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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장미와 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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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장미와 벌

[해림 한정선의 천일우화(千一寓話)]<10> 안철수와 문재인을 위한 헌정우화

승자독식의 신자유주의 시대. 무한경쟁과 이기주의라는 담론 속에 갇힌 우리들에게 세상은 배신과 암투가 판치는 비열한 느와르 영화일 뿐이다. 이는 오늘날 많은 사람들에게 우화(寓話)가 처세를 위한 단순한 교훈쯤으로 받아들이는 근거로 작용하기도 한다. 그러나 아리스토텔레스와 조지 오웰에게 우화는 고도의 정치적 언술이자 풍자였으며, 대중을 설득하는 탁월한 수단이었다. 또 어떤 철학자와 사상가들에게는 다양한 가치를 논하는 비유적 수단이자 지혜의 보고(寶庫)였다.

<프레시안>에서는 <해림 한정선의 천일우화(千一寓話)]>를 통해 우화의 사회성과 정치성을 복원하고자 한다. 부당하고 부패한 권력, 교활한 위정자, 맹목적인 대중들. 이 삼각동맹에 따끔한 풍자침을 한방 놓고자 한다. 또 갈등의 밭에 상생의 지혜라는 씨를 뿌리고, 아름답게 살고 있고 그렇게 살아가고자 하는 사람들의 바람과 감동을 민들레 꽃씨처럼 퍼뜨리고자 한다. 한정선 작가는 "얼음처럼 차갑고 냉정한 우화, 화톳불처럼 따뜻한 우화, 그리하여 '따뜻한 얼음'이라는 형용모순 같은 우화를 다양한 동식물이 등장하는 그림과 곁들어 연재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한정선 작가는 화가로서 한국미술협회 회원이다. 대한민국 전통미술대전 특선을 수상했으며 중국 심양 예술박람회에서 동상을 받았다. <천일우화>는 열흘에 한 번씩 발행될 예정이다. <편집자>


벌 한 마리가 들판에서 꽃가루를 찾아다녔다.
들판은 가뭄이 들어 마른 바람에 흙먼지가 날리고 있었고, 화분을 털린 들꽃들은 희부연 먼지를 뒤집어쓴 채 한숨을 쉬고 있었다.

벌은 온종일 들판을 헤매다 언덕에 주저앉았다.
언뜻 벌의 눈에 하얀 들장미가 들어왔다. 벌은 벌떡 일어나 눈을 비볐다.
"넌 정말 깨끗하구나."
단숨에 달려간 벌이 청초한 들장미를 보고 감탄했다.

"다른 들꽃들도 먼지가 끼었을 뿐 본래는 깨끗해. 진드기들이 달라붙는 내가 더 더러울지 몰라. 더구나 난 가시도 있어."
들장미가 몸에 솟은 붉은 가시들을 부끄러워했다.
"함부로 쓰진 않지만 나도 독침을 갖고 있는 걸. 여하튼 넌 겸손하기까지 하구나."
벌의 칭찬에 들장미가 웃었다.

"맘껏 담아가렴."
들장미는 오므렸던 꽃잎을 벙긋 열었다.
"똑같은 물을 먹고 어쩜 넌 이런 황홀한 향기를 뿜어낼 수 있을까? 대단해."
벌이 들장미의 향기에 탄복해서 말했다.

"나한테 부족한 것들이 나를 향기 나게 만든 거야. 난 네가 더 대단해. 네가 먹는 것은 다 꿀이 되잖아."
들장미는 찬탄하는 눈으로 벌을 우러러보았다.

"이 화분으로 더 좋은 꿀을 빚을 게."
"내년엔 이 들판에 들꽃향기가 진동했으면 좋겠다."
들장미는 꽃잎을 활짝 펼쳤고, 벌은 꽃가루 범벅이 되어 잉잉거렸다.

ⓒ한정선

* 5년 전, 우리들은 가장 강력하지만 가장 비루한 욕망에 모든 걸 맡겼다. 그리고 5년 후, 세상은 마른 흙먼지만 풀풀 날리고 아름답던 꽃들마저 향기를 잃어버렸다.

우리들의 삶은 지금 사막이 되어버린 몽골의 초입에 서 있는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우리는 태양을 머리에 이고 언어를 잃은 채 터벅거리는 낙타가 되어야 할지도, 혹은 이미 되어 있는지도 모른다.

그 사막 초입에서 발견한 벌과 들장미는 사막의 물이다. 그래서 눈물 나게 기쁘다.

안철수와 문재인. 누가 벌이고 누가 들장미이든 두 후보는 모두 소중하다. 꽃의 부재는 벌의 죽음이고 벌의 부재는 들장미의 죽음이며 어느 하나의 죽음은 들판의 죽음이기 때문이다.

두 후보가 벌과 들장미처럼 서로 칭찬하며 달콤한 합방을 치렀으면 좋겠다. 그리하여 삶의 들판에 들꽃 향기가 가득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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