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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준하 사건이 해결되지 못한 진짜 이유는…

[전태일 통신]<96> 의문사 진상규명위 전 조사관 고상만 씨 인터뷰

권력이 사람을 죽이거나 누군가의 죽음을 은폐하는 것은 역사 책 속에서만 볼 수 있는 일이 아니다. 37년 만에 세상 밖으로 나온, 누구보다도 진실하고 모범적인 삶을 살았던 한 사람의 유골은 우리가 원하지 않는 가혹한 진실을 알려준다.

독립군이었으며 유신체제에 맞서 싸우던 '진짜 보수' 장준하. 산에서 추락사했다는 그의 시신은 흙먼지에 뒤엉킨 상처 하나 없이 깨끗했고 유일한 목격자라는 사람의 주장은 입을 열 때마다 변신을 거듭했다. 그리고 우연히 모습을 드러낸 유골에는 그의 '추락사'한 시신만큼 깨끗하게 뚫린 지름 6cm의 원형 구멍이 있었다.

지난 8월, 그의 유골이 세상에 나온 후 언론들은 그의 죽음을 둘러싼 의문점들을 알리기 위해 노력했다. 사건 정황이나 유골의 타격흔을 분석한 기사를 내보내고 가족들, 유일한 목격자라고 알려진 김용환을 인터뷰했다. 그리고 이런 노력들의 중심에는 대통령 소속 의문사 진상규명위원회 전 조사관, 고상만이 있다. 지난 2002년 의문사 진상규명위원회에서 장준하 사건을 만난 후, 그는 사건에 대해 누구보다도 많은 자료를 접하고 또 연구해왔다.

장준하 사건을 만나기 전, 그는 천주교 인권 협의회와 유가협(전국민주화운동 유가족 협의회)등 여러 단체에서 인권운동을 했다. 그러면서 그가 만난 의문사 사건들만 150여건, 다른 단체의 사람들도 죽음과 관련된 일이 생기면 자료를 가지고 그를 찾아 왔다. 한마디로 그는 '인권계의 강력반'이었던 것이다.

권력이 만들어낸 평등하지 못한 죽음들과 함께 싸우는 사람, 대통령 소속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전 조사관 고상만을 만났다.

▲ 장준하 유골. ⓒ장준하기념사업회

모든 의문사는 공권력의 문제

김다은 : 조사관이라는 직책이 독특하다. 조사관이 된 특별한 계기가 있는가?

고상만 : 대학에서 학생운동을 했다. 그런데 2학년이 되던 1990년에, 같이 학생운동을 하던 총학생회장 김용갑이 의문사를 당했다. 2시간 30분 동안 실종되었던 그가 거리에서 시신으로 발견된 것이다. 22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나는 그 사람이 실종된 시간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 여전히 모르고 있다. 그 때 나는 정말이지 죽을 듯이 울었다. '그는 죽고 나는 살았다'는 살아남은 자의 고통도 있었지만 어떤 양심의 문제도 있었다. 그 후로도 운동을 떠나지 못하게 한 게 바로 그 '양심'이다. 훗날 유가협(전국민주화운동 유가족 협의회), 천주교 인권 협의회 등에서 일하면서 수많은 '억울한 죽음'들을 그냥 지나칠 수 없게 된 것도 바로 그 때문이다.

김다은 : 장준하 사건을 맡기 전에도 150여 개의 군 의문사 사건을 다뤘다고 들었다. 솔직히 그 숫자만 듣고도 많이 놀랐다. 이렇게 많은 의문사 사건은 왜 일어난다고 생각하는가?

고상만 : 판문점 김훈 중위 사건(타살 정황이 분명히 있는데도 자살처리된 군 의문사 사건), 외대 남현진 사건(총학생회장이었다 군대에 간 후 1년 만에 의문사 당함.) 구로 사채업소 피살사건, 이만식 청부살인사건 등 많은 의문사 사건을 다뤘고, 일부는 현재도 하고 있다. 그런데 왜 의문사가 일어나느냐, 이것 하나만 짚고 가겠다. 의문사라고 하는 것은 정말 간단한 문제다. 유족이 공권력의 발표에 동의하지 못하는 것이다. 이 사람이 교통사고로 죽었습니다, 했을 때 거기에 유족이 동의하면 그건 의문사가 아니다.

하지만 이 사람은 차를 끌지 않는 사람인데, 평소 술을 마실(음주운전을 할) 사람이 아닌데 하는 의문이 나올 수 있다. 이런 의문들을 규명해 주지 않고, 유족이나 이해관계인의 동의 없이 사망을 처리해 버리는 것, 그게 바로 의문사다. 혹은 자살처리가 된 사건에는 누가 괴롭혔거나, 폭행을 가했거나 등의 이유가 있을 텐데 그것을 규명해 주지 않고 끝내 버린 사건도 의문사다. 결국 의문사를 만드는 것은 이런 규명에 힘쓰지 않는 '친절하지 못한 공권력'이다. 모든 의문사는 결국 권력의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의문사는 사실 힘없는 사람들이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김다은 : 모든 의문사가 권력의 문제이고 그 배경에 '친절하지 못한 공권력'이 있다면, 공권력은 어떤 이해관계 때문에 친절하지 않은 것인가?

고상만 : 어떤 이해관계 때문이라기보다는 그게 질서 유지를 위해 최선이라고 생각해서다. 그 질서유지라는 것은 권력을 가진 어떤 한 사람을 지키는 것 일수도 있고 또 다른 경우도 있다. 예를 들어 내가 천주교 인권 협의회에서 판문점 김훈 중위 사건을 조사할 때, 그 사건을 캐면서 150여 개의 의문사 사건이 나왔다. 한 개가 터지면 그 전에 숨겨져 왔던 다른 것들까지 발견되는 거다. 그런데 권력을 가진 사람들은 그게 혼란을 일으킨다고 생각하니까 애초에 어떤 것도 인정하려 들지 않는다.

그런 이유 때문에 국방부에서는 아직까지도 김훈 중위 사건에 대해 자살이라고 우긴다. 그런데 그게 그 사람들이 정말 자살이라고 생각해서가 아니라는 거다. 어떻게 생각하면 의문사가 더 이상 일어나지 않는 것은 권위주의가 무너졌을 때만이 가능한 게 아닐까. 장준하 사건 역시 마찬가지다. 아직까지 해결되고 있지 않은 이유 중 한 부분은 국가정보원의 권위주의 때문이다. 너희가 뭐라고 감히 대한민국 최고의 정보기관 문서고를 들어와, 하고 자료제공을 막고 있지 않은가.

모든 언행이 일치한 장준하 선생

김다은 : 의문사 사건들을 다루면서 해결된 것도 있고 그렇지 못한 것들도 있을 텐데, 한 사람의 죽음에 얽힌 사연을 밝혀내고 나면 어떤 기분이 드나?

고상만 : 한 사람이 죽었다. 그런데 그 죽음의 진실을 밝혀내고 나면 조사관인 나 자신을 떠나서 고인이, 또 유족이 행복할 것이냐. 글쎄, 몰랐을 때는 몰랐기 때문에 고통스러운데 그 진실을 다 알고 나면 알기 때문에 또 고통스럽다. 그래서 그 아픈 사람들을 보면 나도 같이 아프다. 나는 그 아픈 사람들의 회복과 치유를 위한 국가 차원의 기관이 있었으면 좋겠다. 여기서 그 아픈 사람들이란 범죄 피해자들이나 억울한 인권 침해의 피해자들을 말한다.

예를 들면 용산 참사나 쌍용 자동차 유족들은 너무나 고통 받고 있는데 민간 차원의 '와락'같은 심리 치유 프로그램 같은 것들이 있을 뿐, 국가 차원의 노력은 아무 것도 없다. 국가가 정말 복지를 이야기한다면 밥 한 그릇 더 주고 하는 물리적인 것들에만 집중할 게 아니라, 이런 아픔에 대한 심리적 치유에도 힘을 써야 하지 않을까.

김다은 : 보수언론은 장준하 사건 때문에 목격자 김용환을 살인자로 몰아가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모 인터뷰에서 목격자 김용환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하지 않았나. 그가 정말 거짓말을 했다면, 유신정권도 끝난 상황에서 그 오랜 세월동안 거짓말을 하는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고상만 : 이것만은 확실히 해두겠다. 나는 그가 '거짓말쟁이'라거나, '거짓말을 한다'라고 말한 적은 한 번도 없다. 기자가 제목을 그렇게 뽑았을 뿐이다. 나는 그의 진술이 일관되지 못하다고 했다. 그리고 내 생각에 그는 거짓말 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그것이 진실이라고 '믿을' 뿐이다. 나는 누구보다도 김용환의 인권을 존중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장준하 사건이 더더욱 규명되었으면 하는 점도 있다. 김용환은 이미 논란의 중심에 서 버린 사람인데 그는 자꾸 모든 것에 대해 아니라고 한다. 그가 정말 장준하의 죽음과 관련이 없다고 말하고 싶다면, 그에게도 그것을 증명해낼 기회를 제대로 줘야 하지 않겠는가.

김다은 : 장준하라는 인물에 대해 개인적으로 어떻게 생각하는가?

고상만 : 누군가의 의문사를 조사하게 되면 고인의 모든 것을 다 보게 된다. 그 사람에 대한 좋은 얘기든 나쁜 얘기든, 혹은 가리고 싶은 얘기든 모든 것을 다 본다. 그 사람을 욕하는 사람, 칭찬하는 사람 다 만나기 때문이다. 또 이 사람이 안방에서는 이렇게 얘기해놓고 장충당 공원 유세에서는 이렇게 얘기했더라 하는 것들까지 다 알게 된다. 그런데 장준하는, 모든 언행이 일치했다. 안방에서 한 얘기나 장충당 공원의 수만 명 앞에서 한 얘기나 똑같았다는 말이다. 그는 또 모든 사람에게 공평하고 따뜻했던 사람이다. 그래서 나는 이 사람을 존경한다.

김다은 : 박정희와 유신정권이 죽인 사람이 사실 한 둘이 아니지 않나. 그런데 유독 장준하 사건이 큰 이슈가 되는 이유는 뭐라고 생각하나?

고상만 : 장준하는 이념적으로 철저히 보수에 속하는 사람이었다. 남로당 출신의 박정희를 오히려 '빨갱이'라고 욕하던 사람이었으니 오죽했겠나. 박정희는 '이념' 문제를 뒤집어 씌워 사람을 죽인 일이 많았다. 그래서 안타깝게도 전 세대의 일반인들에게는 그런 문제에 대해서는 그저 그러려니, 하는 인식도 있을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장준하는 철저한 보수주의자였고 유신정권 시절에 불의에 맞서 싸운 국회의원이었다. 그런 사람의 죽음이기 때문에 더 이슈화 되는 점이 있다고 본다.

보수, 기존 질서를 지키는 건데…

ⓒ연합뉴스
김다은
: 박근혜 후보가 이 사건에 대해서 진짜 현명하게 대응하려면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한다고 생각 하는가?

고상만 : 국가보안법에도 간첩인 부모를 신고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죄가 되는 조항은 사라졌다. 딸로서 아버지의 과오에 대해 눈감고 싶은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하지만 그는 평범한 한 개인이 아니지 않은가. 박근혜는 지금 한 나라의 대통령이 되겠다는 사람이다. 그렇다면 한 아버지의 딸로서 남는 것보다는 이 나라를 위해 진짜 좋은 것을 택해야 한다. 아버지의 잘못을 덮어두고 싶은 것은 이해하지만 정말 그렇게 할 거라면 대통령 선거에 나오지 말고 그냥 한 아버지의 딸로 남았으면 좋겠다.

김다은 : 보수 언론 측에서 '민주당은 장준하 의문사 규명을 대선 뒤로 늦춰야 한다고 주장하는 성숙한 자세를 보여라'고 이야기 하는 걸 봤다. 이 의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고상만 : 사실 이 사건 자체를 자꾸 대선과 연관시키려고 하는 것은 오히려 그들이다. 유골이 하필이면 이 시기에 나온 것은 이 인터뷰에서 다시 말하기가 입 아플 정도로 우연이 아닌가. 지난해 묘소가 수해를 입어 옮길 곳을 물색하던 참에, 마침 파주시에서 이장 장소를 제공해 이장하는 과정에서 유골이 나온 거다. 그런데 유골을 이장할 때 뼈가 공기에 닿았다. 지금 빨리 조사하지 않으면 산화되어 진토가 되어버릴지 모른다. 이렇게 한시가 급한 상황에서, 규명을 대선 뒤로 늦추니 어쩌고 하는 말을 하는 것은 정말 유치한 태도라고 본다.

김다은 : 전에 한 인터뷰에서 김희숙 여사 집에 직접 찾아가서 직접 녹음테이프를 찾았다는 이야기를 하면서 '있는 걸 있다고 확인하는 것만큼 없는 걸 없다고 확인하는 것도 조사관의 중요한 자세'라고 했다. 그것 말고 본인이 생각하는 조사관의 중요한 자세가 있다면 핵심적인 것 몇 가지만 말해 달라.

고상만 : 조사관은 우선 편견이 없어야 한다. 너무 쉽게 단정하지 말고 끊임없이 의심하는 게 중요하다. '왜'라고 하는 것이 일상어가 돼야 한다는 말이다. 나는 왜 이렇게 의심 하냐는 항의를 받을 때까지 의심한다. 그래서 어떤 때는 대화상대가 이렇게 말한다. '제가 이야기하는 걸 왜 이렇게 못 믿습니까?' 그러면 내가 말한다. '선생님을 믿었으면 여기 왜 만나러 왔겠습니까. 저는 의심하려고 만나는 거고 선생님은 제가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말을 계속 해주셔야 하는 겁니다.' 하고. 제 3자의 의견들, 증거들을 모두 종합하여 '그는 결백하다'는 결론이 나올 때까지 나는 '왜'라는 질문을 멈출 수가 없다.

나는 '왜'라는 질문을 하라고 이 직책을 받은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은 '조사관=왜'이다. 그것 말고 또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사건과 대화하는 것이다. 내가 맡은 사건을 짐으로 생각하는 게 아니라 살아 있는 것, 현재 진행형으로 생각하고 끊임없이 대화해야 한다. 장준하 선생 때도 나는 그의 사진과 끊임없이 대화했다. 그를 단순히 역사책 속의 인물이나 과거의 인물이 아닌, 살아있는 사람처럼 느끼고 그의 절망, 분노 모든 것을 함께 체험하는 것. 그것이 나의 원칙이다.

김다은 : 당신은 장준하라는 이 한 인물의 죽음과 관련해, 가장 많은 자료를 접하고 연구해왔다. 그만큼 한 인간으로서, 여러 가지 생각을 많이 했을 것 같다. 중요한 것 하나만 말해 달라.

고상만 : 이런 생각을 했다. 만약 장준하 선생이 그 때 그렇게 돌아가시지 않고 살아 있었다면, 우리나라의 보수 세력이라는 것이 지금처럼 이렇지는 않았을 거다. 지금 우리 사회에는 제대로 된 보수가 없다. 장준하 선생이 월남전, 부도덕한 삼성 사카린 밀수 사건 등을 비판했던 것들이 바로 진짜 보수가 해야 됐던 일이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그게 아니고 미국의 부도덕한 요구에 대해 무조건 따르고 그들이 사라고 하는 무기들을 그대로 다 산다. 또 독도 문제에 대해서도 정략적으로 이해하고 판단한다.

보수라고 하는 것은 기존 질서를 지키고 전통적인 것들을 사수하는 것이다. 즉, 따뜻한 인간미를 기초로 하는 것이다. 진보가 오히려 부수고 새로 만들자는 주의고 보수는 그래도 사람이 먼저라는 주의다. 그게 진짜 보수여야 한다. 설령 조금 손해 보는 게 있더라도 한 사람의 생명을 구하고 보자는 게 진짜 보수가 가져야할 태도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그게 거꾸로 되어 있다. 있는 사람을 더 잘살게 하고 권력이 센 놈을 지키는 게 보수처럼 되어있다, 이 말이다. 장준하 선생이 살아 있었다면 이 땅에서도 제대로 된 보수주의자들을 볼 수 있지 않았을까.

장례를 치르지 못하는 시신만 20여구

원래 인터뷰의 마지막 질문은 '장준하 사건을 만나고 당신의 인생은 어떻게 바뀌었나'였다. 그런데 이 질문은 누락되었다. '바뀐 것 없다. 장준하 사건으로 내 인생이 바뀔 게 뭐가 있느냐.' 단호한 그의 대답 때문이었다. 장준하 사건 외에, 그가 최근에 가장 관심 갖는 것은 여전히 군 의문사 문제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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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살이면 왜 자살 했는지 그 원인을 규명해야 한다. 정말 국방부의 발표처럼 심신미약, 군 생활에 적응하지 못해서 그랬다면 그런 아이들은 미리 정신 검증을 해서 걸러내야 할 것이 아닌가. 20년 넘게 힘들여 기른 자식을 국가가 필요로 한다 해서 군대에 보냈는데, 시신으로 돌려받은 부모의 심정이 어떻겠는가. 그런데 국방부에서는 그들의 죽음을 문서에 '손실'로 표기한다. 물건 하나가 없어졌을 때 쓰는 것과 똑같은 표현이다."


식당에서 밥을 먹다 나온 이야기였다. 이 이야기를 마친 그는 숟가락을 놓고는, 눈시울을 붉히고 눈물을 흘렸다. 그 자신도 스무 살짜리 아들을 둔 아버지 고상만, 대화 중 그가 군인들을 칭한 말은 '사람들'도 '그 분들'도 아닌 '아이들'이었다.

그 죽음의 원인을 규명하지 못해 20년 넘게 장례도 치르지 못한 채 냉동돼 있는 시신만 전국에 20여구. 군의문사 문제는 사람들의 미지근한 관심도에 비해 훨씬 심각하다. 이번 국정감사동안 밝혀진, 국적변경으로 병역의무를 피한 고위 공무원의 아들이 33명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이 현실은 더욱 씁쓸하게 다가온다. 때문에 장준하 사건 뿐 아니라 군 의문사 문제도, 고상만에게는 중요한 사안이며 현재 진행형이다.

앞으로의 계획을 묻는 말에 그는 자신의 경험을 담은 책이 출간될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그가 다룬 판문점 김훈 중위 사건은 여배우 문채원이 조사관인 그의 역할을 맡아 영화화 될 예정이다. 어쩌면 오늘 저녁에도 그에게는 누군가와의 인터뷰 약속이 잡혀 있을지 모르겠다. 정의가 살아있는 나라를 만들기 위해, 그는 요즘 아주 바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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