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레시안>은 열린우리당의 전략통으로 꼽히는 민병두 의원과 성공회대 손혁재 교수의 대담 자리를 마련했다. 최근의 정계개편 논의를 '선거용 이합집산'으로 보는 손 교수와 '정계개편의 불가피성'을 강조하는 민 의원의 인식차는 분명했다. 다만 이번에도 역시 정책과 이념에 따른 세력 재편으로 귀결될 가능성이 크지 않다는 데에는 양측 사이에 이견이 없었다.
민 의원의 논지는 "민주-반민주 전선을 뛰어넘는 새로운 시대의 요구에 부응하기 위해 새로운 정치세력을 만들어내야 한다"는 것이었다. 무능세력으로 몰락한 민주화세력이 새로운 국가모델을 제시하며 내년 선거에서 재평가를 받기 위해선 정치권 내부 세력은 물론 기층 및 시민단체 등과의 연대가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민 의원은 "대북정책, 부동산 문제, 연금문제, 사회복지 등 현안의 구체적 각론에 동의하는 세력이 재편돼야 한다"며 "그것이 선명하면 국민의 인식도 달라질 수 있다"고 말했다. 민 의원은 그러나 "우리당 내의 한 쪽에서는 단순히 모여야 한다고만 생각한다"고 말해 뚜렷한 방향성을 갖지 못한 통합 논의가 존재한다는 사실도 인정했다.
이에 대해 손 교수는 "어떤 명분을 내세워도 결국 내년 대선 승리를 위한 이합집산, 합종연횡, 세력재편"이라고 일갈했다. 손 교수는 "정계개편 논의가 시대정신을 담아내려는 치열한 고민보다 퇴행적 지역연합을 앞세워 논의되고 있다"고 우려했다.
손 교수는 "참여정부와 열린우리당에 그동안 시대적 요구에 부응하려는 노력들이 과연 있었느냐"면서 "그런 노력들이 한계에 봉착했을 때 정계개편을 제기한다면 모를까 지금 시대적 요구라고 내세우기에는 그동안 못한 부분이 더 많다"고 말했다.
손 교수는 특히 "퇴행적 지역연합이 가장 우려스럽다"고 강조했다. 손 교수는 "정계개편이 불가피하다면 지역에 기반하느냐, 지역을 뛰어넘느냐가 중요하다"면서도 "내년 대선은 영남을 기반으로 한 지역세력 대 나머지 지역세력의 연합이 될 것"이라고 비관적 전망에 무게를 뒀다.
민 의원도 "우리나라에서 지역주의라는 구도를 넘어서는, 정책과 이념에 따른 양당구도의 정착은 앞으로 15년에서 20년은 족히 걸릴 것이다. 현재로선 물적, 인적 기반이 취약하다"고 인정했다.
다음은 10일 오후 국회 의원회관에서 진행된 대담 전문.
정계개편은 시대적 요구인가
프레시안 : 정계개편 시간표는 나온 듯 하지만 막상 왜 정계개편을 해야 하는지, 정당성은 있는지에 대해선 그다지 설득력 있는 이야기가 없는 것 같다.
민병두 : 한국정치의 발전 속도는 굉장히 빠르다. 경제 성장과 마찬가지로 민주주의도 압축적으로 발전했다. 그러므로 그에 대한 대응도 상당히 빨라야 한다. 기민한 대응을 위해서는 정계개편을 이야기 할 수밖에 없다. 정계개편은 단순한 이합집산이 아니라 한 시대의 정신에 대응하기 위한 정치권의 고민으로 이해해야 한다. 과거에도 정계개편이 있었다. 가령 DJP연합에는 민주-반민주 구도를 완성시키기 위한 시대적 과제가 있었다. 지난 대선에서 노무현-정몽준 후보 단일화 시도에는 IMF를 극복해야 한다는 시대적 과제가 깔려 있었다. 정계개편을 단순한 이합집산으로만 볼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게다가 이제는 전선이 변화하지 않았나. 민주-반민주 전선으로 보면 정계개편은 불필요할 수도 있다. 그러나 민주-반민주 구도를 뛰어 넘어야 한다는 것이 새로운 시대의 요구라고 본다. 기존의 정치세력만 갖고는 새로운 시대적 요구를 받아들이는 데 한계가 있다. 그렇다면 그 새로운 시대적 요구는 무엇인가? 학계에서는 '지속가능한 발전'이라고 하는데, 정치하는 사람으로서는 '낙오자 없는 세계화'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자영업자, 비정규직 노동자, 실업자 등 우리 사회에는 많은 소외계층이 있다. 사회적 패자가 없는, 낙오자 없는 세계화를 위해서는 새로운 정치세력을 만들어 내야 한다. 열린우리당을 뛰어넘는 정계개편이 필요하다는 것이 우리 쪽의 이야기다. 반면 보수 쪽의 정계개편 논란은 양적 수혈과 충원의 필요성에서 제기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보수 세력의 새로운 결집과 뉴라이트로 대표되는 싱크탱크 집단의 수혈로서의 정계개편이라는 것이다.
손혁재 : 열린우리당 정계개편 논의의 바탕에 깔린 것은 시대적 요구라기보다는 오히려 정치공학적 계산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든다. 시대적 요구에 부응하려는 열린우리당이나 참여정부의 진정성 어린 노력들이 과연 지금까지 있었는가. 그런 노력들이 한계에 봉착했을 때 정계개편을 제기한다면 국민들은 받아들일 것이다. 2004년 총선에서 해방 후 처음으로 개혁을 표방하는 세력이 원내 과반수 의석을 차지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른바 4대 개혁입법도 제대로 처리 못하는 상황이 계속됐다. 시대적 요구라고 내세우기에는 그동안 못한 부분이 더 많지 않나. 여권이 제기하는 정계개편이 과연 시대적 요구인지 국민은 이것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지에 대해서 먼저 고민하고 이야기해야 한다. 어떤 명분을 내세워도 결국 내년 대선 승리를 위한 이합집산, 합종연횡, 세력재편이라는 생각이 먼저 든다.
물론 과거의 인위적 3당 합당 때문에 국민들이 정계개편을 부정적으로 보는 측면이 있다. 정계개편 자체는 필요할 수도 있다. 그러나 국민의 선택에 의한 정계개편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국민에게 내일의 선택을 요구하면서 내세우는 정계개편은 아무래도 정치공학적인 측면이 강하다.
민병두 : 사람들은 선악으로 이야기하는 습성이 있다. 정치공학은 나쁜 것이고, 시대정신을 담은 정계개편은 좋은 것이고 하는 선악 구분 말이다.
손혁재 : 정치공학적인 것만이 부각되는 것은 올바르지 않다는 것이다.
민병두 : 정치공학을 완전히 배제했다면 그것은 물론 거짓말일 것이다. 정치는 당연히 권력을 쟁취하기 위한 것이다. 필요하다면 정치공학도 가미될 수 있다. 다만 정치공학만으로 접근했을 때는 국민의 지지를 받는 데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고 본다. 박정희 시대에는 '잘 살아보세'라는 말이 어쨌든 국민의 마음을 추동했다. 그 이후 약 20년은 '민주주의에 대한 타는 목마름'이 사람들을 움직였다. 2006년 시점에서 사람들의 새로운 갈망은 무엇인가. 우선 고용 없는 성장 시대에 맞는 국가의 혁신일 것이고, 또 하나는 낙오자 없는 세계화 아니겠는가. 그것을 위해 열린우리당이 무엇을 했느냐고 묻는다면 사실 부족한 점이 많았던 것은 사실이다. 복지국가, 혁신국가의 모델을 만드는 데 있어서도 한계가 있었다.
하지만 4대 개혁입법 문제는 생각이 좀 다르다. 그것을 꼭 완수할 수 있는 힘이 우리에게 있었는지도 함께 고려해야 한다. 원내 다수가 개협입법 처리를 취한 충분조건은 아니지 않나. 예를 들어 헌법재판소나 언론 등 정치 외적인 힘도 작용했다. 또 4대 개혁입법을 완수했다고 가정하더라도 그것이 정계개편의 동력을 보장해 주는 것은 아니다.
그런 여러 측면에서 고민을 하고 있다. 우리당의 정계개편 논의에서 박원순 변호사나 정운찬 전 서울대 총장 같은 분이 거론되는 것도 그 때문이다. 우리가 고민하는 정계개편은 한 시대를 뛰어넘는, 대단히 어려운 과제다. 그것은 보수세력에게도 마찬가지다. 과연 보수세력은 새로운 미래의 비전을 제시했는가. 그렇지는 않다. 박근혜나 이명박이라는 인물만으로 구도를 이끄는 것은 문제가 있다. 흔히 선거를 민주화-산업화 세력의 리턴매치라고 하는데, 꼭 리턴매치가 아니라 각 세력 간의 변증법적 발전과정이어야 한다고 본다. 그렇기 때문에 정계개편에 있어 시대정신에 대한 논의를 먼저 하자는 것이다. 그것은 전체 민주화 세력이 함께 고민해야 할 지점이 아니겠는가.
손혁재 : 새로운 시대를 만들어가는 전기가 선거라는 점에는 동의한다. 문제는 정계개편 논의가 그 시대정신을 담아내려는 치열한 고민 없이, 퇴행적인 지역연합을 앞세워 논의되고 있다는 점이다. 열린우리당과 민주당의 통합 논의가 바로 그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한나라당의 보수대연합도 가치나 정신, 이념을 내세우는 것이 아니라 반한나라당 구도를 깨뜨리기 위한 것으로 흐른다. 한나라당이 거듭 한민공조를 언급하고 있는데, 그 바탕에는 뿌리 깊은 지역주의가 존재한다. 호남이 없으면 영남세력의 집권이 어렵다는 것이 한나라당 지도부의 생각인 것 같다. 지역적 지지기반의 확보, 혹은 분열된 지역기반의 재봉합이 전면에 나서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국민들은 현재 나오고 있는 정계개편 논의를 이합집산이라고 보는 것이 아닌가.
민병두 : 열린우리당 내에서 나오는 정계개편 논의는 크게 두 흐름이다. 우선 단순한 지역구도로 복귀하는 정계개편 논의가 있다. 다른 흐름은 새로운 시대정신에 대한 중요성을 깨닫는 세력이 있다. 제3지대론 같은 경우에는 그 자체가 사람들의 '헤쳐모여' 이상이 아니기 때문에 단순한 지역기반의 복원으로 비쳐지거나 지지율 높은 후보를 매개로 연대하는 양상으로 간다. 반면 소장파 쪽에서는 그런 식의 정계개편으로는 정권재창출에 성공할 수 없다는 문제의식 갖고 있는 것 같다. 열린우리당에는 권력의 재창출뿐 아니라 향후 20년의 시대적 흐름을 고민하는 세력이 있다. 전자의 경우는 오히려 쉽다. 그러나 사람들의 혼을 일깨우기는 어렵다. 후자의 경우에는 혼을 일깨울 수는 있겠지만 짧은 시간에 이루기에는 너무나 어려운 과제라는 난점이 있는 것 같다.
"새 시대에 맞는 세력과 인물 포괄해야" vs "창당정신과 정책 약속부터 지켜야"
손혁재 : 정치인들이 무엇으로 국민에게 평가 받을 것인가. 결국 국정현안에 대한 고민들이다. 지금까지 그 고민들을 제대로 수렴해 왔는가. 앞으로 정치 일정이 빡빡하게 짜여져 있는 것으로 안다. 자칫 정계개편의 물살에 아무런 고민 없이 휩쓸려 갈 수도 있다. 그 전에 민병두 의원이 언급한 그 시대정신, 새로운 시대적 요구가 무엇인가를 진지하게 고민하는 것이 중요하다. 열린우리당 창당 때의 문제의식이 있지 않나. 창당 당시에는 국민적 동의를 받은 셈인데, 과연 열린우리당이 그 창당정신을 제대로 이어 왔는가. 열린우리당이 다음 선거에서도 열린우리당이라는 이름으로 선거를 치를 것이라고 자신 있게 이야기하는 사람은 별로 없는 것 같다. 고민이 좀 더 치열해야 미래의 20년을 바라보는 새로운 이념, 정치, 국가의 모델을 국민에게 설득할 수 있다.
민병두 : 열린우리당의 창당정신이라고 한다면 가장 먼저 지역주의 극복을 포함한 정치개혁을 들 수 있다. 그 외에도 잘사는 나라, 따뜻한 사회, 한반도 평화라는 4대 강령으로 당의 깃발을 들었다. 정치개혁은 정말 온 몸을 던져서 해 왔다고 평가한다. 영남권에서 일정한 교두보도 확보했었다. 복지국가라는 모토 하에서 그 기초를 닦으려고 했다. 그러나 세금폭탄 이야기 등 많은 저항에 직면했다. 우리의 한계는 분명히 있었다. 낙오자 없는 세계화라는 것이 단순한 구호나 모토로만 가능한가. 아니라고 본다. 2001년에 천정배-신기남-정동영 의원이 정풍운동을 했다. 그 결과물이 노무현 대통령의 당선이었다. 이제는 부동산 분양원가공개, 연금개혁, 교육개혁 등 각 영역에서 초·재선 젊은 의원들이 입법활동을 통해 새로운 기운을 만들어야 한다. 그래서 "열린우리당이 뭔가를 하려고 하는구나. 저런 것을 개혁하려는 움직임이 내부에 있구나"라는 인식을 국민에게 심어줘야 한다.
손혁재 : 정치개혁에 온 몸을 던졌다는 말을 인정한다고 해도 결과적으로 안됐지 않은가. 그럼 그 한계를 어떻게 뛰어넘을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한데, 우리당 내에서 민주당과 통합을 이야기하는 분들은 결국 지역주의로 회귀하겠다는 것이다.
가령 5.31 지방선거를 보자. 국민들 사이에는 "깨끗하지만 무능한 남편보다는 부패했더라도 유능한 남편이 더 낫다"는 인식이 있었다. 이것은 잘못된 인식이다. 한나라당이 과연 유능한가? 유능하게 비치는 것은 이명박 전 시장의 청계천 효과나, 박근혜 전 대표의 아버지인 박정희 대통령의 경제성장 신화가 그대로 원용 되는 것일 뿐이다. 한나라당의 능력은 증명이 되지 않은 것이다. 그 상태에서 노무현 대통령이 무능하니까, 반대세력인 한나라당이 유능할 것이라고 유추해 버리는 결과가 되었다. 그러니 열린우리당이 유능하다는 것을 보여야 한다. 가장 큰 쟁점은 역시 경제 문제다. 5.31 지방선거는 정부-여당의 경제 무능에 대한 심판이 아니었나. 국민들 사이에는 경제문제를 우리당에 맡길 수 없다는 인식이 광범위하게 퍼져 있다. 그렇다면 정계개편 논의에만 빠지지 말고, 참여정부가 경제문제에 완전히 무능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필요하지 않겠는가. 무엇보다 노무현 대통령이 당선되면서 제기했던 공약들을 지키는 것이 필요하다고 본다.
민병두 : 마케팅론에 보면 "마케팅은 제품이 아니라 인식과 기억의 싸움"이라는 이야기가 있다. 누가 소비자 인식과 기억을 차지하느냐가 관건이라는 말이다. "깨끗하나 무능한 남편, 부패했지만 유능한 남편"이라는 이야기는 자신의 판단이 아니라 시중의 인식을 이야기한 것이다. 하지만 그것을 언급한 것 자체는 결과적으로 오류였다고 생각한다. <코끼리를 생각하지마>라는 책도 있지 않나. 결국 상대방의 도그마에 빠지지 말라는 것이다. 상대방의 정당성을 입증해주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연금개혁이나 부동산 문제에 가시적인 성과를 만들어 냄으로써 우리당에는 휴머니티가 있다는 인식을 줘야 한다. '눈물 없는 불도저'(이명박 전 서울시장)는 힘은 있지만 눈물을 흘리는 휴머니티가 없지 않나. 레토릭이 아니라 진정으로, 국민의 눈물을 닦아줄 수 있는 능력이 있는 세력이라는 각인이 필요하다.
얼마 전 프랑스와 독일에 다녀와서 '스몰딜'이라는 말을 했다. 그곳의 정치권은 상층에서만의 논의가 아니라 기층과의 연합을 통해 정책을 하나하나 만들어 가고 있었다 . 이런 식으로 기층이나 시민단체 등과 정책연합을 했을 때 정계개편의 밑바탕이 될 수 있다고 본다.
손혁재 : 원가공개 문제는 어느 정도 물꼬가 터진 것 같다. 토지공개념 문제는 전두환 정권 때 이야기가 나왔었다. 그런데 참여정부가 왜 이것을 진행하지 못하는가. 노무현 대통령은 토지공개념에 대해 개인의 재산권 침해의 소지가 있다고 말했다. 그렇다고 해서 엉거주춤한 자세로 일관할 것이 아니라, 대통령을 설득하는 등의 과정이 필요했다. 분위기는 이제 분양가 원가공개로 넘어갔는데, 예를 들어 공영주택뿐 아니라 민간이 짓는 주택까지도 원가공개를 고려해야 한다. 이런 것으로 국민을 설득해야 한다. 평택문제나, 한미 FTA 등 사안 하나하나가 국가의 미래에 큰 영향을 끼치는 것들이다. 그런 사안들에 대해, 현재 문제가 무엇인지 정확히 따져서 이번 정기국회에서라도 국민에게 해결책을 보여주는 것. 그것이 정계개편의 진정성을 보여줄 수 있는 길 아닌가?
프레시안 : 손 교수는 지금껏 참여정부와 열린우리당이 주로 정책 부분에서 이행하지 못한 약속을 지키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고 강조하는 것 같고, 민 의원은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기 위한 세력의 결집에 강조점을 두는 것 같다. 일단 시대정신의 제시가 필요하다는 점에선 맥이 통하지만, 그것이 왜 정계개편을 수반해야만 가능한 것인지에 대해 설명이 있어야 할 것 같다.
민병두 : 예를 들어 과거 임채정, 이해찬, 평민당의 박영숙, 문익환 목사 이런 분들은 민주화 운동의 상징이기 때문에 그 자체가 시대정신의 구현이었다. 386세대가 정치에 전면적으로 등장한 것도 시대정신의 구현으로 봐야 한다. 그럼 새로운 시대에 맞는 상징적 인물과 세력을 포괄해 내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당연히 정계개편은 수반된다.
FTA나 분양원가 공개 등의 문제는 젊은 의원들 사이에서는 논란이 있다. 초재선의 반란이 필요하다고 본다. 그런데 그 논의는 아직까지 언론용 애드벌룬 수준이다. 지금 주제는 아니지만, 한미 FTA 문제는 협상 결과를 보고 논의할 문제다. 지금 이 단계에서 FTA에 대한 찬반론이 곧 정계개편의 매개가 되지는 않는다고 본다.
민주당과의 재결합을 어떻게 봐야 할까
프레시안 : 민 의원이 지역주의 회귀와 시대정신의 구현으로 정계개편의 갈래를 구분했지만, 구체적으로 정치권 내에서 누구와 손을 잡을 것인가를 따져보면 대략적인 답은 민주당이나 고건 전 총리다. 어느 갈래든 결과는 똑같지 않나. 또한 2003년에 분당을 하고 3년 만에 다시 같은 세력과 재결합을 하겠다는 것을 어떻게 봐야 할까.
손혁재 : 그래서 퇴행적 지역연합이라는 것이다. 가장 우려스러운 것이 바로 그 지점이다. 민 의원은 그렇지 않다고 강조했다. 민 의원의 인식과 우리당 내부의 논의가 다른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정치공학적 집권론에 매몰되면 2002년 우리당 창당과정에서 제기한 새로운 시대정신은 완전히 소멸하는 것이다.
민병두 : 큰 구호는 사실은 어떻게 보면 허깨비 같은 것이다. 가령 '낙오자 없는 세계화'에 동의하는 세력은 다 모여라? 사실 웃기는 일이다. 대북정책, 토지공개념, 연금 문제, 사회복지 등 현안에 대한 구체적 각론에 동의하는 세력이 재편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선명하면 국민의 인식도 달라질 수 있다. 지금 우리당 내 한 쪽에서는 단순히 모여야 한다고만 생각한다. 제3지대냐, 일부의 확대강화냐의 논의는 결국 방법론과 공식뿐이다. 반면 다른 쪽에서는 정신과 정책을 이야기해야 한다고 제기하는 것이다.
손혁재 : 선거를 하나의 시험에 비유해 보자. 흔히 공부 안하고 놀다가 막판에 벼락치기 한다고 비판들을 많이 한다. 그런데 평소에 열심히 하는 학생도 시험 때 밤새워 공부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정계개편도 그런 측면이 있음을 어느 정도 인정한다. 다만 벼락치기라면 점수가 나쁠 것이고, 평소에 열심히 했다면 시험을 잘 볼 것이다. 후자라면 분명 설득력도 있고, 새로운 세력의 영입도 가능할 것이다. 평소에 공부를 열심히 하는 모습이 필요하지 않은가.
민병두 : 아무 것도 안한 것은 아니었다. 최선은 아니었지만, 차선 정도는 했다고 생각한다. 정치개혁에 대해서 국민들도 어느 정도 인정한다. 부동산 대책 등을 통해 조세정의를 세우려고 했었고. 다만 한계가 있었을 뿐이다. 잘 알지 않나. 보수세력의 반격은 상상을 초월한 것이었다. 베이컨이 말한 '시장의 우상'과 '극장의 우상'이 있지 않나. 연단에서 이야기하는 사람과 저잣거리에서 이야기 하는 사람의 차이랄까. 인식과 기억의 싸움에서 연단에서 이야기 하는 보수세력에 밀린 것이다. 물론 우리에게는 어법의 정교함이랄지, 전선을 치고 나갈 때 약한 고리를 돌파한다든지 하는 점이 부족했다. 우리의 카드를 모두 노출했다. 4대 개혁입법을 제기하면서 반대세력을 다 묶어주는 결과를 가져왔다는 지적도 있지 않나. 전술의 실패는 분명히 있었다. 다만 아무 것도 안하다가 벼락치기 하려는 것 아니냐는 지적에 대해서는 동의하기 힘들다.
국민의 시각에서 보자. 분당세력과 탄핵세력이 대선에서 다시 합친다? 이것은 논리적으로도, 정서적으로도 이해가 안가는 일이다. 그런 퇴행적 연합은 결코 성공할 수 없다. 다시 강조하는데, 1단계가 부동산이나 연금문제 등 에 대한 초재선의 반란이다. 그것을 바탕으로 한 기층과의 정책연합이 2단계고, 3단계는 다시 그 흐름을 상층의 연합으로 끌어올려 정계개편 추동해 나가자는 것이다. 그것도 아주 속도감 있게 해야 한다. 이것을 못하면 정권재창출은 성공할 수 없다. 실패하면? 역사적 반작용에 의해 결국 보수가 집권을 하고, 그 과정에서 소외세력이 생길 것이다.
프레시안 : 김대중 전 대통령이 양당정치의 전통을 언급하면서 분당 책임론을 거론한 부분은 어떻게 해석을 하나.
손혁재 : 과거 우리나라는 보수적인 양당정치였다. 보수 양당정치라는 것도 1.5당이라고 불릴 정도의 상황이었다. 양당정치가 제대로 되려면 보수 양당정치가 아니라 보혁 양당정치가 되어야 한다. 현 단계에서 그렇게 가긴 힘들다. 문제는 우리나라 보수정당들이 정책 차별성이 아니라 지역기반에 따라 나뉘어 있다는 것이다.
특정 지역에 압도적 지지를 가진 보스 한 명의 정치적 거취에 따라 정당이 만들었다 없어지는 경향이 한국정치의 특징이었다. 지금은 정권교체도 이뤄지고, 집권한 세력이 정권재창출에도 성공하고 하면서 많이 없어졌다. 하지만 그 낡은 정치관행과 정치인의 행태가 여전히 남아 있다는 것이 문제다. 초재선의 반란이라고 말했는데, 개인적으로 기대를 걸고 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어제 말한 양당체제는 과거처럼 지역에 기반한 양당, 한 쪽은 상대적으로 진보적이고 다른 한 쪽은 상대적 보수적인 그런 것이 아닐까. 별로 바람직한 것은 아니라고 본다.
민병두 : 대통령제는 기본적으로 승자독식(Winner takes all) 제도다. 그런 측면에선 양당제가 바람직하다고 본다. 빨리 분당 이전 상황으로 돌아가라는 메시지를 던진 것이 김 전 대통령의 셈법이 아닐까. 지난 총선은 분당에 대한 승인이 아니라, 탄핵에 대한 거부였다고 이야기한 것은 결국 분당 전의 수구세력 대 개혁세력의 구도로 돌아가라는 것이다.
민주노동당을 포함한 2.5당 체제가 바람직한 것이 아닌가 생각하고 있다. 앞으로는 진보-보수정당으로 정계개편 되어야 한다. 보수가 자유주의라면, 진보는 사회적 연대의 추구라고 할 수 있다. 열린우리당은 사회적 연대를 추구하는 정당, 진보정당이라고 본다. 군축문제랄지 이런 부분은 유럽의 사민주의 정당보다도 더하면 더했지 못하지 않다. 일련의 맥을 보면 서구적 개념으로는 진보주의 정당, 한국적 개념에서 개혁주의 정당의 컨셉을 유지하고 있다. 민노당은 현재로서는 민노총이라는 좁은 계급에 기반한 계급정당으로 인식하고 있다.
손혁재 : 엄밀히 말해 한나라당을 보수라고 보기 힘들다. 흔히 DJP 연합을 야합이라고 비판한다. 그런데 DJP 연합은 야당끼리의 대선 공조였다. 합당도 아니었다. 그런데 한나라당이 출범한 과정은 야당과 여당의 합당이다. 한나라당이야말로 정치적 야합의 산물이 아닌가. 탄생 당시부터 그런 성격이었고, 그 이후로 지금까지 줄곧 야당만 해 왔기 때문에 제시한 것이 없다. 오로지 김대중-노무현에 대한 반대만 해 온 정당이다. 제기되는 보수대연합이라는 것도 진보에 대응하는 보수연합이 아니라, 과거의 기득권을 되찾아 오겠다는 퇴행적인 수준이다. 민 의원은 뉴라이트를 좋게 평가했는데, 사실 기회를 보고 있던 세력들이 편승한, 실체가 없는 조직에 불과하다.
민병두 : 뉴라이트를 긍정적으로 평가한 것은 아니다. 뉴라이트의 본질은 한나라당-자민련의 정치 지망생 연합, 한나라당의 학도호국단에 불과한 것이다. 브랜드로서의 포장만 있기 때문에 한나라당 입장에서 뉴라이트를 통한 세력의 확대라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본다. 마찬가지로 한민공조도 불가능한 것이다. 북한이 핵실험을 한 이후 대북 문제에 얼마나 큰 인식의 차이를 보이고 있나.
보수대연합은 가공의 산물일 뿐이지 실체가 없다는 손 교수의 말에 기본적으로 동의한다. 길게 보면 한나라당이라는 수구정당은 해체되어야 한다. 물론 쉽지는 않은 일이다. 한나라당은 그러한 과정 속에서 올바른 자유주의 정당으로 가고, 한편으로는 사회적 연대를 바탕으로 한 개혁정당이 있어야 한다. 여기에서 정치적 상상력을 발휘할 필요가 있다. 민노당과의 연대도 배제할 필요는 없다. 일종의 개혁 연정을 제안해 볼 수 있다고 본다. 대선후보는 그쪽에서 포기하고 대신 노동부 장관이랄지, 농림수산부 장관 등을 담당하는 것이다. 그 대신 연합공천을 통해 민노당이 의미 있는 교섭단체로 발전해 나가는 것을 지원할 수도 있을 것이다.
바람직한 정계개편은?
프레시안 : 결국 지역주의의 외양을 가질 수밖에 없는 한계 속에서 정계개편 논의가 이뤄질 것이란 점에선 이견이 없을 것 같다. 만약 정계개편이 불가피한 것이라면, 정당의 소멸과 이합집산이 다시금 반복되지 않도록 안착된 정당지형이 만들어질 수 있도록 할 길은 없을까.
손혁재 : 정계개편은 일단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접근해 가는 과정에서 지역에 기반하느냐, 지역을 뛰어넘느냐가 중요하다. 내년 대선은 영남을 기반으로 한 지역세력 대 나머지 지역세력의 연합이 될 것이다. 이를 뛰어넘기 위한 핵심은 정책이다. 특히 우리당이 내년이나 내후년 선거에서 가장 고전할 부분은 경제문제다. 경제를 우리당에 맡길 수 없다는 국민들의 인식이 매우 강할 것이다.
지금 추진되는 정계개편이 새로운 정치이념과 지형을 바탕으로 한 새로운 정치세력의 화려한 등장이 될 것인지 퇴행적 정치집단의 등장에 그칠 것인지는 두고 봐야 할 것이다. 정계개편이 불가피하다면 개인적으로는 화려한 등장이 되길 바란다.
민병두 : 우리나라에서 지역주의라는 구도를 넘어선 정책과 이념에 따른 양당구도의 정착은 앞으로도 상당기간, 15년에서 20년은 족히 걸릴 것이다. 현재로선 물적, 인적 기반이 취약한 게 사실이다. 만약 의미 있는 정계개편이 추진되지 못하면 대선에서 지역구도는 상당히 완화될 가능성이 있다. 호남이 허물어질 가능성이 크고 선거가 일방적으로 진행될 가능성이 크다.
이제는 정당의 현대화를 고민해야 한다. 아직까지 인적 기반이랄지, 많은 부분이 부족한 것은 사실이지만, 한 정당이 카리스마 있는 대중적인 지도자에 의해서가 아니라, 이념과 정책에 따라 대중 속에 뿌리를 박는 것이 중요하다. 내년이면 6월 민주화운동 20주년이 된다. 20년 전에 스무 살이던 분들이 마흔 살이 되는 것이다. 민주화 운동세대가 사회의 주역이 되고 있다. 그들이 어떻게 변해가고 있는가 하는 문제가 민주화 세력에 대한 역사적 평가의 분기점이 될 것 같다. 범민주 세력이 엄청난 인내심을 갖고 자기변신을 함께 모색해야 할 시기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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