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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여자는 시집만 잘 가면 된다고요?"

[전태일 통신] 경제 성장에 희생된 우리의 어머니들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는 물가, 어려워만 가는 서민 경제, 사람들이 만나면 정말 살기 힘들다는 한탄이 입버릇처럼 쏟아져 나오는 요즘. 이는 경제 성장이 한창이던 1960~1970년대에 대한 향수와 박근혜라는 인물에 대한 기대감을 낳았다.

하지만 '한강의 기적' 이라는 그 이름 아래, 얼마나 많은 이들의 한숨과 눈물, 희생이 있었는지, 그래서 얼마나 고달팠는지는 말하지 않는다. 그러나 말하지 않는다고, 개인의 희생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그 시대를 살았던 평범한 사람들 개개인의 삶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그 시대가 남긴 고통의 잔해를 그대로 보게 된다.

그러한 시대의 가장 큰 피해자들은, 평범한 사람들, 그리고 그 중에서도 여성들이다. 경제 개발이라는 목표 아래, 산업 역군이라는 이름을 달고 먼지가 풀풀 날리는 열악한 노동 환경에서 하루 12~18시간까지 일하던 그 시절, 쥐꼬리만한 월급 받으면서도 그 생계를 잇기 위해 그러한 현장을 떠날 수 없었던 시절, 그 누군들 힘겹지 않았겠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성들은 남성보다 더 차별적인 사회 환경에 놓여있었다. 가부장적인 사회는 여성들의 희생을 더 강요했다. '여자는 시집만 잘 가면 되지.' '여자가 한글만 알면 됐지, 뭘 더 배워.' 그러한 말들을 수없이 들어야 했고, 당연히 그렇게 살아야 되는 줄 알았다.

당연히 공부는 나의 것이 아니었고, 결혼은 인생의 최대 목표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녀들의 가슴에 상처가 남지 않는 건 아니었다. 배우지 못한 설움은 항상 그녀들을 쫓아다녔다. 저학력의 사실이 들킬까봐 항상 가슴 졸여야 했고, 무식하다며 쏟아내는 가족들의 온갖 무시도 그대로 받아 내야 했다. 그래서 그녀들은 이야기한다. 내 이야기를 소설로 쓰면 장편 소설이 될 거라고… 이것이 바로, 대다수 우리 어머니의 모습이다.

이번에는 경제 성장이라는 미명 아래 희생되었던 우리의 어머니들의 모습을 찾았다. 그래서 만난 이가 바로 현재 노원에 있는 학력인증기관인 청암학원를 다니고 있는 김숙자(57·가명) 씨였다. 그녀는 파마머리에 소녀같이 생글생글 웃는 얼굴에 약간 남아있는 경상도 사투리를 가지고 있었다. 초등학생들이 크레파스로 그린 '어머니' 그림에서 갓 튀어나온 듯한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분이었다. 그래서 더 친근한 마음으로, 고향에 있는 어머니와 대화를 한다는 기분으로 대화를 시작했다.

▲ 서울에는 학력인증기관이 많이 있다. 이 사진은 초등학교 학력인증기관 중의 하나인 마들여성학교의 수업 한 장면.. ⓒ조민경

육성회비 3개월 치가 없어서 그만 두었던 초등학교

김숙자 씨는 경북 구미에 살다가 초등학교 때 부모님을 따라 서울로 이사를 왔다. 10살 때였는지, 11살 때였는지, 이제는 그 당시의 나이도 가물가물해 했다. 하지만 초등학교의 교문을 마지막으로 들어섰던 그 순간은 생생하게 기억했다.

조민경 : 서울에 올라오게 되면서 학교를 갈 수 없었나요?

김숙자 : 가려고 하면 갈 수 있었지. 서울에 와서 그때 우리 아버지가 나를 저기 있는 송천초등학교로 데리고 갔어. 그런데 육성회비 3개월 치를 미리 내라고 그러대. 예나 지금이나 다 없이 사니까, 그게 부담스러웠던 게지. 나 역시 공부를 꼭 해야겠다는 마음도 없었고… 나라도 우겼으면 갔을텐데… 아버지가 안 보내니까 그냥 안 간 거야. 살면서 그렇게 힘들 것을….

초등학교 졸업장이 뭐라고, 그 순간의 판단이 그렇게 인생의 큰 걸림돌이 될 줄은 전혀 상상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조민경 : 그렇다면 다른 형제들도 다 공부를 못했나요?

김숙자 : 내가 2남 3녀 중 차녀야. 우리 언니는 중학교 나왔지. 나보다 5살 많아서 일찍 학교 나왔고, 내 밑에 있는 여동생은 소아마비가 걸려서 자기가 안 다닐라고 했지. 그 밑에 두 남동생들은 공부했어. 아들들이라고… 내가 중간에 끼여 있는데다가 서울에 올라온 바람에 못한 거지.

똑같은 경제 상황에서 아들 공부 시킬 돈은 있고, 딸 공부 시킬 돈은 없는 것. 상식적으로는 말이 되지 않는다. 하지만 아들은 공부를 시키고, 딸은 공부를 하지 못하는 것이 당시의 현실이었다. 결국 어려운 경제 상황도 문제이지만, 가부장적 사고가 더 근본적 요인이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하기에 제 2의 김숙자 씨, 제 3의 김숙자 씨가 존재하고 있는 오늘인 것이다. 가슴 아프게도 말이다.

속이려고 속인 것은 아니었어

초등학교를 가지 않고 집에 있다 보니, 아버지의 친구 분이 자신을 니트 공장으로 데리고 갔다고 한다. 기술을 배워 놓으면 다 쓸모가 있다고 하면서… 그렇게 공장에서 배운 그 기술로 30년 동안 일을 하게 될 줄은 그때에는 몰랐을 것이다.

아침 8시부터 저녁 8시까지 그리고 잔업이 많을 때에는 밤늦게까지, 혹은 새벽까지 일하면서 그렇게 살다가 보니 어느 덧 나이가 스물다섯. 어느 날 중신 아줌마에게서 선이 들어 왔다.

"내가 처녀 때 날씬하고 좀 괜찮았나봐. (웃음) 그래서 중신하는 아줌마가 나를 중신을 한다고 하대. 그래서 해보라고 하니, 지금의 애 아빠를 소개 시켜주더라고. 그런데 그때 그 아줌마가 그랬어. 중학교는 나왔지? 하고... 그래서 그때 바로 중학교 안 나왔다고 말했지. 그리고 그런 거 따지면 나는 선 안본다고 했는데, 괜찮다고 그냥 선 보라고 하더라고. 나는 속인 거 없는데, 아줌마가 중간에서 속인 거야. 어쨌든 그렇게 애 아빠 만나서 결혼을 했어."

그 많은 인연 중에서 그렇게 만나서 결혼을 하다니, 정말 좋았나 보다고 물었더니, 김숙자 씨는 30년 보다 더 지난 일인데도 풋풋한 당시의 감정이 떠오르는지 "크크크" 하는 웃음으로 답변을 대신했다. 그리고 말을 이어나갔다. 물론 자기만 속인 것은 아니었다고… 남편도 부자에다 공무원이라고 했는데, 사실은 공무원은 아니었고, 장관들 태우고 다니는 공무원 기사였다고… 그래도 남편은 한양대 2년 중퇴자로 학벌은 좋았다는 말을 덧붙인다.

"결혼해서 사는데 내가 딸리잖아요. 처음에는 좋아하니까 괜찮다고 했지. 그런데 하고 보니까 답답한 게 많았겠지. 애 아빠가 키도 좀 작아. 할머니도 있고. 그래서 좀 낮춰서 한다고 한건데, 너무 낮춰서 결혼한 거지. 흐흐흐."

살다보면 다 들통나기 마련이라며 웃으며 이야기를 꺼냈건만, 힘겨웠던 과거가 생각났는지 갑자기 목소리가 떨리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나 고등학교 나온 줄 알았어. 근데 그게 대화해보면 금방 다 들통나는 거거든. 모른척 해줄 뿐이지. 그렇게 살면서 아들 둘을 낳았는데… 시집 식구도 무식하다고 무시하지, 신랑도 무시하지. 내가 도저히 살 수 없는 거야."

목소리가 더 구슬퍼졌다. 떨리는 목소리를 진정시키며 계속 말을 이어갔다.

"그래서 뭐가 문제인지 모르겠지만, 내가 도저히 얘 아빠랑 못살겠다고 이혼을 한다고 했어. 그런데 우리 큰 아들이 철철 울면서, 엄마 나는 이혼한 집 아이가 되고 싶지 않아하는 거야. 큰 아이가 그렇게 말하는데 어찌나 가슴이 아픈지…."

결국 이 말을 할 때면 눈물이 난다며, 결국 눈물을 뚝뚝 흘렸다. 그러면서도 계속 말을 이어갔다. 내가 못 배워서 아이들까지 힘들게 살 수는 없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배워야겠다고 생각했다고. 그래서 찾은 곳이 바로 수도 학원이라는 곳이라고 했다.

"학원에 가는데 그렇게 눈물이 쏟아지는 거야. 나도 할 수 있다는 희망이 생기고, 너무 가슴이 벅차서…."

서러움과 벅참이 교차하는 그 감정이 그대로 되살아난 탓인지, 결국 눈물을 펑펑 쏟고 말았다. 휴지를 찾아 눈물을 닦고 잠시 호흡을 가다듬은 후에야 말을 할 수 있었다. 그렇게 시작해서 그녀는 그곳에서 초등학교 과정도 마치고 중학교 과정도 마쳤다고 한다.

▲ 마들여성학교 수업 장면. ⓒ조민경

다시 시작한 공부, 이제는 고등학생

공부 못한 설움을 대물림할 수 없기에, 아이들은 더 공부시키려고 했다고 말했다. 그때부터는 대부분의 어머니가 그렇듯 함박웃음을 보이며 자식 자랑을 시작했다.

"애들이 나처럼 못 배운 서러움을 겪으면 안 되잖아. 그래서 정신없이 일을 했어. 그리고 돈 벌어서 큰 얘는 어학연수도 보냈고… 그래서 지금은 삼성 선임 연구원으로 있어. 며느리도 공무원이야."

말이 빨라지고, 목소리도 커졌다. 정말 신나는 표정이 역력했다. 자녀가 어떻게 자랐는가로 자신의 인생이 평가 받는다고 생각하기에 더욱 그러한 듯했다. 작은 아들도 재수, 편입을 거쳐 지금은 번듯한 곳에 취직했다고 했다. 그리고 이렇게 자녀들을 잘 키워놓으니, 남편도, 시댁도 더 이상 무시하지는 않았다고 했다. 하지만 그래도 가슴 한쪽은 항상 허전했다고….

"그냥 살려고 했어. 그런데 내가 그런 게 맘에 너무 안차는 거야. 한쪽 가슴이 허전하고… 그러다가 우리 큰 며느리가 아이를 낳았어. 공무원이니까 1년만 키워 달래. 그래서 그 애를 키웠지. 그런데 애만 키우며 살다보니, 나태해지고 없던 고지열도 생기고, 나중에는 우울증까지 오더라고. 내가 이렇게 살면 뭐하나 싶고… 우리 집이 5층인데 5층에서 이렇게 떨어지면 이대로 죽을 수 있겠지 하는 생각을 하루에도 몇 번씩 했어."

그래서 결국 선택한 것은 더 공부를 하는 것이었다고 했다. 그리고 그 결심을 밝혔을 때, 모두가 응원하고 지지해줬다고 했다. 뒤늦게 공부해서 뭐하냐고 할 수도 있을 텐데, 가족 중에 그렇게 말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고… 오히려 남편은 더 적극적으로 공부할 수 있는 곳까지 알아봐줬다고 했다. 지금 다니고 있는 청암학교는 남편이 소개해준 곳이다. 그리고 지금은 청암학교의 우등생이 되었다.

"공부를 하다보니까 재미있어. 돈 벌 때도 재미있었지만 공부할 때에는 더 재미있는 거 같애. 보람이 있어."

공부가 제일 재미있다고 하는 그녀. 지금은 이제 한문도 공부한다고 한다.

"우리 세대들은 한문도 없어진다고 해서 하나도 안 배웠어. 그러가다 청암학교 다니다보니 한문도 알아야겠다 싶더라고. 그래서 공부해서 6급을 봤어. 거기에서 내가 97점으로 합격한 거야. 70점만 맞아도 합격하는데 말이야. 그래서 얼마 전에는 5급을 봤어. 5급도 그 정도 점수가 나올 것 같아."

정말 스스로가 기특한 듯, 흥분된 목소리로 말했다. 그리고 이후의 포부도 더 밝힌다. 3월에는 4급도 따고, 계속 공부해서 1급까지 딸 거라고 했다. 머리가 좋은가보다 라고 반문하니, 그녀의 대답,

"나는 전철 탈 때도 그냥 안다녀. 메모지 들고 다니면서 봐. 계속 외워."

문득 영어 단어 사전을 들고 다니며 단어를 외웠던 중, 고등학교 시절이 생각났다. 또 같은 모습을 연출하고 있는 것 같긴 한데, 정말 다른 느낌이었다. 그건 의무적으로 하는 자와 즐기는 자의 차이가 아닐는지.

사회복지과 입학을 꿈꾸다

공부하면 뭐가 좋으냐고 묻는 질문에 그녀는 울먹이며 답했다.

"예전에는 내가 우리 엄마를 많이 원망했어. 왜 나를 이렇게 못 가르쳐서 시집살이 시키냐고. 그렇게 살기 어려웠냐고. 그러면 우리 엄마는 아이고 미안하다. 내가 그때는 몰랐다 그래. 그런데 내가 공부를 하니까, 나도 하면 된다는 용기가 생기니까, 이제는 관용이 생기더라고. 엄마가 네가 그렇게 공부도 잘 하는데, 진작 가르쳤으면 더 훌륭한 사람이 되었을텐데 하는데, 이제는 엄마 괜찮아. 그런 소리 하지마. 나도 옛날이었으면 공부하기 싫었을 거야. 지금 하니까 재미있는 거고, 보람도 있는 거라고. 괜찮다고…."

이제는 미안해하지 말라며 오히려 어머니를 위로한다고 했다. 공부라는 것이 지식을 전달하는 그 이상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는 그녀와의 만남이었다. 새로운 용기를 가져서 그럴까? 이제 그녀는 더 많은 꿈을 꾸고 있었다. 소녀처럼.

"앞으로의 계획은 한문 공부 계속하고 1급까지 따는 것이고, 내년에 학교 졸업하는 대학교 가는 거야. 사회복지과에 가서 어려운 사람들 도와가면 살고 싶어."

무척 인상적으로 봤던 영화 중에 '밀크'라는 영화가 있다. 게이인 하비밀크가 동성애자의 인권을 위해 정치에 뛰어들어서 3번 낙선 끝에 결국 정치인 되어 활동하는 과정을 그린 영화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이 영화에는 그런 대사가 나온다.

"희망으로만 우리가 살 수 없다는 것을 저도 압니다. 그러나 희망 없이는 삶을 살 가치가 없습니다. "

사람의 삶을 더 풍요롭게 하는 것, 가치있게 하는 것. 그것이 바로 희망, 꿈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그녀가 참 행복해 보인다고 생각한건 그 때문이 아닐까? 그녀가 새롭게 가진 꿈을 꼭 이루기 바라며, 끊임없는 도전을 하는 그녀에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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