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레시안>에서는 <해림 한정선의 천일우화(千一寓話)]>를 통해 우화의 사회성과 정치성을 복원하고자 한다. 부당하고 부패한 권력, 교활한 위정자, 맹목적인 대중들. 이 삼각동맹에 따끔한 풍자침을 한방 놓고자 한다. 또 갈등의 밭에 상생의 지혜라는 씨를 뿌리고, 아름답게 살고 있고 그렇게 살아가고자 하는 사람들의 바람과 감동을 민들레 꽃씨처럼 퍼뜨리고자 한다. 한정선 작가는 "얼음처럼 차갑고 냉정한 우화, 화톳불처럼 따뜻한 우화, 그리하여 '따뜻한 얼음'이라는 형용모순 같은 우화를 다양한 동식물이 등장하는 그림과 곁들어 연재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한정선 작가는 화가로서 한국미술협회 회원이다. 대한민국 전통미술대전 특선을 수상했으며 중국 심양 예술박람회에서 동상을 받았다. <천일우화>는 열흘에 한 번씩 발행될 예정이다. <편집자>
늙은 도마뱀은 자신의 꼬리가 항상 불만이었다. 굴속에서 뱅뱅 맴돌며 꼬리 길이를 재던 도마뱀이 하느님을 원망했다.
하느님이 도마뱀 앞에 나타났다.
"저는 위험할 때마다 꼬리를 자르고 살아남아야 합니다. 그런데 한 번 꼬리를 끊어내면 자라는 속도가 너무 느려요. 꼬리를 빨리 자라나게 해주세요."
도마뱀이 하느님한테 하소연을 했다.
"그토록 원한다면 들어주마. 이 시간 이후부터 네 꼬리가 아주 빨리 자랄 것이다. 하지만 꼬리를 자를 수 있는 횟수는 그만큼 빨리 줄어들 것이다."
하느님이 엄중하게 말한 후 사라졌다.
하느님의 말대로 도마뱀의 꼬리가 순식간에 길어났다. 신이 난 도마뱀은 당장 굴 밖으로 달려 나갔다.
도마뱀이 나비와 곱등이를 잡아먹고 있었다.
그 때, 꿩이 다가와 부리로 도마뱀의 등을 쪼았다. 도마뱀은 재빨리 꼬리를 끊고 위기를 모면했다.
'꼬리는 또 금방 자랄 거야.'
도마뱀이 쓴 입맛을 다시며 꼬리를 살폈다. 꼬리가 어느 틈에 길게 자라나 있는 것을 확인한 도마뱀이 안심을 했다.
뱀, 들쥐, 메기, 오리, 왜가리 등에게 붙잡혔을 때에도 도마뱀은 꼬리를 끊어내고 달아났다. 팔딱대는 꼬리를 무심한 얼굴로 잠깐 돌아본 도마뱀은 그 곳을 총총히 떠나더니 더 큰 먹이를 눈겨냥하기 바빴다.
어느 날, 도마뱀이 억새 잎으로 엉켜 앉은 잠자리들에게 혀를 날렸다.
그 순간, 억새덤불 속에서 튀어나온 들고양이의 앞발이 도마뱀의 긴 꼬리를 밟아 눌렀다.
도마뱀은 꼬리를 끊고 빠져나가려고 온 몸을 뒤틀며 버둥댔다.
그러나 잘리지 않았다.
"아, 빌어먹을 꼬리."
들고양이의 이빨에 물린 도마뱀이 꼬리를 저주했다.
ⓒ한정선 |
* 위정자들이 불미스러운 사건을 축소하거나 은폐하기 위해 자주 사용하는 방법 두 가지가 있다. 도마뱀처럼 꼬리를 잘라버리거나 꼬리가 개의 몸통을 흔들게 하는 방식이다. 모두 사건의 본질인 몸통을 보호하기 위한 조치다.
대선을 코앞에 둔 미국 대통령이 소녀 성추행 스캔들에 휘말리면서 재선이 물거품이 될 위기에 처하자 미국인들에게는 생소한 알바니아를 적대국으로 만들어 국민의 시선을 외부로 돌린다는 내용의 영화 <왝더독>(Wag the Dog)은 후자의 전형을 보여준다. 우리나라로 치자면 북풍을 선거에 이용하는 방식이다.
새누리당 박근혜 캠프는 도마뱀 꼬리 자르는 방식을 좋아하는 모양이다. 문대성, 김형태, 현기환, 현영희, 홍사덕, 정준길. 몸통을 보호하기 위해 장렬히 잘려나간 꼬리들이다. 터널 디도스 의혹을 받고 있는 김태호, 성추문 의혹 당사자 정우택. 불법 돈봉투 선거 황영철과 박덕흠 의원...상황에 따라 언제든지 잘려나갈지 모를 운명에 처한 미래의 꼬리들이다.
그러나 언제까지 꼬리가 몸통을 보호할 수 있을까. 재생력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또 꼬리의 역습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꼬리가 길면 잡힌다고 하지 않는가. 아무튼 잘려나간 무수한 꼬리들의 성불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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