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분에 부산 영도조선소는 4년째 수주 제로를 기록하고 있다. 배를 제작하는 도크는 텅 비어있다. 그나마 세 개의 도크 중 한 곳에서는 모 건설업체가 방파제를 만드는 데 사용하고 있다. 그곳에서 일하는 노동자는 일용직 노동자다. 나머지 도크에서는 가끔 수리 선이 들어와 배를 고친다. 그마저도 하청 노동자들이 작업한다.
"아직도 똑똑히 기억합니다. 지난해 8월 17일 국회 청문회에서 조남호 한진중공업 회장은 '수주를 위해 지구 위 어디라도 뛰어다니겠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지금 상황이 어떻습니까."
▲ 차해도 지회장. ⓒ프레시안(허환주) |
2011년 11월,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지역본부 지도위원이 크레인에서 내려오면서 한진중공업 문제는 해결된 듯 보였다. 하지만 차 지회장은 "하나도 해결된 게 없다"며 "되레 예전보다 현장은 더 어려워졌다"고 말했다.
오는 11월이 되면 노사 간 합의한 대로 복직대기자 93명이 회사로 돌아와야 한다. 김진숙 지도위원이 309일 동안 크레인에서 농성한 끝에 합의한 내용이다. 하지만 이것이 지켜질지는 미지수다. 차 지회장은 "무엇보다 회사 태도가 문제"라고 지적했다. 아직도 회사는 수주를 통해 영도조선소 정상화에 나서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차 지회장은 "최근 영도조선소로 유럽선사가 급한 선박 주문제작을 요청했으나 회사는 이를 거부해 중국으로 넘어갔다는 회사관계자들의 하소연이 현장에서 나돌고 있다"며 "한진중공업은 영도조선소를 경영할 의지가 없는 듯 보인다"고 말했다.
회사 구조조정 발표 이후 4명의 노동자 사망
노조는 회사가 영도조선소에 물량을 받지 않음으로써 사실상 폐업 수순을 밟고 있다고 판단했다. 물량이 없다 보니 복직대기자뿐 아니라 기존 현장에서 일하던 노동자도 휴업 처리하는 실정이다.
한진중공업은 2011년 12월, 특수선에서 일하는 200여 명을 제외한 650명을 차례대로 6개월 휴업시켰다. 문제는 정작 6월이 됐지만 극소수를 제외하고는 현장으로 복귀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회사는 물량이 없다며 또다시 휴업을 시키고 있다. 차 지회장은 "그나마 현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도 이젠 100여 명만 남았다"고 말했다.
들어오는 물량이 없다 보니 언제 복직할지 모른 채 마냥 휴직 상태로 있어야 하는 게 지금의 상황이다. 다른 일을 하려 해도 휴직 상태라 취업도 안 된다.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릴 수밖에 없다. 회사의 구조조정 발표 이후 노동자 두 명이 심리적 압박으로 뇌 심혈관질환으로 목숨을 잃었고 한 명이 암으로 사망했다.
6월 말에는 노동자 한 명이 계단에서 굴러 두개골 함몰로 사망했다. 차 지회장은 "6월 1일 복귀해야 하는 조합원이었지만 회사에선 복직을 연기했다"며 "그것에 대한 스트레스를 이기지 못하고 연일 술을 마시다 계단을 구르는 변을 당했다"고 설명했다.
차 지회장은 "이런 일이 계속 발생하지만 회사에선 자신들의 책임이 아니라고만 한다"며 "합의안 이행 시점인 11월이 지나면 우리도 쌍용자동차 노동자처럼 되지 말란 법이 없다"고 말했다. 복직이 불투명한 상황이기에 사망자는 계속 나올 수 있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현 노조는 운신의 폭이 좁다. 무엇보다 7월 27일로 교섭권이 만료되는 게 가장 큰 문제다. 지난 1월 초 기존 금속노조 한진중공업 지회와 별개로 설립된 한진중공업노조는 복수노조로 최근까지 전체 조합원 705명 중 80%가 넘는 570명 정도가 가입한 상태다.
복수노조 체제에서는 노조 전체 조합원 과반수로 조직된 노조가 교섭대표 노조가 된다. 차 지회장은 "7월 27일이면 우리가 가진 교섭권이 새 노조로 넘어간다"며 "그렇게 되면 회사는 새 노조와 새 단체협약을 체결할 게 뻔하다다"고 설명했다.
복직을 기다리는 93명은 모두 정리해고복직투쟁위원회 소속으로 금속노조 한진중공업지회 조합원이다. 만약 교섭권이 새 노조로 넘어갈 경우, 93명의 복직 안이 어떻게 변하게 될지는 미지수다. 김진숙 지도위원이 300일 넘게 고공 농성한 결과가 수포로 돌아갈 수도 있다.
▲ 영도조선소 정문 옆에 설치된 천막 농성장. ⓒ프레시안(허환주) |
현장 노동자 100명 중 금속노조 조합원은 단 한 명
그렇다고 새 노조에 가입한 노동자를 탓할 수만은 없다. 차 지회장은 "회사는 금속노조 조합원부터 우선 휴직시켰다"며 "새 노조에 가입하면 무급휴가를 보내지 않는다고 하니 다들 그쪽으로 갈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차 지회장은 "조합원 중 일부는 노조 사무실에 직접 찾아와 우리가 미워서 그쪽으로 가는 게 아니라 금속노조가 당장 자신들의 생계를 보장해줄 수 없기에 간다고 했다"며 "회사가 우리를 대화상대로 인정하지 않으니 조합원으로서는 그쪽(새 노조)에 가면 뭔가 있지 않겠나 하는 기대심리가 있는 듯하다"고 말했다.
그렇다 보니 현재 현장에서 일하는 100명의 노동자 중 금속노조 한진중공업지회 소속 조합원은 단 한 명에 불과하다. 나머진 모두 새 노조 조합원이다.
하지만 사태가 장기화하면서 복수노조에 가입한 조합원도 회사에선 휴직으로 돌리고 있다. 차 지회장은 "지금까지의 과정을 보면 회사는 영도조선소를 유지할 생각이 전혀 없다"며 "결국, 폐업 절차를 밟을 거라는 게 우리의 생각"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차 지회장은 "그때가 되면 새 노조 조합원도 사태를 깨닫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하지만 그때까지 금속노조 한진중공업 지회를 유지할지도 의문이다. 유럽 위기로 전체 조선소 수주 물량은 줄어들고 있을뿐더러, 그나마 있는 물량도 수빅조선소로 넘어가고 있다. 게다가 온통 관심이 대선에만 몰려 있는 상황에서 정치적으로는 문제를 풀기 어렵다.
차 지회장은 "회사는 많은 수단으로 노조를 압박하며, 자신들이 약속했던 합의문도 휴지 종이로 만들고 있다"며 "함께 싸우던 동료가 복수노조로 넘어가는 걸 보면서 현재의 조건이 매우 힘들다는 걸 피부로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차 지회장은 "간부들이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며 "결국, 사태를 해결하라며 천막 농성이라도 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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