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보수우익신문의 기수로 알려진 <피가로> 기자들이 지난 9일 기자조합 총회를 열고 만장일치로 채택한 결의문의 한 구절이다. 에티엔 무조트(Etienne Mougeotte) 편집국장에게 보낸 결의문에서 기자들은 편집국장에게 "(<피가로>는) 의견신문인만큼 현 여당을 난처하게 할 수 있다는 이유로 이런 저런 사건을 감출 것이 아니라, 기사는 물론 크고 작은 기사 제목들을 통해서, 뉴스를 전체적으로 그리고 다양한 의견을 알 수 있는 지면을 제작하도록 유의하라"고 요구했다. 이어 "지난 수개월 동안 편집(내용)에 관해서 제기되는 의혹들이 쌓였고 일방적인 제목 표현들이 신문비평 난에서 냉소의 대상이 됐다"는 외부의 평가도 곁들어 충고했다.
기자들이 편집 책임자를 향해 이렇게 직설적으로 문제점을 지적한 것은 프랑스 언론계에서는 매우 드문 충격적인 사건이다. <피가로>가 언론계에서 점하고 있는 위상으로 보아 보수언론에 준 충격이 더욱 컸지 않았겠나 생각된다. 그러나 이 충격은 프랑스 보수언론이 자신을 되돌아보고 잘못을 바로 잡을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될 수도 있다고 본다.
<피가로> 기자조합의 결의문은 보수신문이라고 너무 일방적으로 보수정권 편을 들어온 자기 신문에 대한 기자들의 반성의 목소리인 동시에 신문 경영 측을 향해서 각성을 촉구하는 기자들의 경종으로 프랑스 언론은 해석했다. <피가로> 기자들의 결의문을 읽으면서 한국의 조·중·동 기자들이 연상됐다. 그리고 조·중·동 기자들에게서는 왜 <피가로> 기자들과 같은 반성의 목소리를 들을 수 없을까 하는 의문이 떠올랐다. 보수정권과 유착해서 종편 허가를 얻고 덤으로 각종 특혜를 누리게 된 자격지심에서 감히 반성의 목소리를 밖으로 표출할 엄두를 내지 못 해서일까? 아니면 그럴 생각이 미치지 못 할 정도로 아예 의식이 마비돼서일까? 앞으로 닥칠 국민의 냉엄한 심판과 응보를 한번이라도 생각해 봤으면 저렇게 오랫동안 태연하게 침묵할 수 있을까?
한국 언론자유 순위는 매년 떨어지고 있다. 2011년 말 파리의 '국경 없는 기자'가 매긴 한국의 언론자유 랭킹은 세계 44위로 한 해 전보다 두 자리 뒤로 밀려났다. 남아프리카 공화국과 이름도 낯선 보츠와나 다음 자리다. 조·중·동이 언론을 억압한다고 비난했던 노무현 정권 때의 39위보다 언론자유 순위가 다섯 자리나 후퇴했다. 그런데도 지난 4년간 보수정권과 유착해온 조·중·동은 MB정부의 언론억압정책을 비판하기는커녕 같은 배를 탔다.
<피가로>는 한 때 프랑스 신문왕으로 불리던 에르상이 좌파정권을 공격하는데 이용한 정치무기였다. 에르상 사망 후 피가로를 포함해서 그가 거느리던 언론그룹 소크프레스(Socpresse)가 와해 상태에 들어가자 2004년 세계적인 전투기 제조업 총수이며 사르코지 대통령의 여당(UMP)소속 상원의원인 세르주 다소의 손으로 넘어갔다. <피가로>가 보수정권의 창(槍) 노릇을 하는 것은 정치적으로나 사업적으로나 당연했다. 이러한 신문에서 언론의 독립을 기대하기란 나무에 올라가 물고기를 구하는 것이나 다름없는 일이었다.
이런 환경에서 프랑스 기자들이 편집권 독립을 보장하는데 활용한 제도적 장치가 기자조합(societe des redacteurs)이다. 기자조합은 자본의 간섭에 맞서 기자들이 편집의 독립을 지키고 경영진에 대해서 언론윤리헌장의 준수를 요구할 수 있는 기자들의 방패 역할을 하는 조직이다. 1950년대에 <르몽드>에서 시작된 기자조합은 차츰 전국 언론으로 확산돼 지금은 전국지 지방지를 포함해서 전국에 25개의 언론매체에서 기자조합이 활동하고 있다. 공영텔레비전인 프랑스2와 라디오 프랑스에도 기자조합이 있다. 1968년 5월 혁명 이후 기자조합은 독일과 북유럽으로 전파돼 지금은 주요 언론매체는 모두 기자조합을 두고 있다. 미국 언론에는 없는 제도이다. 미국의 언론자유가 유럽에 비해 취약한 것은 기자조합이 제도적으로 보장돼 있지 않기 때문이다.
대자본이 경영하는 신문 피가로에서 기자들이 편집의 독립, 언론의 독립을 주장할 수 있는 것도 기자조합의 위력 때문이다. 법적으로 인정된 일반화된 제도는 아니지만 언론사별로 그 존재와 활동이 보장된 제도다. <피가로> 기자들은 지난 몇 달 동안 신문이 제1면에 니콜라 사르코지에게는 호의적인 기사를 게재하는 반면 그의 경쟁 상대인 사회당 후보 프랑수와 올랑드에게는 불리한 제목을 달아 보도하는 편집 태도에 여러 차례 문제를 제기했다.
이번에 피가로 기자들이 총회를 소집해서 만장일치로 편파적인 신문 제작의 시정을 요구하는 결의문을 채택하도록 촉발한 직접적인 계기는 주말인 11일에 발행될 <피가로 마가진(Figaro Magazine)>의 표지와 관련 기사였다. 이것은 완전히 사르코지 대통령의 선거운동 홍보물로 인식할 수 있게 만들었다는 비판을 샀다. 기자들이 결의문에서 "<피가로>는 어느 정당이나 정부 또는 대통령의 홍보 전단이 아니다"라고 선언한 것은 바로 <피가로 마가진>의 표지 기사를 지적한 것으로 보인다.
사르코지는 2007년 대선 때도 자신의 책 <증언>을 대선을 앞두고 넉 달 동안에 세 번이나 주간 <르포엥>의 표지 기사로 보도하게 할 정도로 언론을 선거운동 수단으로 이용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따라서 <피가로 마가진>의 표지 기사는 기자들의 분노를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기자들을 자극한 또 하나의 계기는 작년 7월 신문 제1면에 사회당 대통령후보로 가장 유력시 되는 올랑드와 스트로스 칸 전 IMF 총재를 성추행 미수로 고발한 여기자 트리스탄 바농의 사진을 나란히 싣고 사진 사이에 커다란 제목으로 "올랑드, 스트로스 칸-바농 사건으로 소환될 듯"이라고 보도한 사건이다. 올랑드는 스트로스 칸 성추행과는 아무 관계가 없다. 그런데 신문의 제1면에 마치 그가 스트로스 칸 사건과 관련이 있는 것처럼 제목을 달아 보도해서 기사만 보면 올랑드가 마치 스트로스 칸-바농 성폭행 사건에 관련돼 검찰의 소환을 받게 되는가보다 하는 인상을 준 것이다. 이것은 대선에서 사르코지를 위협할 수 있는 야당후보에게 치명적인 피해를 줄 수 있는 의도적인 왜곡 보도로 언론윤리의 기본을 무시한 행동이었다. 따라서 기자들은 <피가로>가 보수신문이라고 해서 이렇게까지 일방적으로 사르코지 홍보지로 전락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편집국장에게 경고한 것이었다.
▲ 지난해 7월 스트로스 칸 전 IMF 총재의 성추문 사건과 관련이 없는 올랑드와 여기자 트리스탄 바농의 사진을 함께 싣고 "올랑드, 스트로스 칸-바농 사건으로 소환될 듯"이라고 보도해 문제가 된 <피가로>의 표지(왼쪽). 사르코지 대통령의 홍보물이냐는 비판을 받은 <피가로 마가진>의 1면. 사르코지 대통령 사진 옆에 "내가 받들 프랑스를 위한 나의 가치"라는 말이 쓰여있다. |
그러나 편집국장이나 경영진의 태도가 기자들의 결의문 때문에 달라질 것 같지는 않다. 에티엔 무조트 편집국장은 결의문이 보도된 후 기자들을 만난 자리에서 "여러분이 불만이 있으면 (좌파신문인) <리베라숑>에 가서 일하는 수밖에 없다"고 맞받았다는 보도다. 의견의 차이가 문제가 아니라 언론윤리를 준수하는 신문을 만들자는데 피가로 보도 태도가 마음에 안 들면 신문사를 떠나 진보좌파 신문으로 가라는 것이다. 막말이었다. 보수신문 경영진의 사고방식은 프랑스나 한국이나 별 차이가 없는 모양이다. 에티엔 무조트 편집국장은 기자들의 질문에 <피가로>의 편집노선을 앞으로 바꿀 의향이 전혀 없다고 공언했다.
<피가로> 신문 제작진과 경영진 사이에는 신문을 어떻게 만들 것이냐는 문제를 두고 매우기 어려운 간격이 있어 보인다. 그러나 기자들이 기자조합을 통해서 천명한 언론윤리 원칙은 누구도 부인하기 어렵다. <피가로> 기자들이 채택한 결의문은 사회적으로 공감대를 넓히고 있다. 이 공감대가 언론 경영진에 미치는 압력이 적지 않으리라고 본다. 그런 의미에서 <피가로> 기자들의 결의는 그 의미와 파급효과가 작지 않으리라고 본다. <피가로> 기자들의 결의문이 한국 기자들, 특히 조·중·동 기자들에게 각성하는 계기가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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