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많은 언론들은 안철수 대통령 후보의 부인 김미경 교수가 2001년 아파트 매입가를 기준시가보다 낮게 신고해서 취득세와 등록세를 탈루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도했다. 김 교수는 당시 구입한 주택을 2억5000만 원으로 송파구청에 신고했는데, 이 가격은 기준시가에 비해 1억7000만~2억7000만 원, 실거래가에 비해 4억 원 정도 낮다는 것이다. 지금은 실거래가로 신고해야 하지만 2001년 당시엔 기준시가로 신고하도록 되어 있었기 때문에 그녀의 행위에 잘못이 있었다는 것이다. 거기에 더해 오늘 아침에는 안 후보 본인도 2000년도 아파트를 매각할 때 실거래가의 3분의 1수준으로 낮춰서 신고했다는 보도까지 터져 나왔다.
자신의 부인과 관련된 일에 대해서 안 후보는 "2001년 아파트를 매입하면서 실거래가와 다르게 신고를 했다, 어떠한 이유에서든 잘못된 일이고 사과 드린다"며 잘못을 바로 시인했고, "앞으로는 더 엄정한 잣대로, 기준으로 살아가도록 노력하겠다"고 다짐까지 했다. 잘못에 대한 그의 태도는 솔직담백하다.
그런데 안 후보가 그렇게 큰 잘못을 한 것일까? 당시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취득세와 등록세를 덜 내기 위해서 매입가격을 낮춰서 신고했다. 매도인 입장에서도 낮춰서 신고하면 양도소득세를 덜 낼 수 있기 때문에, 즉 매입자와 매도자의 이해관계가 일치하기 때문에 이른바 '다운계약서'는 관행이 될 수밖에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일부러 양도소득세와 취득세와 등록세를 더 내기 위해서 제대로 신고할 사람이 대체 얼마나 될까. 법은 합리적이어야 하고 모든 사람이 지킬 수 있도록 강제력이 수반되어야 한다. 그런데 당시 법은 합리적이지 않았고 강제력도 없었다. 한마디로 말해서 당시의 부동산 세법 자체가 부실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안 후보는 사과로, 앞으로 엄정한 잣대로 살겠다는 다짐으로 끝나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그는 대학교수가 아니라, 이 나라를 바르게 세워보겠다고 나선 대통령 후보이기 때문이다. 그가 이 시점에서 정말로 해야 할 일은 제대로 된 부동산 세제가 무엇인지, 더 나아가서 자신이 주장하는 정의로운 사회를 위해서 부동산 제도는 어떻게 디자인해야 하는지를 고민하고 대안을 마련하여 국민들 앞에 제시하는 것이다.
▲ 무소속 안철수 대선후보가 27일 오후 서울 종로구 공평빌딩에서 장하성 교수 면담 후 연 기자회견에서 최근 불거진 다운계약서 의혹과 관련해 국민께 사과 드린다며 고개를 숙여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
부동산 세금을 근본적으로 검토해봐야
먼저 안 후보와 그의 캠프는 부동산 세제에 대해서 깊이 있게, 그야말로 뿌리부터 고민해야 한다. 많은 사람들이 부동산 세제를 세수 확보 수단 정도로만 여기는데, 부동산 세제는 잘만 설계하면 부동산 문제의 제일 골칫거리인 투기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기 때문이다.
부동산 세금에는 취득단계에서 내는 취득세와 등록세, 보유단계에서 납부하는 보유세(재산세와 종합부동산세), 매도단계에서 매매차액이 발생했을 시 납부하는 양도소득세, 이렇게 세 가지가 있다. 이 중에서 가장 좋은 세금은 보유세이고 그 다음이 양도소득세이며, 가장 나쁜 세금이 안철수 후보가 지금 고역을 치르고 있는 거래세, 즉 취득세와 등록세이다.
그런데 안 후보가 집을 구입할 당시에도 그랬지만, 지금 한국의 부동산 세금에서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하는 세금은 바로 거래세다. 한마디로 말해서 부동산 세제가 대단히 후진적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지금의 부동산 세제는 보유세를 높이고 거래세를 인하·폐지하여 투기이익을 사전에 차단하고, 사후적으로 발생한 투기이익, 즉 불로소득은 양도소득세로 적절하게 환수하는 방향으로 개혁되어야 하는데, 안 후보는 바로 이 방안을 대선 후보답게 구체적으로 제시해야 한다. (부동산 투기를 근절하는 세제 관련기사 바로가기 ☞ : 부동산 투기 시대가 끝났다고?)
안철수가 말하는 정의(justice)와 부동산
안철수 후보는 자신의 책 <안철수의 생각>에서 정의(justice)를 출발이 같고 경쟁 과정에 반칙이 없으며, 패자에게 다시 기회를 주는 것으로 정의(definition)했다. 그러면 국민의 실제 생활에 가장 강력한 영향을 끼치는 부동산과 그가 말한 정의가 무슨 상관이 있을까? 대표적으로 가계의 주택구입과 기업의 경제활동 두 가지를 살펴보자.
먼저 가계의 주택구입을 생각해보자. 기사에 나온 실제 사례를 보면 직장인 A와 직장인 B의 연봉 수준은 같고 같은 시기에 비슷한 가격의 주택을 구입했다. 즉, 출발이 똑같았다. 그런데 직장인 A는 7년이 지난 후 6억이 넘는 이익이 생겼고, 직장인 B는 아무것도 얻지 못했다. B는 아무 잘못도 안 했는데 더 가난해졌고 ― 다른 집의 가격이 올랐기 때문이다 ― A는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았는데 팔기만 하면 큰 돈을 손에 쥘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런데 이것은 A가 들으면 기분 나쁠지 모르지만 경쟁과정의 반칙이다. A가 얻을 수 있는 이익의 상당 부분이 불로소득이기 때문이다. 즉, 그 소득은 노력의 대가가 아니라 이미 사회 전체가 만든 부(wealth) 중에서 A가 노력하지 않고 가져간 소득이다. 다시 말해서 부동산으로 돈을 벌었다는 것은 타인의 노력소득을 침해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물론 이것은 제도의 잘못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잘못된 제도 하에서 제도의 피해자가 아니라 수혜자가 되고 싶어 한다. 좀 더 자세히 말해서 지금의 부동산 제도는 시장 참여자들로 하여금 경쟁과정에서 반칙을 하도록 유도한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너도나도 부동산으로 돈 벌기 위해서 나서는 것이고, 그 과정에서 부동산 가격이 급등하고, 지금처럼 침체기를 맞게 되면 가계가 부채위기에 빠지는 것이다. 이것을 보면 부동산에서 벌어지는 반칙의 피해는 너무나 크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만약 부동산 불로소득을 근본적으로 제거하는 부동산 세제를 구축하면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다시 말해서 안철수 후보의 정의의 관념을 부동산에 적용시키려면 지금의 부동산 세제를 고쳐야 한다는 것이다.
부동산 문제와 기업 활동의 부정의
지금의 부동산 제도는 기업 활동에서도 반칙을 유도한다. 예를 들어서 지금 A와 B가 같은 업종에서 같은 자본금으로 회사를 창업한다고 해보자. 그리고 회사 부지의 위치는 다르지만 매입가격은 같다고 해보자. 그런데 몇 년이 지나자 A기업이 위치한 지역의 땅값은 몇 배로 오르고 B기업이 위치한 지역의 땅값은 제자리라면, 우리는 이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 걸까?
앞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A기업은 부동산을 통해 어마어마한 불로소득을 얻게 되었고, B기업은 부동산을 통해 어떤 수입도 얻을 수 없었다. 이럴 경우 두 기업의 장부상에 나타난 영업이익이 같다고 해도 A기업의 영업이익의 상당 부분은 부동산 불로소득이므로, 이것은 B기업이 더 열심히 했는데도 불구하고 결과가 같아졌기 때문에 명백한 반칙이다. 사정이 이렇기 때문에 심지어 A기업은 사업규모를 줄이고 사업부지에 공장형 빌딩을 지어서 세를 받아가며 편하게 사업하는 것을 선택할 수도 있다. 왜냐면 그렇게 하는 것이 위험 부담도 별로 없으면서 안정적이고 지속적인 수입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환경에서 안철수 후보가 말하는 '혁신'이 제대로 될 수 있겠냐는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 이런 일은 비일비재하다. 그렇기 때문에 부동산 투기를 하는 한계기업의 구조조정이 시장에서 지연되는 것이고, 신규기업이 고용과 국부(國富)를 창출하는 투자도 하지만 고용 및 GDP 증가와 무관한 토지를 매입하는 데 상당한 자금을 쏟아붓는 것이고, 이런 경향성으로 인해 지가가 폭등하여 경쟁력 있는 신규기업이 시장에 진입하기가 더 어려워지는 것이다. 요컨대 안철수 후보가 제시한 반칙 없는 경쟁과정을 정착시키려면, 그리고 혁신의 분위기를 경제 전체에 불어넣으려면 지금의 부동산 제도는 바꾸지 않으면 안 된다.
추상적인 정의론에서 구체적인 정책으로
안 후보는 부동산 취득세와 등록세, 양도소득세 탈루 의혹에 대한 사과에만 머무르면 안 된다. 그는 대통령 후보다. 많은 양식 있는 국민들은 그의 진정성 있는 사과가 올바른 부동산 세제를 제시하는 데에까지 나아가기를 바라고 있다.
지금까지 국민들은 안 후보의 추상적인 정의론에 대해서 많이 들어왔고, 많은 사람들이 그것에 공감해 왔다. 그런데 정말 중요한 것은 그의 정의론이 바탕이 된 구체적인 정책이다. 특히 국민들의 삶에, 기업 활동에 직결된 부동산에 대해서 정의로운 정책을 내놓는 것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출발을 동일하게 할 수 있는 부동산 정책, 경쟁과정에서 반칙이 없도록 하는 부동산 세제가 무엇인지를 안 후보는 분명하게 제시해야 한다. 추상적인 정의론은 반드시 구체적인 정책으로 드러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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