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론스타 문제는 그렇게 적당히 묻어버려도 좋을 만큼 만만한 사안이 아니다. 찬찬히 쟁점들을 짚어볼 필요가 있다. 이에 <프레시안>은 론스타 문제를 집중 조명하는 김익태 변호사의 글들을 게재한다. 김 변호사는 미국 변호사로서 헌법재판소 헌법연구원을 지냈고, 현재 통상교섭본부 민간자문위원을 맡고 있는 이 분야 전문가다. 지난 8월 한미FTA와 ISD 문제를 다룬 <소송당하는 대한민국>이라는 책도 펴냈다. <편집자 주>
[연속 기고 - 론스타] ① "론스타 소송, 패소하면 전 국민이 5만 원인데…" |
약법삼장(約法三章). "살인하면 사형에 처하고 남을 다치게 하거나 남의 물건을 훔치면 죄에 따라 처벌하겠다"는 말이다. 진나라를 멸하고 한나라를 건국한 유방이 진나라 수도를 점령한 후 수립한 법이념이다. 과연 정말로 법이 세 개만 있었을까마는, 적어도 법의 단순화를 통하여 사회의 개혁과 안정을 이루려 했던 당시의 시대정신이라고 본다. 그에 비해, 복잡한 현대사회라지만 요즘은 법이 너무 많다. 내국법뿐만 아니라 외국과 맺은 협정도 넘쳐난다. 투자협정(BIT)은 무엇이고, 자유무역협정(FTA)은 무엇이며 요즘 뜨거운 이슈인 투자자-국가소송제(ISD)는 도대체 무엇인가?
'돌아온 장고' 론스타가 다시 한 번 대한민국 국민에게 ISD 학습을 강제하는 느낌이다. ISD(Investor-State Dispute)는 말 그대로 투자자가 투자 유치국을 상대로 소송(중재 형식이지만 내용적으로 소송과 동일하기 때문에 이유로 소송이라는 표현을 사용한다)을 제기할 수 있게 만든 법적 제도이다. 개인이 타국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다는 것이 국제법 하에서 타당한가 하는 논의는 생략한다. 다만, 유럽인권재판소의 경우처럼 개인이 인권 침해를 사유로 국가를 제소하는 것이 가능한 것은 사실이지만, 인권과 투자가 동일한 법적 가치를 지니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의문을 제기할 수밖에 없다.
ISD는 1960년대부터 식민지로부터 독립한 신생국가들이 구 식민지 자본을 국유화하면서 발생한 자본의 위기감이 그 역사적 배경이다. 안전한 식민지에 마음 놓고 투자했는데 어느 날 이 식민지 국가들이 독립을 하면서 그동안 투자했던 설비와 자본을 모두 국유화해버리니 위기감을 느낀 자본이 미래에 대한 안전장치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한 것이다.
어찌 보면 식민지 지배에 실패한 점령국이 떠나면서 식민지 국가에 자신들이 그동안 식민 지배를 통하여 착취한 부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없이 도리어 그간 투자한 금액에 대하여 보상해 달라고 요구하는 경우라고 할 수 있겠다. 일본 점령군이 35년 동안 우리나라를 지배하다가 제2차 세계대전 패배와 함께 본국으로 도망가면서 그동안 식민지 조선에 투자한 금액을 보전해주길 기대하는 경우와 유사하다.
이러한 역사적 배경 속에서 탄생한 ISD는 자본주의의 성장과 함께 점점 그 면모를 달리하게 되었다. 군사력을 앞세운 식민지 투자가 아니라 신자유주의 하에서 국경을 자유롭게 넘나드는 초국적 성격으로 진화하게 된 것이다. 국경 없는 자본은 전 세계를 떠돌며 투자할 만한 곳을 찾아 냄새를 맡는다. 그러다가 만만한 투자 대상을 찾으면 거기에서 최대한 이윤을 창출하고 이내 또 다른 투자 대상을 찾아 떠난다. 한데, 그 과정에서 문제가 생겨 원금을 까먹거나 이윤 창출이 제대로 안 되면 자본이 투자 유치국에 법적 책임을 묻는 방식이다. 국가 간의 전통적 외교 방식을 통해서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간접수용과 같은 새로운 법적 개념을 통하여 법적으로 해결하게 된 것이다.
ISD 탄생의 역사적 배경
론스타의 경우가 이러한 프레임의 전형적인 예이다. 론스타는 외환위기를 틈타 대한민국에 들어와 헐값에 외환은행을 인수하고 수조 원의 이익을 내고 떠났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추가 이익 발생을 우리 정부가 가로막았다며 ISD를 제기한 것이다. 위의 전형에서 한 가지 예외는, 론스타의 경우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이 중요한 고비마다 한국을 방문해서 유사(類似) 외교적 작용을 했다는 점이다.
ISD는, 론스타 사건의 근거가 되는 한-벨기에 투자협정에서와 같이, 기존의 양자 간 투자협정(Bilateral Investment Treaty, BIT)에도 포함되어 있는 조항이다. 하지만, FTA가 등장하면서 본격적으로 제 기능을 하게 되었다. 2011년 11월 발표된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의 보고서는 BIT-FTA 체결 증가로 2000년 이후 ISD 제소가 급증했다고 분석한다. 자료에서 인용한 유엔무역개발회의(UNCTAD)의 '2011년 세계투자보고서' 도표를 좀 더 자세하게 들여다보면, 1993년까지 그 존재가 미미하던 ISD 소송이 가시권에 들어온 시점은 1994년이며, 급증하기 시작한 때는 1996년이다. 바로 미국이 캐나다와 멕시코를 상대로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을 체결한 시점이다.
<그림 1. ISD 연간 발생 건수 및 누적 건수(1987-2010년)>
▲ UNCTAD, "World Investment Report, 2011" 대외경제정책연구원, "투자자-국가 간 분쟁해결절차(ISD) 관련 투요 분쟁 사례 및 시사점," 2011년 11월 21일, Vol 11, No. 30.에서 재인용. ⓒ대외경제정책연구원 |
NAFTA 제11조에 포함되어 있는 투자자-국가 제소 조항 때문에 ISD 소송이 본격적으로 늘어나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많은 ISD 소송은 국제투자중재재판소(International Center for Settlement of Investment Disputes, ICSID)로 몰리기 시작했다. 1960년대에 개점한 이후 거의 휴업 상태에 있던 ICSID가 갑자기 바빠진 것이다. 앞서 인용한 보고서에서 밝힌 바와 같이, 국제중재기관으로 ICSID, UNCITRAL, SCC, ICC 등이 있는데, 이 중 1966년 세계은행 산하에 설립된 ICSID가 가장 대표적인 중재 기관으로 자리매김하였다.
같은 보고서에서 인용한 UNCTAD 자료에 의하면 2010년 말 현재 ISD는 총 390건이며, 이 중 미국 투자자가 제소한 사건은 109건으로서 약 4분의 1을 차지한다. 하지만, 론스타가 대한민국을 상대로 한 ISD 소송의 경우와 같이, 미국 투자자임에도 한-벨기에 투자협정에 의거하여 벨기에 투자자의 자격으로 옷만 갈아입은 소송까지 포함하면, 실제 미국 투자자가 제기한 ISD는 109건을 상회할 것이다.
과연 그렇다면, 국가 간의 무역기구인 WTO에도 없는 ISD를 미국은 왜 굳이 FTA에서 강조하고 발전시키려 하는가? 답은 미국의 사회구조에서 찾아야 한다. 우리나라와 비교할 때, 미국은 더 전형적인 자본주의 국가이다. 국가의 개입이 최소화되고 모든 것은 시장의 논리에 맡기는 나라다. 하지만 금융위기를 겪으면서 드러난 것처럼 모든 것을 시장에 맡길 수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미국적 자본주의의 특징은 이미 거스를 수 없는 단계에 와 있다.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정부가 국민의 기본적인 복지에 대한 책임을 지고 있음에도 너무 많은 것을 시장에 맡긴다. 이라크전쟁과 아프간전쟁에서도 드러났듯이 국가 간의 전쟁도 민간 전투 용역업체에 맡긴다.
정부가 자본을 통제할 수 없는 지경에 온 측면도 있다. 모든 것을 자본의 논리에 맡기고 정부는 자본의 이익을 보호해주기 위해 존재하는 것 같은 양상마저 보이고 있다. 그 대표적인 것이 바로 ISD이다. 미국의 자본은 월가를 중심으로 발전에 발전을 거듭하여 이제는 전 세계로 뻗어가고 있다. 전 세계의 투자자치고 월가 자금과 연결되어 있지 않은 투자자는 드물다.
전통적으로 해외 투자는 국가가 보호해 주었다. 하지만, 국가가 보호하기에는 이미 덩치가 너무 커졌고 국적도 없어졌다. 해외 투자 자본은 스스로 보호막을 형성하였다. 그것이 ISD이다. 국가는 뒤에서 나머지 할 수 있는 안전망을 쳐주기만 할 뿐이다. 사실, 국가로서도 이게 더 수월한 일일 것이다. 전통적으로 정치적 동맹 관계에 있는 다른 국가에 대해 국가의 이름으로 소송한다는 것은 부담스러운 일이다. 예를 들어 미국이 전통적 우호국인 나토(NATO) 국가들을 제소한다면 이에 따른 정치적 부담도 감수해야 할 것이다. 한데, 개인이 따로 국가를 제소한다면 국가로서는 손에 흙을 묻히지 않게 되는 셈이다.
▲ 론스타 펀드 홈페이지. ⓒ론스타 |
'론스타 건은 한미FTA와 무관' 호도하는 정부
이러한 흐름 속에서 ISD는 발전해 왔고, 론스타가 근거로 삼은 BIT 내의 ISD보다 미국을 중심으로 번지고 있는 FTA의 ISD가 더 진화했다. 투자 개념을 확장하고 미국의 판례법을 이식했기 때문이다. 한-벨기에 투자협정에서 규정한 투자의 정의와 한미FTA에서 규정한 투자의 정의를 비교해 보면 알 일이고, 간접투자의 정의에 관해 한미FTA에 그대로 베껴 쓴 미국연방대법원의 판례를 보면 알 일이다. 이렇듯, 진화한 ISD를 미국은 NAFTA를 통해 한미FTA를 위시한 여타 국가와 맺은 FTA에 집어넣었다.
결과는 지금까지 미국의 예상을 벗어나지 않았다. 자본은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확대해나갔고 견디다 못한 국가들은 ICSID 협약에서 탈퇴하기에 이르렀다. 2007년 볼리비아를 시작으로, 2010년 에콰도르 그리고 2012년에 베네수엘라까지 ICSID에서 탈퇴하였다. 너무 심하게 미국의 예상이 들어맞았다. 하지만 이러한 투자 자본을 미국이 통제할 의사도, 힘도 없는 듯하다. 이제는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혼자서 뛰어다닌다. 그런 와중에 우리는 미국과 FTA를 맺었다.
정부는 론스타 사건이 한미FTA와 무관한 한-벨기에 BIT에 근거했기 때문에 한미FTA의 ISD는 마치 안전한 것처럼 호도하는 경향이 있다. 전술한 바와 같이 BIT의 ISD는 한미FTA의 ISD에 비하면 고전적이다. 좀 오래된 영화지만 <터미네이터>의 1편과 2편에 등장하는 터미네이터의 차이 정도라고 말하고 싶다. 더 심각한 사실은, 한미FTA가 체결된 이후인 2012년에 헌법재판소와 법원에 제소된 론스타 사건의 판결이 자신들에게 불리할 경우, 론스타가 한미FTA를 근거로 ICSID에 제소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렸다는 것이다. 엎친 데 덮친 격인데 마냥 걱정하지 말라고만 말하는 정부의 의도가 무엇인지 궁금하다. 국민들의 알 권리를 무시하는 처사인가? 그동안 당연시되어왔던 비밀주의 정부 행정은 이제 ISD의 과거와 미래에 대한 정보에 있어 투명하게 공개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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