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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거민 처지가 바로 우리 청년의 처지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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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철거민 처지가 바로 우리 청년의 처지지요"

[전태일 통신]<84> [인터뷰] 명동 재개발 지역에서 활동하는 김연 씨

포탈라, 포탈라는 명동성당 앞 골목에 위치한 티베트 전문음식점이다. 이 음식점은 박범신 작가의 소설 <나마스테>의 주인공인 민수(34· 본명 텐징 델렉) 씨와 이근혜(31) 씨 부부가 함께 운영하고 있다. 포탈라는 이색 맛집으로 잘 알려져 찾는 사람이 꾸준히 늘어갔다. 코리안 드림(?)을 이룬 민수 씨는 올 봄까지만 해도 단란한 가정의 가장이었다. 그런 민수 씨의 가계에 암운이 드리우기 시작했다. 건물을 사들인 재개발 회사에서 가게를 비우라는 통고문을 받은 것이다.

민수 씨의 부모님은 티베트 독립 문제로 네팔로 망명하여 민수 씨를 낳았다. 네팔에서 태어났지만 민수 씨는 티베트 인이고 따라서 티베트의 독립 문제에 관심이 많다. 지금 티베트의 상황은 일본 치하에 있던 우리나라의 처지와 같다고 민수 씨는 말한다. 따라서 포탈라는 단순한 음식점이 아니라 중국에 탄압 받는 티베트의 처지를 알리는 장소이기도 하다.

한편 당시 노점상이었던 이근혜 씨의 아버지는 22년 전 노점상 단속에 분신으로 항거했다. 포탈라가 위치한 4구역 상인 대책위원회 위원을 맡은 이근혜 씨는 2대에 거쳐 철거민 신세가 된 셈이다. 다리가 불편한 이근혜 씨의 어머니는 철거 위기에 몰린 포탈라를 보면서 22년 전 악몽을 떠올린다고 한다.

민수 씨는 이제 단란한 가정의 가장이 아니다. 티베트 독립 운동가이자 이주노동자이고 다문화 가정의 가장이고 민주투사의 사위이고 장애인 장모를 모시는 사위이고 빈민 운동가의 남편이다. 어느 것 하나 감당하기 쉬운 문제가 없다. 설상가상으로 재개발 소식이 전해지면서 손님이 줄어 월세 내기도 어려운 처지라고 한다.

한편 막막한 처지에 놓인 명동 재개발 지역 사람들과 연대하기 위해 각계각층의 사람들이 찾고 있다. 그 사람들 가운데 한 청년을 포탈라에서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다.

▲ 김연 씨. ⓒ곽해룡


곽해룡 : 먼저 자신을 간단하게 소개해 주시겠어요?

김연 : 진보신당 청년학생위원회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김연이라고 합니다.

곽해룡 : 대학생이시군요?

김연 : 지금은 휴학 중입니다.

곽해룡 :군대는요?

김연 : 공익근무요원으로 복무를 마쳤습니다.

곽해룡 : 복학 하셔야겠네요?

김연 : 고민 중입니다.

곽해룡 : 경제적인 어려움 때문인가요?

김연 : 아닙니다. 대학을 나와서 취직을 하고 서로 경쟁하면서 빤한 삶을 살아가는 것보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사는 것이 더 가치가 있다고 생각되기 때문입니다.

곽해룡 : 김연 씨는 명동해방전선 일원이라고 들었습니다.

김연: 지금은 해체했지만 함께 했었습니다.

곽해룡 : 명동해방 전선은 어떤 일을 하는 단체였죠?

김연: 3구역 철거 반대 농성을 하면서, 함께 했던 사람들이 스스로를 대변할만한 곳이 필요하기 때문에 그리고 일상생활에서 이러한 문제들과 투쟁 상황에서의 다양한 변화들을 함께 논의하고 고민해 보기 위해서 만들었습니다. 명동해방전선의 구성원들은 사실 학생이라고 하기는 어려울 것 같네요. 청년이란 말이 적절할 것 같습니다.

곽해룡 : 3구역 철거 농성을 하는 과정에서 기억에 남는 일을 소개해 주시겠어요?

김연: 특별히 기억에 남는 것은 없고, 명동해방전선의 일원으로서 잘 놀았던 것 같습니다.

곽해룡 : 어떤 결과가 있었나요?

김연: 3개월 동안 열심히 투쟁을 했었고 다각도로 노력을 했지만 결과에 대해서 미흡한 부분이 있었죠.

곽해룡 : 애초에 내걸었던 목표에는 미흡했지만 싸움 과정에 부차적으로 얻은 것도 있었을 텐데.

김연: 그동안 현장에서 볼 수 없었던 사람들이 주체가 되어서 함께 투쟁했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협상 결과가 미흡했던 건 연대하는 과정에서 3구역 세입자들과 충분히 통하지 못했던 부분들이 인정 됩니다.

협상 내용이 연대 단위와 공유가 잘 안 되었기 때문에 당황했고 좀 언짢았습니다. 함께 투쟁을 했었는데 협상 과정에서 배제 되어 버린 것입니다. 우리가 협상 결정권은 갖지 못한다 하더라도 내용에 대해서는 함께 공유하고 논의할 수 있었을 텐데 그렇지 못한 점에 대해서 반성적으로 평가할 부분이 있는 것 같습니다.

곽해룡 : '세입자들이 보상비를 더 많이 받으려고 떼쓰는 것이다.' 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김연 : 외부자 입장에서 그런 식으로 생각하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는 건 아닌데요, 그렇게 말하는 본인들도 목 없는 자라는 걸 생각했으면 해요. 자신들도 언제든지 같은 입장에 놓일 수 있다는 걸 상기한다면 그렇게 쉽게 얘기할 수 없겠죠.

곽해룡 : 기성인들은 옳고 그름을 판단할 때 자기한테 이로우면 옳은 것이고 해로우면 틀린 것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강합니다. 따라서 아직 기성인이 아닌 학생들의 생각이 무척 소중하다고 생각하는데, 아직 기성인이 아닌 학생으로서 기성인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김연 : 학생들도 물적 토대에서 자유롭지 않은 상황이기 때문에 기성인들과 다르지 않습니다. 자신의 이해관계를 기준으로 진위를 구분하는 사람들도 돌이켜 보면 철거민과 다를 바 없는 상황에 처해 있다는 걸 알았으면 합니다.

곽해룡 : 포탈라는 지금 어떤 어려움에 처해 있나요?

김연 : 포탈라를 포함한 4구역은 현재는 도시환경정비 사업 구역에 포함되어 있고, 아직 나오지는 않았지만 다른 지역에서 행해졌던 실태를 미루어 보았을 때 터무니없는 감정 평가액이 나올 겁니다. 세입자들이 이곳에서만큼의 삶을 영위하기 어려운 보상을 받고 위기에 몰릴 가능성이 굉장히 높습니다.

곽해룡 : 재개발 반대투쟁에 연대하는 이유는?

김연 : 재개발이란, 공간의 결정권이 누구에게 있느냐의 문제인데 저는 그 결정권이 그 공간에서 직접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지금 재개발 과정에서는 그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요구가 충분히 반영되지 않고 있잖아요? 그리고 그 현실이 청년들의 삶과도 맞닿아 있다고 생각해요. 청년들은 모두 사회 진입이 가능해야 하지만 지금의 현실은 그렇지 않거든요. 공간 없는 자들 그리고 목 없는 자들이란 점에서 청년들의 처지와 철거민의 처지가 다르지 않다고 생각되기 때문입니다.

곽해룡 : 어떤 식으로 해결되는 게 가장 바람직하다고 생각하세요?

김연 : 재개발을 하지 않는 것이 가장 좋겠지만 재개발을 하더라도 재개발 지역 사람들의 충분한 생존권이 보장 되어야 하고, 이곳에서의 생활만큼을 개발자본이 보상해줘야 할 의무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곽해룡 : 문제를해결하기 위해서 구체적으로 노력하고 계신 계 있나요?

김연 : 지원 대책위원회에 함께 하면서 같이 할 수 있는 일들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지금 당장은 가시적인 상황이 있는 게 아니기 때문에 내년 아니면 내후년에라도 재개발이 시작될 때를 대비해 다각도로 준비하고 있습니다.

곽해룡 : 요즘 대학생들은 외모 가꾸기와 스펙 쌓기에 여념이 없는 것처럼 보입니다. 같은 학생 입장에서 보기에 어떤지?

김연 : 사회가 점점 더 과도한 경쟁을 부추기고 있기 때문에 학생들이 거기에 쏠리는 건 어쩔 수 없는 현상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중요한 건 그렇게 경쟁에 뛰어든다고 해서 나아지지 않는다는 걸 보다 많은 사람들이 알았으면 합니다. 실제로 더 많이 경쟁할수록 대학생들이 사회에 처음 진출할 때 얻을 수 있는 몫은 더 낮아져가고 있고 그 몫이나마 차지할 수 있는 사람이 지속적으로 줄어들고 있습니다. 자기 한 사람의 생존을 위해서가 아니라 모두가 살아가는 길을 고민할 때가 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학생회에서 희한한 복지 공약을 내세우기 시작한 게 10년 가까이 됐는데, 이제는 점점 노골화 되어서 성형수술 비용까지 지원해준다고 하는데, 학생회의 중심이 학생 문제를 벗어나 사회 문제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곽해룡 : 다른 학생들이 스펙 쌓기에 여념이 없는데 김연 씨는 사회문제에 관심을 갖고 연대하면서 많은 손해를 보고 있다는 생각은 들지 않나요?

김연 : 들지 않습니다. 운동을 하면 제 미래가 빤한 것이지만 스펙을 쌓아 취직을 한다고 해도 그 미래가 빤하거든요. 스펙을 쌓고 취직을 해서 월급 생활을 하다가 서른여덟 즈음 자영업을 하거나 또 다른 회사에 비정규직으로 일하게 될 텐데, 그런 삶이 결코 운동을 통해서 얻을 수 있는 것보다 정신적으로나 물질적으로 나은 삶 같지는 않습니다.

곽해룡 : 앞으로 계획이 있다면 좀 들려주시겠어요?

김연: 진보신당 청년학생위원회의 기초를 더 다지고 청년운동의 밑그림을 그려보고 싶습니다.

이야기를 나누는 내내 김연 씨는 담담했지만, 기성인이 져야 할 짐을 이제 스물네 살인 그에게 다 지게 한 것만 같아 안쓰러웠다. 수천 명이 나누어 져야 할 짐을 혼자서 지고 가는 그의 어깨 위에 내 짐도 부려진 것만 같아 미안했다. 김연 씨의 말 가운데 '목 없는 자' 라는 말이 섬뜩했지만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 김연 씨의 배웅을 받고 전철을 타고 돌아오는 동안 나는 잘려나가고 없는 내 목을 어루만져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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