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국회통과가 쉬워보이지 않는다. 곳곳에서 마찰음이 생기고 있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게 통상정책과 교섭권한을 모두 산업통상자원부(현 지식경제부)로 일원화 하는 '정부대표 및 특별사절의 임명과 권한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이다.
지난 달 15일 인수위는 외교통상부 통상교섭본부에게 부여된 통상정책과 통상교섭권한 기능을 산업통상자원부로 이관한다고 발표했다. 단, 외교부의 고유기능인 다자·양자 경제외교 및 국제경제협력 기능은 외교부에 존치시키기로 했다.
또, 기획재정부의 자유무역협정 국내대책 수립 기능도 산업통상자원부로 이관된다. 인수위는 이러한 기능조정을 통해 통상협상 과정에서 실물경제부처의 전문성을 활용하고, 장관이 협상의 주체가 되어 실질적인 협상력을 강화한다는 계획이다. 또, 협상체결 이후 관련 산업 경쟁력 보완 및 피해보상 등의 국내후속조치까지 체계적으로 관리하겠다는 방침이다.
외교통상부가 통상교섭을 주도하면서 정무적 판단이 통상 이슈를 견인한 측면이 많고 산업의 비전문성으로 업계의 불편도 크다는 의견이 이번 조정안에 반영된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 조직 개편을 지휘한 유민봉 국정기획조정 간사는 브리핑에서 "기업의 통상 환경 개선과 통상 교섭 업무의 전문성 강화를 위한 것"이라며 "통상교섭과 통상교섭 이후 국내 대책까지 종합적으로 수행할 수 있기 때문에 우리 국민에게 더 큰 도움 줄 수 있을 것으로 판단한다"고 설명했다.
▲ 김성환 외교통상부 장관이 4일 국회에서 열린 외교통상통일위원회 회의에서 보고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
외교부 "보호무역주의로 선회한다는 오해 일으킨다"
하지만 반발도 만만치 않다. 외교부의 통상교섭 권한 이양이 문제다. 이를 두고 보호무역주의 회귀, 전문성의 부재 등이 거론되고 있다. 그간 통상교섭 기능 이양을 반대해온 김성환 외교통상부 장관은 4일 국회 외교통상통일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해 "다시 한 번 출발점에서 면밀하게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며 "전체 국익을 위해 무엇이 바람직한지가 최우선적인 기준이 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통상교섭을 지경부에서 하는) 산업형 통상조직으로의 회귀는 국제사회에서 한국이 보호무역주의로 선회한다는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며 "우리 수출품에 대한 외국의 수입규제 강화 및 우리 해외투자 기업들의 활동 위축 또한 우려된다"고 밝혔다.
또 그는 "통상교섭 업무를 타 부처에 이관할 경우, 전 세계에 방대한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있는 재외 공관망의 효율적인 활용이 어려워진다"고 설명했다. 일각에서는 외교부가 통상교섭권까지 내 줄 경우, 재외공관장 기능이 약화되는 등 외교력의 저하로 이어질 것이라는 주장도 제기된다.
그는 "캐나다의 경우에도 외교통상부를 2003년 외교부와 통상부로 분리하였으나 유사한 문제점이 제기돼 2006년 다시 외교통상부로 통합했고, 현재까지 유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새누리당 "통상과 산업 합친 나라는 후진국"
새누리당 내에서도 비판의 목소리가 나온다. 통상교섭본부장을 지낸 김종훈 의원은 인수위가 통상정책과 교섭권한을 모두 산업통상자원부(현 지식경제부)로 일원화하기로 한데 대해 "통상과 산업을 합친 나라는 모두 후진국"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후진국은 제조업을 보호하기 위해 산업과 통상을 합치지만 현재 우리나라의 제조업은 보호해야 하는 수준이 아니다"며 "세계시장을 개척해야 하는 제조업을 보호하려고 들면 오히려 경쟁력이 떨어질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또 그는 "(통상교섭본부가 만들어지기 전인) 1993년 우루과이 라운드 협상 당시에도 경제기획원과 외무부, 재무부, 통상산업부 등이 각개 협상을 벌여 혼선이 빚어진 적이 있다"며 "앞으로 통상 관련 최대 현안은 쇠고기와 쌀인데, 이 분야의 전문가는 지경부가 아니라 외교통상부"라고 언급했다.
정병국 의원은 4일 통외통위 전체회의에서 "통상외교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서비스시장, 국가소송제도, 농축산물 등으로, 통상교섭 기능이 제조업 중심의 지식경제부(향후 산업통상자원부)로 넘어갈 때 한계가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전략적 차원에서 보면 통상 부분을 독립시키는 것도 검토해야 한다"며 "미국의 무역대표부를 벤치마킹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의화 의원은 "박 당선인의 철학도 감안해야 하지만 외교통상부가 그대로 있는 게 맞고 필요하면 수정·보완하는 게 맞다"며 "대안으로 국무총리 산하로 해 독립시키는 것도 생각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는 "외교가 이제 겨우 통상·문화와 화합적 결합을 한 만큼 문제가 있다면 보완·수정해야지 골간을 흔드는 것은 맞지 않다"고 했다.
민주당 "정치적 논리가 진행됐다"
민주통합당은 통상 부분을 떼서 산업통상자원부로 가져가는 것을 두고 정치적 논리가 개입됐다고 주장한다. 지식경제부에서 일정 기능을 떼어내 미래창조과학부를 만들다 보니 지경부에 불만이 생길 수 있으니 통상을 떼서 지경부에게 주는 식의 정치적 논리가 진행됐다는 것.
외통위 소속 민주통합당 우상호 의원은 이날 "당장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 과정에서 논란이 된 투자자국가소송제도(ISD) 논쟁도 국가 주권의 행사 범위나 노동·환경 등 다양한 영역에 걸쳐 있다"며 "지경부에서 어떻게 이 문제를 풀 수 있을지 걱정"이라고 말했다.
대기업 위주의 통상이 될 거라는 지적도 제기된다. 통상업무란 기본적으로 수출대기업 등 큰 재벌 계열사 기업들을 지원하는 일을 많이 한다. 이에 외국과의 교섭 때 그 기업들의 이익을 대변하는 교섭을 하는데 치중해 농업, IT, 문화, 서비스업 등 군소업은 소홀히 할 수 밖에 없게 될 거라고 민주당은 주장한다.
통상업무를 산업을 진흥하는 업무를 맡고 있는 주무장관이 하게 될 경우 자연스럽게 그렇게 될 수밖에 없다는 것. 이런 점에서 앞으로 이루어지는 통상교섭에 대해서 '재벌 통상교섭 아니냐' 란 비판이 쏟아질 우려도 크다.
이에 민주당은 총리 소속의 '통상교섭처' 신설이나 현행대로 외교통상부 형태를 유지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우원식 원내수석부대표는 4일 국회 브리핑을 통해 "산업 부처가 통상기능을 담당할 경우 각 분야의 이해 조정이 어려울 수 있다"며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국가 중 외교부형이 6개국, 산업부형이 3개국, 독립형이 22개국, 경제부-외교부 혼합형이 3개국인 점을 보면 최소한 경제부처에 통상을 이관하는 것은 시대착오적"이라고 했다.
반면, 박근혜 당선인은 그대로 강행한다는 방침이어서 향후 국회에서 이것을 어떻게 처리할지 귀추가 주목된다. 박 당선인은 지난 3일 서울 지역 새누리당 의원들과 오찬 자리에서 "통상이 산업 부처로 간다고 딱히 문제될 것은 없다"며 "새 정부가 '부처 이기주의'를 없애고 '부처 간 칸막이'가 안 쳐지게 하면 큰 문제가 없을 것이니 우려하지 말라"라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대통령직인수위 진영 부위원장은 이날 통상교섭과 관련된 정부 대표를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임명할수 있도록 한 '정부대표 및 특별사절의 임명·권한법 개정안'이 헌법과 정부조직법 골간을 흔든다고 지적한 김성환 외교통상부 장관의 발언에 대해 "하나의 궤변이며 부처 이기주의라 하지 않을 수 없다"고 정면 비판했다.
그는 "외교통상부가 당연히 헌법상 권한을 가지고 있고 (정부조직법 개정안처럼) 바꾸면 헌법을 흔드는 것처럼 얘기했다면 헌법에 어긋나는 궤변이자 부처 이기주의"라며 "유감을 표명한다"고 말했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