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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북아, 나한테는 무엇을 줄 테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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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북아, 나한테는 무엇을 줄 테냐

[해림 한정선의 천일우화(千一寓話)]<7>

승자독식의 신자유주의 시대. 무한경쟁과 이기주의라는 담론 속에 갇힌 우리들에게 세상은 배신과 암투가 판치는 비열한 느와르 영화일 뿐이다. 이는 오늘날 많은 사람들에게 우화(寓話)가 처세를 위한 단순한 교훈쯤으로 받아들이는 근거로 작용하기도 한다. 그러나 아리스토텔레스와 조지 오웰에게 우화는 고도의 정치적 언술이자 풍자였으며, 대중을 설득하는 탁월한 수단이었다. 또 어떤 철학자와 사상가들에게는 다양한 가치를 논하는 비유적 수단이자 지혜의 보고(寶庫)였다.

<프레시안>에서는 <해림 한정선의 천일우화(千一寓話)]>를 통해 우화의 사회성과 정치성을 복원하고자 한다. 부당하고 부패한 권력, 교활한 위정자, 맹목적인 대중들. 이 삼각동맹에 따끔한 풍자침을 한방 놓고자 한다. 또 갈등의 밭에 상생의 지혜라는 씨를 뿌리고, 아름답게 살고 있고 그렇게 살아가고자 하는 사람들의 바람과 감동을 민들레 꽃씨처럼 퍼뜨리고자 한다. 한정선 작가는 "얼음처럼 차갑고 냉정한 우화, 화톳불처럼 따뜻한 우화, 그리하여 따뜻한 얼음이라는 형용모순 같은 우화를 다양한 동식물이 등장하는 그림과 곁들어 연재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한정선 작가는 화가로서 한국미술협회 회원이다. 대한민국 전통미술대전 특선을 수상했으며 중국 심양 예술박람회에서 동상을 받았다. <편집자>


토끼와 거북은 두 번째 경주를 하게 되었다. 상대가 잠들어 있는 사이 독주해서 이긴 것은 불공정했다며 토끼가 재 경주를 요구했기 때문이었다. 거북은 얼마든지 이길 수 있다고 큰소리를 쳤다.

경주는 산허리를 빙 둘러서 난 둘레길을 경보로 한 바퀴 돌아오기였다.
토끼와 거북이 나란히 출발했으나 토끼가 이내 앞서 갔다.
구불구불한 길에서 간격이 벌어진 토끼와 거북은 서로의 모습을 볼 수 없었다.

"거북아. 어디니?"
토끼가 속도를 늦추며 뒤따라오고 있을 거북을 불렀다.
"응, 나 여기 있어."
굵직한 목소리가 토끼의 앞쪽인, 맹감 덩굴이 무성한 모퉁이에서 들렸다. 어느 틈에 거북이 토끼보다 멀찍이 앞서 있었다.
어떻게 된 일이지? 깜짝 놀란 토끼는 보폭을 넓혀 빠르게 걷기 시작했다.

토끼가 맹감 덩굴을 지나도 산길에는 아무도 없었다. 초조해진 토끼는 양귀를 바짝 세우고 거북을 불렀다.
"응, 나 산딸기나무 지나고 있어."
거북이가 토끼보다 한참 앞쪽에서 목이 쉰 음성으로 대답했다.
토끼는 큰 보폭으로 걸어 산딸기나무 앞에 이르렀지만, 거북은 또 어느새 억새 덤불 앞으로 가있었다.

산허리 길을 돌아가는 내내 거북의 음성이 토끼보다 앞선 곳에서 계속 들렸다.
토끼는 숨을 헐떡이며 출발지이자 종착지에 당도했다. 하지만 거북이는 이미 도착해 여유 만만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토끼는 어안이 벙벙한 눈으로 서있다 고개 푹 수그리고 집으로 돌아갔다.

어스름 녘, 거북이 주변을 살피면서 둘레길로 갔다. 거북은 맹감 덩굴 밑에 숨어 있다 나온 친구 거북의 등딱지 속으로 무언가를 찔러 넣어 주었다. 거북이 또 산딸기나무, 억새 덤불, 신갈나무, 아카시아나무 뒤에서 나온 친구 거북들에게도 두툼한 무언가를 건넸다.

휘파람을 부르며 집으로 돌아가던 거북은 바위에 앉아 있는 호랑이와 마주쳤다. 거북이 놀라 순간적으로 납작 엎드렸다.
바위에서 뛰어 내려온 호랑이가 거북의 등갑으로 올라앉았다.
"네 묘수가 제법이더구나. 하지만 묘수를 잘 두기 보다는 악수를 두지 않아야 살아남는 법이다."

호랑이는 앞 발톱으로 거북의 목을 지그시 누르며 물었다.
"나한테는 무엇을 줄 테냐?"

※ 거북이 토끼를 속여 경주에서 이긴다는 우화의 기본 설정은 <아프리카 신화>(범우사) 중 동물설화에 나온 <토끼와 거북>에서 차용했다.

ⓒ한정선

세상에는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이 있다. 하지만 요즘에는 그리 많이 남아 있지 않다. 모든 것이 거래 대상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마이클 샌델의 신작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은 그렇게 시작된다.
2012년 한국사회에서는 국회의원직도 거래되고 있다. 물론 헌금이라는 종교적인 단어로 포장된 공천 암시장을 통해서다.
박근혜가 선택한 여자, 새누리당 현영희 의원과 박근혜 의원의 측근인 공천심사위원회 현기환 전 의원은 이 암시장에서 국회의원직을 매관매직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 사실이라면, 두 사람은 평등한 기회와 조건, 공정한 과정과 결과를 보장받아야 할 경쟁의 원칙을 파괴했고, 국회의원직으로 대변되는 주권을 훼손하고 변질시켰다.

돈으로 살 수 있는 것들이 많아진 세상에서는 재능이 뛰어난 토끼라도 거북이와의 경주에서 영원히 패자일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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