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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전탑 반대하던 어르신의 분신, 도시가 답해야 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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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송전탑 반대하던 어르신의 분신, 도시가 답해야 할 때"

[토론회] "'전기 과소비'에 젖은 도시민, 각종 부조리에 무감각"

"밀양에서 초고압 송전탑 건설에 반대해 7년 째 싸우고 있는 어르신들이 가장 힘들어한 것은 무엇보다 외로움이었다. 자신들의 목소리가 알려지지 않을 것이라는 걱정에 절망하고, 서로 '끝까지 함께 가자'라고 말하면서도 결국 지는 싸움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고 많이 힘들어한다." (김준한 천주교 부산교구 정의평화위원회 신부)

'이치우 열사 분신 대책위원회'의 공동 대표를 맡고 있는 김준한 신부는 13일 서울 명동 가톨릭회관에서 열린 '밀양 송전탑 저지 주민 분신 사망과 핵발전소 문제' 토론회에서 시민과 언론의 관심을 촉구하며 이같이 말했다.

13일 서울 곳곳에서는 '탈핵'을 논의하는 자리가 열렸다. 탈핵변호사모임 '해바라기'와 탈핵교수모임은 이날 오전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 배움터에서 '원전의 인권문제와 위헌성'을 주제로 토론회를 열었고, 오후에는 동해안 탈핵 천주교 연대가 연 '밀양 송전탑' 토론회와 전국 45개 지자체장의 '탈핵 도시 선언'이 각각 열렸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 1주기가 다가오는 시점에서 한국 내에서도 원자력에 관한 근본적인 논의가 시작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특히 이날은 원전이 근본적으로 가지고 있는 '지역 차별'의 문제를 비판하는 목소리가 높았다.

"도시를 위한 에너지 정책, 지역은 감수하라?"

주민들과 함께 초고압 송전탑 건설에 반대해 싸우고 있는 밀양시 산외면 약산사 주지 법성 스님은 송전탑 문제에 대해 "처음부터 철탑 노선의 문제'가 있었다"고 고발했다.

"철탑이 최단 거리로 질러가지 않고 바가지처럼 빙 돌아 3개 마을을 관통해서 지나간다. 바로 질러가면 철탑이 3개나 줄어드는데, 주민 설명회조차 없었다. 이 때문에 마을 주민들이 더욱 격분하게 된 것 같다. 설계 무렵에 한전 과장을 만나 '왜 마을을 휘감고 가느냐'고 따졌더니, 그 때 나오는 답이 '철탑 하나 세우는 비용이 수 억인데 길이 없는 높은 산은 헬기를 사용해야 하고 공사 비용이 많이든다'는 것이었다. '철탑이 마을로 오면 피해가 커진다'고 하자 '정부의 에너지 정책이니 감수하라'고 하더라."

법성 스님은 송전탑 건설 현장에서 용역들이 주민들에게 저지른 각종 폭력과 자신이 당한 여성비하 욕설과 성적인 폭력을 증언하며 눈물을 흘렸다. 그는 "'바로 이곳이 지옥이구나'하고 생각했다"면서 "이대로라면 이치우 열사와 같은 제2,3의 사고는 우연이 아니라 필연이다"라고 말했다.

밀양 송전탑 건설 현장에서 벌어지는 문제는 한국 사회의 '도시 중심주의'를 그대로 반영한다. 이계수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오늘날 인권에서 가장 중요한 키워드는 '차별 금지'"라며 "원전이 대도시나 인구가 밀집한 도시 근처가 아닌 항상 상대적으로 낙후되고 여론 영향력도 별로 없는 소외지역에 건설되는 것은 '지역적 차별'의 문제"라고 짚었다.

양기석 찬주교 창조보전연대 신부도 "도시화율이 90%를 넘는 한국에서 도시는 소비 위주의 공간으로, 지방이나 농어촌은 도시의 자원을 공급해주는 창고로 전락하고 있다"며 "농어촌은 도시에 자원을 대주면서 공동체가 붕괴되고 갈등을 겪는 불평등한 구조"라고 진단했다.

양기석 신부는 "송전탑이나 원전이 지어지는 지역, 강정마을 등을 보면 정말 애향심을 가지고 생명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들이 사라진다"면서 "고령의 농민의 저항을 님비 현상으로 매도하고, '국익'을 위해서라면 약자인 국민이 고통을 감수해야 한다는 논리를 내세우지만 국익이란 결국 소수 거대자본의 이익 아니냐"고 성토했다.

특히 한 곳에서 막대한 양의 전력을 생산하는 원자력발전소는 이러한 차별을 구조적으로 내재하고 있다. 우일식 밀양분신대책위 집행위원장은 "하나에 어마어마한 양의 전기를 생산하는 원자력 발전소를 짓는 것은 이는 원전이 있는 지역에서 전기를 다 쓰는 것이 아니라 멀리 있는 지역까지 전기를 보낸다는 전제가 있다"면서 "원전은 장거리 송전방식을 필수적으로 취하게 되어 있다"고 지적했다.

우일식 위원장은 "서울의 전기자급률은 3%, 대구 2.5% 인 반면 경남의 자급률은 200%, 당진은 350%에 달한다"면서 "서울 외의 지역은 사람 사는 곳이라고 생각을 하지 않는다. 서울이나 인천처럼 전기를 많이 쓰는 지역에서 태양광, 풍력 등 자연에너지를 이용해서 전기 자급력을 높인다면 송전탑 문제는 근본적으로 생기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한전에 '특권'주는 전원개발촉진법, 누구를 위한 것인가"

이에 더해 일방적인 수용과 형편없는 수준의 보상 등 지역의 일방적인 희생을 법률적으로 뒷받침하는 전원(電源)개발촉진법의 문제도 제기된다. 분신한 고 이치우 씨의 경우도 자신의 논을 막무가내로 파헤치는 한전 측의 공사에 여러번 울분을 토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용역이 투입되던 그 날도 함께 있었다. 논에 용역이 막아서고 공사 장비가 작업하고 있어서 논 주인도 들어갈 수 없었다. 칠흑같이 어두운 새벽에 주민이 폭행당하고 지팡이도 뺐겨 쓰러졌다. 이것이 지옥이구나 했다. 이치우 어르신 논은 한 곳에 모여있는데, 분신한 그날 '내 동생이 배불리 먹지 못하고 허리띠 졸라매서 겨우 장만한 논인데, 오늘 내가 죽어야 해결되려나' 하셨다. 또 '논에 들어온 공사 장비에 불을 지르고 싶은데, 그러고 나면 마을 주민들이 문책을 받겠지요. 오늘이 마지막입니다'라고 세 번이나 말했다. 지금도 생각하면 가슴이 저며온다." (법성스님)

지역 주민들의 생활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보상 문제도 심각하다는 지적이다. 우일식 위원장은 "밀양에 지어지는 765 송전탑은 높이가 100m 이상, 아파트 50층 높이인데, 보통 1km 이내 지역에는 지가가 90%가 떨어져서 10%의 잔존가치가 남는다"면서 "그러나 촉진법은 송전탑의 경우 좌우 3m를 보상하는 도로에 준용해 좌우 3m만 보상하도록 되어 있다"고 지적했다.

우 위원장은 "지난 7년간 앞서 송전탑이 지어진 전국 5군데를 답사했는데, 송전탑 주변 100m 이내에 매매가 이뤄진 지역이 딱 한군데 있었다"면서 "송전탑의 높은 전자파로 인한 암 발생 등을 두려워해 송전탑이 보이는 지역 내에서는 아무도 사려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양이원영 환경운동연합 에너지기후국장은 "원전이나 송전탑 건설에서 전원개발촉진법의 문제는 심각하다"면서 "이 법은 사업자가 인허가를 받았을 경우 국토의 계획 및 이용에 관한 법률. 도로법, 사도법, 하천법, 항만법, 원자력안전법 등 각종 법의 규제를 다 통과한 것으로 본다"고 지적했다.

양이원영 국장은 "이는 전원개발사업자는 시행한다고 마음 먹으면 아무런 규제 없이 무엇이든 할 수 있는 특권을 가지는 것"이라며 "이는 '국가를 유지·온존시키기 위해 원자력발전소는 필수적이다'라는 논리가 깔려 있는데, 50여 개의 원전을 멈춘 일본을 봐도 과연 그런지 의문이다. 과연 인간의 존엄성이나 지역 공동체를 부수면서까지 이런 사업을 해야 하는 것인가"라고 비판했다.

"밀양, 고리, 삼척에도 사람이 산다"

문제는 이렇게 생산된 전력을 소비하는 도시다. 이날 열린 전국 45곳 단체장의 탈핵 도시 선언 역시 이러한 문제의식이 담겼다. 이들은 선언문에서 "원전에 대한 위험 부담과 사회적 비용을 분담하지 않고 실질적으로 수혜만 입고 있는 지방자치단체들이 이제는 상생의 입장에서 에너지 전환을 위한 실천에 적극 나서야 할 때"라고 선언했다.

양이원영 국장은 "원자력에 의존하는 전력 시스템은 도시민으로 하여금 전기사용에 무책임한 인간으로 만든다"며 "도시민들은 엄청난 방사선 물질과 전력 수송 과정의 전자파 문제, 원전 건설 지역 등의 지역 공동체와 환경 피해 등의 온갖 문제를 일으킨 전기를 쓰면서, 동시에 이런 문제들에 무감각하다"고 지적했다.

양기석 신부는 "생태 정의를 위한 인간의 책임을 각성해야 한다"면서 "어느 지역을 위해 다른 지역에 위험한 물질을 만들어내는 것을 건설한다는 것 자체가 올바른 일이 아니다. 밀양, 고리, 영덕, 삼척에도 사람이 산다는 사실을 인지해야 한다. 모든 생명과 피조물은 안전하게 살 권리가 있다"고 말했다.
▲ ⓒ프레시안(김윤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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