 점이다. 또 하나는 오바마 대통령의 아시아 회귀정책과 박 대통령의 동북아평화협력구상, 즉 서울프로세스가 시너지 효과를 낼 거라고 했는데 이것을 듣는 순간 나는 이해가 잘 안 갔다. 오바마의 아시아 회귀정책은 동맹을 중심으로 한 중국 견제정책이다. 그러나 박 대통령의 동북아구상은 중국을 포함한 다자안보 정책이다. 이것이 어떻게 시너지 효과를 낸다는 말인가. 또 북한에 핵이 존재하는데 동북아 평화가 가능한가. 혼란스럽다는 생각을 했다.

애쓰고 수고한 사람에게는 미안하지만, 기대했던 것에 비해 기대 이하였다. 윤창중 사건도 터져서 심기가 안 좋았을 것 같지만, 대통령으로서의 국정수행이니까 당연히 냉정하게 평가해야 한다. 윤창중 사건으로 방미 성과가 덮였다고 하지만 덮일 게 뭐가 있나 그런 생각이 들 정도로 실망했다.

ⓒ프레시안(최형락)
프레시안
: 박 대통령은 '미국방문 성과가 미흡하다'는 지적에 '획기적인 제안이 성공한 적이 있느냐, 또 성공할 수 있느냐'고 아주 단호하게 이야기했다. 적극적으로 남북문제를 해결하려는 의지나 구상 자체가 부족한게 아닐까 싶다.

윤여준 : 획기적인 것에 방점을 찍으면 아무 것도 안 된다. 미국에 대한민국 대통령의 생각이 통용이 되지 않으니 설사 획기적인 안을 가져갔더라도 획기적으로 채택되지 않으리라고 생각하는 것은 이해한다, 하지만 획기적인 안을 가지고 가야 조금이라도 변화가 생긴다. 100을 가져가도 60을 얻기 어렵다. 처음부터 '내가 한다고 되겠는가' 이러면 안 된다. 그러면 우리 입장을 미국 입장에 맞추면 된다는 것인가. 대통령은 그렇게 생각하면 안 된다. 획기적인 결과를 내기 어렵다는 것은 누구나 잘 알고 있다. 그런 결과를 내라는 게 아니다. 어떻게 우리가 100을 얻어내겠나.

프레시안 : 결국 북한과의 관계에 있어서 이전 정부보다 전향적인 부분을 기대했지만 여전히 이명박 정부와는 별로 다른 게 없는 듯하다.

윤여준 : 현재까지는 그렇다. 대화에 대한 진정성이 없다. 북한은 한국에서 대규모 군사훈련을 하고 있는 동안에는 우리가 아무리 대화를 하자고 해도 응하지 않는다. 그런데 박근혜 대통령이 개성공단 관련 대화를 하자고 한 게 우리가 군사훈련을 하는 동안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대화를 하자고 하면 북한이 나오겠는가. 그리고 대화 여부에 대한 답변을 하루 만에 하라고 한 것도 문제다. 상대방에 대한 기본 예의가 아니다. 의사결정 시간을 줘야하는 것 아닌가. 악의적으로 해석하면 대화를 하려고 애썼다는 기록만 남겼을 뿐이다. 우리가 대화할 의지가 없었다는 인식을 줄 소지가 있다.

또 통일부에 개성공단 실무회담을 제의하라고 했는데, 다른 것도 아닌 개성공단에 남은 완제품을 가져오기 위한 실무회담을 하라고 했다. 북한이 여기에 응하겠는가. 대화를 통해 풀고, 그 실마리로는 개성공단을 이용하라고 여러 곳에서 이야기했다. 그러면 그냥 대화를 한다고 하면 되지 왜 꼭 완제품을 가져오는 것이라고 단서를 달았는지 모르겠다.

그래도 일말의 기대가 가는 것은 박근혜 대통령이 개성공단을 어설프게 정상화하지 않겠다고 했다는 점이다. 그 어설프다는 게 뭔지는 모르겠으나 이런 부분을 고민했으면 한다. 개성공단은 분단국가의 공단이다. 민족만이 아니라 세계에서도 상징적 모델이다. 그러나 (과거 정부에서) 추진하는 과정을 너무 서둘렀다. 분단국 간 경제모델이라는 것은 남북관계에 흔들리지 않게 해야 했다. 하지만 공단을 만드는 단계에서 서두는 바람에 여러 문제가 존재한다. 개인적으로는 위치 선정이 잘못됐다고 생각한다. 공단은 남북 영토가 반반씩 들어가 있었어야 했다. 그러나 완전히 북한에 있지 않은가. 그렇게 되니 통행하는 데 많은 문제가 발생한다. 북한에 허가를 받아도 들어가는 시간은 그쪽에서 정해준다. 이게 무슨 경제협력인가. 대등한 게 협력이다. 운영되는 것을 보면 북한이 갑이고 우리가 을이다. 이것은 문제가 있다. 개성공단이 저렇게 된 마당이니 개성공단을 정상화하면서 다시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

규모도 더욱 커져야 그 자체로 경제성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있다. 위치의 문제, 운영규모의 문제 등을 검토해서 다시 북한과 이야기를 해야 한다. 다시 철저한 을의 입장으로 돌아가는 게 정상화인지는 모르겠다.

프레시안 : 공단의 위치는 이제와서 재검토하기 쉽지 않은 문제다. 다만 규모의 문제는 당초 설계에 따르면 장기적으로 확장시키는 계획이었는데 이명박 정부에서 중단된 점이 작용한 부분도 있다고 한다. 박 대통령이 이런 일이 재발되지 않도록 하는게 중요하다고 한 말을 긍정적으로 이해한다고 해도, 류길재 통일부 장관이 '우리가 핫바지인가'라는 극단적인 표현을 사용하면서 북한을 자극한 건 개성공단에 대한 정책 방향이 강경론으로 기운게 아닌가 싶은 우려를 갖게 한다.

윤여준 : 그 발언이 보도되는 것을 보고 당황스러웠다. 류길재 통일부 장관은 북한 학자 출신이다. 그런 사람이 이렇게 인내심이 없어서 어떻게 하나 싶었다. 우리는 수십 년 동안 북한과 상대했다. 그러면서 별의별 일을 다 겪었다. 북한 언어습관은 우리와는 다르다. 우리 대통령에게 '역도'라는 말을 얼마나 많이 했나. 그때마다 우리가 발끈해야 하나. 깜짝 놀랐다. 장관이 되더니 인내심이 바닥이 났나 싶었다.

ⓒ프레시안(최형락)
프레시안
: 장관 개인 의견으로만 보기는 어려울 듯하다.

윤여준 : 통일부 장관은 남북 관계를 계속 부드럽게 가도록 해야 하는 자리다. 환경부가 국토해양부와 계속 싸워야 하는 것과 비슷하다. 부처 간 생각이 다른 때가 있어야 한다. 내부 상황은 모르겠지만 통일부 장관이 그렇게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프레시안 : 윤 장관께선 이명박 정부 초기부터 CEO 리더십에 대한 우려를 했고, 불행하게도 그 우려는 현실이 됐다. 요지는 공적 의식이나 민주주의 원리에 대한 이해가 낮다는 것이었다. 상대적으로 박 대통령은 공적 의식에서만큼은 누구보다 투철할 거란 기대를 받았다. 그럼에도 100일이 됐지만 박 대통령 리더십의 장점은 아직 발현이 되지 않고 있는 것 같다.

"박근혜 의식에는 국가주의 냄새가 난다"

윤여준 : 나는 박 대통령을 자세히 아는 사람이 아니다. 언론보도를 통해 접하는 게 전부다. 언론을 통해 보는 박 대통령은 체질적으로 이명박 대통령보다는 공적가치에 대한 이해가 있다고 본다. 청와대에서 아버지 밑에서 배운 것도 있고, 짧은 기간이지만 퍼스트레이디를 대행한 경험도 있다. 공적인 게 몸에 배어 있는 듯하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공적 가치를 몰랐다.

다만 박 대통령의 공적가치에서는 국가주의적 냄새가 난다. 우리사회는 민주주의가 기본이다. 개인의 자유와 권리가 침해되어서는 안 된다는 게 기본이념이다. 전체를 위해 개인이 희생되는 것은 전체주의다. 우리가 일제시대 때부터 군사정권까지 멸사봉공을 얼마나 들었는가. 가끔 박 대통령에게서 국가주의 공공성을 공공성의 가치라고 생각하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내가 느낀 박 대통령은 본인이 규정자라는 태도가 있다. 민주국가의 대통령은 그래서는 안 된다. 공화국은 인민이 다스리는 국가다. 하지만 그게 현실적으로 안 되니 대의제를 선택해 국회의원을 뽑는 것이다. 국회에 정당들이 모여서 대화와 토론을 통해 다수결로 결정되는 게 국민 일반 의사다. 이것에 의해서 국정이 운영되는 게 민주주의다.

박 대통령이 개인 사리를 취할 사람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비리도 없을 것이다. 그 점에서는 전임자와는 다를 것이다. 하지만 국가주의적 공공성에 대한 우려가 있다. 그것에 대해 박 대통령은 굉장히 조심해야 한다. 대통령은 행정부의 수반이다. 법을 고치냐 안 고치느냐는 국회의 권한이다. 그런데 행정수반이 국회에 법을 보내면서 '빨리 고쳐라' 이렇게 한다. 조급한 마음은 이해하지만, 행정부 수반이 입법부 권한을 침해해서는 안 된다. 민주주의가 아니다. 민주주의 원리와 가치가 내면화되어 있지 않은 게 아닌가 하는 우려가 있다. 물론, 민주화세력이었던 김영삼, 김대중도 대통령 되고 나서는 제왕적이라는 말을 들었다. 하지만 우리가 민주화를 이룬지도 25년이 되었다. 이것을 해소하지 않으면 시대에 부딪힌다.

프레시안 : 다른 측면에서 그것을 해소해 줄 수 있는 게 국회, 직접적으로는 집권여당이다. 그런데 지금 새누리당에 청와대에 대한 견제를 기대하긴 어려운 상태다.

윤여준 : 새누리당만 그런 게 아니라 지금 야당인 민주당이 여당일 때도 그랬다. 대통령이 집권여당의 역할에 대한 인식이 부족했다고 생각한다. 정당은 국민의 정치적 의사를 결정하는 헌법적 역할을 한다. 헌법적 기능을 하는 정당이 국회에 모여 각각 자신의 지지 세력의 요구를 관철한다. 물론 관철하는 과정에서 갈등이 발생한다. 이것은 대화와 타협으로 적절한 결과를 도출해야 한다. 하지만 지금까지 이것을 국회가 제대로 못했다. 사회가 이 모양인 것도 정당이 그런 역할을 못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집권여당은 정권을 창출한 당으로써 대통령을 도와 국정운영을 원활하게 해야 하는 역할과 동시에 대통령을 견제해야 하는 역할을 동시에 요구받는다. 둘이 서로 상충한다.

프레시안 : 새누리당은 집권 초기라는 상황론으로 협력론이 우위에 있는 듯하다.

윤여준 : 그렇다면 원칙이 있어야 한다. 그게 없으니 민의를 대변하려 했다가 청와대에서 언질이 오면 바뀌는 게 반복된다. 그러면 국민이 집권당을 집권당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허수아비가 된다. 대통령이 국민과 소통하는 방법에는 국민과 직접 하는 방법 이외에도 집권당이 하는 방법도 있다. 정당조직은 공약을 국민에게 설명하고 지지를 얻는다. 정당조직이 많은 표를 얻으면 선거 때 집권한다. 선거 과정에서 국민에게 공약을 설명할 때 국민에게 들은 것을 대통령에게 전달하는 게 필요하다. 대통령의 가장 중요한 소통창구는 집권당이다. 하지만 대통령은 그것을 모르거나 무시하기에 집권여당을 무기력하게 만든다.

프레시안 : 박근혜 대통령은 당 대표까지 한 사람인데 그래서 더 의아하다.

윤여준 : 해온 분이지만, 취임 이후를 한 번 봐라. 당이 대통령의 통치 도구로 전락했다는 표현까지 나온다. 대통령은 집권당을 활성화해야야 한다. 당과 같이 활동해서 국민과 교감하고 야당과 대화해야 한다. 하지만 안 한다. 이유는 권력을 나눠주기 싫기 때문이다. 대통령은 권력을 나눠주면 되레 권력이 더 커지는데, 이걸 나눠주면 약해진다고 보는 듯하다.

CEO 출신인 이명박 대통령은 민주정치를 낭비라고 생각했다. 자원의 낭비, 정력의 낭비, 시간의 낭비라고 봤다. 그러니 효율성 위주로 갔다. 그렇게 가다가 다 망가진 것 아닌가. 박근혜 대통령은 CEO출신이 아니라 그 정도는 아니다. 하지만 국가주의 공공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대통령이 결정했으면 뭐든 하게 해줘야 한다는 입장이다.

프레시안 : 경제민주화 문제를 어떻게 보나. 경제민주화는 국민적 지지도가 높다. 이를 등에 업을 수 있는 좋은 기회일텐데 박근혜 대통령은 기업 활동을 위축시킨다며 속도조절을 이야기한다. 새누리당도 거기에 보조 맞추고 있다.

윤여준 : 경제민주화는 대통령이 100을 얻겠다고 해도 70을 얻기가 쉽지 않다. 한국사회에서 재벌의 힘이 매우 강력하기 때문이다. 대통령의 권력으로도 쉽지 않다. 재벌 사회의 물적 기반이 워낙 방대하고 강고하기 때문이다. 현실적으로도 국가를 경영함에 있어 재벌 권력의 도움이 필요하기도 하다. 적대적으로 가기엔 어려움이 있다. 그렇기에 대통령의 고충을 이해한다. 그래도 고무적인 것은, 대통령의 경제민주화 의지가 선거 때보다 많이 후퇴했다고 하지만 여전히 재벌기업의 부조리한 것은 바로잡겠다는 의지가 보인다는 점이다. 자신이 대선 때 약속한 것에 비해서는 후퇴했고, 국민 기대에는 흡족하지 않지만 의지는 있어 보인다. 그것은 우리가 신뢰해 줘야 한다. 경제민주화를 일거에 이룰 수는 없다. 대통령의 입장과 고충은 이해해줘야 한다. 대신 야당, 언론, 시민사회 등에서는 경제민주화를 줄기차게 이야기해야 한다. 이야기하는 게 대통령을 도와주는 것이다. 대통령 혼자 힘으론 어림없다. 대통령에게 힘을 줘야 한다.

프레시안 : 재계의 힘은 과거에 비할 수 없을 정도로 커졌다.

윤여준 : 유형, 무형의 압력이 엄청나게 들어온다. 그렇기에 대통령이 마음대로 하지 못한다. 말 못할 고충이 많이 생긴다.

ⓒ프레시안(최형락)

"안철수, 국민 마음에 불을 확 지폈어야 했는데..."

프레시안 : 야당은 앞으로 상당기간 동안 불안정성이 지속될 것 같다. 불안정성의 중심에는 안철수 의원이 있다. 작년 대선 후보 때와 현재 국회의원과 비교해서 변화된 부분이 보이는가.

윤여준 : 대선 이후 직접 대화를 나눈 적은 없다. 그러나 언론보도를 통해 접한 안철수 의원은 작년보다는 현실감각이 더 생긴 듯하다. 대선이라는 짧은 기간에 집약적으로 경험한 것에서 많이 깨달은 것 같다. 또 안철수 의원이 자신에게 하는 쓴소리를 많이 듣는다고 한다. 내가 주목한 것은 그러한 쓴소리를 안 의원이 편안하게 듣는다는 점이다. 작년에는 쓴소리를 하면 안 의원의 얼굴에서 싫은 모습이 역력했다. 그래서 정치하지 말라고까지 했다. 그러나 그 부분이 바뀌었다.

프레시안 : 최장집 교수가 안철수 의원의 싱크탱크 '정책네트워크-내일' 이사장을 맡았다. 어떻게 보나.

윤여준 : 현재의 양당 구조는 기득권을 유지하기 참 편하다. 지게와 지겟다리로 구성된 한자 '사람인(人)' 구조로 서로 기대기 편하다. 이런 구조에서는 한국 정치의 쇄신은 이뤄지지 않는다. 양당 구조는 바뀌어야 한다. 나도 최교수와 같은 생각이다.

구조의 변화는 단기간 혼란이 올 수 있다. 하지만 혼란을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혼란이 두렵다면 지금 한국 정치는 혼란스럽지 않다고 할 수 있나? 새로운 혼란이 무섭다는 이유로 변화를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프레시안 : 최장집 교수는 사회적 약자 등 대의 되지 못한 민의를 대변하는 정당이 필요하다고 했다.

윤여준 : 공감한다. 한국 정치는 독과점 체제와 비슷하다. 그런 점에서 여야 간 큰 차이가 없다고 생각한다. 수많은 사회적 약자를 대변하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정치에 대한 극도의 불신을 갖고 있다. 이것은 정상이 아니다. 이대로는 오래 못 가기 때문에 미리 바꾸자는 것이다. 그래서 약자를 대변하는 정당이 있어야 한다.

프레시안 : 우리 역사에서 보수와 진보를 아우르는 정당을 경험해보지 못한 탓에 안철수 신당의 진로를 섣불리 확신하기 어렵다.

윤여준 : 모든 법과 제도가 거대 정당을 위해서 만들어졌다. 다른 세력이 나올 수 있는 여지가 없다. 하나하나 열어야 한다. 안철수 의원에게 이것은 기본 핵심 과제다. 이당도 싫고 저당도 싫으니까 새로운 세력을 지지해야 하는가. 아니다. 그것을 극복하든지, 통합을 하든지 무엇인가를 내놓아야 한다. 물론 그것은 안 의원도 생각하고 있기에 최장집 교수와 장하성 교수를 모셔다 싱크탱크를 만든 게 아닌가 짐작한다. 그러나 그것을 지금 준비하는 것은 너무 늦은 감이 있다. 지난 대선 때 자신의 새정치를 말했어야 했다. '이런 구상으로 이렇게 하겠다'고 해야 했지만, 그렇게 하지 못했다. 결국 그것은 지지 하락으로 귀결됐다. 출마 선언 후 여론조사에서 민주당 문재인 후보와 오차범위 내에 있었다. 그정도 지지율로는 단일화를 진행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작년에 안철수 의원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대선 출마 선언하는 것을 가슴 떨려하며 기다렸다. 하지만 선언문을 보고 실망했다. 대학 교수라서 그런지 선언문이 세미나 발제문 수준이었다. 감동을 줘서 국민의 마음에 불을 확 지폈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다. 선언을 통해서 국민에게 감동을 준 다음, 그 힘으로 양당 구조를 밀고 새로운 세력으로 나왔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 선언문을 보면서 지난 1년 동안 뭐했나 싶었다.

프레시안 : 야권의 불안정성을 지역적으로 환원하면 호남이 아닐까 싶다. 윤 장관도 얼마 전에 다녀온 걸로 알고 있다. 앞으로 호남지역의 변화에 대해서는 어떻게 예상하는가.

ⓒ프레시안(최형락)

윤여준
: 아주 고무적이고 긍정적으로 생각한다. 2주 전에 광주를 갔었다. 거기서 만난 분들이 전문직종에 종사하는 지식인이었다. 연세도 40대부터 60대였다. 많은 이야기를 들었다. 그분들에게는 이런 생각이 있었다. 그들은 광주가 망월동으로 상징되는 걸 원치 않는다고 했다. 여기서 진화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듯했다. 그러려면 지금까지 가지고 있던 정치태도를 바꿔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왜냐하면 민주당이 이곳에서의 기득권에 안주해 아무것도 못하지 않았는가. 그래서 안철수 의원이 이것을 바꿔주기를 바라고 있다. 정치를 제대로 해주기를 바란다는 것이다. 물론 과연 제대로 되겠느냐는 것에 대한 불안감도 있다. 광주에서 만난 사람들은 내게 '안철수 의원을 어떻게 평가하느냐'고 물었다. 그래서 '나 역시 여러분과 비슷하다'고 했다. 그러자 '그러면 큰일 아니냐'고 하더라. 내가 그들에게 확신을 줘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니 자신들도 혼란스러워하는 듯했다. 호남은 정치에 옛날처럼 참여하면 안 된다고 생각하는 듯했다. 이것은 한국 정치에서는 굉장히 고무적인 일이다.

프레시안 : 안 의원이 호남에서 정치적 목소리를 높인 것은 새로운 세력의 출발이 민주당을 뭉개는 것부터 시작하겠다는 뜻으로 받아들여지기도 한다.

윤여준 : 만약 안 의원이 그런 식으로 하면 호남 사람들이 안 의원을 지지하지 않을 것이다. 민주당을 대체하는 세력으로 정치를 한다면 호남도 금방 알아챈다. 무엇 때문에 안 의원을 호남이 지지하겠는가. 그런 모습이 보이면 안 의원을 밀지 않을 것이다. 호남은 민주당을 대체하는 자기 세력을 원하는 게 아니다. 호남은 고립으로부터 탈피하고 싶은 것이다. 내가 느끼기엔 호남은 고립된 것에 대한 의식을 바꾸고 싶어한다. 한국의 새로운 의식을 끌어갈 세력으로 안철수 의원을 생각하는 것이지, 호남에서 민주당의 대체제로 안철수 의원을 원하는 게 아니다. 안 의원도 그것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민주당, 그 이름과 역사가 아깝다"

프레시안 : 재·보궐 선거나 지방선거 등이 앞으로 있는데, 선거라는 게 현실적으로 힘의 역관계로 비쳐지지 않겠나.

윤여준 : 그런 차원이 아니다. 안철수 의원에 대한 호남의 민심 변화가 어느 수준이고 어느 방향이냐는 것에 대한 고민을 해야 한다는 뜻이다. 단순히 호남만 염두에 두면 안 된다는 이야기다.

프레시안 : 김한길 대표의 말에 따르면 야권이 분열하면 새누리당이 이득을 보는 것 아닌가. 선거라는 현실이 그렇기 때문이다. 이러한 전통적인 공식을 깨기가 쉽지 않을텐데.

윤여준 : 다수당 체제로 가면, 야권이 분열되면 상대적으로 여권이 유리하다는 평가는 산술적이다. 설사 그렇게 해서 여권이 이긴다 해도 그렇게 가야 한다. 국민도 알아야 한다. 야권에서 좋은 후보 내서 경쟁해야 한다. 좋은 후보가 나왔는데 국민이 야권에서 여러 명 나왔다고 여권만 찍겠는가. 야권 단일화가 현실적으로 필요하다며 단일화만 내세우면 새로운 세력은 만들어지기 어렵다. 어느 후보가 좋으냐를 보고 투표하는 형태로 가야 한다.

프레시안 : 보수 진영에서 이탈할 가능성은 어느정도로 보나.

윤여준 : 안철수 의원이 추진하는 신당이 어떤 모습으로 나타나느냐에 따라 다르다. 새누리당에서도 이렇게 당이 나가서 되겠는가 하는 생각을 하는 의원도 있다. 어떤 경로로 새누리당 의원이 됐든, 당이 이렇게 되면 안 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이들이 있다. 그분들은 절망적인 수준이다. 번민하고 있다. 그런 분들이 안철수 신당이 한국 정치가 나아가야 할 길이고 수행할 세력이라고 생각한다면 어떻겠나. 여기저기서 나도 합류하겠다는 말이 나오지 않겠는가.

프레시안 : 민주당의 진로를 어떻게 전망하나.

윤여준 : 그간 민주당이 중요한 역할을 한 것도 많다. 그래서 그런지 지금 보면 그 이름이 아깝고 역사가 아깝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제대로 해주기를 많은 이가 바랬다. 정권교체의 열망이 국민의 60%가 넘었다. 하지만 정권교체를 못했다. 크게 실망했다. 하지만 그보다는 대선 이후에 보여준 모습들이 더 실망이었다. 그러니 지금 당 지지율이 20%로 못 나오고 있는 것 아닌가. 올해 정기국회에서 민주당이 보여줘야 한다. 국민이 지켜본다.

프레시안 : 반전이 가능할까.

윤여준 : 인적 쇄신 없이는 가능하지 않다. 현재 당 지도부가 바뀌지 않았나. 무엇인가 바꿔야 산다는 의식은 있는 듯하다. 그러한 노력을 국민이 긍정적으로 평가해주지 않겠나. 작년 정기국회는 대통령 선거가 있는 해의 정기국회였지만 아무 의제도 만들어내지 못하고 이슈도 끌어내지 못했다. 그런 야당을 이해하기 어려웠다. 이미 선거에서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한 듯했다.

프레시안 : 그래도 현재로서는 새누리당에 비해선 주목받는 대선후보들이 있지 않은가. 손학규, 문재인, 박원순, 안희정 등. 이들을 중심으로 활력이 돌 수도 있지 않을까.

윤여준 : 그들 본인은 냉정하게 되돌아봐야 한다. 자신들이 국민에게 희망을 주었나. 인물수 로 보면 새누리당보다 희망적인 자산으로 본다. 하지만 사람이 많다고 자산이 되는 것은 아니다. 철저히 준비해야 한다. 국민에게 희망을 주는 정치를 해야 하지 않겠는가.

프레시안 : 오랜 시간 좋은 말씀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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