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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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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닭

[한윤수의 '오랑캐꽃']<488>

요즘은 평일에도 외국인이 많이 와서 지친다.
체력 회복을 위해 운동을 한다.

운동은 새벽 등산만한 게 없다.
하지만 겨울산은 깜깜해서 무섭다.
더구나 나 밖에 안 다니는 코스라 인적이 없다.
얼마 전 나무 사이로 흰 물체가 왔다갔다 하길래
"귀신이면 물러가고 사람이면 썩 나오슈!"
외쳤지만 가뭇없이 사라졌다.

그 다음부턴 무서워서 아무 노래나 막 부른다.
그러다가 아무거나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짐승은 몰라도, 귀신한테는 효험이 없을 테니까.
그래서 찬송가를 부르기로 했다.
하지만 제대로 외우는 게 없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찬송가는 외우기 어려운 특징을 갖고 있다.
영광, 영생, 영혼, 영원 같은 비슷한 단어들이 혼동을 일으키고,
서양찬송가를 번역하다 운이 안 맞아 땜빵용으로 넣은 그, 이, 저, 나, 내, 날, 큰, 곧, 늘, 다, 또 같은 별 의미 없는 단어들이 암초처럼 숨어서 흐름을 끊기 때문이다.

각고의 노력 끝에
<불길 같은 성신(聖神)여>를 외웠다.
귀신은 귀신으로 쫓아야 하니까.

산등성이에 올라 인가의 불빛이 보이지 않는 숲길에서부터 불길 같은 성신여를 부른다. 행여나 첫닭 우는 소리를 놓칠세라 귀를 쫑긋 세우고서.

그러나 겨울닭은 좀처럼 울지 않는다.
쫄아서 가늘게 18회쯤 부르면 첫 봉우리에 올라서고,
다시 계곡을 타고 내려가 개가 사나운 무당집을 지나느라 입만 달싹이며 18회를 더 부르면 두 번째 봉우리에 오르는데,
이때쯤 날이 번하게 새며 게으른 첫 닭이 운다.
"꼬끼오!"

옘병할! 이제 해방이다.
비로소 목을 놓아 내 노래를 부른다.

"죽장에 삿갓 쓰고 방라앙 사암처어어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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