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삐-'"정성을 다하겠습니다. 000상담원 김조경민입니다. 000 광고 보시고 전화주셨습니까?"
상담원 특유의 '라'음에 음정 높낮이에 변화를 주며 전화를 받는다. 수화기 너머로 상대방 목소리가 들린다. 늦은 점심인지, 이른 점심인지 무언가를 먹으며 심드렁하게 대답한다.
"네. 광고 보고… 좀… (쩝쩝) … 물어볼까 … (쩝) … 싶어서."
"네~ 지금부터 예약상담 접수 도와드리겠습니다~."
"네? 지금 상담하는 거 아닌가?"
역시나, 바로 상담을 기대했던 고객이다. 심호흡 크게 하고 더 상냥한 목소리로 말한다.
"죄송합니다. 상담예약을 먼저 하셔야 되고요. 지금 예약접수해주시면 내일까지 전화드리겠습니다."
"아우~ 복잡해. 당신은 아는 거 없어요? 그냥 물어보는 건데…."
"죄송합니다. 저희는 전문상담원이 아니라서 예약만 해드리고 있어서…."
"됐어요, 그럼."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헤드셋으로 날카롭게 전화기가 끊기는 소리가 파고든다. 그리고 전화가 끊김과 동시에 다른 고객의 전화가 들어온다. 그러면 다시 상냥한 목소리로 똑같은 대사를 뱉는다.
▲ 사진은 기사 내용과 직접적인 관계가 없습니다. ⓒ연합뉴스 |
반년 동안 내 일터였던 무료전화 콜센터
신문, 케이블TV 또는 지하철에서 수시로 마주하는 각종 홈쇼핑 광고. 080 또는 1577 같은 번호로 시작되는 무료전화를 받는 콜센터, 그곳이 지난 반년 동안의 내 일터였다. 아침 11시 부터 오후 4시까지 컴퓨터 한 대와 전화 한대가 놓인 책상에서 5시간을 보냈다. 주로 보험사의 상담예약을 주로 했었다. 모든 콜센터가 그러하듯이, 이곳도 24시간이었기 때문에 아침에 가자마자 하는 일은 지난 야간 타임 근무자의 흔적을 치우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10시 45분, 내 이름표가 붙여진 책상을 찾아 앉는다. 컴퓨터로 출석체크 한 후 커피 한 잔을 준비하고 화장실을 다녀오면 11시. 이제부터 5시간 동안 붙박이 노동자가 되어야 한다. 고3 수능 때 이 정도로 책상에 앉아 있었더라면 아마 서울대에 들어 갔으려나.
전화를 대기상태로 돌리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전화가 들어온다. 어이쿠, 첫 전화부터 잘못 걸렸다. 무슨 일로 아침부터 약주를 하셨는지 한 할아버지의 술주정이 시작됐다. 이럴 땐 조심스럽게 응대하고 주문용건이 아니시라면 먼저 끊는다고 한 후 끝내야 한다. 이것도 처음에는 당황해서 고객이 먼저 끊어야 한다는 생각에 계속 말도 안 되는 하소연을 들었지만, 점점 일하다보니, 이런 저런 돌발상황도 대처하는 여유가 생겼다.
정신없이 전화를 받다보면 어느덧 1시. 보통 회사에서는 점심시간을 끝내고 업무로 복귀할 시간이다. 하지만 파트타임인 나에게는 점심시간이 따로 없었다. 처음에는 점심시간 30분으로 알고 들어갔지만, 사실은 달랐다. 파트타임이 아닌 사람만 점심시간 1시간이 주어졌다. 물론, 그 분들도 전화량이 많으면 1시간에서 30분으로 점심시간이 줄어들었다. 그리고 그런 날이 더 많았음이 물론이다.
11시 출근이라 아무리 아침을 두둑이 먹고 집을 나서도, 쉴 새 없이 전화업무를 하다보면 뱃속에서 난리가 난다. 처음에는 간식으로 작은 빵을 사갔지만, 그대로 들고 오는 날이 점점 많아졌다. 뭣 모르고 들어간 지 이틀 째 되던 날, 휴게실에서 빵과 우유를 후딱 먹고 나왔다.
그랬더니, "파트타임 알바는 휴게실 가면 안돼요~ 먹으려면 자리에서 드세요~" 그래서 다음 날에는 자리에 앉아 전화가 들어오지 않도록 한 후 빵과 우유를 먹었다. 눈치도 보이니 한 입 베어 씹은 후 다시 전화대기 상태로 돌렸다. 한 입 먹고 한 통화 하고. 그러다 저 멀리서 관리자의 외침이 들려왔다.
"경민씨, 왜 전화 안 받아요?"
순간 서러움이 왈칵했지만, 눈치 보며 먹기도, 전화에 쫓겨 대충 씹어 넘기는 것도 힘들어서 다음 날 부터는 우유로만 점심을 때웠다.
음담패설에 다짜고짜 욕을 해도 상냥하게 응대해야
콜센터에서 일하다보면, 가장 힘든 것은 업무스트레스이다. 화장실 가는 것도, 간식 먹는 것도 눈치 보이지만, 무엇보다 고객과의 응대는 엄청난 스트레스였다. 직접 대면하지 않고 전화로 상대하기 때문에 종종 상대하기 힘든 고객들이 있기 때문이다. 다짜고짜 욕을 한다거나, 음담패설을 한다거나, 맘에 안 들면 무조건 관리자 바꾸라고 소리친다거나. 그럴 때에도 전화상담원은 상냥한 목소리로 응대해야 한다. 어쩔 수 없다. 그게 내 일이니까.
그러다보면 스트레스가 쌓이고, 하지도 않던 욕이 목까지 차오르다 전화를 끝내고서 낮게 뱉어내는 경우도 생긴다. 원래 착한 심성도 아니었지만, 그래도 욕설은 하지 않았는데, 전화 한 통을 끝내고 나면 나도 모르게 구시렁구시렁 대기 시작했다. 그리고 스트레스 때문인지, 얼굴 전체에 크고 작은 뾰루지가 생겨났다. 계속 헤드셋을 쓰니 귀가 좋을 리 없고, 컴퓨터를 뚫어져라 봐야하니 눈은 항상 건조했다.
그러던 어느 날, 출근하자마자 '마인드 교육'이라며 교육실로 불러냈다, 교육실에 모인 사람은 나를 포함해 6명 정도. 아마도 교대로 교육을 실시하는 모양이었다. 마인드 교육이라니, 강사가 제일 앞에 앉아 있던 한 명에게 그림이 그려진 종이를 주고, 나머지에겐 빈 종이를 나눠주었다.
"여기 앞에 있는 분이 그림을 설명해 줄 거예요. 그러면 여러분들이 설명을 듣고 그림을 그리시면 돼요."
아, 이게 말로만 듣던 미술치료인거구나. 열심히 설명을 듣고 따라 그렸다. 무엇보다 전화를 안 받아도 되는 이 합법적인 시간이 정말 즐거웠다. 끄적거리는 낙서도 좋아하는 터라 신나게 빈 종이를 채웠다. 아무래도 사람 상대하는 일의 어려움을 알 테니, 마음을 치유하는 심리프로그램을 기대했다. 그러나 그럴 리가.
"원래의 그림과 여러분이 그린 그림을 비교해보세요. 이중에 똑같이 그리신 분이 없죠. 그만큼 여러분이 그림설명을 잘 파악하지 못한 거예요. 여러분이 전화를 받으면서 고객의 니즈(needs)가 무엇인지 잘 파악해야 하는 게 중요해요. 그래야 고객의 불만에도 잘 대응할 수 있겠죠."
결국은 고객의 '니즈'를 잘 파악하라는 큰 깨달음을 주기 위한 교육이었다. 물론 맞는 말이지만, '마인드'가 내가 생각한 마인드가 아니라, 고객의 불만에도 더 상냥하게 해야 한다는 '마인드' 였던 것이다.
하루에 평균 200통, 주문건수는 50통. 한 통화가 끝나면 대기시간도 없이 바로 다른 고객의 전화가 들어온다. 그렇게 전화선의 꼬리에 꼬리를 물고 전화가 이어진다. 그러면, 나는 똑같은 말을 마치 처음 하듯이 상냥한 목소리로 응답한다. 가끔 발음이 꼬이기도 하고, 빈 배를 움켜쥐고 입술만 축이다 보면 힘도 빠진다.
그러면 전화받는 목소리가 왜 그러냐며 바로 불만이 들어온다. 여기서 일하기 전, 나도 콜센터에 전화도 걸어봤었고, 텔레마케터의 전화도 받아봤다. 그 때마다 무뚝뚝하게 말했던 것이 이렇게 나에게 돌아오는 건가 싶었다.
물론, 반대의 경우도 있다. '친절하시네요' 혹은 '고맙습니다, 수고하세요' 라는 말 한마디가 그렇게 가슴 먹먹해 지게 하는 말인지 그 때 처음 알았다. 고객들에게는 의례적인 말일 수 있겠지만, "수고하세요" 라는 말 한마디가 다음 전화를 힘 있게 받을 수 있게 했다.
정전에도 어김없이 울리는 고객 전화
가끔 일하면서, 언젠가 방송에서 본 다큐의 한 장면을 떠올리곤 했다. 70~80년대 공단지역에서 일대 정전이 일어나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던 여공들이 환호성을 지르며 공장을 나가는 장면이었다. 나도 일하다가 힘이 들 때, 가끔 그런 상상을 해보곤 했다. 정전이 된다면, 전화기가 불통이 된다면, 하고 말이다.
그리고 드디어 기적처럼 정전이 일어났다. 유례가 없던 정전사태가 벌어졌던 지난 여름 날이었다. 퇴근 시간 40분을 앞두고 갑자기 컴퓨터 화면이 꺼졌다. 에어컨도 선풍기도 형광등도. 마음속으로 '올레!'를 외치려던 나와는 달리, 관리자들은 난리가 났다. 그들에게는 고객의 한통과 주문 한 건은 매출과 연결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의 상상과는 달리 전화기만은 살아서 계속 울어댔다. 컴퓨터는 전원이 나가서 주문 입력이 안 되는데 주문하려는 고객의 전화는 정전에서 비껴갔다. 결국, 관리자는 손으로 직접 쓰라며 빈 종이를 나누어 주었다. 찜통 같은 더위에 전화 받으며 일일이 손으로 고객 주문을 적어갔다.
내가 근로계약서를 쓴 건 들어가고 석 달째 되던 날이었다. 담당자는 시급제에서 월급제로 변경되어서 부득이 하게 늦게 작성할 수밖에 없었노라고 말했다. 물론, 그 기간이 석 달이나 늑장부릴 정도로 부득이 한지는 잘 이해되지 않지만. 아무튼 담당자는 만근을 했을 때 3만원이 추가 되고, 거기에 실적이 좋아서 성과금을 받으면 더 많이 받을 수 있다며 전보다 좋아졌다고 자랑을 늘어놓는다.
그런데 가만, 만약 하루를 빠졌을 경우에는 3만원+하루일당 3만원이 고스란히 날아가게 된다. 주휴수당이랍시고 내놓은 3만원과 월급제로 만근을 하게 하는 꼼수라고 생각한다. 하루는 몸이 아파 하루를 빠진 적이 있었다. 마지막 주라 주말에 약속도 있어서 주5일을 못 채웠었다.
그랬더니 기본급에서 쑥 깎여나간 월급통장을 보고는 나도 모르게 주5일을 채우려고 아등바등, 적더라도 성과금이라도 받을까 싶어 내 몸을 닦달하게 되었다. 혹여 하루라도 빠지게 되면 주말에 나와서 근무일수를 채웠고, 당연히 국경일도, 추석 휴일에도 근무했다.
하루 5시간, 주5일, 한 달을 4주로 계산하면 100시간을 일한다. 그래서 받는 돈은 60여 만 원. 이 정도면 알바를 하면서 충전하는 기회로, 또 못했던 책도 읽고, 다른 일을 준비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원래 계획은 알바를 끝내고 오후시간을 알차게 보낼 생각이었다. 엄밀히 말하면, 이 오후시간을 위해 알바를 시작한 것이다.
그런데 어느 순간, 주객전도가 되어서 알바 때문에 나머지 시간은 재충전해야 하는 시간이 되어버렸다. 일단 허기진 배 때문에 체력은 점점 떨어지고, 스트레스와 짜증을 풀 시간이 필요했다. 그러니 알바가 끝나고 난 이후 시간은 넉다운 된 채, 아까운 시간을 허비해버렸다.
주객이 전도된 알바
사실, 사무실에서 일하면, 근무시간 내내 일하는 건 아닐 것이다. 인터넷 검색도 하고, 커피도 마시고, 동료와 대화도 나누고, 그러다 짬짬이 휴식도 취하고. 이런 시간을 제하고 실 노동시간을 따지면, 표면적인 9시간보다 적을 것이다.
그러나 단시간 노동은 딱 그 단시간 노동 만큼이었다. 하루 5시간 노동이 말 그대로 꽉 찬 5시간의 노동이었으니까. 화장실 가는 것도, 간식 먹는 것도 눈치 보이고, 쉴 새 없이 전화를 5시간 내내 받아야 하는 것은 고문과 같았다. 잠깐의 휴식이나, 옆 동료와 짧은 대화도 할 만한 짬은 없었다.
옆 사람과 말이라도 붙이려면 "옆 사람과 잡담하지 마세요" 라는 상냥한 말투의 관리자의 제재가 들어오기 때문이다. 그래서 단시간 노동이었지만, 단시간에 반비례하는 강한 노동 강도였다.
그래서 일까. 처음에 같이 들어갔던 9명의 동기는 어느새 하나 둘 자취를 감추더니, 한 달도 안 되어서 파트타임에는 나 혼자 남게 되었다. 그만큼 사람이 줄어들면 내가 받아야 할 전화도, 해야 할 전화량은 늘어날 수밖에 없다.
콜센터는 24시간제로 운영되기 때문에, 내가 출근할 때 누군가는 퇴근하고, 내가 퇴근할 때 누군가가 출근하는 시스템이다. 자리배치도 주기적으로 바뀌고, 일하는 사람도 쉽게 들어오고 쉽게 그만두었다. 그러니 홍수처럼 밀려오는 전화더미 속에서 외딴 섬처럼 힘겹게 일해야 했다.
내가 일하는 동안 많은 사람들이 들어왔고, 또 많은 사람들이 그만 두었다. 당연히 누려야 할 최저임금 권리가 특별한 혜택이 되고, 지켜야 할 의무가 마치 은혜로운 자비처럼 되어버린 것이 지금의 사회이다. 그래서 비교적 높은 시급을 보고 왔다가, 생각 이상으로 힘든 노동 강도와 스트레스 때문으로 그만두었을 것이다. 그래도 최저임금 4320원보다는 많으니 다행인건가. 수습기간이랍시고 10% 떼지 않으니 고마워해야 하는 건가. 아니면, 4대 보험 들어주니 황송해 해야 하나.
회사를 다닌 지 6개월 되던 날, 일을 그만두었다. 그러고 나서 평일에 먹는 12시 점심밥의 고마움을 새삼 느꼈다. 버스를 타다가도 지하철을 타다가도, 케이블 TV를 보다가도 내가 받았던 전화의 광고를 심심찮게 보게 된다.
24시간 상담전화라는 말을 볼 때면, 지금도 전화기를 붙들고 고객을 응대하고 있을 수많은 전화상담원들과 돛대기 시장 같았던 콜센터를 떠올리게 된다. 콜센터에서 보냈던 6개월, 고객의 불만을 이해하면서도, 육두문자를 참아내고 죄송하다라는 말을 붙이며 스트레스와 싸워야 했던 시간들. 그리고 파트타임 알바라는 단시간 노동 속에 높은 노동 강도가 숨겨져 있음을 그 잔혹함을 뼈저리게 느꼈던 시간이었다.
* 원제는 <콜센터 알바잔혹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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