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 공무원과 시골 공무원
'생거진천쌀'이라는 브랜드로 유명한 진천은 장미를 특산물로 밀기 시작해 '곱단이'라는 캐릭터도 만들고 수출 판로를 개척하는가 하면, 산학연 연구팀을 만들어 장미 식용음료, 장미 화장수, 장미 비누 등 부가 상품 개발을 지원하고 있다. 진천군청은 쇼핑몰까지 만들어 지역 농특산물을 직접 팔고 있다.
▲ 보은 대추와 비가림막의 효과에 대해 열심히 설명하고 있는 지역 공무원. ⓒ프레시안(김하영) |
청원군도 각종 시설 현대화 지원 및 유통센터 건립은 물론 '청원생명'이라는 지역 통합브랜드를 구축해 각종 농특산물 홍보를 전담하고 있다. 딸기의 경우 '청원생명 딸기 연구회'를 만들어 청원군 전체 딸기 재배 농가를 조직했고, 수출 전략 품목으로 지정해 인도네시아, 싱가포르, 홍콩 등 해외 마케팅 지원을 하고 있다.
농민들의 가장 큰 고민이 판로 개척 등 유통의 문제였는데, 정부와 지자체가 이렇게 팔을 걷어붙이고 나서면서 작목반 형태로 지역 특화 농산물을 안정적으로 생산만 하면 판로 문제는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민간 마케팅 전문가 영입한 무주
'반딧불'이라는 통합브랜드를 구축한 전북 무주군은 아예 외부에서 홍보·마케팅 전문가를 전문계약직으로 영입했다.
▲ 무주군청 박희랑 마케팅팀장. |
덤프트럭도 출입하던 곳이라 폭과 높이가 5m 가까이 될 정도로 널찍하고 평균 13~15도가 유지돼 와인저장고로는 안성맞춤이었다. 특히 무주는 머루의 주산지로 머루와인이 특산물이었는데, 이 동굴을 이용해 3만 병을 저장할 수 있었다.
저장에 그치지 않았다. 머루와인동굴에서는 무주 지역 5개 와이너리에서 만든 머루와인을 시음할 수 있고 머루 아이스바, 머루쿠키, 머루푸딩을 체험을 수도 있다. 평일에도 방문객이 400~500명이고, 주말에 많을 때는 4000명까지도 이곳을 찾는다. 동굴에서 직접 판매되는 머루와인만 10억 원 이상이고, 이곳을 다녀간 관광객들의 재구매율도 높다고 한다.
▲ 무주 적상산의 머루와인 동굴. ⓒ무주군청 |
샴페인의 교훈
마케팅 노력은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무주머루와인은 임산물 가공품으로는 처음으로 지리적표시제에 등록됐다. 그동안 양양 송이, 장흥 표고 등 생물이 지리적표시제 등록 사례는 있었지만 가공품으로는 처음인 셈이다. 이는 적잖은 의미를 지닌다. 우리가 흔히 아는 '샴페인'은 프랑스 샹파뉴(Champagne) 지방에서 생산되는 발포성(Sparkling) 와인을 말한다. 지리적 표시제 실시 이후 샹파뉴 지방이 먼저 등록을 하면서 다른 지역에서 생산되는 발포성 와인에는 '샴페인'이라는 이름을 붙일 수 없게 된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지자체간 머루와인 경쟁이 벌어질 경우 무주가 우위를 가질 수 있다.
무주군청 마케팅팀은 무주 지역 농특산물을 직접 판매하는 인터넷쇼핑몰(www.mj1614.com)도 오픈해 운영하고 있다. 작목반 및 가공업체, 영농조합법인 등 입점 농가만 99농가이고 머루와인, 사과, 천마 등을 비롯해 61품목 212개 상품을 판매하고 있다. 최근에는 서울 시내 지하철 광고도 개시했는데, 2011년 운영실적이 13억 원을 넘어섰다. 마케팅 팀은 최근에도 "천마, 머루, 호두 등은 추석 등 특정시기 선물용품으로 평상시 판매가 되지 않는다"며 이들 작물을 이용한 기획상품을 개발하고 구매자 취향에 맞는 다양한 소포장 개발과 직거래 방식을 고민 중이다. 이밖에 그가 부임한 직후 뚫은 대도시 직거래 장터에서도 연간 8억 원 이상의 매출을 올리고 있다.
▲ 무주군청에서 직접 운영하는 농특산물 쇼핑몰. |
박 팀장은 군청에서 근무하면서도 전문가답게 한국심리학회지에 광고심리학 관련 논문을 꾸준히 게재하고 있고, 마케팅 관련 핸드북도 펴냈다.
박 팀장은 다만 행정조직의 한계를 지적했다. 주어진 행정 예산 안에서 움직이다 보니 운신의 폭이 좁고 각종 행정절차를 따라야 하기 때문에 신속성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외부 업체에 용역을 줘야 할 일도 '관내 업체'에 한정되기 때문에 협업의 폭도 좁은 편이다. 전문계약직이라 정치 상황에 따라 신분도 불안해질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 팀장처럼 민간 전문가들이 행정 조직에서 마케팅 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 기회가 늘고 있다는 점 자체만으로도 지자체들이 마케팅에 얼마나 공을 들이고 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한 때 무분별한 전시성 축제 남발과 공통 품목에 대한 과열 경쟁이 지적되기도 했지만, 인력과 경험이 축적되면서 마케팅도 점점 세련돼 지고 있는 추세다. 특히 지자체의 관리·감독 하에 지역 특화 작물 재배와 품질관리가 이뤄지고 있다는 점이 고무적이다. 전북 남원 같은 경우에는 '춘향이'를 소재로 '변사또 잔치상', '몽룡 거지밥상', '월매가 만든 사위상' 등 스토리텔링 마케팅으로 진화하고 있는 중이고, 마케팅 방식도 단순 포장을 넘어 직거래 쇼핑몰 구축, SNS 마케팅 등으로 더 공격적인 방향으로 확장되고 있는 추세다.
▲ 위부터 차례대로, 경남 남해군, 충북 진천군, 전북 진안군이 운영하는 농특산물 인터넷 쇼핑몰. '보물섬' 브랜드의 남해는 흑마늘, '생거진천' 브랜드의 진천은 쌀, '마이산 정기담은'의 진안은 홍삼 제품을 가장 앞세우고 있다. |
농산품 수출 시장 확대 가능성 충분
지자체가 브랜드 구축과 마케팅에 열의를 쏟고 있다면 정부는 수출 지원 투자를 강화할 예정이다. 농식품부는 2012년 농식품 수출 목표를 100억 달러(2011년 77억 달러)로 잡고, 중국·일본·아세안 시장을 집중 공략하기 위한 25개 전략품목을 중점 육성할 계획이다.
특히 16개 수출선도조직과 17개 수출협의회 중심으로 내부 과열경쟁으로 인해 수출 시장을 교란하는 행위를 규제하고 공동수송을 위한 전문물류업체를 선정해 물류비용을 줄이는 방안도 추진 중이다.
일각에서는 농산물 공급이 내수와 수출 모두 이미 포화 상태에 이른 것 아니냐고 우려를 나타낸다. 하지만 업계에서는 아직 시장이 확대될 여지가 남아 있다고 본다.
지난 11일 발간된 농촌진흥청은 보고서 '키워드로 본 2012년 농산업'을 통해 "일본의 원전 사태와 관련해 농식품 오염에 대한 문제 제기가 지속되고, 이는 우리 농산물 수출에 호재로 작용할 전망"이라고 분석했다. 대지진 피해를 받은 이와테 등 4개 현이 일본 채소류 생산의 25%를 담당하던 지역이라는 것이다. 2011년 대일본 농식품수출은 사상 최고인 23억 달러를 기록했는데, 이런 추세는 올해도 지속될 전망이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일본의 농산물 시장이 파프리카 같은 일부 품목에만 개방돼 있어 우리나라 파프리카가 네덜란드산을 대체하는 방식으로 시장이 공략됐는데, 원전 사태 등으로 인해 일본 국민들의 자국 농산물 불안감이 커지면서 수입 품목을 확대할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다. 그는 또 "만약 한중FTA가 체결되면 중국 내 고급 농산물에 대한 수요가 상당할 것으로 전망된다"며 "준비하는 농가에게는 좋은 기회가 될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지자체, 농협, 생협…"농업인은 생산에만 전념을"
'본분을 잊었다'는 비판을 받고 있지만, 농협의 역할도 주목해볼만 하다. 농식품부는 2012년 업무보고를 통해 "가공·판매는 농협이 담당하도록 농협의 경제사업을 활성화해 농업인은 생산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선언했다.
농식품부를 이를 위해 농협중앙회 경제사업 조직을 '조합 지원'에서 '판매 중심'으로 개편하고 경제사업에 필요한 자본금을 충분히 확보하도록 한다는 계획이다. 특히 조합 출하물량의 50%를 농협중앙회가 유통을 담당토록 하고 원예농업의 경우 농협 계약재배를 12%에서 20%로 확대할 방침이다.
국내 소비자들의 식품에 대한 인식 수준이 높아지면서 친환경/유기농산물에 대한 수요가 늘고 있다는 점도 주목해야 한다.
농진청은 위 보고서에서 "젊은 학생, 직장인을 중심으로 시작된 '착한 소비'가 사회 전반으로 파급되면서 윤리적 소비로 변화될 전망"이라며 "윤리적 소비의 확대는 시장구조에서도 영향을 미쳐 한살림, 아이쿱생협 등 소비자 협동조합이 확대될 전망"이라고 분석했다. 지금까지는 건강과 사회의 영역인 '웰빙'과 '공정무역'의 소비트렌드가 선도했으나, 이후에는 환경영역인 '로컬푸드', '유기농' 등으로 확대된다는 것이다.
2010년 지방선거 이후 전국적으로 확산되고 있는 '친환경 무상급식'은 기본적으로 '로컬푸드' 개념을 깔고 있다. 따라서 지자체 수매와 생협이 활성화 되면 유통단계 거품이 빠져 수익성이 높아지고 안정적 판매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과거 농부들은 생산부터 유통까지 모두 신경을 써야 했다. 유통 구조에 전문성이 없는 농부들은 그래봐야 시장에 직접 내다 팔거나 유통업자에 '밭떼기'로 넘기거나 정부 수매에 의존해야 했다. 거의 손해였다. 그러나 잇따른 자유무역협정에 따른 위기의식, 사회의 선진화에 따른 먹거리에 대한 인식 재고 및 민간 분야 협동조합 확대, 정부의 강소농 육성 정책, 지자체의 브랜드화 전략 등의 요인들이 섞여 농민들에게는 점점 유리한 유통 환경이 조성되고 있다. 2012년 농사직설을 다시 써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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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세금 내면서 사는 게 목표입니다"
② 중남미 용병 파프리카, 한반도 휩쓸다
□공동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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