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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건적 사고 못 버린 박근혜, '무임승차' 맛 들인 민주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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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건적 사고 못 버린 박근혜, '무임승차' 맛 들인 민주당

[대선읽기] 민주당, 박근혜 한 마디에 '훅' 간 이유는?

"선거에서 이기면 한미FTA를 폐기하겠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에게 나라를 맡길 수 없다."

평소에 말수 적기로 유명한 이 분, 입만 열면 아슬아슬하다. 민주통합당의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폐기 주장에 대한 박근혜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의 '반격'이었다.

언어만큼 자의식을 드러내는 수단은 없다. 말로 먹고 사는 정치인의 경우는 더 그렇다. "내가 해봐서 아는데" 류의 과거 타령이 이명박 대통령의 자기중심적 사고를 드러내는 상징과도 같다면, 박근혜 위원장의 화법은 늘 이런 식이다.

▲ 박근혜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 ⓒ프레시안(최형락)

박근혜 "나라 맡길 수 없다"는 한 마디, '짐이 곧 국가'인가?

사실 위험한 표현이다. "나라를 맡길 수 없다"는 말의 '주어'는 어김없이 생략돼 있지만, 결국 박 위원장 자신이 민주통합당에 나라를 맡길 수 없단 얘기다.

진보신당이 이 점을 짚었다. "나라가 누구건데 자기가 맡기고 말고 운운하나"(14일 논평). "국민 알기를 봉건시대 백성만큼도 생각 안 한다", "아직도 자기가 박정희 왕조의 공주님인 줄 아시나"는 비아냥도 있었다.

박근혜 위원장을 정계로 이끌었다는, "어떻게 세운 나라인데 이렇게 흔들려서는 안 된다"는 '로열패밀리' 특유의 자기희생 의식, FTA 폐기까지 주장하는 '반국가 세력'에게 나라를 맡길 수 없다는, '짐이 곧 국가' 식의 사고관. 모두 이 한 마디에 담겨 있는 것이다.

소셜네트워크 분석 전문기관 '트리움'의 김도훈 대표도 비슷한 분석을 내놨다. 지난주 <시사인>과 함께 박근혜 위원장의 발언을 바탕으로 '담론 네트워크 지도'를 만든 결과, "국가와 자신을 동일시하는 전형적인 로열패밀리의 사고"라는 분석이 나왔다. 레토릭으로 '나라'를 내세우는 경우는 많아도, 담론의 궁극적인 지향이 '나라'인 정치인은 드문데, 박 위원장이 바로 그렇다는 것이다.

사실 그의 화법은 언제나 이런 식이었다. 진영아 공천위원의 '거짓말 파문'에 이어 다른 공천위원들까지 자질 시비에 휘말리자 "더 이상 토 달지 말라"고 못 박았고, 동생 박지만 씨가 삼화저축은행 관련 의혹을 받을 때에도 "동생이 분명히 말했으니 그걸로 끝난 것"이라며 '상황 종료'를 선언했다. 국민들의 의구심도, 부글부글 끓던 당내 반발도 박 위원장이 "토 달지 말라"고 하면 그걸로 끝이었다. 토 달지 말라하면, 토 달지 말아야 하나?

박근혜 한 마디에 '훅 간' 민주당…그래도 '착한 FTA'는 다르다고?

그런데 박근혜 위원장의 이 허술한 한 마디에 '훅 간' 것은 결국 민주통합당이다. 이 문제 많은 발언에도 치명상을 입을 수밖에 없는 약점을 이미 갖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이른바 '말 바꾸기' 논란이다.

새누리당의 비판처럼 민주통합당 지도부를 비롯한 의원 상당수가 노무현 정부 당시 한미FTA를 추진한 각료 출신이거나 2007년 비준안을 통과시킨 열린우리당의 주역임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민주당이 "이것만은 안 된다"며 반발한 투자자국가제소제(ISD) 역시, 진보진영의 격렬한 폐기 요구에도 "대외투자 보호를 위해 필요하다"며 향후 중국과의 FTA에서도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던 게 그들이다.

한창 FTA 문제로 달아오르던 지난해 가을, 정부가 "노무현 대통령이 시작한 한미FTA, 이명박 대통령이 마무리하겠습니다"라는 공익광고를 내보낼 때부터 논란은 예견된 것이었다. 민주당의 격렬한 반발을 불러일으킨 이 광고 문구의 치졸함이야 차치하고, '팩트'만 따져보면 이만큼 정확한 문구도 없다.

그러나 지금 민주당이 내놓고 있는 논리는 고작 "노무현의 FTA와 이명박의 FTA는 다르다"는 게 전부다. 이른바 '착한 FTA'와 '나쁜 FTA'로 나누고, 지금은 후자라서 안 된다는 것이다. 천정배, 정동영 등 일부 의원을 제외하고는 진심어린 반성이나 성찰의 목소리조차 찾아보기 힘들다.

민주당 'FTA 폐기' 주장, '진심'인가 '무임승차'인가

'원죄'야 그렇다 치더라도, 민주통합당의 당론이 명확히 '폐기'인지 '재협상'인지도 갈팡질팡하다. "폐기까지는 너무 나간 게 아니냐"는 당내 반발의 목소리도 들린다. 포장지는 '좌향좌'했지만, 내부는 때 아닌 '정체성 혼란'을 겪고 있는 듯한 모습이다. 유권자의 입장에선 민주당의 FTA 폐기 주장이 정말 그들의 '진심'인지도 의심스러운 대목이다.

이런 비판 하나 수용하지 못하고 '착한 FTA'와 '나쁜 FTA'라는 선악 프레임에 돌진하는 민주당의 모습은 '반MB' 여론에 기댄 무임승차에 가까워 보인다. 정권 심판 여론을 자신들에 대한 지지로 착각하며 어제의 신자유주의자가 오늘의 복지 전도사로 거듭나는, 그런 무임승차 말이다.

▲ 15일로 취임 100일을 맞은 한명숙 대표는 기자회견에서 시위 진압 지시에 대해 "왜곡된 사실"이라고 부인했다. 그러나 그 때도, 지금의 민주당처럼 FTA 반대를 외치다 물대포를 맞고 연행된 시민, 분신한 택시노동자가 있었다. ⓒ연합뉴스

취임 100일 맞은 한명숙 대표가 15일 기자회견에서 박근혜 위원장을 겨냥해 "FTA를 옹호하는 세력에게 정권을 맡길 수 없다"고 말했다고 한다. 또 국무총리 시절 FTA 반대 시위에 강력한 대응을 지시한 것에 대해 "나는 그것을 막았고 결과적으로 그런 일은 없었다. 그러니까 왜곡된 사실"이라고 일축했다.

그러나 그 때도 지금의 민주당처럼 FTA 반대를 외치다 물대포를 맞은 시민, 연행돼 벌금 폭탄을 맞은 시민, 한미FTA 폐기를 외치다 분신한 택시 노동자가 있었다.

디도스 공격과 연달아 터진 청와대 측근 비리, 박희태 국회의장 사임 등 모든 상황이 민주당을 '도와주는' 지금 추세라면, 민주당의 총선 승리는 어렵지 않아 보인다.

그러나 민주당이 총선 승리를 넘어 대선까지 바라본다면, 대체 '착한 FTA'는 무엇인지부터 답할 차례다. 집권 이후에도 중소상인과 농어촌민, 분신한 택시노동자의 무덤 앞에 '착한 FTA'가 어떤 것인지 보여줄 수 있을지는 두고 볼 일이다.

* [대선읽기]는 2012년을 맞아 대선이 끝나는 12월19일까지 <프레시안> 기자들이 쓰는 연재 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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