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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살 사건 정도는 되어야 기삿거리가 된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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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살 사건 정도는 되어야 기삿거리가 된다고요?"

[인권오름] 학생인권조례를 바라보는 불편한 시각

서울시 학생인권조례 통과가 진통을 겪고 있다. 짐작했듯이, 조례안에 있는 '성적 지향'이 삭제될 위기에 처해 있다. 학생인권조례와 '동성애'를 둘러싼 논쟁이 일자, 몇몇 기자들이 언론보도를 할 만한 청소년 성소수자의 차별사례를 찾으며 관심을 보였다.

대응조직인 '학생인권조례 성소수자 공동행동'도 '성소수자'가 빠진 서울시 교육청 초안이 발표된 이후에 급하게 학교 안 성소수자 차별사례를 수집해서 자료집을 냈다. 청소년 성토대회도 열렸다. 그런데 기자들은 더 센 사연이 필요하다고 한다.

자살 사건 정도는 되어야 기삿거리가 된다. 언론만의 요구가 아니다. 2007년 차별금지법 때도 그랬다. 동성애자, 트랜스젠더, 성소수자들에게 차별금지법이 꼭 필요하다는 것을 증명하려면 실제 차별사례가 필요하다고 했다.

죽어야 공감하는 소수자들의 인권?

성소수자 인권뿐만이 아니다. 이주민, 장애인 등 소수자 인권을 이야기할 때, 나도 심각한 인권침해 사례를 예로 들곤 한다. 겨우 스무 살이던 여성이 한국인 남편에게 살해당한 사연, 태어난 지 4개월도 안된 딸을 둔 이주노동자가 출입국 단속반을 피하다가 추락해서 사망한 사연 등.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센' 사연들이다.

이런 피해사례들은 상업화된 국제결혼중개의 구조적 폐해를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출입국 단속의 제도적 폭력성을 잘 보여준다. 제도적 개선의 필요성을 설득하는데도 매우 효과적이다.

하지만, 불편했다. '피해자' 또는 '범죄자'로서만 사회적으로 드러날 수 있는 이주민들의 존재. 정형화된 이주민의 이미지를 재생산하고 있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결혼이주여성에 관한 법률 강의를 할 때였다. 이주 관련한 법률교육이나 요즘 수요가 많은 '다문화'교육은 주로 한국인들을 대상으로 한다.

ⓒ윤필

평소처럼, 결혼이주여성들의 심각한 인권침해 사례들을 예로 들고 있었다. 국제결혼중개 구조의 '인신매매'적 속성, 남편에게 심한 언어적, 신체적 학대를 당하는 이주여성들의 사연 등을 이야기했다. 그러다가, 수강자들 중에 결혼이주여성들도 앉아있음을 발견했다.

그 순간, 내가 느꼈던 불편함의 이유를 정확하게 대면하게 되었다. 그 불편함은, 내가 이주민 인권을 이야기하면서, 스스로 이주민을 '타자화'하고 있었다는 자각이었다. 발화자와 청취자가 비당사자임을 전제로, 논쟁의 여지없이 이주민 인권을 설득하기 위하여 이주민들을 '피해자화'하고 있었고, '대상화'함으로써 심리적인 거리를 유지했다. 이런 자각은 마치 자아의 분열처럼, 성소수자 인권에 관한 강의를 할 때에는 더 선명해진다.

인권침해 폭로와 '피해자화' 사이에서 균형 잡기

솔직히 지금도 비당사자들을 대상으로 소수자 인권을 이야기하는 것이 꺼려지고 망설여진다. 심각한 인권침해 상황을 알리고 제도 개선의 필요성을 역설해야 하는 변호사로서의 역할과 '피해자'로서만 드러나는 소수자들의 이미지에 대한 거부감 사이에서 균형을 잡기가 쉽지는 않다.

정형화된 '피해자'로서의 이미지를 답습하지 않으면서 소수자들의 인권 상황을 공감시키고, 나아가 제도적 개선의 중요성을 효과적으로 설득할 수 있는 방법. 뭐가 있을까. 서울시 학생인권조례 위기 상황에서 고민이 많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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