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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이 그들에게 말하지 않은 진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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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삼성이 그들에게 말하지 않은 진실은?"

[전태일 통신] <먼지 없는 방> 만화가 김성희 작가 인터뷰

금호역에서 김성희 작가를 만났다. 나는 김 작가의 전작인 <몹쓸년>에 대해서 알고 있었고 삼성 반도체에 관한 기사도 두어번 읽었지만, 그게 다였다. 인터뷰를 준비하면서야 새삼 그 사실들이 부끄러워졌다. 그리고 나는 <먼지 없는 방>을 읽었다. 표지를 덮고 고개를 들었다. 뭔가 달라져 있었다. 세상이 이상해 보였다.

어깨에 닿지 않는 단발머리의 김 작가는 소녀처럼 웃었다. 강단 있는 인상을 생각했던 나의 예상은 여름 볕 아래에서 녹아버렸다. 질문지를 꺼내서 말을 고르는 내게 김 작가는 "커피 한 모금 하고 시작하죠" 그렇게 말하면서 다시 웃었다.

주문한 커피가 도착하자 나는 녹음기를 켰다. 카페의 공기가 바뀌었다. 김 작가의 목소리는 변함없이 청량하고 부드러웠지만, 좀 더 힘이 들어가 있었다.

그 곳에 먼지는 없지만, 삼성이 알려주지 않은 다른 것이 있다

서국선 : <먼지 없는 방>이라는 제목이 은유적이면서 가슴을 울리는 것 같아요. 어떤 상황 속에서 나오게 된 제목인가요?

김성희 : 삼성에서는 반도체 공장이 먼지가 없는 청정지역이라고 광고 했고, 일하는 사람들에게도 그렇게 말했어요. 클래스 1 이라고 해서, 30㎤ 안에 먼지가 하나 있는 인위적인 환경을 만들기 위해 내부로 들어오는 공기는 필터를 거치게 하고, 또 필요한 공기를 주입하는 거죠. 이걸 '아, 먼지가 없다니까 정말로 좋은 거구나' 하고 생각할 수도 있어요. 그런데 인간에게 먼지가 없는 건 그다지 좋은 환경이 아니에요. 자연 속에서 흙 만지고 그래야 면역력이 늘어나는 거죠. 이 방(공장 내부)에는 먼지가 없지만, (인간에게 해로운) 다른 것이 있다. 이런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 이런 제목을 사용한 것입니다.

서국선 : 만화 초반부터 직원 분들이 조금씩 아프신 게 제시 되잖아요. 코피가 나서 마를 갈아 마신다던지, 없던 생리통이 생긴다던지.

김성희 : 그분들은 그 고통이 화학약품 때문이라고 생각을 못했던 거예요. 공장 안은 먼지를 인위적으로 없애기 위해서 대기보다 기압이 높아요. 높은데 올라가면 몸이 약한 사람들은 코피를 쏟잖아요? 화학약품 때문이라기보다는 이 기압이 나에게는 조금 버겁나보다, 다들 그런 식으로 생각했어요. 3교대고, 잠을 불규칙으로 자고, 밥을 제대로 못 먹다 보니까 18, 19살 아이들은 뭐 그럴 수도 있는 거라고 생각한 거죠. 회사가 약품의 위험성에 대해 말해주지 않았으니까.

서국선 : 직원 분들이 병을 알아챈 시기는 대개 20~30대에요. 그만큼 화학 약품의 효과가 빠르게 나타났다는 건데 이걸 삼성이 몰랐다고 보긴 어려운 것 같아요. 그런데도 직원들이 방독면도 쓰지 못했던 사실에 대해서 어떻게 봐야 할까요.

▲ 김성희 작가. ⓒ서국선
김성희
: 삼성 소송 때 공정 엔지니어 분이 증언을 하셨어요. 40대 중반 즈음 되는 분인데 그 분도 병을 얻으셨어요. 현장에 방독면이 있긴 한데, 라인 당 3, 4개 밖에 없대요. 거기에 엔지니어가 몇 명인데. 그리고 애정씨도 그랬지만 방독면을 쓴 엔지니어를 한 번도 못 봤다는 거예요. 11년 동안.

서국선 : 그럼 방독면이 있어도 쓸 수가 없었던 건가요?

김성희 : 왜 안 썼냐. 판사가 물어봤어요. 그러자 이런 대답이 돌아왔다고 해요. 왕따 당할까봐. 40대 중반의 그 엔지니어가 그렇게 말씀하셨다고 해요.

서국선 : 대부분의 피해자가 나온 1,2,3라인이 아닌 기자들에게 공개한 4,5 라인도 위험할 수 있나요?

김성희 : 그렇죠. 5라인에서 황민웅 씨가 돌아가셨고 1라인에서 증언을 해주신 분도 5라인 소속이에요. 현재 공개된 5라인은 처음 애정 씨가 말한 과거의 상태에서 많이 바뀌었어요. 설비를 개선한 후에 기자들에게 공개한 것이지요. 5라인 이후의 많은 최신 라인은 좀 더 자동화 되어서 위험이 좀 덜해요. 수동으로 일하지 않으니까요.

수동으로 일하면 생산시간이 단축되기 때문에 화학용품 농도를 세게 한다거나 해서 노동 생산량을 늘릴 수 있었죠. 그만큼 직원들은 예측되지 않은 위험 앞에 놓이는 거예요. 과거에는 그런 일들이 비일비재 했고 그런 상황 속에서 노동자들이 아프기 시작한 거죠.

지금도 안전하다고는 말 할 수 없어요. 애정 씨가 말했어요. 삼성이 말하는 대로만 일했다면 최소한 지금보다는 병이 더 적었을 거라고요. 직원들은 삼성이 외부로 주장하고 있는 것처럼 일을 하고 있지 않다는 거죠. 생산량에 맞춰 일을 하고 있어요. 더 많은 생산량을 위해서는 자동라인도 수동라인으로 바꾸도록 유도한다는 거죠. 거기에 대해서 직원들에게, '같은 시간에 얘는 더 많이 했는데 너는 몇 개 못 하냐'는 식으로 생산에 따라 점수를 줘요. 책임도 너의 몫이고, 일을 못하는 것도 너의 몫이고. 이런 식으로 말이에요.

서국선 : 블로그에서 <먼지 없는 방>을 러브스토리라고 말씀하셨는데, 애정 씨의 멜로에 이야기의 중점을 두신 이유가 있나요?

김성희 : 삼성이 무엇을 빼앗아갔느냐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요. 지금 삼성과 싸우고 계시는 분들은 피해자가 되기 전까진 이렇게 생각하셨대요. '아, 내가 삼성에 들어간 게 자랑스럽다. 내 인생에서 어떻게든 멋지게 살아볼 거야' 이분들은 삼성 안에서 사랑하는 사람을 만났고, 사랑하는 사람과 미래를 꿈꿨어요. 사람이 사랑을 갖고 꿈 꿀 때는 굉장히 열심히, 적극적으로 살고 남에게 민폐 되지 않도록 살도록 노력하잖아요? 그렇게 조금 더 나은 인생을 살기 위해서 노력을 했었던 사람들의 삶을 삼성이 앗아간 거예요.

저는 삼성이 직원들의 고통을 단순한 사건으로, 개인 질병으로 치부한 행동이 사람들의 인생과 사랑 그리고 희망을 빼앗아간 것이라고 말하고 싶었어요. (만화 속에서) 사건 앞의 과정은 그분들이 어떻게 일했는지, 그 위험을 아무도 알려주지 않았던 상황들을 보여주기 위함이기도 하지만 최종적으로는 그 안에서 사람들이 자기 인생을 살고 있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서국선 : 직원 분들이 건강에 위기를 느끼지 못한 이유 중 하나는 삼성을 믿었기 때문인가요?

김성희 : 믿었기 때문이죠. 하지만 삼성은 설비를 이렇게 말해라, 웨이퍼가 다치면 안 된다, 반도체는 이름이 뭐다, 반도체에 에러가 나면 안 된다. 그런 것만 말했지 이 반도체에 무슨 화학약품과 무슨 가스가 쓰이는데 이런 상황에서 이렇게 노출되면 이렇게 위험해진다, 이것은 이렇게 위험해지고 이런 영향을 미친다는 교육은 하지 않았어요. 너희는 첨단 환경에서, 최고의 청정지역에서 일하는 거라고 말해줬을 뿐이죠.

서국선 : 하이닉스 같은 경우에는 공정과정의 위험성을 일부 인정했지만 삼성은 부정했죠. 이런 문제가 비단 삼성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사례가 있었어요. 유럽이나 미국에서는 본국에 반도체 공장을 짓지 않는 것이 인건비나 토지 문제 때문이 아니라 단순히 법적 규제를 피하기 위해서라고 하더라고요. 이런 비윤리적 생산은 단순히 삼성만의 문제가 아닌 것 같아요.

김성희 : 책 끝에 실리콘 벨리 사례를 넣었어요. 이전에 실리콘 밸리에서도 이런 일이 있었고, 그 후로 IBM은 회사차원에서 피해자들에게 보상을 했어요. 또한 위험한 노출이 되는 설비들을 없애고 공정기를 아시아로 옮겨버렸죠. 그 후에 우리나라에서 같은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거니까 절대 삼성이 모른다고 할 수 없는 일이죠. 그저 알려주지 않고, 알리지 않는 것뿐이죠.

서국선 : 삼성은 왜 위험을 인정하지도, 피해자에게 보상하지도 않는 건가요. 기업 이미지가 망가지면 삼성 측에서도 손해가 크지 않나요?

김성희 : 삼성은 자신들에게 결함이 있다는 사실 자체를 인정하고 싶지 않은 거예요. 완벽한 이미지를 그대로 유지하려고 하는 거죠. 더 큰 문제는 다른 기업들이 이런 삼성에 동조하고 있다는 거예요. 삼성의 정책을 국가적 정책이라도 되는 듯이 따르는 거죠.

저는 만화에서 삼성에 노조가 필요하다는 말을 하지 않았어요. 만화를 읽으면 자연스럽게 생각할 수밖에 없으니까요. 왜 삼성에는 노조가 없는 걸까 하고요. 삼성 측에서 우리는 노조가 필요 없다고 주장한다 해서, 우리가 그 말을 왜 종교적 기조인 마냥 따라야 하나요. 이 나라는 삼성을 위한 종교집단이 아니잖아요. 노조가 없는 게 더 좋은 거라면 거기에 대해서 삼성 측에서 설명을 해 주고, 납득을 시켜줘야죠. 그랬다면 우리가 삼성의 주장에 반발하지 않았겠죠.

서국선 : 삼성의 행태에 대해서 알고 있는 사람들은 불매운동을 하기도 하는데, 어떻게 생각하세요?

김성희 : 삼성의 문제에 대해서 알게 된 사람들 중에선 이런 얘기를 하는 사람도 있어요. '삼성이 부끄럽다', '삼성 제품을 가진 것이 부끄럽다'고요. 하지만 그 제품 자체에 결함이 있는 것도 아니고, 제품을 만든 사람들이 그런 결정을 내린 건 아니잖아요. 삼성 안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고립시키는 운동을 하지 않았으면 해요. 대신 지시를 내리는 사람이 아니라 제품을 만드는 실무를 담당한 제작자를 더 존중해 주는 거죠. 그리고 소비자로서 삼성을 마냥 부끄러워하는 대신 '삼성이 내가 이 제품을 가지고 있는 걸 부끄럽지 않게 해줬으면 좋겠다' 라고 말하는 건 어떨까요. 삼성 측에서는 제품을 안 산 사람보단 산 사람의 의견을 더 귀담아 들을 테니까요.

서국선 : <먼지 없는 방>은 물론이고 함께 출간된 <사람 냄새>도 지면 광고가 되지 않는다고 들었는데 이것도 삼성의 외압이라 볼 수 있을까요.

김성희 : 아뇨. 삼성 쪽의 외압이 아니라, 기본적으로 언론 자체가 광고를 통해서 신문을 유지하기 때문에 알아서 처리한 경향이 크다고 봐요. 언론에게 '너 삼성 무서워서 그걸 안하냐'고 묻기에는, 이미 <경향>, <한겨레>처럼 진보적인 신문도 광고수익에서 삼성이 차지하는 퍼센트가 굉장히 높아요. 광고를 통해서 삼성이 언론을 길들인 거죠. 때문에 삼성광고나 기업광고에 영향을 받지 않는 어떤 자립적인 측면의 언론에 대해 국가나 시민이 같이 고민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필요한 얘기를 해 줘야 되는 매체가 바로 언론이잖아요. 매체의 건강성을 매체 자체보고 지키라는 것은 현재 측면에서는 어려운 이야기라고 봐요. 우리가 다 같이 고민해야 할 부분이죠.

ⓒ프레시안(최형락)

작가는 그 시대가 어쨌든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이야기를 하는 사람

서국선 : <먼지 없는 방>은 묘사가 굉장히 치밀한 것 같아요. 공장 과정도 있고 배경도 그렇고. 독자가 읽고 있으면 꼭 거기 갔다 온 것 같은 기분이 들 정도로 자세한데, 어떤 조사과정이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김성희 : 애정 씨와 동료 분들이 반올림을 통해서 피해자 분들과 엔지니어 분들을 소개시켜주셨어요. 그분들을 만나서 이야기를 듣고 그대로 그렸어요. 그걸 보여드린 뒤에 확인받고, 또 확인받았죠. 그래도 정확히 이해가 안가서 모 반도체 연구소 클린룸을 방문했어요. 그 분들이 굉장히 적극적으로 도와주셨어요. 일일이 설비 움직이는 거 보여주시고, 이런 상황에서는 이런 게 위험할 수 있다고 설명해 주셨어요. 연구소 분들은 우리도 (클린룸이) 위험한 걸 알지만 여기는 연구소라서 그나마 공장처럼 주기적인, 지속적인 노출은 없다고 하셨어요. 그분들은 공장의 위험성이 많이 알려졌으면 좋겠다 싶은 마음으로 도와주신 거죠.

서국선 : 작가님 만화에는 유독 마음을 관통하는 문장이 많다고 생각했거든요. <먼지 없는 방> 같은 경우에는 '뼈가 부러져야 산재인줄 알았지' 라던가, '고깃집에서 고기냄새 난다고 왜 냄새 나냐고 하나요' 가 그랬어요. 이런 서술이 나오기까지의 과정이 있나요.

김성희 : 어떤 말은 듣고 나서도 나의 몸에서 그냥 넘어가지지 않아요. 그럼 그런 말들을 그냥 계속 되새김질 하는 거예요. 왜 넘어가질 않는 거지? 그렇게 생각해보면 넘어가지 않는 이유가 꼭 있어요.

기자들이 애정 씨에게 제일 많이 질문한 게, 왜 몰랐냐는 거래요. 당신들이 십 몇 년을 일했는데 왜 몰랐냐. 당신들이 제일 먼저 알아야 하는 거 아니냐. 매번 기자들이 그렇게 질문하는데 그게 제일 답답했대요. 아무도 우리에겐 알려주지 않았고, 우리가 그냥 당연한 거라고 생각한 것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다. 고깃집에서 누가 삼겹살 냄새가 나냐고 뭐라고 하냐고. 계속 그이야기를 하는데, 아, 얼마나 눌린 말이었으면 그렇게 말했을까요. 그만큼 정확한 말이 없는 거예요. 그래서 그렇게 넘어가지 않는 말들은 꼭 이렇게 메모를 하죠.

서국선 : 작품 속의 대사가 굉장히 자연스러웠어요. 읽고 있으면 흔한 말로 '음성 지원'이 되는 기분이 들었어요.

김성희 : 저는 1년 반 동안 애정 씨 녹취한 것을 무한 반복해서 계속 들었어요. 그러니까 글을 쓸 때도 그림을 그릴 때도 애정 씨가 말하는 것을 흉내 내면서 그리게 됐어요. 애정 씨가 이 상황에선 어떤 표정을 지었을까.

제가 애정 씨를 알잖아요. 성격도 알고. 거기다 무한반복해서 들으니까 이 사람의 하나의 말씨나 이 말씨의 할 때의 표정, 지금 무슨 감정으로 이 이야기를 했는지를 계속 되새김질하게 되었어요. 한 사람이 한 말을 열 번 이상, 이십 번 이상 듣다보면 자연스럽게 그 사람의 감정의 느낌을 알게 되는 거 같아요. 거기서 대사의 자연스러움이 오는 것 같아요.

서국선 : 작가님은 활동 초반에 창작 단편집으로 <몹쓸년>을 내셨잖아요. 반면 최근에는 사회 전반적인 이야기를 하시는데 주력하고 계시는데 여기에 계기가 있으신가요?

김성희 : <몹쓸년>은 내 세대로부터 살아온 문제와 고민을 좀 풀은 거예요. 내 어머니와의 관계, 내 동생과의 관계, 내 친구와의 관계. 그런 식으로 20대에서 30대로 넘어가면서 드러나는 문제들, 내 개인의 문제들을 바라보면서 그것이 나만의 문제가 아니라 세대적인 차원에 있다고 생각했어요.

우리는 현실을 이겨내기보다는 네가 할 수 있는 것들을 위해서 공부를 하라는 말을 들었고 20년이라는 세월을 공부에 묶여 현실과 떨어져있었어요. 그러다 세상에 나와 보니 현실에 부딪치고, 꿈을 꿔보려고 하니 깨지고 부서졌죠.

그렇게 30대가 되고나니 이제 사회가 말해요. 너를 증명해 봐. 현실의 고통을 견딘 부모 세대에 아래서 곱게 자란 우리는, 머리는 컸는데 날 증명을 하려니 여러 가지 벽에 부딪치죠. 그럼 부모 세대가 말해요. 너희가 너희 방법대로 안 되면 내 세대의 가치관으로 살아라, 그렇게 요구받아요.

그렇게 제 자신의 문제를 사회 안에서 찾으려고 한 게 <몹쓸년>이에요. 자신의 문제를 확장해서 보면 사회문제가 되잖아요? 그런 식으로 제 만화도 확장된 거라고 생각해요.

서국선 : 평론가 한상정 님께서는 <먼지 없는 방> 같은 만화를 르포만화라고 하시던데요.

김성희 : 우리는 <내가 살던 용산>을 작업할 때부터 그 르포만화를 지향점으로 하고 고민 했어요. 왜냐하면 이 사건, 용산 참사가 드러내는 이야기가 공시대적인 문제였고, 또 재개발 문제를 두고 언론과 여론은 사건 자체가 가진 문제를 들어내지 않고 (기득권과) 호도를 하고 있었으니까요. 이런 상황에 대해 우리는 비판적인 시선을 가지고 사건이 가진 진실을 드러내야 했어요. 이런 행동이 가진 동시대적 비판성, 덮여있는 이면을 들어내는 비관성 자체가 르포라는 장르의 특징이에요. 예컨대 황석영 씨의 초기 단편 작업들이나 난쏘공 같은 소설들이 그런 르포적 작업의 태도를 가지고 있었죠. 저도 하나의 창작법인 만화로 르포를 지향하고 작업을 한 거예요.

서국선 : 외국 같은 경우에는 르포 만화가 하나의 장르로 구축되어 있고 관심도 받고 있어요. 예컨대 <쥐>는 베스트셀러가 되기도 했고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죠. 그런데 한국에서는 독자들이 굳이 찾아보려고 하지 않는 이상 르포 만화를 접하기 힘든 것 같아요. 이런 사회적 배경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

김성희 : 저는 어려운 환경 그런 거 보다는요. 그냥 작가는 그 순간, 그 시대가 어쨌든 내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이야기를 하는 거라고 생각해요. 작품에 대한 반응은 또 같이 만들어가는 거고요. 이런 건 잘 안 된다, 지금은 이런 소재를 외면하는 환경이다. 그런 문제가 작가에게 중요한 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서국선 : 작가 자신이 옳다고 생각한 것을 계속 하면 된다는 말씀이신가요.

김성희 : 사실 정말 만화가 안 팔리는 시대거든요. 또 책이 안 팔리는 시대고. 그런데 <내가 살던 용산>이나 <사람냄새>는, 그래도 독자들이 소리 소문 없이 산 책이에요. 필요함을 느낀 거죠. 이렇게 사람들은 조금씩이라도 반응을 한다고 생각해요.

독자에 앞서 작가가 환경에 전제를 갖고, 우리나라는 이게 안 되니까. 요거 안 되니까. 그런 전제로 작업을 하는 태도는 맞지 않는 것 같아요. 오로지 '이 이야기가 필요한가' 거기에 집중해서 조금이라도 독자에게 필요한 이야기를 전달하기 위해 창작적 노력을 하는 것 같습니다.

서국선 : 만화라는 매체의 표현 방식이 사회적 이야기를 하는데 굉장히 적합한 방법인 것 같아요. 영화는 제작부터가 힘들고, 소설은 비교적 접근성이 떨어지니까요. 다른 매체에 비해, 만화가 사회를 바꾸는 힘이 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세요?

김성희 : 만화라는 매체 자체가 굉장히 대중적이고 접근하기 쉬워요. 그래서 학습만화나 시사만화처럼 곳곳에서 많이 활용되죠. 다른 매체에서도 만화적 표현방식을 활용하기도 하고요. 그만큼 만화는 글과 그림을 통해서, 어떤 이야기든 다 소화해 낼 수 있는 특징을 갖고 있어요. 지금 현실이 필요로 하는 이야기를 담기에 너무나 쉽다는 거죠. 재현방식도 그렇고 창작자 개인의 의지가 다른 외압에 그렇게 많이 휘둘리지 않아요. 자본에서도 조금 독립적이기도 하고 창작하는 개인 작가에게 자율성도 굉장히 많죠. 책상 앞에 앉아 자기 의지에 따라서 그리면 독자를 관철 시킬 수 있고요. 독자 에게도 읽히기 쉽기도 하고. 그렇기 때문에 만드는 사람이 어떤 이야기를 하려고 하느냐에 따라 무엇이든 가능하다고 봐요.

서국선 : 만화로서 작가님의 진심을 전하려고 하실 때에 가장 주의하시는 부분은 어딘가요?

김성희 : 내가 지금 하려고 하는 이야기가 무엇인가. 무엇을 전달하려고 할 것인가. 그리고 이 이야기는 꼭 필요한가. 꼭 필요하다면 어떻게 전달해야 될 것인가. 특히 <먼지 없는 방> 작업을 하면서 느낀 건 이래요. 중립성은 실은 굉장히 어느 쪽으로든 호도되기 쉬운 측면이라고 생각해요. 어떤 하나의 입장이 없으면 객관적인 입장도 존재할 수 없다고 생각하거든요. 저의 이 만화, <먼지 없는 방>는 분명한 입장이 있어요. 드러나지 않는 측면의 진실은 지금의 사회에서 간과하고 있다. 그러니까 이 진실을, 이 사람의 입장을 수면 위로 올리자. 이렇게 저는 최대한 제 입장을 선명히 했어요.

창작 안에는 창작자의 입장이 분명히 있어요. 그 입장을, 이 모든 사건들이나 이야기를 모르는 사람이 차근차근 쫓아갈 수 있도록 밝히는 거죠. 이런 점에 대해서 저는 입장을 선명히 한 편이에요.

서국선 : 작가님께서 지금 관심을 갖고 계시거나 앞으로 만화로 창작하실 사회적 사건이 있으세요?

김성희
: <내가 살던 용산>이나 도시에서 일어나는 문제들, 공간의 문제, 노동의 문제를 계속 살펴보다보니 이 분들이 다 내 나이 또래였다는 걸 알았어요. 애정 씨도 저보다 2살 어리고, 이렇게 우리 모두가 같은 세대를 공유하는 사람들이었던 거죠. 이처럼 제 세대의 문제든, 지금 시대 자체의 문제든 하나씩하나씩 거치면서 좀 더 고민을 확장할 수 있는 노동의 문제에 대해 고민하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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