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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자력발전소에서 나오는 빨간 불은 끄는 기술이 아직도 없습니다. (중략) 인간이 이러한 불을 만들었다는 것은 에너지 기술을 만든 게 아닙니다. 인간이 만든 불이라면 끄고 싶을 때 끌 수 있어야죠. 원자력의 불은 켜고 싶을 때 켤 수 있지만 끄고 싶을 때 끌 수 없다는 점에서 빵점짜리 기술입니다. 마음대로 못하는 기술입니다. 따라서 이건 완전한 기술이기는커녕 인간이 의존할 기술도 아닙니다."
원자핵 화학자이자 반핵운동가인 다카기 진자부로 씨가 1992년 5월 도쿄 애린교회에서 진행한 강연 내용의 일부다. 그의 말대로 완전한 기술이라는 건 통제가 가능한 걸 의미한다. 그런 점에서 원전은 미완의 기술임이 분명하다. 원자력 불은 켤 때는 마음대로지만 끄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게 늘 문제를 일으킨다. 체르노빌, 후쿠시마 사건이 발생한 이유다.
사람들에게 잘 알려지진 않았지만 원전에서 다 태우고 남은 찌꺼기, 즉 사용후핵연료도 마찬가지다. 찌꺼기라 하더라도 여전히 인간의 자력으론 끌 수 없는 불로 남겨지기 때문이다. g당 원자핵이 4000번 이상 분열할 수 있으며 열 발생량이 제곱미터당 2KW 이상이다.
그렇기에 한국을 포함한 원자력 발전소를 가동하는 31개 나라는 사용후핵연료 처리 방안을 두고 골머리를 앓고 있다. 여러 방안이 제시되고 있지만 실효성 문제, 그리고 기술적 한계 등에 부딪혀 제대로 실행되는 게 없기 때문이다. 대부분이 중간 저장 시설에 사용후핵연료를 '방치'하고 있다.
▲ 고리원전 1호기. ⓒ연합뉴스 |
사용후핵연료 처리, 어떻게 할 것인가
사용후핵연료 처리 방안은 임시 저장, 중간 저장을 비롯해 이후 재처리와 최종 처분 등으로 나뉜다. 나라에 따라 원전 산업 여건이 따르기 때문에 사용후핵연료 처리에 관한 논의는 다 다르고 진행하는 방향도 제각각이다.
한국은 현재 사용후핵연료를 100% 원전 내 임시 저장 시설에 보관 중이다. 2016년이면 고리원전을 시작으로 포화 상태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정부도 손을 놓고 있는 건 아니다. 지난 20일 김황식 국무총리 주재로 '제2차 원자력진흥위원회'를 개최하고 "2013년 상반기에 공론화를 시작해 2015년 이후 중간 저장 시설 용지를 선정하고 건설한다"는 내용이 담긴 '사용후핵연료 관리대책 추진계획안(계획안)'을 의결했다. (관련 기사 바로가기 ☞ : 10만년짜리 '레알 방사능', MB정부 '나 몰라라')
주목할 점은 중간 저장 시설 용지 선정은 이후 재처리로 가기 위한 일종의 교두보라는 점이다. 한국보다 원자력 역사가 긴 외국 사례를 보면 '임시 저장→ 중간 저장→ 재처리 or 최종 처분' 식으로 사용후핵연료 처리 과정이 이어지기 때문이다. 30~60년 동안 중간 저장 시설에서 보관된 뒤에는 '재처리 뒤 최종 처분' 아니면 곧바로 최종 처분 처리를 해야 한다.
재처리는 사용후핵연료를 화학적으로 처리해 핵연료 물질을 분리 추출하는 기술을 말한다. 이에 사용후핵연료에서 추출된 우라늄을 농축해 재이용할 수 있고, 플루토늄은 혼합산화물(MOX) 연료 가공에 이용할 수 있다. 현재로서는 습식 재처리 기술인 퓨렉스 방식이 대표적 상용화 기술이다.
퓨렉스(PUREX) 방식은 사용후핵연료에서 우라늄과 플루토늄을 추출해 내는 공법이다. '파이로'는 그리스어로 불이나 높은 온도를 뜻한다. 파이로 공정(pyroprocessing)이 500~650도에 이르는 고온에서 이뤄지기 때문에 붙은 이름이다. 사용후핵연료를 질산에 녹인 후 유기 용제를 넣어 우라늄과 플루토늄을 추출하고 그다음에 플루토늄의 원자가를 바꿔서 우라늄과 플루토늄을 분리한다.
퓨렉스 방식의 문제점은 고순도 플루토늄이 분리돼 핵확산 우려가 있다는 점이다. 이 방식을 쓸 경우, 국제사회의 규제를 받게 된다. 현재 프랑스, 영국, 일본 등 일부 국가에서만 제한적으로 쓰이고 있다.
반면, 사용후핵연료를 용융시켜 전기 분해에 의해 초우라늄계 원소(TRU)를 분리 추출해 고속로용 핵연료 제조에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기술인 파이로 공정도 있다. 플루토늄이 분리돼 나오는 퓨렉스 방식과 달리 플루토늄과 우라늄이 뒤섞여 나온다는 점이 다르다. 한국 정부가 고려 중인 공법이다.
한국이 외국에서 진행하는 퓨렉스 공법을 따라하지 않고 이 방식을 준비하는 건 플루토늄만 따로 추출할 수 없기 때문이다. 퓨렉스 공법은 핵확산 우려가 있어 핵무기를 보유하지 않은 나라에서는 사용할 수 없다. 한국은 한미원자력 협정을 개정해야만 이 공법을 사용할 수 있다.
한국은 1997년부터 소규모 파이로 기술을 개발해왔다. 현재 모의 사용후핵연료를 이용한 실험실 규모의 실험에 성공했다. 또한, 시험 가동할 정도인 파일럿 규모의 공정 시설도 확보한 상태다.
▲ 20일 오전 전남 영광군 홍농읍 영광원자력발전소 앞에서 열린 '영광원전 안정성 확보 홍농읍 결의대회'에서 주민들이 집회를 마치고 원전을 상징하는 상여를 끌고 원전으로 진입하고 있다. 홍농읍 주민 500여 명은 이날 집회에서 원전을 부실 관리한 원자력안전위원회 해체, 민간 감시기구 독립, 합동조사단 재구성 등을 촉구했다. ⓒ연합뉴스 |
파이로 공정, 실현 가능하긴 한가?
하지만 이 공법이 제대로 진행될지는 미지수다. 여러 가지가 문제다. 우선 미국 태도가 불투명하다는 점이다. 미국은 파이로 공정이 핵확산 우려가 큰 퓨렉스 공정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본다. 플루토늄이 다른 초우라늄계 원소와 섞여 추출되므로 핵확산 우려를 벗어날 수 있다는 한국 정부 주장에도 미국은 의구심을 떨치지 못하고 있다. 파이로 공정에서 얻은 혼합물로부터 언젠가 플루토늄을 분리해 낼 수 있는 기술이 개발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핵확산 분야 권위자인 프랭크 본 히펠 미국 프린스턴대학 교수는 2005년에 핵확산 저항성 측면에서 파이로 처리공법이 플루토늄을 추출하는 습식 재처리 기술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연구논문을 발표하기도 했다. IAEA, 세계원자력협회(WNA) 등도 파이로 공정을 퓨렉스 공정의 한 방식으로 보고 있다.
설사 미국의 재가가 떨어져도 파이로 공정이 가능할지는 의문이다. 아직 기술적, 경제적으로 상용화 가능성이 완전히 검증되지 않은 공법이기 때문이다. 학계에서는 검증도 안 된 공법을 정부 차원에서 추진하는 건 섣부르다는 의견도 제기된다.
또한, 파이로 공정에서 얻은 핵연료를 사용하려면 소듐 냉각 고속로(SFR)가 필요한 것도 문제다. 비용도 비용일 뿐만 아니라 지역 주민 반발도 만만치 않아 짓기 어렵다.
이런 이유로 미국을 비롯한 일본, 프랑스, 인도 등이 파이로 공정을 연구했지만 아직도 상용화에 접근하지 못했다. 파이로 공정은 미국이 1960년대부터 개발해온 기술이지만 아직까지 제대로 성공하지 못했다.
설사 이 모든 게 다 이뤄진다 해도 사용후핵연료는 최종 처분 처리는 해야 한다. 최종 처분 방식은 지하 깊숙한 암층에 수평 터널을 타서 사용후핵연료를 넣고 밀봉해 생태계로부터 격리하는 것을 말한다. 하지만 이 역시 비용이 많이 들고 지역 주민의 반발도 만만치 않아 쉽지 않다.
"원자력을 유지하기 위해 펼치는 꼼수"
양이원영 환경운동연합 탈핵에너지국장은 "사용후핵연료 재처리는 세계적으로 실패한 정책으로 상업용 재처리 공장은 거의 문을 닫고 있는 상황"이라며 "또한, 재처리 과정에서 핵폐기물 양은 몇 배로 증가하며 주변 환경오염도 급증한다"고 설명했다.
양이원영 국장은 "세계 어디에도 사용후핵연료를 안전하게 처분하는 방법을 찾지 못하고 있어 핵발전을 하고 있는 모든 나라에게서 사용후핵연료의 안전한 처분은 오래된 과제"라며 "하지만 이명박 정부는 사용후핵연료 처분방안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하기도 전에 일방적으로 재처리 결정을 해서 관련 연구개발에 예산을 투여해왔다"고 주장했다.
양이원영 국장은 "정부는 사용후핵연료를 재처리할 기술이 없음에도 이것이 가능하다고 이야기한다"며 "그러면서 기술 개발을 위해 수백억 원의 돈을 쏟아 붓고 있는 게 지금의 정부"라고 비판했다. 양이원영 국장은 "정부가 파이로 공정을 이야기하는 건, 원자력을 유지하기 위해 펼치는 꼼수에 불과하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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