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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멍 많은 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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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멍 많은 나무

[해림 한정선의 천일우화(千一寓話)]<13>

승자독식의 신자유주의 시대. 무한경쟁과 이기주의라는 담론 속에 갇힌 우리들에게 세상은 배신과 암투가 판치는 비열한 누아르 영화일 뿐이다. 이는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우화(寓話)를 처세를 위한 단순한 교훈쯤으로 받아들이는 근거로 작용하기도 한다. 그러나 아리스토텔레스와 조지 오웰에게 우화는 고도의 정치적 언술이자 풍자였으며, 대중을 설득하는 탁월한 수단이었다. 또 어떤 철학자와 사상가들에게는 다양한 가치를 논하는 비유적 수단이자 지혜의 보고(寶庫)였다.

<프레시안>에서는 <해림 한정선의 천일우화(千一寓話)]>를 통해 우화의 사회성과 정치성을 복원하고자 한다. 부당하고 부패한 권력, 교활한 위정자, 맹목적인 대중. 이 삼각동맹에 따끔한 풍자 침을 한 방 놓고자 한다. 또 갈등의 밭에 상생의 지혜라는 씨를 뿌리고, 아름답게 살고 있고 그렇게 살아가고자 하는 사람들의 바람과 감동을 민들레 꽃씨처럼 퍼뜨리고자 한다. 한정선 작가는 "얼음처럼 차갑고 냉정한 우화, 화톳불처럼 따뜻한 우화, 그리하여 '따뜻한 얼음'이라는 형용모순 같은 우화를 다양한 동식물이 등장하는 그림과 곁들어 연재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한정선 작가는 화가로서 한국미술협회 회원이다. 대한민국 전통미술대전 특선을 수상했으며 중국 심양 예술박람회에서 동상을 받았다. <천일우화>는 열흘에 한 번씩 발행될 예정이다. <편집자>

초겨울 칼바람이 불었다.
구멍 많은 나무가 진저리를 쳤다. 나무는 들판의 언덕에서 태어난 덕분에 비바람에 자주 깎여 많은 구멍을 갖고 있었다.

또 한 번의 회오리바람이 구멍 많은 나무에게 치명적인 상처를 입혔다. 가지들이 부러져 속살까지 드러났고, 휑하게 뚫린 구멍들에서는 진물이 흐르고 있었다.

'봄을 다시 볼 수 있을까.'
구멍 많은 나무는 바람에 맞설 힘을 잃고 가지를 늘어뜨렸다.
나무 둥치가 차갑게 식어가고 있었다.

그때 토끼 두 마리가 나무의 밑둥치로 기어와 훌쩍였다. 쓰러지는 전나무에 한 마리는 어깨를 다쳤고 다른 한 마리는 다리를 다쳐 절룩거렸다.
"우리 둥지가 없어졌어."
"아래쪽 큰 구멍으로 들어가렴. 근데 벽에 진물이 흘러."

날개깃이 부러진 박새도 날아와 울었다.
"도저히 날 수가 없어. 저 구멍에서 쉬어가면 안 될까?"
"하필 바람을 많이 타는 방향이란다."
나무는 박새에게 작은 구멍을 허락했다.
그리고 병이 나서 찾아온 다람쥐도, 오목눈이도, 떠돌이 참새가족도 구멍에서 살게 해주었다.

돌풍의 피해를 입은 동물들이 연이어 찾아왔다.
하지만 이제 나무는 더 이상 내어줄 빈 구멍이 없었다.
'내 아픈 구멍들이 남의 보금자리가 될 줄 몰랐네. 구멍이 더 많으면 좋겠다.'
나무가 혹시라도 남은 구멍이 없나 두리번거렸다.

갑자기 들짐승, 날짐승들의 집이 된 나무는 뒤척임과 울음소리, 앓는 소리들로 보대꼈다.
그러나 지금껏 그렇게 많은 동물들이 찾아온 적이 없었던 나무는 즐거웠다.
나무의 몸이 따뜻해지기 시작했다. 나무가 구멍 속의 짐승들한테 온기를 보내주려고 뿌리를 부지런히 움직이고 있기 때문이었다.

얼마 후, 앓고 난 토끼들이 구멍 밖으로 귀를 쫑긋쫑긋, 다람쥐는 쪼르르 들락날락, 날새들도 날개를 퍼드득 퍼드득, 나무 주변이 부산스러웠다.
구멍 많은 나무는 흉물스런 딱지 허물을 벗기 시작했다.

ⓒ한정선

* * * *

절망
김수영

풍경이 풍경을 반성하지 않는 것처럼
곰팡이 곰팡을 반성하지 않는 것처럼
여름이 여름을 반성하지 않는 것처럼
졸렬과 수치가 그들 자신을 반성하지 않는 것처럼

바람은 딴 데에서 오고
구원은 예기치 않은 순간에 오고
절망은 끝까지 그 자신을 반성하지 않는다.

대선 결과로, 국민들의 가슴에 구멍들이 숭숭 뚫렸습니다. 사람들은 절망이라는 죽음에 이르는 병을 끙끙 앓았습니다.
김수영은 끝까지 반성하지 않는 자신을 노려보며 진실을 규명하고 성찰하라고 말합니다.

구멍 많은 나무는 제 구멍 속에 상처 입은 들짐승, 날짐승들을 품어 안고 힘을 얻었고 자신도 모르게 상처가 나았습니다.
절망은 절망을 통해 모순을 극복합니다.
끝까지 절망하되, 쓰라린 진실과 현실을 알처럼 품어 안을 때, 문득 힘이 소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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