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방송이 이명박 대통령의 내곡동 사저 불법 매입 사건을 비롯해서 이 대통령이나 한나라당에 불리한 뉴스는 묵살하거나 축소 보도하는 행태로 정권의 시녀가 됐다는 공론이 떠돈 지 꽤 오래 됐다. 이런 상황에서 지난 6일로 예정됐던 민주통합당의 대표 경선 토론 방송 중계를 취소하는 사건이 터졌다. 이미 예정된 제1야당의 첫 대표 경선 방송 중계를 취소한 것이다. 언론의 본분과 사명이 무엇인지 를 망각하거나 무시한 행동이었다.
방송의 공익적 역할이 무엇인지를 안다면 상업방송이라도 쉽게 결정하기 어려운 경솔한 행동이었다. 그런데도 두 방송의 경영진은 그런 가책을 느끼기는커녕 자사의 이익에 반대하는 세력은 언론의 '위력'으로 응징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태도였다. 언론인이라기보다는 기업인의 모습이었다. 세계 언론인의 윤리준칙이라고 할 수 있는 뮌헨 헌장 "언론인의 의무와 권리에 관한 선언"을 상기시켜 줄 필요가 있는 '언론기업' 경영인들이었다.
'자사 이익' 불만에 제1야당 경선 토론 중계 거부?
당원과 대의원 뿐 아니라 모바일 투표를 신청한 일반시민 64만 명을 포함해서 총 79만 명이 참여하는 한국 역사상 초유의 정당 대표 경선(15일)을 앞두고 전 국민의 관심이 쏠려있는 제1야댱의 대표 경선 토론 방송을 KBS와 MBC가 취소한다는 것은 천재지변의 상황이 아닌 한 변명하기 어렵다는 생각이다.
총선이 석달 앞으로 다가와 있는 상황이다. 앞으로 한국 정치의 방향을 결정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될 새 인물이 누가 될지 국민들이 궁금히 생각하는 시점이다. 그런데도 공영방송을 자처하는 두 방송은 그 중계를 거부했다. 자사의 이익을 해치는 행동을 하고 있는 야당에 이익이 방송은 해줄 수 없다는 것이 명분이었다. 세계 방송사에 인용될 '역사적인' 방송 거부 명분이었다. 민주언론의 본분을 망각한 행동이라는 점에서 요즘 돈 봉투 문제로 붕괴 직전에 있는 한나라당의 위기에 못지않게 우려스러운 한국 언론 현실이다.
그러기에 KBS MBC의 행동에 분노한 YMCA, 여성민우회 미디어운동분부, 언론인권센터를 비롯한 10개 시청자시민단체가 지난 9일 KBS 앞에서 공동기자회견을 갖고 KBS의 행동을 비난하는 공개질의서를 발표했다. MBC에도 공개질의서를 보냈다. 시청자시민단체들은 두 방송의 행동이 국민의 알 권리를 외면하고 자사 이기주의에 빠져 정치권을 압박하는 수단으로 방송보도를 이용했다면서 방송 거부 이유를 공개적으로 밝히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지상파 방송 3사가 야당에 불만을 갖고 있는 이유는 다른데 있는 것이 아니다. MBC, SBS는 야당이 미디어렙(광고판매대행회사)법을 고집해서 방송사들이 독자적으로 광고 영업을 하려는 데 반대한다는 이유, KBS는 야당이 수신료 인상에 반대한다는 이유다. 그러나 미디어렙법 반대가 야당의 '의사'라고 할 수 있을까? 광고시장에서 '보이지 않는 힘'을 휘두르는 거대 미디어의 '횡포'를 견제하고 종교방송이나 이른바 '마이너 언론'의 생존을 보장하기 위해 미디어렙은 필요불가결하다.
KBS가 매달리는 수신료 문제도 마찬가지다. 야당도 수신료 인상 자체를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 이명박 대통령의 대선 캠프에서 홍보 책임을 맡았던 김인규 현 사장이 낙하산을 타고 KBS 사장에 임명된 이후 KBS가 'MB 방송', '한나라당 방송'으로 전락한 것을 시정하고 공영방송의 역할을 하겠다는 보장책을 마련하는 조건에서 수신료 인상에 동의하겠다는 것이다. 시청자와 시민단체들이 꾸준히 요구해 오고 있는 주장이다.
그런데 한나라당과 이해를 같이 하는 KBS와 MBC 경영진은 그들의 이익을 챙기는데 마지막 걸림돌인 야당을 압박하기 위해 언론이 갖고 있는 권력을 남용하는데 주저하지 않았다. <미디어오늘>에 의하면 연말 여야가 미디어렙 법안을 처리하려 하자 KBS, MBC 기자들은 '민주당이 법안을 처리할 때는 향후 정치권 주요 뉴스의 보도를 거부할 것'이라며 민주당을 압박하려 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또 방송 3사의 보도본부장이 민주당 원내대표를 만나 그들의 '입장'을 설명했다는 보도도 있었다.
물론 이들은 정치권을 압박한 일은 없고 그들의 '입장'을 설명했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 말이 그 말 아니겠는가? 언론의 '샹타쥬(협박)'다. 언론의 타락이다. 이런 압력의 결정판이 6일의 민주통합당 대표 경선 토론 방송 중계 취소로 나타난 것이다.
▲ ⓒ프레시안 |
KBS, 정당 경선 토론 중계가 압력 굴복이라고?
KBS가 밝힌 경선토론 방송중계 거부 이유 또한 충격적이다. 전국언론노조 KBS 본부(KBS 새노조)가 중계 취소 이유를 따지자 고영대 보도본부장은 "수신료 인상 약속을 번복한 민주당의 중계방송 요구 압력에 굴복해야 하느냐? 민주당 경선과 국민의 알 권리는 관련이 없다"고 말했다고 한다. 또 배재성 홍보실장은 "내부 선거 준칙상 총선을 석달 앞둔 시점에 정당 행사를 중계하는 것이 부적절하다고 판단해 중계를 하지 않기로 했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노골적으로 언론의 위력을 자사 이익의 도구로 사용하겠다는 의지의 표출이다. 막 가자는 말인가?
이러한 KBS 입장에 대해서 시청자시민단체들은 "공영방송 KBS에게 묻는다"는 공개 질의서에서 다음과 같이 물었다.
"민주통합당 대표경선 토론 토론을 거부한 이유가 내부 선거보도 준칙이 문제였는가? 아니면 수신료 인상 약속 번복이 문제였는가? 고대영 보도본부장은 '민주통합당 대표경선 토론 방송은 정당의 압력에 의한 것이기 때문에 굴복할 수 없어서'라고 했는데 그렇다면 지금까지 KBS에서 이뤄진 모든 정당 경선 토론 중계는 정당의 압력에 굴복한 결과였는가? KBS는 언론의 자율성을 지키지 못하고 정당 앞에서 치욕스럽게 굴복해온 것인가? 지금에 와서 비로소 자랑스럽게 저항해 정당의 압력으로부터 자유로운 언론의 독립성을 되찾았다고 주장하고 있는가? 선거관련 내부 준칙을 공개하라! 왜 지금까지 내부 선거보도 준칙을 어겨가며 정당 행사인 민주통합당 대표 경선 토론 중계를 하겠다고 했는가? 처음 토론을 중계하겠다고 결정했을 때까지는 준칙을 몰랐단 말인가?(하략)"
KBS의 궁색한 변명이 KBS를 더 깊은 함정으로 몰아넣은 느낌이다. 닉슨 대통령의 거짓말이 그를 사퇴하지 않을 수 없는 궁지로 몰아넣은 상황을 연상시킨다. KBS는 더 이상 거짓말을 그만 두고 언론의 정도에서 벗어나 한국 민주주의를 벼랑 끝으로 몰아넣은 이명박 정부의 대변인 노릇을 중단하고 공영방송의 제자리로 돌아오라!
"언론인과 선전원을 혼동하지 말라"
그러기 위해서 앞에서 언급한 언론인의 뮌헨 헌장(1971년11월24 제정) "언론인의 의무와 권리에 관한 선언"을 읽어볼 것을 권한다. 이 헌장은 서문에서 언론인의 책임은 다른 어떤 책임보다, 다시 말하면 고용주나 권력에 대한 책임보다, 공중(국민)에 대한 책임이 가장 우선한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그리고 이 헌장은 언론인에게는 의무가 권리보다 우선한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그래서 헌장 명칭도 언론인의 '권리와 의무'에 관한 선언이 아니라 언론인의 '의무와 권리'에 관한 선언으로 돼 있다. 언론인의 본분 15개 조항 중에서 의무 조항이 10개인 반면 권리 조항은 5개로 의무의 절반이다.
특히 KBS와 MBC가 유의해야 할 의무 항목은 언론인의 직업과 홍보인, 선전원의 직업과 혼동하지 말라는 제9항과 기자는 편집 책임자의 지시 외에는 기사에 관한 모든 압력을 거부하고 어떤 지시도 받아서는 안 된다는 제10항의 의무 조항이다. 이 의무를 실천하면 지금 두 공영방송이 비판받고 있는 문제들을 푸는데 큰 도움이 되리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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