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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품 빼돌려 지은 원전, 공사자가 무섭다며 이사가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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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부품 빼돌려 지은 원전, 공사자가 무섭다며 이사가기도…"

[대선후보들은 모르는 원전의 속살·①] 지을 때부터 문제가 예견된 영광 원전

부산과 울산 사이에 원자력 발전소가 6개나 있는 나라. 그곳에 2개를 더 짓고 있는 나라. 인구 절반이 살고 있는 수도권과 핵단지가 불과 300km 밖에 떨어져 있지 않은 나라. 원자력 발전소 밀집도가 세계 1위인 나라. 바로 한국이다. 그런 나라에서 원전 문제가 하나 둘씩 불거지고 있다. 비리 및 품질검증서 위조와 제어봉 안내관 균열로 운행이 중단된 영광 3,5,6호기, 20일 수명이 완료되는 월성 1호기, 밀양 송전탑 문제 등.

후쿠시마 사태 이후 국내 여론도 원전에 호의적이진 않다. 그래서일까. 대선주자마다 원전 관련 입장을 밝히고 있다. 하지만 원전의 문제점을 본격적으로 거론하는 대선 후보는 아직 없다. 안전하고 값싸다는 원자력의 유혹이 크다. 하지만 원전에서는 크고 작은 사고가 끊임없이 터지고 있다. 다른 에너지에 비해 값이 싸다는 주장에도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프레시안>은 원전 불패 신화에 가려진 원전의 '속살'을 들여다보는 기획을 마련했다. <편집자>

"니들은 여 사람 아니랑가, 뭐 땀시 이리 막아싸코 지랄이여, 어여 비키랑께."

욕설과 몸싸움이 벌어졌다. 경찰의 제지도 소용없었다. '막무가내 밀어붙이기'에는 장사가 없다. 집회를 마친 영광군민들은 영광 원자력발전소 정문 앞에 컨테이너를 설치했다. 성난 민심은 거칠었다. 이들은 영광원전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 이곳에서 무기한 농성을 벌인다는 입장이다.

15일 영광원자력발전소범군민대책위원회는 전남 영광군 영광원자력발전소 앞에서 범군민 결의대회를 열었다. 이날 대회에는 영광군민만이 아닌 광주, 고창 등 인근 지역 시민 2000여 명이 참석했다.

이들이 요구하는 건 두 가지다. 영광원자력발전소 가동을 중단하고 민간인이 참여하는 안전점검을 시행하라는 것. 하지만 정부는 묵묵부답으로 일관하고 있다. 이날 대책위 대표들은 영광원자력발전소 대표와의 면담을 요구했으나 이마저도 거부당했다.

▲ 15일 영광원전 정문 앞에서는 군민 2000여 명이 모인 가운데 범군민대회가 열렸다. ⓒ프레시안(허환주)

사상 초유의 원전 중단 사태

영광 원자력발전소 문제로 전라남도가 들끓고 있다. 영광원전 3호, 5호, 6호기가 고장과 위조부품 사용으로 가동이 중단되는 사상 초유의 일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1995년에 완공된 3호기의 경우 제어봉의 안내관이 균열되는 원전 건설 이후 초유의 고장이다. 세계적으로도 이런 일은 유례를 찾아보기 어렵다. 2002년에 건설된 5호기와 6호기의 경우, 품질검증서가 위조된 부품을 대규모로 사용한 탓에 안전성을 담보할 수 없어 지난 5일 가동을 전면 중단했다.

지식경제부는 "2003년부터 10년간 품질검증서가 위조된 60여 건의 부품이 영광원전 5호기와 6호기 등 5개의 발전소에 사용되었고, 위조한 부품을 납품한 회사를 검찰에 고발했다"고 발표했다. 주목할 점은 위조 부품 5233개 중 98.2%인 5137개가 영광 5호기와 6호기에 집중적으로 사용됐다는 것.

이런 일이 발생한 이유를 두고 몇 년 전까지 영광원전에서 일했다는 영광군 지역 주민 김인수(가명) 씨는 "위조 부품 사용 문제는 먹고 먹히는 관계 때문에 발생했다"고 설명했다. 김 씨는 "원전에서 부품 등을 관리하는 사람들은 업계에선 '슈퍼 갑'"이라며 "납품업체는 자기 회사 부품을 납품하기 위해 이들에게 늘 상납을 해야 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김 씨는 "대략 15% 정도의 이윤이 남아야 납품업체가 운영되는데, 상납은 이를 불가능하게 만든다"며 "그렇다 보니 이윤을 남기기 위해 지금과 같은 가짜 제품을 납품하게 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 씨는 "원전이 필요해서 지었다면 관리라도 제대로 해야 하는데, 지금의 구조는 그것도 불가능하게 한다"고 말했다.

원전 문제, 이미 예견된 일이었다

원전 3호기에서 발생한 제어봉 안내관 균열 문제도 마찬가지다. 구조상 발생할 수밖에 없는 일이라고 지역 주민은 입을 모았다. 노영남 영광군 농민회 전 부회장은 "원전을 지을 당시, 지금 발생한 제어봉 안내관 문제 등 부품 문제를 쉼 없이 제기했다"며 "하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아무도 귀담아듣지 않았다"고 말했다. 노 부회장은 "나중에 반드시 문제가 생긴다고 하면서도 발생하길 바라지 않았는데, 결국 문제가 터졌다"며 말했다.

근거도 상당히 구체적이었다. 주경채 영광군 농민회 회장은 "영광원전을 지을 당시 현장 근로자들이 공사 과정을 이야기해줬다"며 "공사 일정이 빠듯해 제대로 작업하지 않고 그냥 콘크리트를 부은 일부터, 짓는 과정에서 부품을 빼돌리기도 했다는 증언까지 다양했다"고 밝혔다.

주 회장은 "원전을 짓는 공사장 담벼락 근처에서는 늘 '텅텅' 소리가 났다"며 "밤에 몰래 건축자재를 빼돌리는 소리였다"고 설명했다. 주 회장은 "공사를 맡았던 사람은 '부실공사를 했다'고 우리에게 양심고백을 한 뒤, 불안해서 이곳에서 살기 무섭다며 경기도 성남으로 이사를 했다"며 "우리야 그런 사실을 알고도 이곳에서 농사짓고 평생 살아온 사람이라 떠나지 못했다"고 덧붙였다. 주 회장은 "원전 지을 때부터 지역 주민이 제기했던 문제가 지금에서야 수면 위로 떠올랐다"고 말했다.

정부 측 연구원의 양심선언도 있었다. 1999년 10월 13일 국정감사에서 김상택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 책임연구원은 "1989년 울진 1호기의 가압기 살수배관에서 설계에 없는 용접 부위가 발견되었고 1994년 영광 3호기에서 43곳, 4호기에서도 6곳의 용접 부위가 발견됐다. 하지만 울진 1호기는 조사 작업도 벌이지 않은 채 가동에 들어갔다"라고 증언했다.

이어 김 연구원은 원자력 건설 과정에서 발생한 불량 용접과 날림 공사 등에 대해 보고서를 올렸으나 무시됐다고도 증언했다. 설계도면에도 없는 미확인 용접 부위가 수십 곳이며 상부에 보고도 없이 작업자들이 몰래 땜질해버리는 것이 다반사라고 양심선언을 했다. 하지만 이후 이렇다 할 후속조치가 없었다.

ⓒ프레시안(허환주)

"원전 때문에 먹고사니 무슨 말을 하겠냐만…"

지역 주민의 분노는 이 같은 '부실 공사'에만 있는 건 아니었다. 한국수력원자력과 지식경제부에서 사실을 은폐하려는 게 속속들이 밝혀지고 있는 것도 한몫하고 있다. 한수원 등은 이미 올해 3월부터 품질을 검증할 수 없는 부품이 핵발전소에서 사용되고 있음을 내부적으로 확인했음에도 이를 은폐하다가 외부제보가 들어오자 어쩔 수 없이 사건 경위를 밝혔다.

그러면서도 한수원과 지경부는 "사용된 부품이 퓨즈, 스위치, 다이오드 등 소모품이며, 모두 원자로 격납건물 외부에 있는 보조설비에 사용돼 원전의 안전성에는 문제가 없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마저도 사용이 확인된 534개의 부품은 발전소 제어계통에 사용된 것으로 고장 시 발전소가 불시에 정지할 수도 있는 중요한 부품이라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이렇다 보니 지역 주민의 불안감은 점점 커지고 있다.

"원자력 발전소 때문에 먹고사니 무슨 할 말이 있겠어요. 하지만 불안하지 않다고 하면 거짓말이겠죠.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는 TV를 보고 알게 되니 말이죠."

영광 원자력 발전소 인근에서 식당을 하는 김순자(가명) 씨는 이렇게 말하며 한숨을 쉬었다. 김 씨는 "뭐가 어떻게 되는지 알기라도 했으면 좋겠다"며 "모든 걸 쉬쉬하니 답답할 따름"이라고 말했다.

ⓒ프레시안(허환주)
김 씨는 "얼마 전에는 펑 소리가 나서 지진이 난 줄 알고 깜짝 놀라서 밖으로 나왔더니 원전 굴뚝에서 엄청난 크기의 연기가 뿜어져 나왔다"며 "그날 저녁 뉴스를 보니 펑 소리가 났을 때가, 원전을 멈췄을 때였다"고 밝혔다.

김 씨는 "하도 답답해서 원전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밥 먹으러 올 때, 뭔 일이 있느냐고 물어봤지만 '알면 다친다'며 모두 함구하고 있다"며 "이러다가 무슨 일이 발생해도 대피도 못하고 피폭되는 게 아닐까 하는 두려움도 있다"고 말했다.

이런 생각은 원전 인근인 홍농읍에서 택시업을 하는 김광수(43) 씨도 다르지 않았다. 김 씨는 "모두 원전 때문에 불안해하는 게 사실"이라며 "자꾸 숨기려고만 하니 지역 주민의 불안감은 커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영광군에서 옷 가게를 하는 박인섭(39) 씨는 "솔직히 말해 영광군 지역 경제를 돌아가게 하는 게 원자력 발전소라는 걸 부정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라며 "지역 농민을 제외하고는 이미 만들어진 원전이 운영되어야 한다는 것에 다른 의견을 갖는 이는 거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 씨는 "하지만 지금 사태를 보면 정부는 문제를 은폐하려 급급하다"며 "필요해서 지었다면 관리를 잘해야 하고, 그러지 못했다면 이를 인정하고 어떻게 개선할 것인지를 주민에게 이야기해야 하는데 덮어놓고 아무 문제가 없다고만 하니 분노할 수밖에 없는 것 아닌가"라고 설명했다. 박 씨는 "이러다가 무슨 사고라도 생기면 지역 주민 모두가 있던 원전도 없애라고 할 판"이라고 덧붙였다.

늘리기만 하는 원전, 하지만 안전관리는?

한국은 원전 강국이다. 전력생산에서 전체 전력 중 원전이 차지하는 비율은 34%다. 세계 4위다. 설비 용량은 세계 6위다. 게다가 이명박 정부가 2010년 발표한 제5차 전력수급 기본계획을 보면 2024년까지 발전량 전망을 48.5%로 대폭 확대할 예정이다.

하지만 영광원전에서 알 수 있듯이 제대로 관리가 이뤄지고 있는지는 미지수다. 무턱대고 원전만 늘리고 있는 모양새다.

양이원영 환경운동연합 탈핵에너지국 국장은 "이번 짝퉁 부품과 중고 부품 납품 비리가 밝혀진 것은 외부제보로 인한 것"이라며 "즉, 한수원 내부나 한국원자력기술원, 한국원자력안전위원회의 검증 시스템으로는 찾아내지 못한 것"이라고 말했다.

양이원영 국장은 "이번 품질검증서 위조 건 역시 비리와 연관되어 있을 것으로 보인다"며 "품질 검증서를 위조한 값싼 부품을 공급하기 위해 기제가 작동하기 위해서 비리는 필연적일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양이원영 국장은 "결국, 국민의 생명과 직결된 핵발전소 안전문제를 책임 있게 점검할 주체가 없는 셈"이라며 "이런 문제는 영광원전에만 국한되지 않고 다른 지역 원전에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근본원인이 어디에 있는지 찾아내고 총체적인 핵발전소 안전점검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프레시안(허환주)
ⓒ프레시안(허환주)
▲ 원전 정문 앞에 컨테이너를 설치하려 차량이 진입하자 경찰이 이를 막았다. ⓒ프레시안(허환주)
ⓒ프레시안(허환주)
- 후쿠시마를 기억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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