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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메달 못 따면 '불효 종목'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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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메달 못 따면 '불효 종목'인가?

[기자의 눈] "효자 종목"-"노 골드 수모"의 불편함

2012 런던올림픽이 어느새 중반을 넘어섰다. 선수들의 활약상은 폭염에 시달리는 많은 한국인들에게 단비로 찾아왔다. 사람들은 이해하기 어려운 판정에 눈물 흘리는 선수와 함께 아파하고, 땀의 열매를 맺은 선수들에게 박수를 보냈다. 8시간의 시차라는 장벽을 뛰어넘은 교감이었다.

눈에 띄는 것 중 하나는 응원 및 중계 문화의 변화다. 색깔을 기준으로 메달을 대놓고 차별하는 분위기는 예전에 비해 많이 줄어든 느낌이다. 인터넷상에서 뿐만 아니라 공중파 3사의 경기 중계에서도 이런 변화를 느낄 수 있다.

예전에는 금메달 후보로 꼽히던 선수가 금메달을 목에 걸지 못하면 알게 모르게 '죄인' 취급하는 분위기가 있었다. 중계진이 은메달 혹은 동메달에 "그쳤다"(혹은 "머물렀다")처럼 선수의 땀을 폄하하는 발언도 자연스럽게 했다. 논란이 됐던 '샤우팅(shouting) 해설'도 한국 선수의 메달 색깔에 목매는 이러한 문화와 관련이 있었다. 방송뿐만 아니라 신문도 분위기는 비슷했다.

상황이 이러니, 해당 선수가 큰 죄라도 지은 양 고개를 숙이는 모습도 어렵잖게 볼 수 있었다. 다음 올림픽에서는 꼭 금메달을 따서, 이번에 실패한 '국위 선양'의 대업을 기필코 이루겠다는 '반성 어린 각오'를 내비치기라도 해야 하는 것처럼.

선수를 '죄인' 취급하는 이런 모습은 이번 런던올림픽에서는 찾아보기 어렵다. 바람직한 변화다. 그렇다면 이제는 선수가 흘린 땀의 가치를 온전히 인정하는 성숙한 문화가 자리 잡은 것일까? 아직은 그렇지 않은 것 같다. 메달 색깔에 대한 노골적인 차별은 줄었지만, 부적절한 용어와 규정들이 여전히 자연스럽게 쓰이고 있다.

"효자 종목"과 "노 골드(No Gold) 수모"가 대표적이다. "효자 종목"은 메달, 더 정확히 말하면 금메달을 많이 따는 종목을 가리킨다. "'효자 종목' 사격, 이번에도 금빛 총성 탕!탕!", "유도, 효자 종목 '굳히기'" 같은 신문 기사들이 넘쳐난다. 방송도 마찬가지다. 진행자가 "○○ 종목은 전통적인 효자 종목이었죠"라고 운을 떼면, 대개 그 종목 선수 출신인 해설자가 후배들이 이번에도 '효자 종목'의 자존심을 세워줄 것이라고 장담하는 식이다.

"노 골드 수모"도 같은 맥락이다. 이번 올림픽 중계 및 보도에서 "노 골드 수모"의 대상으로 자주 거론된 종목은 레슬링이다. 이런 식이다. "1984년 LA올림픽부터 2004년 아테네올림픽까지 꼬박꼬박 금메달을 따다가 베이징올림픽에서 '노 골드' 수모를 겪은 레슬링도 금메달 사냥에 합류한다."

▲ 2012 런던올림픽 마스코트인 웬록. ⓒAP=연합뉴스

금메달 따면 "효자 종목", 못 따면 "수모"?

이쯤 되면 묻지 않을 수 없다. 그럼 금메달을 못 딴 수많은 종목은 다 '불효 종목'인가? "노 골드 수모"라는 표현이 선수와 코칭스태프가 흘린 땀과 눈물을 오히려 모욕하는 것은 아닌가?

노파심에서 말하면, "효자 종목"으로 거론되는 종목 관계자들을 폄하할 생각은 없다. 너무도 자연스럽게 쓰이는 "효자 종목"과 "노 골드 수모" 같은 말이 자신의 삶을 걸고 올림픽을 준비한 이들에게 어떻게 다가갈지 함께 생각해봤으면 한다. 이 글을 쓰는 기자 같은 구경꾼에게는 불편하게 들리는 정도이지만, 메달 획득 가능성과 상관없이 꿈의 무대를 그리며 땀을 흘린 이들에게는 폭력으로 다가갈 수 있지 않을까?

"효자 종목", "노 골드 수모"만이 아니다. 언론이 자제했으면 하는 것을 더 꼽자면, 국가별 순위 보도가 있다. 눈만 뜨면 여기저기서 국가별 순위를 거론하지만, 그건 국제올림픽위원회(IOC) 공식 순위가 아니다. IOC는 올림픽에서 국가별 공식 메달 순위를 발표하지 않는다. '종합 우승' 같은 것도 당연히 없다. IOC가 이렇게 하는 것은, 참가 선수 개개인이 펼치는 스포츠 행사가 바로 올림픽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국가 간의 지나친 경쟁을 막자는 뜻도 담겨 있다.

'IOC가 하지 않으니 한국 사람들도 하면 안 된다'는 말이 아니다. 국가별 공식 메달 순위를 발표하지 않는 뜻을 새겨볼 만하다는 이야기다. 물론 올림픽은 국가 대항전이라는 성격을 완전히 벗어던지기 어렵다. 세계 어디서든 참가를 원하면 누구라도 올림픽 무대에 설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국가대표로서 나서기 때문이다.

그러나 올림픽의 역사는 국가 간 경쟁이 과열될 경우 여러 부작용이 발생했음을 보여준다. 과거에 여러 차례 논란이 됐던 일부 참가국의 '조직적인 금지 약물 사용' 의혹이 대표적인 사례 중 하나다. 국가 간 경쟁의 과열은 승리 지상주의로 이어지기 마련이다. 현재까지 '런던올림픽 최악의 스캔들'로 꼽히고 있는 배드민턴 승부 조작 파문도 그런 부작용과 무관하지 않다.

"효자 종목", "노 골드 수모" 같은 부적절한 표현을 멀리하고, 국가별 순위 보도에 집착하는 데서 벗어나는 것. 그것이 선수와 코칭스태프가 흘린 땀의 가치를 온전히 받아들이는 방향으로 한 걸음 더 나아가는 길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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