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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우 공주와 일곱 하이에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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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우 공주와 일곱 하이에나

[해림 한정선의 천일우화(千一寓話)]<5>

승자독식의 신자유주의 시대. 무한경쟁과 이기주의라는 담론 속에 갇힌 우리들에게 세상은 배신과 암투가 판치는 비열한 느와르 영화일 뿐이다. 이는 오늘날 많은 사람들에게 우화(寓話)가 처세를 위한 단순한 교훈쯤으로 받아들이는 근거로 작용하기도 한다. 그러나 아리스토텔레스와 조지 오웰에게 우화는 고도의 정치적 언술이자 풍자였으며, 대중을 설득하는 탁월한 수단이었다. 또 어떤 철학자와 사상가들에게는 다양한 가치를 논하는 비유적 수단이자 지혜의 보고(寶庫)였다.

<프레시안>에서는 <해림 한정선의 천일우화(千一寓話)]>를 통해 우화의 사회성과 정치성을 복원하고자 한다. 부당하고 부패한 권력, 교활한 위정자, 맹목적인 대중들. 이 삼각동맹에 따끔한 풍자침을 한방 놓고자 한다. 또 갈등의 밭에 상생의 지혜라는 씨를 뿌리고, 아름답게 살고 있고 그렇게 살아가고자 하는 사람들의 바람과 감동을 민들레 꽃씨처럼 퍼뜨리고자 한다. 한정선 작가는 "얼음처럼 차갑고 냉정한 우화, 화톳불처럼 따뜻한 우화, 그리하여 '따뜻한 얼음'이라는 형용모순 같은 우화를 다양한 동식물이 등장하는 그림과 곁들어 연재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한정선 작가는 화가로서 한국미술협회 회원이다. 대한민국 전통미술대전 특선을 수상했으며 중국 심양 예술박람회에서 동상을 받았다. <천일우화>는 열흘에 한 번씩 발행될 예정이다. <편집자>


"거울아, 거울아, 누가 이 숲의 주인이니?"
일곱 명의 늙은 하이에나들과 만나기로 한 날 아침, 분단장을 하던 늙은 여우 공주가 거울에게 물었다.

"물론 공주님이시죠. 하지만 숲의 진짜 지도자감은 사슴님이라고들 하더군요. 공주님이 일곱 하이에나들의 도움을 받아 숲의 주인이 되면 지금보다 더 무서운 숲으로 변할 거랍니다."
거울이 여우 공주의 비위를 맞추는가 싶더니 방향을 획 틀어 숲에 떠도는 말을 전했다. 사슴에게 숲이 넘어갈까봐 신경을 곤두세운 여우 공주의 입술이 파르르 떨었다.

"누가 그 따위 혀를 놀려! 숲은 맹수들이 우글대는 곳이야. 감히 초식동물이 숲의 주인이 되겠다고. 코 처박고 풀이나 뜯으라고 해."
여우 공주가 들고 있던 분첩을 거울에 팽개질했다. 분첩이 거울을 맞고 팽그르르 굴러갔다.

늙은 일곱 하이에나가 동굴 문을 두드렸다. 여우 공주는 문틈으로 누구인지 확인한 후, 활짝 웃는 얼굴로 그들을 맞이했다.
"공주님은 나이를 거꾸로 드시나 나날이 아름다워지십니다."
하이에나들이 호들갑스럽게 여우 공주의 발을 혀로 핥았다.

"요즘 내 말 한 마디로 숲이 떠들썩하다면서요."
여우 공주는 하이에나에게 잡힌 발을 슬쩍 빼더니, 숲 속 짐승들로부터 비난의 화살을 맞은 불편한 속내를 드러냈다.
선왕은 수십 년 전 힘으로 숲을 쟁탈한 후 오랜 세월 독재를 했다. 하지만 여우 공주는 선왕의 군사정변을 '위태로운 숲을 구한 혁명'이라고 말했다. 숲속의 많은 짐승들이 분개하자 이번에는 '불가피한 최선의 선택'이라고 말을 바꿨다.

"하여간 고마움을 모르는 종자들이라니. 그 때 선왕의 결단이 없었다면 숲은 북쪽의 무리들에게 먹혔을 겁니다. 또 이만큼 먹고 살 수 있도록 만든 것도 선왕의 위대한 업적입니다."
하이에나들이 요즘 과거사를 놓고 말들이 많은 건 너무 자유를 주었기 때문이라고 입을 모았다.

"아, 그 때 우리들은 정말 열심히 일했어요. 물론 선왕을 받드는 과정에서 동족들이 죽고 반편이 된 건 불가피했던 일이지요."
선왕의 손발 노릇을 했던 하이에나들은 선왕이 자신들을 얼마나 믿고 아껴주었는지, 그런 선왕에게 얼마나 충성했는지 경쟁이라도 하듯이 추억담을 늘어놓았다.

여우 공주는 묘한 미소를 지었다. 사실 일곱 하이에나들은 선왕이 심복의 발톱에 갈가리 찢겨 죽도록 방조했다. 얼마 안 있어 등을 돌리고 새 주인의 충복이 되어 지금껏 호의호식해 온 그들이었다.

"숲속 동물들이 사슴한테 부쩍 기울어지고 있다면서요. 작전은 뭔가요."
여우 공주가 화제를 돌렸다.

"늘 써먹던 방법 있잖습니까. 앙심 많은 들개 떼한테는 색다른 뼈다귀 몇 개 던져서 한판 붙인 다음 한 쪽의 원한을 긁어주면 되고요. 초식동물들은 공포심을 조장하면 그냥 갈라집니다."
소문 유포와 계략에 능통한 하이에나들이 대수롭잖게 대답했다.

"공주님이 우리들의 전략대로만 하신다면 반드시 숲의 주인이 되십니다. 잘 외우세요."
떠나기 전, 가장 나이 많은 하이에나가 여우 공주에게 연설문이 적힌 작은 수첩을 건네며 말했다.

일곱 하이에나가 돌아간 뒤, 여우 공주는 화가 치미는지 이마를 찌푸렸다.
"비열한 족속들!"
여우 공주는 굴러다니던 분첩이 발끝에 걸리자 걷어찼다.

"늙어빠진 하이에나들이 자기들끼리 모이면 선왕의 전력을 들추면서 공주님 험담도 한답니다. 지도자의 덕목도 없는 공주님을 우러르는 우매한 짐승들이 있다는 게 참 신통방통한 일이라고요."
거울이 여우 공주에게 말했다. 순식간에 여우 공주의 콧등에 주름이 잡혔다.

"누구든 함부로 지껄이면 가만히 두지 않을 거야. 아버지가 다스렸던 숲은 이제 내가 다스려. 난 여태껏 그 일념으로 버텼어."
여우 공주는 으르렁대며 화장대 앞의 화병을 집어 던졌다. 와장창 거울이 박살났다. 산산이 부서진 거울조각에 여우 공주의 얼굴이 기괴하게 쪼개졌다.

다음 날부터 여우 공주는 숲을 누비며 연설했다.
"여러분께 절망이 아닌 희망과 행복을 분양하겠습니다. 힘없는 초식동물이 안심하고 풍족하게 살 수 있는 숲이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내 꿈이 이루어지는 숲'을 꼭 만들겠습니다."

여우 공주는 날마다 새로운 거울에게 최면을 걸었다.
"거울아, 거울아, 내 꿈은 이루어지겠지?"
거울은 말간 눈을 뜬 채 침묵했다.

▲ 여우 공주와 일곱 하이에나. ⓒ한정선
* 대한민국헌법 전문 그 어디에도 5.16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데도 쿠데타와 혁명 사이에서 이미 평가가 끝났음직한 5.16을 두고 왜 지금 논쟁이 일어나고 있는 걸까.
E.H. 카아는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라고 말했다.
현재의 눈으로 과거의 역사가 해석된다면, 쿠데타로 정리된 5.16의 혁명 회귀 시도는 구시대적인 세력들의 전면적인 귀환을 의미하지 않을까.
새누리당의 대선 주자 박근혜 의원. 유신 독재자의 딸인 그녀는 유신 정권의 실질적인 퍼스트 레이디 역할을 수행했다. 유신 정권 혹은 그 연장선에 있는 정권에서 실세였던 이들이, 혹은 그런 시절을 그리워하는 자들이 그녀의 주변에서 움직이고 있다. 유신정권과 5공, 6공에서도 활약했던, 그녀를 이 나라의 수장으로 만들고자 한다는 의심을 받고 있는 7인회는 대표적이다.

권력은 한 사람이 만들어 가는 게 아니다. 정권의 성격은 대선주자와 그 주변 사람들의 철학과 역사의식에 의해 규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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