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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켜라! 우리가 일구는 문화 알갱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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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켜라! 우리가 일구는 문화 알갱이들"

[전태일 통신]<78> 새로운 문화를 도모하는 자립과 대공분실

모두의 관심이 닿지 않는 곳에서 두 개의 작은 톱니바퀴가 덜컹, 하는 소리와 함께 굴러가기 시작했다. 그것은 바로 '자립음악생산조합(이하 자립)'과 '클럽 대공분실(이하 대공분실)'. 홍대 앞 두리반 농성장에서 어마어마한 이슈를 양산하며 성장한 자립은 지난 8월 7일, 대공분실에서 역사적인 첫 번째 총회를 가졌다.

많은 시간 동안 자립을 지켜온 밤섬 해적단, 회기동 단편선, 하헌진, 박다함, 한받 등을 비롯한 음악가와 활동가, 그리고 그들을 지지하며 새로운 문화를 도모하는 사람들이 참석한 가운데 진지하고도 얼빠졌으며 산만하기 이를 데가 없는 자립 특유의 분위기 속에서 총회가 진행되었다.

이 자리에서 자립의 약사(略史), 자립이 발매한 음반, 자립의 향후 계획 등에 대한 개괄적인 설명회와 더불어 자립음악생산조합 정관을 훑어보며 검토하는 "조합원 다 같이 정관 수술"이 거행되었다. 그 집중력은 극히 짧았으나 순간적으로 열띤 토론을 벌이기도 한 사람들은 '정관 수술'이 성공적으로 끝나자 임원을 선출하고, 조합원 가입을 받았다. 그야말로 새로운 출발이다.

총회를 치룬 대공분실은 "서울에서 가장 아파트 값이 싸고, 살인율이 높다"는 풍문이 유령처럼 떠도는 강북의 변방 석관동에 위치한 클럽이다. 사실 이곳은 한국예술종합학교(이하 한예종)가 오랫동안 방치하고 있던 옛 건물이었으나 동아리 학생들의 부단한 노력으로 현재는 동아리 회관으로 개조하여 운영되고 있다.
▲ 두리반 공터에서 공연을 하고 있는 인디 밴드. ⓒ프레시안(허환주)

홍대마저 자본에 잠식된 오늘

그러던 중 지난해 겨울, 한예종 동아리 연합회는 창고처럼 기자재 등을 쌓아 놓고 있던 지하실에서 달빛역전만루홈런의 죽음을 추모하는 '고기 음악회'를 진행했는데 이때 자립과 처음 인연을 맺게 되었다.

(습기 충만한 이곳에 대공분실이란 이름을 붙인 것 역시 밤섬 해적단의 드러머 권용만 씨이다. 참고로 한예종은 2007년까지 옛 안기부 건물을 사용했고, 시멘트로 막은 지하실의 비밀 문을 들어가면 끝없이 지하가 나온다는 음산한 소문이 팽배하기도 했다.)

대공분실을 중심으로 홍대를 탈피한 새로운 지역 문화를 만들기 위해 한예종 동아리 연합회와 자립이 의기투합하게 된 것은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이후 둘은 신이문역 앞에서 음악회와 술판을 벌이기도 하고, 농성장과 집회 현장에서 조우했으며, 대공분실을 활성화하고 조직적으로 운영하기 위해 공동운영위원회를 꾸려 정기적으로 모임을 가졌다.

그리하여 지난 7월 30일에는 '가슴은 차갑고 머리는 뜨거운 그라인드 코어' 밴드 크라이스트 퍽의 앨범 발매 축하 공연을 진행했고, 8월 19일에는 노 콘트롤, 악어들, 소프트 크림∼ 등의 밴드가 참여하는 '돌곶이 대난동'을 성황리에 성사시켰다.

자립과 대공분실, 이 둘이 추구하는 바는 아마 다음과 같으리라. 자유분방하고 어딘지 멋져 보이는 청년 문화의 인큐베이터 역할을 하던 '홍대'마저 자본과 시장 경제에 침식된 오늘, '인디 문화'니 '독립 예술' 따위를 운운하는 것은 지독한 농담이 되어 버렸다. 이는 지난 4월 29일 작성된 자립음악생산조합 발기 선언문에 잘 묘사되어 있다.

"거의 동시에 모든 매체가《인디》를 접수했다… 운동권-평론가들은 문화 운동으로서의《인디》를 소개하며 대안으로서의《인디》를 주창하다가 끝내 사라져 버렸다… 오늘날…《인디》에 대해 진지하게 이야기한다는 것은 넌센스에 가깝다. 한국에서《인디》는 너무 적거나 너무 많고 덜 떨어지거나 빛난다."

인디문화를 소비하는 게 '쿨한 딜'인가

분명 인디(Indie)라 함은 하나의 예술적 형식이나 사조가 아니라 삶의 태도와 방향성을 아우르는 존재 양식이거늘, 자본주의 사회는 인디마저 소비의 한 상품으로 환원하여 쇼윈도 안에 진열한다. 이제 인디는 패션의 일부다. 사람들은 인디 문화를 소비함으로써 예술을 향유하고 있다는 허위의식을 보상 받고, 예술가들은 주머니에 푼돈을 챙긴다. 이것은 '쿨한 딜'인가, 모두를 향한 기만인가.

앞으로 청년 문화의 중요한 갈림길은 자본과 사회를 사유하는 관점에서 극명하게 갈라질 것이다. 그 차이는 안타와 파울 볼처럼 처음에는 미세하게 보이지만 앞으로 나아갈수록 멀어진다. 우리는 왜 자본과 문화의 관계를 유의 깊게 지켜봐야 하는가. 음악이든 영화든 어차피 놀이이고, 웃고 즐기면 그만이지 먹물 티 내가며 뭘 따지느냐며 생각할 수 있겠지만 그것은 비단 기업이 괘씸해서가 아니다. 문화와 사회, 정치와 예술의 구분과 융합에 대한 논의는 이미 오래 전부터 진행되어 왔지만 특히 오늘날에 이르러선 더 이상 구분 자체가 무의미할 정도로 복잡해졌다.

일본 가난뱅이를 대표하는 마쓰모토 하지메가 동료들과 함께 벌인 일련의 활동들을 보면 정치적 메시지와 록 사운드, 요리와 낙서 등을 비롯한 온갖 퍼포먼스들이 산발적으로 터져 나온다. 이는 향후 나타날 청년 문화의 양태를 가늠할 수 있는 지표다. 행위자와 수용자를 구분하고, 관객은 그저 작품을 받아들여야만 하는 수동적인 입장으로 가둬두는 과거의 공연 방식이 앞으로 계속 흥미를 끌 수 있을까.

'80년대를 치열하게 보낸' 운동권 선배들이 진행하는 집회, 군대 조회처럼 무겁고 엄숙한 발언, 투쟁가요, 분위기에 청년들이 아무런 감흥을 못 느끼는 것을 보면 그런 회의는 더욱 깊어진다. 그렇다고 돈 없으면 입장조차 불가능하고 수입 음료와 명품 신발들이 즐비한 홍대 일대의 화려한 클럽들이 청년 문화의 대안이 될 수는 없다.

그곳에는 너무 많은 인디와 노래와 사랑과 말들이 있지만 정작 우리의 단어는 아니다. 요란하지만 한없이 공허하다. 미래에 대한 확신과 자신만만함으로 똘똘 뭉친 헐리우드 영화를 볼 적엔 열광했지만 극장 밖을 나오면 어딘지 허전함을 느끼는 것처럼. 그것은 어쩌면 소비하지만 끝내 소외될 수밖에 없는 자본주의 속에서의 필연적인 우울 때문일 지도 모른다.

돈더미 위에서 벌어지는 기만을 거부하고 진짜 놀이판을 만들기 위해 모인 사람들이 이제 자본과 시장에게 뺏긴 '인디'를 버리고 '자립'이란 새로운 이름을 빌어 한바탕 난리를 피우려 한다. 그들에겐 돈도, 배경도, 주류로부터의 관심과 지원은 없지만 대신 원초적인 분노와 힘으로 무장하여 퍼즐 조각처럼 이미 꿰어 맞춰진 한국 사회 속에서 불어넣을 신선한 바람을 갖고 있다.

자립과 대공분실을 꾸려나가는 건 우리의 몫

총회를 통해 더욱 조직적인 외양을 갖추게 된 자립은 패션으로서의 단순한 인디 문화를 넘어 "음악생산조합, 정치공동체, 경제연합체"의 가능성을 고민하고 있다. 구체적인 계획으로는 조합원의 음반 제작을 재정적인 도움까지 포함하여 전방위로 지원하고, 공연과 문화 행사를 기획하여 지역을 중심으로 청년 문화의 컨텐츠를 생산한다는 두 개의 큰 축이 있다.

이는 홍대의 터줏대감으로 군림하는 몇몇 클럽 사장의 손가락에 기회와 보상이 좌지우지되는 현재 음악가들의 비참한 처우를 개선하기 위한 자생적인 노력이기도 하고, 인디와 청년 문화가 완전히 붕괴된 시점에서 지푸라기 잡는 심정으로 새로운 활로를 개척하려는 절박함이기도 하겠다.

그런 맥락의 연장에서 대공분실은 자립의 시도를 실현할 수 있는 좋은 공간이다. 대공분실의 공연이 있을 때마다 우리가 직접 바닥에 고인 물을 퍼내고, 곰팡이 핀 가구들을 일일이 닦아내고, 반쯤 맛이 간 앰프와 구멍 나고 찢어진 드럼을 무대랍시고 만든 평상 위에 설치하고, 요란한 록 사운드가 터져 나오는 지하실에 얼간이들이 모여 맥주병이 깨지고 온갖 멍청한 순간들이 자행되지만 나는 그것이 좋다.

값비싼 정장을 입고 "나 이제 성공했어"하고 으스대는 자칭 뮤지션들이, 자기 손 하나 까딱하지 않아도 다른 스태프들이 모든 세팅을 끝내주는, 거대한 앰프와 더 거대한 에어컨이 빵빵한 클럽에서의 아무런 감흥도, 울림도 없는 '가짜 오르가즘'과도 같은 공연보다 더 훨씬.

나는 이런 시도들을 모래 알갱이에 비유하고 싶다. 정수기의 필터처럼 물이 썩지 않도록 정화해주고, 조그맣지만 그것들이 모였을 때 굉장한 장관을 연출하는,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것이 있으므로 생태계가 온전히 유지되는 사실처럼 자립과 대공분실의 존재가 지금은 비록 미비하지만 앞으로 끈기 있게 나아갈 수 있다면 분명 그 어떤 무브먼트보다 혁명적인 변화를 일으킬 것이다. (아닌 게 아니라, 나는 록을 혁명의 대안이라 굳게 믿고 있다.)

더욱이 두 조직과 모래 알갱이의 관계는 요즘 댐 건설로 몸살을 앓고 있는 낙동강의 지류인 내성천 문제와도 흡사하다. 지율 스님을 필두로 한 지역민들의 반대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정부는 어떻게든 중장비를 놀리지 않겠다고 작정한 듯 폭우 속에서도 초고속 공사를 감행하고 있는 중이다.

아직 댐이 완성되지도 않았음에도 내성천의 자랑이던 모래가 많이 유실되거나 빠져 나갔으며, 수몰되면 모래의 운명도 장담키 어려운 상황. 더군다나 내성천과 같은 모래 강은 세계적으로도 굉장히 드문 환경이라는데, 그것이 정부의 몰지각한 개발 논리로 송두리째 사라진다고 생각하니 벌써부터 위가 쓰리다. 나쁜 놈들.

어쨌거나, 내성천의 모래 알갱이들처럼 자립과 대공분실 역시 미래가 낙망적인 것만은 아니다. 당분간은 청춘의 패기, 혹은 치기로 버틸 수는 있겠으나 장기적으로 활동을 유지하기 위해선 비단 당사자들의 열정뿐만 아니라 주변의 많은 사람들이 함께 참여하고, 지켜나가기 위해 연대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물론 그럴 가치가 있음을 입증하는 것은 자립과 대공분실을 꾸려나가는 우리들의 몫이란 걸 잘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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