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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사도 정치적 의견을 말할 자유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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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사도 정치적 의견을 말할 자유가 있다

[장행훈의 광야의 외침] "판사 발언 문제? '사법부 노조' 있는 프랑스를 보라"

"뼛속까지 친미인 대통령과 통상 관리들이 서민과 나라살림을 팔아먹은 2011년 11월 22일, 나는 이 날을 잊지 않겠다."-최은배 부장판사

많은 국민이 공감할 글이라고 생각한다. 그 때문에 FTA 날치기 통과에 반대하고 항의하는 수천 수만 명의 서울 시민들이 연일 서울광장에서 촛불 집회를 열고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런데 <조선일보>와 대법원장이 이 글을 문제 삼았다. 최 부장 판사의 글이 판사로서 적합지 않은 글이라는 것이다. 판사가 자신의 정치적 의견을 이렇게 공개적으로 발표하면 재판의 공정성에 문제가 제기될 수 있다는 것이다. <조선일보>는 최 부장판사가 진보적인 법관연구 모임인 '우리법 연구회' 간부라는 사실을 부각시켰다. 그가 좌파 판사이기 때문에 보수 정부의 정책에 반대한다는 것을 시사하는 것이다. 좌파의 생각은 옳지 않다고 공격하는 매카시즘 수법이다.

더 큰 문제는 대법원장이 보수 우익 신문의 보도가 나오자마자 최 부장판사의 행동을 심판하기 위해 대법원 윤리위원회를 소집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보수언론-보수정권-보수사법의 '철의 3각 동맹'을 느끼게 한다. 지금 한국의 민주주의 시계는 몇 시인가를 되묻게 한다.

보수의 3각 동맹…보수언론의 칼질에 겁먹지 마라

논란의 핵심은 판사도 정치적 의견을 표현할 자유가 있는가, 판사의 정치적 의견의 표현은 공정한 재판에 지장을 준다는데 사실인가, 그렇다면 판사의 정치적 의견을 제한해야 하는가 등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을 것 같다. 우선 양승태 대법원장이 소집한 윤리위원회의 심의 결과를 기다려 보아야 하겠지만 지금까지의 추이는 대법원의 입장은 선진 민주 사회의 사법관(觀)과는 상당히 거리가 있어 보인다.

특히 보수 우익 언론이 문제다. 이들은 언론자유를 표방하면서 언론의 영향력을 업고 사회 타 분야의 행동자유를 위압한다. 사회 전체가 언론을 두려워하고 권력화한 언론의 의견이나 주장에 감히 반론을 제기하지 못하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지난 여름 영국의 언론재벌 머독이 불법 도청 사건으로 수세에 몰려 영국 하원의 국정조사를 받을 때를 기억하는가? 한 영국 신문에 의하면 남자를 여자로 바꾸고 여자를 남자로 바꾸는 것 말고는 못하는 것이 없다는 막강한 영국의 하원의원들도 그 동안 언론재벌 머독이 무서워 그를 공공연히 비판하는 발언을 하지 못한 사실이 국정조사 과정에서 드러났다는 것이다. 그래서 머독이 국정조사의 '피고'로 소환돼 몰리게 되니까 그 때야 비로소 하원의원들이 그를 비난하는 발언을 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언론의 위력, 때로는 폭력이 얼마나 위협적인가를 잘 보여준 한 실례에 불과하다.

언론의 이러한 폭거를 막으려면 언론이 휘두르는 칼질에 겁먹지 말고 우선 이들의 주장이 옳은 것인지 아닌지를 가리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옳지 않은 주장이면 당당히 비판하고 언론권력의 남용을 막아야 한다. 이것이 한국의 민주주의를 지키는 길이다. 지금 한국 민주주의는 보수 언론과 보수 권력의 유착으로 큰 위협을 받고 있다.

'사법관 노조'가 있는 프랑스, 정치적 발언은 자유

그러면 <조선일보>의 최 부장판사 비판이 근거가 있는 옳은 비판인지를 알아보기 위해서 다른 민주국가의 법관들은 어떻게 행동하고 있는지를 알아보자.

우리보다 민주주의 경험이 훨씬 앞선 프랑스에서는 진보적인 법관들이 사법관노조(syndicat de la magistrature=SM))를 만들어 자신들의 정치적 의견을 발표한다. 인권을 무시하고 민주주의 원칙에 어긋나는 사법행위를 공개적으로 비판하고 재판의 민주화에 앞장서고 있다. 대통령이 검찰을 지배해서는 안 된다는 글도 싣는다. 그런 과정에서 격렬한 찬반 논쟁이 벌어지기도 한다.

그러나 이러한 법관의 정치적 발언이 공정한 재판에 지장을 초래할 우려가 있다며 문제를 제기하는 신문은 없다. 표현의 자유와 사법권의 독립이 헌법에 규정돼 있으니 당연한 것이다. 재판의 공정성이 문제가 된다는 것이 객관적으로 인정되면 그 문제는 해당 법관이 맡지 않도록 기피 신청을 하면 해결될 문제 아닌가?

프랑스의 사법관(판사 검사)노조는 1968년 5월 학생혁명의 산물이다. 법관들이 법을 형식적으로 해석하고 서민과 약자들의 이익을 등한히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된 진보적인 법관들이 정치권력에 대한 사법권의 독립과 서민과 약자의 이익을 좀 더 배려해야 한다는 목표를 세우고 조직한 법관노조이다. 당연히 정치적으로는 좌파이다. 사르코지의 사법제도에 대해서도 비판적인 의견을 내놓는다. 체포된 시위대가 경찰에 대해서 어떻게 인권을 주장할 것인지 안내하는 <체포된 시위자를 위한 가이드>라는 책자도 내놓을 정도로 인권운동도 한다. 따라서 사법관노조 소속 법관들은 정치적 발언에 개의치 않는다. 이들의 발언을 문제 삼는다면 그것이 문제가 된다. 한국의 민변과 비슷한 법관노조라고 볼 수 있겠다. 최은배 부장판사의 페이스북 글이 수구언론의 사설 대상이 되고 대법원의 징계 대상이 되는 사회에서는 상상도 못할 일이다.

이렇게 좌파 법관들이 만든 노조이기 때문에 주류 법관노조는 못된다. 사법관노조로서 1위는 판사 검사 총 8000여 명 가운데서 2000여 명이 가입해 있는 비정치적 법관노조인 법관노조연합(Union syndicale des magistrats=USM)이다. 사법기관 선거에서도 USM이 62.4%의 영향력을 발휘한다. 진보 좌파의 사법관노조(SM)는 회원 가입률이 10%로 USM 보다 적지만 선거에서 영향력은 30%에 이른다. 명실 공히 USM 다음 가는 제2의 사법관노조이다.

특기할 것은 2011년1월말부터 사법관노조(SM)가 법관과 검찰의 징계를 다루는 최고사법회의(Sonseil Superieur de la Magistrature)의 정식 구성원이 됐다는 것이다. 이제 사법관노조는 비정치 법관 내지 보수 법관과 함께 판 검사의 행동 기준을 결정하는 제도권 기관의 일원으로 인정받은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법관의 이념 문제가 재판의 결과에 불공정한 영향을 미칠 우려가 있다는 군소리는 나올 근거가 없어졌다고 하겠다.

또 하나의 새로운 사실은 프랑스의 진보 법관노조가 프랑스에 국한된 현상이 아니고 유럽 10개국의 공통된 사실이라는 것이다. 유럽에는 1985년 '민주주의와 자유를 위한 유럽 사법관 협회(magistrats europeens pour la democratie et les libertes)'라는 조직이 창설됐다. 10개국 15개 협회에서 1500명의 회원이 활동하고 있다. 협회는 사법권의 독립 수호, 어떤 환경에서든지 민주국가에 고유한 가치의 존중, 유럽의 민주적 사법문화의 증진, 사법관의 민주화, 사법관에게 표현 집회 결사의 자유를 확실히 보장하는 것 등을 목표로 하고 있다. 판사에게 이러한 권리가 인정되고 있으니 판사의 정치적 표현의 자유가 문제될 수 없는 것은 자명한 일이다.
▲ ⓒ조선일보

이러한 프랑스나 유럽의 기준에 비추어 볼 때 조선일보가 최은배 부장판사의 페이스북 편지를 문제 삼는 것이 얼마나 시대착오적인 매카시즘적 행동이었는지를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대법원 윤리위원회도 프랑스나 유럽 법관들의 행동 기준을 재조명해서 민주국가에 부끄럽지 않은 법관의 행동 기준을 새롭게 마련해서 판사가 불필요하게 표현의 자유를 제한 받고 징계위에 회부되는 일이 없도록 민주화 조치를 강구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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